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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하 만능워커 명세훈
프롤로그
문집의 프롤로그를 적고 있다
그렇다는 뜻은 내가 올해10개월 여행이 끝이 나고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벌써 문집을 적을 시간이다.
작년 문집도 정말 쓸 것이 없어 엄청나게 고민을 하며 적었다.
이번에도 공부에 관한 것에 대해 적을까?
아니다.
그러면 너무 식상하다.
내가 가장 즐겨하고 열심히 해서 아이디어가 많은 것을 생각을 해보았다.
운동을 제외하고 내가 항상 좋아하고 열심히 한 것.
그것은 바로 ‘일’이었다.
3년 동안 하반하에서 나는 많은 일 경험을 쌓았지만 올해는 특히 좀 더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농사에서부터 학교 수리,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것까지.
이제부터 나는 올해 내가 한 일들을 세세하게 나의 tip까지 더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1. 기대된다 나의 손길이 닿은 학교
나는 하반하에 다니면서 공부머리 보다는 일머리가 있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고 나도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내가 흥미가 전혀 없는 공부를 하라고 하니 나는 하기 싫어서 집에서 빈둥대는 날이 많아졌다.
그 때 써니쌤께서 영월에 있는 폐교를 사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아빠가 일하러 갈 때 같이 일하러 갔다.
그곳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내가 제일 많이 한 일은 군데군데 벗겨져 예뻐 보이지 않는 페인트를 그라인더라는 것을 사용해 벗기는 것이었다.
전원 버튼을 키면은 그라인더가 돌아가는데 앞에 무엇을 장착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나무를 벗길 때 사용하는 컵처럼 생긴 솔인 컵브러쉬였다.
내가 그걸 처음 사용했을 때 그것을 너무 오래 갖다 대면 나무가 패여 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짧게 대면 제대로 벗겨지지 않아서 조절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내 손에서 그라인더가 튀면서 내가 놓칠 뻔한 적이 있다.
정말 위험해서 순간 등골이 싸늘했다.
왜 갑자기 그라인더가 튀었는지 보니 그곳에 못이 있어서 그라인더가 걸려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부터는 주변을 열심히 살피면서 바닥을 벗겼다.
그 후로 나는 금방 적응을 했다.
그렇게 몇 주간 영월에서 일하면서 나는 그라인더 외에도 다른 새로운 도구를 많이 사용해 보았다.
도끼, 빠루, 오함마 등등.
항상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면 실수할까봐 무섭고 몸이 긴장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고 점점 도구 사용이 매끄러워지는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역시 공부보다는 나는 일 하거나 공사 같은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이 곳에 계속 머물게 될 것 이었다.
그래서 영월 학교에서 이런 공사일이 많을 것 같아 오히려 나는 기대가 많이 되었다.
자기 학교를 학생이 직접 손 보고 공사할 수 있다니!
2. 명세훈 계단
나는 영월 학교에 처음 와서 한 또 다른 일은 흙 계단을 정문 앞에 만드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구령대로 내려갈 때 너무 빙 돌아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흙 계단이었던 탓에 비가 온다면 사람들이 쉽게 넘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10기가 시작되고 써니쌤께서는 나에게 더 제대로 된 계단을 만드는 일을 맡기셨다 .
나는 계단 공사를 시작했다.
크고 평평한 돌을 먼저 찾았다.
그 이유는 크고 평평하지 않으면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크고 평평한 돌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큰 돌은 많았지만 그러면서 평평한 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월 학교 근처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돌을 찾았다.
돌을 찾았더라도 그 돌을 흙 사이에 고정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았다.
돌을 흙에 고정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땅을 평평하게 판다.
두 번째, 돌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돌 아래에 빈 부분에 흙을 채우는 것이 잘되지 않았다.
막대기로 쑤시고 여러 방법으로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때에 나는 대장님께서 식물을 심을 때 흙을 오밀조밀하게 하기 위해 흙에 있는 공기를 없애려고 물을 사용하신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물을 퍼와 계단에 물을 부었다.
처음에는 질퍽질퍽했지만 마르고 나니 벽돌같이 딱딱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경사가 가팔라져서 계단을 쌓아도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그 때, 나의 구원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윤썜이었다.
나는 위에서부터 땅을 파서 한 칸씩 내려갔고 그 방법을 계속 고수하고 있었는데 윤썜은 전체적으로 땅을 파서 먼저 한 번에 땅을 완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봐야 했는데 계속 해서 나무만 본 것이다!
이제는 나무를 보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숲을 보고 일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일을 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처음 무언가를 책임지는 책임자가 되었다.
옛날에는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항상 누구 밑에서 일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책임을 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계단을 볼 때마다 나의 계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뿌듯하다.
그리고 그 계단은 3주간의 긴 장마도 버티고 눈도 버티면서 하반하에서 잘 사용되고 있다.
3. 귀농을 하다
우리는 농활을 했다.
처음에는 봉사와 경험의 취지로 학교 옆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시작은 7명에서 했지만 마무리는 우리 모두가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써니쌤께서 계속 봉사로 하기에는 일의 양이 많고 시간도 많이 쓰여서 이참에 돈을 받으면서 농촌의 다양한 일들을 우리가 해드리면 어떻겠냐 하셨다.
처음에 우리는 한 사람이 1000원도 받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의 일 실력이 늘고 그래서 일당도 만원 이 만원 늘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밭도 다양해졌다.
먼저 고추밭에 대해 적어보겠다.
3-1. 고추밭
고추는 우리가 딸 때 즈음에는 나의 허리춤에 왔다.
고추에는 초록, 주황, 빨강, 검정이 있었는데 우리는 빨간색과 주황색만 따야했고 꼭지를 제거한 채로 따야했다.
우리가 고추를 따러갔을 때 전날 비가 와서 바닥이 굉장히 질퍽거렸고 고추대가 다 쓰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지가 더러워지기 싫어 쭈그려서 고추를 땄지만 시간이 지나자 너무 힘들어 바지를 다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엉덩이 방석을 사게 되었다.
그 다음 고추를 딸 때부터는 쉽게 되었다.
비가와 쓰러진 고추대를 발로 밀어 고정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동도 쉬워졌다.
원래는 엉덩이로 앉아 있을 때는 이동하기가 어려웠는데 엉방이 생기게 되어서 편해졌고 엉방은 우리의 필수품이 되었다.
아무튼 고추를 딸 때 나는 고추대를 다리로 고정하고 한 손으로 고추를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고추를 밀어내면 쉽게 따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고추를 따다가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니 날이 쌀쌀 해지고 푸릇푸릇 했던 고추는 하얗게 색이 다 없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고추밭 일은 고추를 지지하던 고추대를 뽑아 모으고 남아있던 고추들을 다 따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가 건조기로 말려 놓은 고추를 건조기로 말린 것을 다시 상룸 가치가 있는 빨간 것만 분류를 해야 했다.
분류를 하러가서 분류를 하고 있는데 전에 밭에서 일할 때는 열심히 움직이며 뭔가 끝이 난다는 느낌이 났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어 지루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루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잘 견디어 내야 하는데 그렇게 잘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견디어 내기 위해 나의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3-2. 감자밭
감자밭 사장님은 감자밭은 12000평 가지고 계셨다.
그곳에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비닐 뜯기였다.
우리가 비닐을 뜯는 이유는 비닐을 뜯은 자리를 땅속작물수확기라고 불리는 트랙터가 돌며 감자들을 땅 속에서 꺼내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수확할 때 다시 뜯어내야 하는 비닐을 처음부터 까는 이유는 잡초가 감자 옆에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쎈 비닐을 빠르게 잘 뜯었다..
나의 노하우를 설명해보자면, 일단 팔의 스냅이 중요하다.
비닐을 접고 팔을 들어 올리면서 손목으로 비닐을 쳐주면 비닐이 잘 뜯어졌다.
일은 비닐 뜯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 날 부터는 트랙터가 뒤집어놓은 흙 속에서 감자를 줍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감자를 분류하며 주워야했다.
분류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일단 바구니가 두 개가 있다.
그 바구니 두 개에 주먹보다 작은 것과 큰 것을 나눠 담는 것이다.
이것은 손이 빠르면서도 정확해야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내가 손이 빠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 계신 할머님들에 비하면 굼벵이였다.
할머니의 손이 닿은 곳은 감자가 빛의 속도로 모두 사라져있었다.
할머니들의 눈과 손에는 감자 스캐너가 달려있는 듯 했다.
우리 누구도 할머님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할머님들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할머님들 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줍는 사람들의 감자 바가지가 가득 차면, 그걸 빈 바가지로 바꿔드리고 꽉 찬 바구니는 아주 큰 자루에 채워놓는 것이었다.
감자를 나르는 일은 줍는 것보다 힘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어려웠다.
그리고 그 일은 약간의 생각이 필요했다.
‘저 분은 몇 분 후에 가면 되겠다‘, ’저 분은 엄청나게 빠르니 자주 바꿔드려야겠다.‘ 라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면 내가 감자를 주워 담으시는 할머니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또한 그렇게 모아온 감자를 큰 포대에 옮기는 것도 생각이 많이 필요했다.
우리는 원래 500KG짜리 엄청 나게 큰 포대에 넣었는데 그게 가득차면 임시로 작은 포대에 옮겼다.
처음에는 두 명이서 포대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혼자서 포대에 넣었다.
다라와 함께 포대를 잡은 후에 붓는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다.
나는 열심히 해서 감자밭에서 엄청 많은 것들을 터득했고 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솔직히 거기서 가장 멋있어 보인 사람은 트랙터를 몰던 사람이었다.
나도 중장비 자격증을 따야겠다.
3-3. 더덕밭
더덕밭은 내가 별로 가지 않은 밭이다.
사실 더덕밭을 가지 못한 이유가 불명예스럽다.
내가 섬세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더덕밭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더덕은 크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큰 것은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내가 호미질을 해서 더덕을 캐다가 스크레치를 내면 가격이 뚝 떨어져서 굉장히 섬세하게 작업을 한다.
그래서 나는 더덕밭에 가지 못하다가 한 번 더덕밭에 가게 되었다.
나는 수경 형님에게 노하우를 듣고 갔다.
수경 형님은 일단 엉덩이 방석을 비추천했다.
그 이유는 만약 엉덩이 방석을 쓰고 하면 허리가 아파서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다.
무릎을 꿇고 하면 당장은 아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플 거라고 했다.
더덕은 땅속에 있는데 30cm 이상 깊이로 땅을 파야했다.
만약 땅을 파지 않으면 더덕이 상할 수도 있었다.
사실 포크레인이 땅을 갈라준다.
땅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데 그러면 그 땅덩어리에서 살살 발굴을 하면 더덕이 하나 나온다.
더덕은 대부분 가족 단위다.
가족 단위라는 것은 더덕이 하나 나오면 다른 것도 함께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가족 단위가 크다면 사람들이 ’큰 가족 단위가 나왔구나’라고 말하면서 좋아했다.
그리고 더덕에는 초리 중 상 특상 특 왕특 이라는 크기의 단위가 있는데 특이나 왕특이 나오면 왕특이다~라고 하며 잔치 분위기가 된다라고 나에게 말해주어서 나는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고 더덕밭에 갔다.
내가 더덕밭을 처음 갔을 때 조용하게 더덕을 캐고 있었다.
더덕밭 경험자들의 가르침을 전수받고 다행히 실수 없이 부지런히 일을 잘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나에게는 왕특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올해 비가 많이 와서 큰 더덕들이 다 썩어버린 것이라고 하셨다
올해 에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그러면서 가장 피해를 받은 사람은 농사꾼일 것 같다.
내가 만약 영월에서 농활을 하지 않았다면 , 농사하는 사람의 피해는 나의 알바가 아니고 엄마와 장보러 가면 채소값이 올랐다고 불평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월에서 농활을 하니 가뭄이나 홍수같은 재연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피해받는 사람이 농업인 이란 것을 알았고 이렇게 이상기후가 계속되다간 싲량부족 문제가 생겨 우리 모두 피해받기 전에 환경보존을 위해 차보단 대중교통 대중교통보단 자전거나 걷지를 선호하는 나와 국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4. 처음부터 내가 다 했다
우리가 처음 김장 준비를 했을 때는 6월 둘 째 주 정도였다.
가장 먼저 우리가 김치를 담글 채소를 키워야 했다.
우리가 키운 채소는 갓과 알타리였다.
채소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밭이니 먼저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밭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는 밭을 만들 자리에 높이 자란 풀들을 전부 잘라버렸다.
사실 잔디 깎기 기계를 써서 잔디를 깎으면 쉬울 줄 알았지만 기계가 계속 멈추어 작업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낫을 가지고 풀을 전부 베어버렸다.
풀을 베는 것이 끝이 나니 이번에는 땅을 전부 뒤집어야 했다.
하루 종일 곡괭이질을 하니 해가 저물어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3일 동안 하니 대부분 밭을 전부 갈았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간 밭에서 돌을 걸러내야 했다.
300평 정도 밭에 있는 돌들을 전부 걸러내니 밭이 깔끔해 보이고 지렁이들이 우글우글 한 것이 엄청난 알타리와 갓이 자랄 것 같았다.
그 작업이 끝이 나니 써니쌤께서 모종 만드는 것이 끝이 나고 그 모종들을 심는 것이 시작이 되었다.
심을 때는 써니쌤과 다른 선생님들이 했다.
난 그 옆에서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심는 것이 그나마 빠르게 끝이 났고 우리 밭을 푸릇 푸릇한 식물들이 생겨났다.
그 후로 우리가 한 일은 매일매일 아침 저녁마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물을 주며 키우고 농홀을 하고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후에 보니 눈에 띄게 자란 초록색인 알타리와 청갓이 있었고 보라색인 적갓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우리는 진찌 김장을 준비했다.
우선 써니쌤이 정선에서 알게 되신 차민주 선생님을 통해 배추도 200포기 정도 가지고 왔다.
배추를 절이는 방법도 여자쌤들이 배워왔다.
배추가 준비되자 우리는 정읍 무무쌤을 모셔와 본격적으로 김치를 만들었다.
무무쌤께서는 전라도식의 김치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무무쌤의 전라도식 김치에는 젓갈이 많이 들어가서 더 시원하고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또한 무채 같은 것이 들어가지 않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한다.
김치를 만드는 것은 정성이 엄청나게 드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김치 양념을 위한 육수를 끓여야 한다.
육수에는 북어 대가리, 멸치, 표고 버섯, 대파, 다시마, 양파가 들어가고 끓인 육수에서 건더기를 걷어내고 그 육수에 고춧가루를 넣고 배, 사과, 양파, 생강, 마늘을 갈아 넣고 미나리, 갓, 청각을 썰어 넣고 액젓과 설탕을 조금 넣고 섞는다.
그러면은 김치 소가 완성이 된다.
열심히 만든 김치 소를 절여서 물을 뺀 배추 속에 열심히 넣는다.
그러면은 아주 맛있는 배추 김치 완성!
그 후에 갓김치와 알타리를 김장할 때는 김치 소 안에 설탕을 조금 더 넣어야 한다고 한다.
배추 김치에는 단 맛이 강하지만 알타리와 갓은 그렇지 않아서 설탕을 조금 더 넣어야지 더 맛있다고 한다.
그렇게 김치는 모두 완성이 되었다.
이제는 포장이다.
사람 별로 비닐 팩에 포장해서 보내드렸다.
우리는 1kg를 보내달라고 해도 1kg를 덤으로 더 보내드리며 뿌듯함을 느꼈고 받으시는 분들이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을 하며 나는 무언가에 정성을 들이는 법을 배웠다.
식물을 키우며 매일같이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했던 나의 노력들, 김장을 하며 배추도 직접 뽑아오고 고춧가루도 우리가 직접 딴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였다.
우리가 김치를 담군 과정에서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것이 정직한 농사인 것 같다.
내년에도 정성을 다해 농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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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우리 아빠는 하반아 학부모 회장이시다.
하지만 10기 중간 중간 우리 아빠는 부모님이 아닌 일하시는 분으로 오셨고 나는 일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일을 도와서 했다.
내가 가장 기억나는 일은 공동 화장실의 타일을 까는 일이었다.
부모님들이 그 전문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말 최선을 다하시며 하셨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세탁실에 깔려 있는 타일을 부수는 것이었다.
나는 하반 하에서 목공실에서 일 할 때 오함마로 바닥을 부수며 일해서 망치 같은 것으로 일 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장비가 눈앞에 있었다.
그 것은 바로 해머 드릴이라는 굉장히 멋있는 장비였다.
그걸로 타일을 부쉈는데 처음에 나는 바닥에 엄청나게 힘을 주면서 일했는데 해인쌤 아버지께서 그것은 그냥 바닥에 올려두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하니 정말 힘이 별로 들지도 않고 타일이 깨졌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전깃줄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래서 해인쌤 아버지께서 침착하게 고치셨다.
나는 처음에 그냥 절연 테이프를 감았는데 해인쌤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테이프를 전깃줄 2개를 서로 붙인 다음에 맨 마지막에 테이프로 끝까지 감아서 끝을 더 길게 해서 ㅅ자 모양처럼 만드셨다.
그러면은 그 곳에 물이 안 들어간다고 하셨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또 다시 얻었다.
사실 전깃줄이 내가 살면서 끊어진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혹시 끊어지면은 야무지게 고쳐야 겠다.
그렇게 해머드릴도 다 고치고 타일도 다 부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시멘트를 뿌려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전에 윤쌤과 시멘트를 만들었다.
그 때는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을 적절하게 석어서 넣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멘트에 물을 붓기 전에 물에 방수액이라는 것을 넣었다.
욕실 아래에 까는 시멘트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래나 자갈도 넣지 않고 그냥 시멘트로 만들었다.
해머드릴에는 여러 가지 모드가 있는 것 같다.
타일이나 바닥을 부수는 모드, 무언가를 섞는 모드가 있었다.
이번에 우리는 섞는 모드를 사용해서 시멘트를 쉽게 섞었다.
해머드릴 같은 장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바닥도 부수고 시멘트도 섞으니 말이다.
시멘트를 세탁실에 다 붓고 화장실 2개에는 시멘트를 붓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실 두 개는 시멘트 가루를 부었다.
그리고 조리개로 물을 위에다가 조금씩 부었다.
그 방식은 야매라고 하셨다.
내구성이 약하지만 그것은 더 편한 방식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편한 것도 좋지만 뭐든지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이런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멘트를 섞어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
새 화장실 모두 시멘트를 깔았다.
이제는 압착 시멘트를 사용할 때다.
타일을 깔 때는 일반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압착 시멘트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 같다.
압착 시멘트를 섞을 때도 방수액을 넣고 사용했다.
나는 경험이 부족해서 바닥에 타일을 깔지 않고 아버님들의 보조를 했다.
시멘트가 떨어지면 시멘트를 더 가져다 드렸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른 가져다 드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익했던 것은 타일을 어떻게 까는지 본 것이었다.
타일을 깔 때는 압착시멘트를 바닥에 펴 바른다.
그 때 흙손을 쓴다.
흙손이란 시멘트를 펴 바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타일용 흙손은 또 다른 모양이다.
일반 흙손은 그냥 평평하지만 타일용 흙손은 모서리에 흠이 있어서 그 흠으로만 적당량의 시멘트만 내보낸다.
너무 많은 양의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조금만 사용하기 위한 도구인 것 같다.
그 타일들이 모두 굳었을 때 타일과 타일 사이에 백색 시멘트르 채워 마무리했다.
아버지가 참 대단해 보였다.
항상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돌아오는 우리 아빠였다.
나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하반하에 와서 한 1은 정말 다양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려면 저렇게 많은 1을 할 수 있어야 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내가 나의 아들을 낳고 딸을 낳으면 우리 아빠 같2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6. 간단하다 맛있는요리
하반하에 새로운 수업이 들어왔다.
그건 바로 요리 수업이었다.
상규쌤은 요리사로서 엄청나게 큰 레스토랑에서 일했다고 했고 요리를 엄청나게 맛있게 잘 하셨다.
처음에는 요리 수업을 하지 않으시고 요리 워커만 했다.
상규쌤과 요리를 하니 많은 것을 배웠다.
칼질을 할 때 도마 아래 행주를 깔고 도마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다.
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잘 들지 않는 것도 열심히 잘 밀면 잘 잘린다고 하셨다.
상규쌤의 방법대로 칼질을 하니 나의 칼질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이제는 칼질하는 것도 재미있고 칼질을 계속 하고 싶다.
그러면서 요리 워커에는 규칙이 생겼다.
매일 새벽이나 저녁에 아침을 먹을 것과 반찬 하나를 해야 했다.
수경형님께서는 점심과 저녁 음식 준비까지 모두 해두었다.
반찬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하반하에서 가장 많이 먹던 반찬은 진미채와 어묵 볶음이었다.
진미채를 하는 방법은 가장 먼저 고추 기름을 만들어야 했다.
고추 기름은 기름을 달구다가 거기에 고춧가루를 넣고 마늘을 넣고 볶는다.
마늘이 누리끼리 해졌을 때 설탕을 넣고 물엿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요네즈를 넣고 마무리한다.
마요네즈는 오징어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이다.
그러면 아주 맛있는 진미채가 완성이 된다.
어묵 볶음은 진미채보다는 복잡하다.
가장 먼저 어묵을 넣고 볶다가 양파, 당근, 마늘을 넣고 볶고 간으로 간장과 설탕을 넣는다.
간장을 대신해서 매운 데리야끼 소스를 넣지만 나는 너무 매워서 간장 소스로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면 어묵 볶음도 완성.
요리 수업에서 내가 가장 맛있었던 것은 안동찜닭과 동파육 비스무리한 고기 음식이었다.
첫 번째로 안동찜닭은 1인분 기준으로 양파 반개를 슬라이스 썰고 양배추 50g 썰고 닭을 중불에서 기름이 나오도록 굽고 다진 마늘 반 수푼, 굴 소스 한 수푼, 설탕 한 수푼, 간장 두 수푼, 물엿 두 수푼으로 만든 소스를 닭에 넣고 물은 짜글짜글 해질 때까지 넣고 야채를 넣는다.
필요시에는 감자도 넣어도 된다.
물이 끓으면 강불에서 중불로 줄이고 닭이 양념을 흡수하게 한다.
마지막에 찬물로 불린 당면을 넣고 쫄이면 끝이다.
당면을 불릴 때 물의 다시다를 넣으면은 더 맛있다고 한다.
안동찜닭보다 더 쉬운 요리가 동파육 비슷한 고기 요리다.
왜 우리가 동파육을 만들지 못했냐 하면은 동파육에 쓰이는 향신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맛 간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맛 간장에는 간장 1L, 물 1L, 배 한 개, 사과 한 개, 통마늘 5~6개, 파, 멸치, 다시마, 설탕을 넣고 15분에서 20분 정도 끓이고 다시마를 빼서 버린다.
다시마를 오래 끓이면 다시마에서 쓴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마를 뺀 후 강불에서 30분, 약불에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끓인다.
그리고 오겹살에 칼집을 넣고 기름에 겉면을 굽는다.
그리고 아까 끓인 간장에 넣고 삶으면 완성이다.
아까 말한 간장 레시피는 일반 맛간장 소스여서 부침개에 찍어 먹어도 어떻게 먹어도 정말 맛있다.
나는 요리를 하며 자신감이 더욱 더 붙었다.
나는 원래 요리를 하면 겁2나 간을 잘 하지 못했는데 2제는 간을 하면 겁 없2 적당한 양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요리가 어렵다라는 편견이 깨진 것 같다.
상규쌤께서 요리를 할때마다 하신 말씀이 있다.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면은 너무 어렵게 가르쳐 준다. ” 라고 하시며 요리를 정말 쉽고 간단하게 가르쳐 주셨다.
상규쌤께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는 재밌게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7. 청소요정 명세훈
하반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설거지이다.
특히 우리는 여행을 하며 엄청나게 다양한 곳에서 설거지를 했다.
기억에 남는 설거지는 제주도에서의 설거지였다,.
우리가 제주도 여행을 하고 있을 때 퐁퐁 즉 세제가 없었다.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닦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닷가의 모래를 사용하여 기름기를 제거하고 물로 헹궈내서 기름기를 없앴다.
모래가 아니더라도 잡초 같은 풀의 뿌리로 할 수 있다.
올해는 또 하나 조금 특별한 설거지, 부엌 정리를 했다.
나는 3년 동안 하반하에서 이렇게까지 설거지를 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대청소였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주방을 대청소했다.
만약 우리가 해외에 있었다면 매일 설거지 워커만 하여 같은 일을 했었다.
하지만 영월 즉 우리 집에서 일하니 냉장고와 서랍도 가득 차 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상규쌤께서 매주 금요일 대청소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셨다.
대청소 때마다 돌아가며 크게 4가지 일을 한다.
첫 번째는 냉장고 정리 두 번째는 실온 재료정리 세 번째는 접시가 있는 서랍장 정리 네 번째는 창문을 닦는 것과 벽 먼지 털기 그러면 한 달이 지난다.
나는 수경형님과 설거지 팀일 때가 많았다.
수경형님과 나는 대청소를 가장 많이 한 팀일 거 같다.
수경형님은 청소를 정말 잘한다.
정말 내가 상상하지 못한 곳까지 꼼꼼하게 청소를 하신다.
나는 청소를 하면 덤벙거린다.
그런데 수경형님은 정말 꼼꼼히 해서 나도 수경형님의 그런 꼼꼼함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청소를 하며 깔금하게 청소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나는 원래 청소를 해도 지저분 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팀인 수경형님과 워커를 하다보니 계속 더 깨끗한 방법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지저분한 부분이 내 눈에 걸리고 치우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집에서도 영심히 청소를 해야겠다.
올해 한국에 있으며 특히 환경 공부를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어떻게 해야 물을 가장 적게 사용할까?’였다.
그때 떠오른 곳은 우리 학교 수도관이 동파 되었을 때 적은 물을 사용하여 설거지를 했을 때 사용한 방법이였다.
그 것보다도 물을 절약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설거지를 하는데 3개의 냄비가 필요했다.
첫 번째 냄비는 애벌 설거지용 냄비 그리고 거기에 그릇에 물을 건더기를 제거하고 비누칠하고 두 번째 냄비를 비눗물을 제거한다.
그 후에 가장 깨끗한 물을 두 번째 물로 사용하고 에벌 할 때 사용한 물은 버리고 가장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물을 절약하기에는 정말 좋은 거 같다.
하루에 두 냄비만 새로운 물을 사용하는 것이고 3개의 냄비에 있는 물을 냄비에 3분의 1씩만 부우면 하루의 3분의 2냄비만 새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루 설거지하는데 3분의 2 냄비면 굉자히 절약할 수 있을거 같다.
하지만 이것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을 제공하고 환경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값어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실천하겠다.
에필로그
문집을 쓰면서 한해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되는 거 같다.
일단 나는 이번 문집 내용을 일하는 것을 적었다 해도 한 해 일만 한 것은 아니고 공부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잘하지 못했다.
나는 집중력이 너무 좋지 않고 끈기도 부족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집중력이 좋지 않고 끈기가 없다면 어떤 것을 해도 잘할 수 가 없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잘 한다고 해도 그런 끈기가 없다면 그 일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내년에도 하반하에 온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하반하를 더 크게 볼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학교가 아닌 한 사업체의 인턴이 되는 것이다.
내년에는 하반하 학교와 하반하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미래를 보면 나중에는 하반하 사회적 기업의 매니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반하에 오랫동안 있다고 매니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재경형님이나 도윤형님 수경형님 같이 나의 일을 잘하며 남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한번 마음을 잡았을 때 빠르게 끝내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지 집중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계속 딴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런 것을 무시하며 계속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나의 할 일을 시간 내에 끝내서 사랑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의 시간대를 구해서 나의 계획을 짜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할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공부만 하지 않을 것이다.
대장님께서 이번에 산 땅에 건물을 지어 볼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데 대장님을 도와 나의 일 실력을 더 늘려서 나중에 리더가 되는 날까지 기다리겠다.
내년에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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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세훈이 맞는거지?
처음봤을 때 애기티를 벗지않은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청년티가 팍팍나고 멋져지고 문집내용에ᆢ 농사 일 요리 청소까지 아줌마도 한 수배웠다
제목도 어쩜이렇게 잘 짖었을가?
세훈아 내년에도 화이팅!!
세훈이의 손길이 닿은 학교
볼 때마다 뿌듯하지?
특히나 세훈이의 계단은 사용할 때마다 세훈이를 떠올리게 할 것 같다
일도 많이 배웠고 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직접 실천하고
모두 다 책상에서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직접 해보는 교육을 받은 것 같다
다시 하반하 오기로 결심한 세훈이
올해도 키도 쑥쑥 공부도 일도 마음도 더 큰 사람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세훈이의 일년이 정말 알찼네^^
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자신이 한계를 뛰어넘을 줄 아는 세훈이 앞으로의 시간들도 응원할깨^^
우와~
세훈이 문집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구 세훈이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는 엄청나게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걸 알게 된 거 같아. 너는 일머리와 공부머리를 구분했지만 어느쪽이던 한쪽을 잘 하게 되면 다른 분야를 잘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걸 알기때문에 11기의 세훈이는 일머리와 공부머리가 동시에 확장되고 열리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올해 세훈이의 성장보고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ㅎ
훈아~
영월 하반하학교는 진짜 훈이에겐 "우리 학교" 가 된것같다.
폐교를 사신후 형님들은 돌아가고 혼자 남아 대장님을 돕고 있는 넌 담담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할때 상상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놀랐어.
문집에서 얘기한것처럼 계단을 만들고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쓰고 페인트를 벗겨냈던 그 시간들이 이젠 뿌듯함과 애뜻함으로 훈이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것 같아.
여러 경험들을 통해 훈이의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하는 힘이 성장하게 되서 엄마도 흐뭇하고 특히 훈이를 꼭 데리고 있겠다고 해주신 써니쌤께 너무 감사할뿐이야~
올해도 훈이가 결심한 일들 잘 이루어 나가길 응원하며 기도할께♡
세훈아ㆍ
정말 고맙고 수고 많았어
3주간의 긴 장마와 추위에도 끄덕없는 계단과
학교 구석구석
곡갱이 질로 감나무를 심어주던 어린 세훈이를
절대 잊지 못할거야
요리와 환경까지
정말 기대많이 되는 인재같다
2021년도 행복하고 화이팅!
하반하 일꾼 세훈이.
써니샘이 너를 얼마나 든든하게 생각하시는 지 알지. 영월학교 하나 하나에 세훈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니...상황판단과 행동력이 빠른 세훈이 이제 학습에서도 좀더 속도를 올릴 수 있을거야. 11기에서 너의 활약이 기대된다. 부실공사 없이 계단. 벽, 화장실까지 해낸 너의 황금손이 올해는 다이아몬드손이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