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만행
그대들은 비행기를 타고 인도를 잘 다녀왔구려!
서묵 / 대교과(4학년)
대교반은 '제60회 졸업여행' 으로 인도 성지를 순례하였습니다. 1,300년 전 신라의 혜초慧超스님은 723년에 바닷길로 시작하여 7년간 인도의 불교 성지와 중앙아시아 등을 다니시고 실크로드 중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 장안에 도착하셨습니다. 험난한 길에서 흘리신 눈물을 통해 위법망구爲法望軀의 고단함을 표현한 시, 몇 구절을 읊어 봅니다.
道荒宏雪嶺도황굉설령 險澗賊途倡험간적도창 길은 거칠며 정상에는 대설 쌓였는데 험한 산골에는 도적이 많구나!
鳥飛驚峭嶷조비경초억 人去難偏樑인거난편량 새는 날다가 산 높잉 놀라고 사람은 외나무다리 겨우 넘누나!
平生不捫淚평생부문루 今日灑天行금일쇄천행 평생에 눈물 흘려본 적 없건만 오늘 천 줄기 눈물이 볼을 적시구나!
2023년 10월 말 저희는 부처님께서 출가 길을 떠나시듯 달빛, 별빛 아래 해탈문을 나섰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저희를 7시간 만에 인도로 보내 주었습니다. 저희에게는 바다의 태풍, 모래바람 속 해골이 지표가 되는 방향, 내장이 불타는 뜨겁고 목마른 길, 고독한 여정, 수많은 경전 운반일 등이 없었습니다. 개인 짐도 여행 가방 바퀴가 가볍게 옮겼습니다. 인도 도착 후 소소한 불편은 있었지만 70년대 한국 같은 마을 모습에 촉촉한 눈빛이 되었고, 부처님의 성지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가슴 벅찬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병고자가 많아 여행 준비에 어려움이 있어쓴데 9월부터 세심히 준비하고 어른 스님들께서 여러 가지로 지원해주신 덕분으로 여여하게 순례했습니다. 15일간 맑은 날씨에 인솔자 스님은 복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8C 혜초스님의 여정에 견주면 얼마나 안전하고 편하고 빠른 길인가요! 21C 성지순례를 보시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첫 방문지인 사르타트에서는 오비구와 초전법륜 법문을 떠올렸고, 갠지스강에서는 금강경 속 항하사 모래도 만졌고, 방생도 했습니다. 마하보디 사원에서는 시성정각始成正覺하신 곳 보리수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였고, 묘법연화경 설법지 영축산에서는 강한 햇살 아래 법화경 기도를 했습니다. 나란다 대학에서는 그때 재학 했다는 도반의 개그가 있었고, 비구니 출가 승인처 바이샬리 대림정사에서는 붉고 아름다운 노을 속 늠름한 아소카 석주의 사자 한 마리도 보았습니다. 쿠시나가라 열반당에서는 와불臥佛에 가사 공양을 올렸고, 기원정사에서는 부처님의 숙소인 '간다꾸띠' 앞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며 공성을 사유했습니다.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동산에는 부처님의 아기 때 발자국이 있었고, 카트만두의 성지 입구에는 간병하는 부처님 벽화도 있었습니다. 성지마다 막내 스님의 목탁 소리에 엄마뻘인 제가 선창하고, 후창하는 도반 스님들의 불심 짙은 삼귀의와 사홍서원, 또 탑돌이 정근 시간은 아주 감동스러웠습니다. 초심 살린 인솔 스님의 발원문 합송과 열성 어린 찬불가 제창 등으로 한국 예비 비구니로서 성지를 장엄하고 왔습니다. 비밀 아닌 비밀! 故 운산 학장 교수 스님께서 기도 성취를 많이 보셨다는 마하보디 사원 '따라보살' 님! 정면에서 우측 첫 부조인데, 저희는 탑돌이 때 스님을 떠올리며 보살상에는 손 내밀고 저두를 올렸습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가사의 힘인지 처처마다 다른 나라 스님과 신도 분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저희도 스님들께 보시를 올리고 마음으로 환영의 뜻을 보냈습니다. 동방아와 가사 차림의 저희를 보고 "와, 이 드레스는 뭔가요? 헤어스타일도 특이하네요?", "아주 아름다워요, 당신들은 누구인가요?", "와! 코리아에서 왔나요? 같이 사진 찍어도 되나요?" 등의 멘트를 받으며 많은 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학생스님이고 부처님의 딸 샤카디타Sakyadhita라고 알려 주었는데 어떤 이는 알아듣고, 어떤 유럽인들은 생소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스님이라는 당연한 인식이 상황에 따라 설명이 필요한 작금이 재밌기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한반도도 인도에서 성인이 나섰고, 혁명적인 불법을 실천하고 계셨으며 45년간 많은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셨던 현실에 대한 자료가 없었음이 생각났습니다.
쿠시나가라에서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다비하신 직후 구전 법문은 1차 결집을 거쳐 이어오다가 3,4차 결집 때 드디어 문자로 패러다임을 바꾸게 됩니다. 붓다 적멸 후500년 경인 이때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인이 인도에 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가 있어 중앙아시아에 인도불교가 전파되고 중앙아시아의 불교가 중국에 먼저 유입되었습니다. 마명, 용수, 법현, 구마라집, 세친, 무착, 불타발타라 등 뛰어난 스님들의 불전이 중국에 전해졌으며 한역漢譯 작업이 번생해졌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도 불멸佛滅 900년 후부터 불법이 성행하려고 꽃봉오리를 맺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사찰 내에 강당을 짓고 강원의 시작인 경학이 강설됩니다. 열반, 1,100년 후 신라 557년 진홍 대제 때 드디어 운문사가 창건됩니다. 서서히 불전들이 쌓여가다가 불멸 1,500년이 지나서 고려대장경이 완성되고 2,000년이 지난 조선왕조에서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십니다. 이런 인연들이 만개하여 불멸 2,500년 후, 운문사 대교반은 교수 스님들께서 한글, 한문으로 가르쳐 주시는 대승 불법을 배우고 그 환희의 근원지를 찾아 인도로 날아갔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한 불법의 이어짐에 수희 찬탄 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남섬부주를 떠나려 하실 때 간곡히 '설하여 주십시오!' , '설하려 주십시오!' 라고 법을 청한 범천왕, 불심을 석주와 84,000개의 사리탑으로 만드는 실행력을 보이신 아소카왕, 목숨을 건 역대 구법승들의 기행紀行, 부모님께서 주신 육신,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이 시대에 석유가 된 공룡, 한역 사업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중국 왕 등등이 있으셨고,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창제하시고, 신미대사信眉大師 등의 도움으로 최초의 불서佛書 '석보상절釋譜詳節' 을 만드셨고, 세조는 '간경도감刊經都監' 을 세워 주요 불전을 국문으로 번역, 출판, 반포하셧습니다. 그래서 AI의 위협을 예방하자는 국제회의를 하는 현대 첨단 시대까지도 불서가 보급되어 많은 사람이 불교의 근본이념과 교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와 금이 비처럼 내려도 부처님으 사구게 하나 수지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탐진치의 쳇바퀴에서 나오도록 끌어주신 스승 스님, 감사합니다! 20년 복던 마일리지를 남기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 삼배 올립니다. ! 회주스님, 주지 스님, 율주 스님, 강주 스님, 학장 스님 이하 모든 운문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와의 첫 인연으로 든든한 인솔 스님을 해 주신 송운 교수 스님, 고맙습니다! 대교반이 없는 운문사를 온몸으로 지킨 후배 스님들, 고맙습니다! 후배 스님들도 인도 성지에서 학인으로서 가사를 수하고 도반들과 기도 올리는 단 한 번뿐인 이 기회, 꼭 경험하시를 권해봅니다. 이 순례길의 수많은 감동을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에 회향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불기2567년 雲門지 겨울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https://youtu.be/qkYpniaU220?si=n7Daxy6N1t4LDg-o
https://youtu.be/MXNP_j4Qcow?si=5r4JAmfqL6bDaO6-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좋은글 읽고 사진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비온 뒤 풍경이 참 청아하고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풍요로운 소식 감사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