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에 관한 시모음 5)
초봄 오시네 /차영섭
오시고 계실까
잠드셨을까
오신다는 소식은 접했으나
아직 깜깜 무소식.
저 산 너머 남쪽 나라 땅속에서
파릇파릇 얼굴 내밀고 두리번거리실까
봄이여! 희망이여!
님 오시는 길 행여 거칠까 봐
구름이 마중 나가
안개로 물 뿌리시고
미끄러운 길 녹이나니,
산수유 진달래 앞장 세워
사뿐사뿐 꽃신 신고 오소서
오시어, 슬픈 사람에게 기쁨을,
막막한 사람에게
희망의 빛을 주소서!
조춘(早春) /김양식
눈 내리는 아침
솔잎의 시샘이
연두빛 불꽃을
훌훌 피울 적
너는 살짝 제비목욕하고
머리 뒤꼭지도 마르기 전에
맑은 눈빛으로 내게로 온다.
이른 봄 /박인걸
경칩으로 가는 길목에는
차가운 바람도 비켜섰고
꽃망울을 어루만지는 햇살이
산수유가지에 앉아있다.
양지쪽 낮은 언덕에는
어떤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움츠렸던 참새 떼들은
봄이 온다며 왁자지껄하다.
며칠 전 내린 이른 봄비에
나무마다 윤기가 돌고
거칠기만 하던 넓은 들판은
봄기운이 크게 감돈다.
다홍치마를 입은 아내가
엷은 목도리를 두르고
공원(公園) 길을 걸어갈 때
봄빛이 발자국을 따라간다.
조춘(早春) -1999년 /조병화
산장山莊 넓은 유리창 밖에
너울거리는 나뭇가지들을 무심코 보고 있노라니
문득, 지나간 30년 세월
그때 심은 어린 초목草木들이 저 혼자 자라
하늘에 치솟아
봄이 오는 차가운 바람에
너울 너울
먼저 떠난 사람 아득히
세월도 너울 너울
아, 인생도 너울 너울
나도 혼자 너울 너울
오는 봄도 너울 너울.
이른 봄의 서정 /김소엽
눈 속에서도
봄의 씨앗은 움트고
얼음장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흐르나니
마른 나무껍질 속에서도
수액은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건져 올리느니
시린 겨울밤에도
사랑의 운동은 계속되거늘
인생은
겨울을 참아내어
봄 강물에 배를 다시 띄우는 일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렸어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게 되어 있나니
서러워 마라
봄은
겨울을 인내한 자의 것이거늘
조춘(早春) /류혜종
도랑가 따스한 봄볕
물오른 가지 하이얀 솜털
잔뜩 입은 버들강아지
싱그러운 바람결에
봉우리 움틔운다.
허전한 마음 산야(산야)에 매어두고
흐르는 냇가 너울 속에
넘실넘실 밀려오는 님의 모습
사뿐사뿐 그리움 가득 싣고
새하얀 연꽃 바람타고
사붓이 쌓여만 가네.
조춘 /민경대
나의 발밑에서부터
온다
걸어서 온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싶어
나의 사타구니로 들어온다
이른 봄의 시 /천양희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도 둥지를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메아리는 능선을 짧게 찢는다
한 줌씩 생각은 돋아나고
계곡은 안개를 길어 올린다
바윗등에 기댄 팽팽한 마음이여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랐구나
아직도 덜 핀 꽃망울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둘러 나를 앞지른다
아무도 늦은 저녁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리움은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이 붉다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온 동네 골목길이
수줍은 듯 까르르까르르 웃고 있다
조춘(早春) /김소원
타래진 햇살
下午를 엮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붓끝을 모으면
香 스민 자국마다
숨결이 돋아
草書 머문자리
조으듯 일어서는
蘭香 바람에
놀라는
世上.
조춘(早春) /곽문환
일시에 일어나
휘파람을 불어댄다
일순간
우지끈 터지는 소리
시작이 되고 있었다.
초춘(初春) /조위제
잔설 남은 산골짜기
겨울 이겨낸 나목들
수정 얼음 밑에선
쪼르륵 쪼르륵
봄 오는 소리
바위 밑 개구리
깊은 잠 깰까
아직도 입춘은
저 만큼 있는데.......
조춘 早春 /서봉석徐奉錫
지난해 이맘때 쯤에는
인천대공원 관모산 장수천으로
버들강아지의
하얀 솜털 화문석에 앉아 있는
봄을 보았는데
올해는 어디에서 그 비경을 볼 수 있으려나
남양주 두물머리 강가에다
더듬이 하나 들여 보았다
아직 추운 탓인가
하얗게 식은 풍경 몇 개 건져질 뿐
구름이 끌고 다니는 적막
무성영화처럼 심심하다
남, 북한강따리 올라온 바람이
한강 에 어울려
얼음 지치며 노는 강바닥 멀리
오돌 거리는 산 빛 절로 시리다
파란 잎 출렁이던 연 밭에는
마른 줄기들이
시련이란 듯 못 박혀져서
오는 봄 물리는 철조망 같다
물새도 빈 박자로 나는 듯 저물고
어둑 발 놀 빛 찬 구름에 우련 붉다
아직 때가 이르군 맘 상해 돌아오는데
언 몸 덥혀 주는 차 중 온기 때문인가
앞자리 처녀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가
봄 빛 물고 오던 그 제비런둣
소식 궁금해지는 사람 많아지던 걸
오늘은 옛 사진첩 에다 접어 두었던 그 봄
아직도 옛스러운가 찾아 봐야겠다
조 춘 /김경희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손이 흙의 꿈이
제 가슴 속에서
두근거리고 있는 동안
봄은
제가 먼저 오누나
새 이 돋는 풀비탈 아래
작은 마을.
지나간 세월의
풀할애비 할애비
무릎에 안기어
밥 먹는 법도 배우던
아기들,
첫 은수푼에 넘어
흘리는 고운 밥알의
냉이순, 쑥닢순, 민들렘
꽃순은 피어
댕, 댕, 댕 울고 있는
봄 언덕
내 두 손 펴 받아보느니
돌아올 맑은 나비
정다운 하늘 빛
아아로이 눈물 위에 얹힌다.
이른 봄 /차윤옥
땅속에서 우아한 속삭임이 들린다
겨우내 눈 속에서 꼭 잡았던 손을 놓고
복수초가 노랗게 해산하면
너도 나도
들썩이며 어깨 춤춘다
꽃망울을 매단 매화
상처 하나 없이 환하게
태양을 느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 일구겠다는
일념 하나로
긴 겨울 이겨낸 민초들
광화문광장에서
청계천 물살에 기댄
봄은 섬세한 혁명이다
초봄이 그리워진다 /이기영
겨울비
촉촉한 들판을 보면
얼음장 밑 시냇물과
마른가지 물기 돋는 초봄이 기다려진다.
갈빛의 밭두렁에서
냉이 달래 캐어 소쿠리 담던 동네 아이
환한 웃음들
연두빛 싹들이 성에를 갈라
꿈 틀고
새들은 길어진 하늘 향해 날개짓 하면
뭉게구름에 눈가 젖어드는
평화
평화
초봄이 그리워진다
조춘(早春) /문인귀
지난 밤 빗 소리로
어머님은 손 바닥에
당신의 원을 그리시고
주름마다 도랑을 트십디다
여물 삶는 연기에 내운
암소의 눈길이
뒤안을 더듬다가
부딛치는 소리일까
투둑, 투두둑
움 터지는 소리에
우물이 흠칠
한자는 더 불어 오르고
안개로 닦아 낸
쪽바가지 속 면경에
누이가
새하얀 아침을 인채
매화ㅅ 잎 붉은 연지로 서 있다.
봄, 까꿍 /성백군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추운데
동네 담 모퉁이 벚나무는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만개(滿開)를 넘어 허공에 분분하며
겨울잠을 깨운다
땅 위에 떨어져 엎어진 낙화 한 송이
안쓰러워
주워, 뒤집어 보는데
‘까꿍’ 수술들이 모여 아는 체한다
나도 드려다 보고 눈 맞추며 ‘까꿍’ 하는데
어디서 또 ‘까꿍’ 이다
더부살이 다람쥐 한 마리 늦잠 자다 깨었나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벚나무를 오르내리며 이쪽저쪽에서
‘까꿍’ ‘까꿍’ ‘까꿍’
저기, 젖먹이 동네 아이
엄마 손 잡고 아장아장 걸어온다
중국, 일본, 한국 아이, 인도?
모르겠다. 저도 모르겠다고 말똥말똥
아무렴 어떤가, 제가 봄이라 귀여운데 ‘까꿍’
신기하고, 낯설고, 멀고, 가깝고, 이상하다고, 아이 눈망울에
봄이 ‘까꿍’ ‘까꿍 ‘까꿍’
이러다간
내 혓바닥에 가시가 돋겠다
늙은 몸에도 꽃샘바람 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