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한국샬렘영성훈련원 김오성 디렉터님의 글입니다.
---------------------------------------------------------------------------------------------------------
그룹영성지도: 온 마음을 다해 듣는 공동체가 되는 길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영성에 관한 책들을 읽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몰랐다.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판은 읽었지만 음식은 하나도 맛보지 못한 셈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반세기가 지난 2008년에서야 미국 샬렘영성훈련원(Shalem Institute for Spiritual Formation)에서 진행하는 영성훈련 과정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이때 비로소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고 그동안 훈련하고 체험한 내용을 나누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침묵 기도와 영성 형성, 영성 지도에 대한 과정을 진행해왔다. 이때 다양한 교파의 성직자와 평신도를 만나 그들의 신앙적인 고민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신앙적인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공부나 기도 모임,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있지만, 영혼의 성숙을 위한 구체적인 훈련 과정은 없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깊은 마음을 나눌 수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친밀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자기 자신을 깊이 알 수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이 고민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영성훈련을 시작하기 전 필자가 가진 고민이기도 했다.
그룹영성지도의 의미
•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 주님은 이 일들 가운데 어떻게 임재하고 계신가?
• 주님은 나를 위해 지금 어떤 갈망을 가지고 계신가?
• 어떻게 행동해야 주님에게 나 자신을 열어 드릴 수 있을까?
우리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걸어가면서 위와 같은 질문을 자주 하며 그에 대한 답을 듣기 원한다. 일상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부르고 계시는지 알아차리기를 원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지도하시는 독특한 방식을 알아내고 확인”1하는 것을 ‘분별’(discernment)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별을 도와주는 것을 기독교 전통에서는 ‘영적 동반’(spiritual guidance)2이라고 말한다. 포괄적 의미에서 영적 동반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른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영적 성숙을 돕는 행위를 말한다. 협의의 영적 동반은 동반자
(directee)의 영적 체험, 특히 부르심에 관한 체험과 느낌을 기도 중에 경험하게 하며 성령의 임재하심 안에서 함께 그분의 뜻을 분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반자의 영성 생활을 돕고, 점차 스스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성숙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적 동반에는 일대일 관계의 영적 동반 그리고 몇 사람이 함께 만나서 분별하는 ‘그룹영성지도’가 있다.
로즈마리 도어티(Rose Mary Dougherty)는 그룹영성지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이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차리도록 돕기 위해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있으며 다른 이들의 응답을 위해서 지원할 것을 동의하며 모인다.”3 이렇게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차리도록 함께 모이는 사람들을 예수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5)라고 하면서 가장 가까운 혈연 공동체보다 더 친밀한 영적 공동체로 여기신다. 이러한 영적 공동체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나누면서 신비로운 영적 친교의 역동을 이루어간다.
샬렘영성훈련원에서는 영적인 친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를 ‘급진적 신뢰’(radical trust)라고 한다. 영어 단어 ‘래디컬’(radical)은 보통 ‘급진적’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뿌리나 기초에서 비롯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라디칼리스’(radicalis)에서 유래한다. 그런 점에서 ‘급진적 신뢰’라는 말은 ‘근본적 신뢰’, ‘철저한 신뢰’ 혹은 ‘본원적 신뢰’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이 영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게 이끌어주시고, 우리를 통해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신뢰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요 3:8)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성령께서 활동하며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
영적 공동체는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자전거 바퀴와 같은 이미지로 설명할 수 있다. 자전거 바퀴는 중심축에 여러 개의 바큇살이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을 하나의 바큇살로 상상해보자. 각자가 중심축 즉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과의 친밀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을 원하는 다른 구성원들까지도 같이 친밀해진다. 그래서 영적인 친교를 이룬다.
기도 어린 경청과 관상적 중보기도
그룹영성지도를 진행할 때는 ‘기도 어린 경청’(prayerful listening)과 ‘관상적 중보기도’를 함께 한다. ‘기도 어린 경청’이라는 말은 한국샬렘영성훈련원을 설립하던 초창기에 함께 기도하며 훈련하던 사람들이 ‘프레이풀’(prayerful)이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다가 ‘어리다’라는 말이 어떤 현상, 기운이 배어 있거나 은근히 드러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번역한 말이다.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도 충만’이라는 말로 번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렇게 번역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가득 차서 오히려 성령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래서 ‘기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의식적인 관계를 의미한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과 자세와 태도를 ‘기도 어린’이란 단어로 표현하게 되었다.
‘기도 어린 경청’에는 세 가지 기본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 사이에 친밀하게 현존하시는 것을 자각하며, 지금도 선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태도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청하고, 그 사랑에 반응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자신을 내어놓는 태도이다. 세 번째는 삶의 매 순간 하나님과 깊게 일치하며 머물기 위해 자신의 고집과 불안을 떠나보내고, 영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구마저 내려놓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를 지닐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판단하거나 비평하지 않고, 그 사람이 영혼 깊은 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흔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체험, 가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하면서 조언이나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고 나눔을 하는 사람의 영혼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경청하는 자세를 ‘온 마음을 다해 듣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에고(ego)를 죽이면서 온 마음을 다해 들으려고 할 때 ‘기도 어린 경청’이 이루어질 수 있다.
‘관상적 중보기도’4는 로즈마리 도어티가 그룹영성지도를 진행할 때 제안한 ‘침묵’을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훈련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것이다. ‘관상’(觀想)이라는 말은 영어 ‘콘템플레이션’(contemplation)을 번역한 말이다. ‘콘템플레이션’은 함께(with)를 의미하는 접두사 ‘콘’(con)과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곧 템플(temple)을 의미하는 라틴어 ‘템플룸’(templum)의 합성어이다. 즉 ‘콘템플레이션’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에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관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내가 함께하고 있음’ 또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물론 관상이라는 말은 주어진 맥락과 상황에 따라 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지식이나 체험, 가치 판단을 내려놓게 된다. 관상적인 태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바라보실까를 염두에 두면서 자기 생각이나 판단 기준이 제한적·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태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끌어주실 때 그 이끄심에 응답하려고 마음을 여는 태도이다.
중보기도는 분열되고 왜곡되고 고통받고 파괴되는 비참한 현실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 나라는 비참한 현실을 치유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중보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관상적 중보기도’는 우리가 중보하기를 원하는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하나님에게 중보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 이미 기도하고 계시고, 활동하고 계신다. 관상적 중보기도는 우리의 바람이나 기대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이미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에 마음을 열고 귀담아듣는 것을 뜻한다.
그룹영성지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관상적 중보기도를 한다. 이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그룹 전체를 통해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차리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깨닫는 것이다. 그룹영성지도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이를 통해 기도 어린 경청이 무엇인지를 점점 더 깊게 체득하게 된다.
로즈마리 도어티는 모든 참여자에게 첫째, 하나님과 정직한 관계를 맺고, 둘째, 온 마음을 다해 기도 어린 경청과 반응을 하며, 셋째, 자신의 영적인 여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용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헌신은 상호 간에 깊은 신뢰를 쌓을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그룹영성지도 참여자들은 ‘이중 비밀 보호의 원칙’을 약속한다. ‘이중 비밀 보호’는 첫째, 그룹영성지도 시간에 나눈 내용을 다른 시간에 발설하지 않는 것, 둘째, 그룹영성지도 시간 이후에는 내용을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그 내용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중 비밀 보호의 원칙을 지킬 때 참여자들은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나눌 수 있다.
그룹영성지도의 진행 순서
이제 그룹영성지도를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순서를 알아보겠다. 각 그룹의 구성원은 최소 3명에서 최대 7명(촉진자 포함)이 좋다. 이때 그룹은 친분에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는 갈망’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갈망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룹영성지도가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느낀 계기가 무엇인지 질문하면 갈망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분별을 마친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가량 함께 모여 그룹영성지도를 한다. 그룹이 형성되면 우선 구성원들이 어떤 영적 여정을 걸어왔는지, 즉 영적 자서전을 나누는 것이 좋다. 이때는 신앙에 영향을 끼친 가족 관계, 영적 전통, 신념, 영적 공동체, 하나님에 대한 주된 이미지, 자신이 주로 하는 기도 방법, 영성훈련 등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개인적인 심리 성향(MBTI, 에니어그램, Disc 등)을 나눌 수도 있다. 그룹영성지도는 촉진자(진행자)를 통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5
1. 침묵기도(3-5분) 침묵기도로 시작하면서 지난 한 달간의 영적 여정을 성찰한다. 일반적으로 그룹영성지도에 참여하기 전에는 기록해둔 영성일지를 살펴보면서 조금 더 분별하고 싶거나 나누고 싶은 주제를 한두 개 정도 준비한다. 이 시간 침묵기도를 하면서 나누고 싶은 주제를 조금 더 성찰하고 나눌 준비를 한다.
2. 나눔(10-15분) 준비된 사람부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촉진자가 정해진 시간을 알리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들은 나눔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말고, 나누는 사람이 언어로 표현한 내용 밑에 있는 깊은 영혼의 갈망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이해를 돕는 질문(필요 시에만 3개 이내로) 나눔을 해준 사람의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거나 사실관계가 명료하지 않을 때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눈 사람의 상황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관상적 중보기도를 하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이 3개를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4. 관상적 중보기도(3-5분) 나눔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현존 안에 잠시 머물면서 나눈 사람을 위하여 짤막하게 기도한다. 기도 후,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하고 계실까를 질문하고 경청하면서 기다린다. 마음에 떠오른 생각, 질문, 반응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질문이나 반응을 하기를 요청하시는지를 살펴본다. 제랄드 메이(Gerald May)는 질문과 반응을 하려는 마음이 들 때 세 가지 내적 질문을 해보길 권하고 있다. 첫째, 지금 나눔을 한 사람에게 나의 반응이 필요한가? 둘째, 나는 지금 나눔을 한 사람에게 응답할 필요를 느끼는가? 셋째, 지금이 그 순간인가? 이러한 내적 질문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깊이 성찰하며, 성령의 요청에 따라 반응하는 태도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5. 관상적 질문과 반응(10-15분) 관상적 질문과 반응이란 나눔을 한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이끌어주셔서, 나눔을 한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관계를 깊게 성찰하여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비추어주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과 나눔을 한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룹영성지도 시간 이외에도 성서와 신앙서적 혹은 기도 가운데, 자연 속에서, 사회 속에서, 관계 맺는 사람들을 통해 깊어진다. 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이 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 관상적 질문과 반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태도 그리고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투명한 창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노력한다. 또한 내가 실수할지라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그 실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 내 생각을 영적인 마음으로 가져와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며, 결국 이것이 그룹영성지도의 핵심이다.
6. 1-5의 과정을 참여자 수만큼 반복 촉진자는 참여자들이 모두 골고루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7. 중보기도(결석자, 사회적 의제)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 모든 사람이 참여했거나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적 의제를 두고 중보기도할 수 있다.
8. 성찰 나눔 마치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룹영성지도 전체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성찰 시간은 분석하거나 판단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과정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룹영성지도를 통해 알아차리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나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지점과 마음속에서 저항이 올라왔던 지점을 살펴보고 나눈다.
그룹영성지도를 교회에 도입하기
교회나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그룹영성지도를 하려고 한다면, 초기 과정을 잘 준비해야 한다. 먼저 그룹영성지도를 하기에 앞서서 그룹영성지도 경험이 있고, 안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초대하여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이때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시작하기보다는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5-6명을 한 그룹으로 형성하고, 교회나 공동체의 규모나 필요에 따라 몇 개 그룹을 만들어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범 삼아 해보는 것이 좋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후 본격적으로 그룹영성지도를 진행할 때 촉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룹영성지도가 처음이라면 관상적 질문과 반응을 함께하는 그룹영성지도보다는, 나눔과 관상적 중보기도만을 하는 ‘경청 그룹’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경청 그룹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진행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 이상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훈련한다. 물론 이 기간만으로 완벽하게 훈련할 수는 없지만 기도 어린 경청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기도 어린 경청에 대해 감을 익히고 나면, 함께 분별하면서 그룹영성지도로 조심스럽게 안내한다. 관상적 질문과 반응을 시작할 때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몇 개월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 좋다. 첫 번째 단계는 참여자들이 두 차례 정도 돌아가면서 관상적 질문만 하고, 나눈 사람은 대답하지 않고 그 질문을 기록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질문한 다음 나눈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질문만 답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참여자가 관상적 질문을 하고 나눈 사람이 응답하는 것이다. 질문하고 응답할 때는 한 번 심호흡 할 정도의 시간만큼 침묵하는 것이 좋다. 질문과 대답의 속도가 빨라지면 기도 어린 경청과 관상적 태도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대화와 반응으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는 시간을 통해 모든 참여자가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머물 수 있는 태도를 훈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나눔을 한 사람이 질문에 응답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금 더 깊은 성찰과 기도가 필요한 질문에는 “그 질문을 품고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응답하면 된다.
이렇게 3-4년 정도 그룹영성지도를 하고 나면 관상적 질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나 조언도 할 수 있다. 물론 제랄드 메이가 이야기한 세 가지 내적 질문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어야 한다.
나가는 말
그룹영성지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만 ‘기도 어린 경청’을 통해 성령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여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교사들의 교사’라는 별명을 가진 파커 파머(Parker J. Pamer)는 이러한 경청의 필요성을 “영혼은 야생 동물”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영혼을 보고 싶어 숲을 헤치고 고함을 지른다면 영혼은 야생 동물처럼 덤불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든다는 것이다. 기도 어린 경청은 덤불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 영혼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판단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 사람과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들으실까를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듣는 태도이다. 이렇게 기도 어린 경청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각 사람의 영혼이 걸어가는 길이 고유하며 이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고유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함께 기도하면서 공동 분별을 통한 영적 지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 분별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그룹영성지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눔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한다. 특히 그룹영성지도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나눔을 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 때문에 무엇인가 조언을 해주고, 충고하거나 설득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돕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그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적 질문과 반응을 통해 나의 생각과 기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한 삶의 태도를 익혀가도록 훈련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그룹영성지도를 통해 이런 태도와 습관을 익히게 된다면, 교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모임에서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서는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고 분별하는 영적인 공동체로 성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룹영성지도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룹영성지도 구성원들의 질문을 통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면들을 깨우치며, 일상의 삶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더욱 민감한 영성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주(註)
1 헨리 나우웬, 이은진 옮김, 『분별력』(포이에마, 2016).
2 일반적으로는 ‘영성 지도’라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적 동반’이나 ‘영성 지도’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영성 지도’라는 말을 사용하면, 사람이 어떻게 영성을 ‘지도’할 수 있는지 반문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요청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국샬렘영성훈련원에서는 일대일 관계는 ‘영적 동반’, 그룹으로 할 때는 ‘그룹영성지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3 로즈마리 도어티, “그룹영성지도,” 2009년 샬렘 신년피정 자료집.
4 ‘관상적 중보기도’(contemplative intercessory prayer)는 미국 샬렘영성훈련원의 프로그램 디렉터 캐롤 크럼리(Carole Crumly)에게서 중보기도의 한 형식으로 배운 것이다.
5 로즈마리 도어티, 이만홍·최상미 옮김, 『그룹 영성지도』(도서출판 로뎀, 2010) 4장에 나온 내용을 한국 상황에 맞게 수정 제안한다.
김오성|한국샬렘영성훈련원 프로그램 디렉터이다. 침묵기도학교, 영성심화(영성형성)과정을 진행하며 영적 분별, 영적 동반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 생태영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훈련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영성지도자를 위한 영성형성”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