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z II Men (보이즈 투 멘)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랩(Rap) 음악의 열풍은 한편으로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소울 음악에 대한 향수라는 역풍을 몰고 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4명의 흑인 청년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은 '천상의 하모니'로 불리는 수려한 보컬 하모니를 무기로, 무너진 소울 음악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단번에 R&B계의 주류로 일대 신분이 상승, 1990년대 R&B 최강자로 떠올랐다.
흑인 음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모타운(Motown) 레코드사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소위 확실하게 밀 카드가 없어 부진의 늪에 빠졌으나, 4명의 필라델피아 고교 동창생, 보이즈 투 멘의 미들 파트를 담당하는 바리톤의 나단 모리스 (Nathan Morris), '90년대의 배리 화이트'로 불리며 보이즈 투 멘 사운드의 기둥인 베이스 마이클 맥커리(Michael Mccary), 프론트 맨이자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는 테너 숀 스톡맨(Shawn Stockman), 실질적인 리더이자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는 와냐 모리스(Wanya Morris) 이들 4명은 부드러운 힙합/두왑(Hip-Hop/Doo-Wop) 사운드를 들려주며 R&B 보컬 그룹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개척하였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90년대 모타운 사운드의 부활을 예고했으며 모타운사의 중흥을 1990년대까지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해냈다. 힙 합 댄스 넘버와 미드 템포 소울 트랙 그리고 애절한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흑인 음악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실로 다양한 장르를 고루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한동안 맥이 끊겼던 6-70년대 남성 하모니 보컬 그룹의 전통을 되살려 이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후 등장한 수많은 남성 4인조 R&B 보컬 그룹들의 표본이 되어, 유사 보컬 그룹들인 올-포-원(All-4-One), 컬러 미 배드(Color Me Badd), 드루 힐(Dru Hill), 다코타 문(Dakota Moon), 포트레이트(Portrait), 넥스트(Next), 재기드 에지(Jagged Edge) 등을 낳았다.
The Creative & Performing Arts High School of Philadelphia에서 만난 4명의 소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합하는 것이 혼자 낼 때보다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길거리나 지하철 승강장 등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을 유니크 어트랙션(Unique Attraction)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벨 비브 데보(Bel Biv Devoe)의 마이클 비빈스(Michael Bivins)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이들을 후원하여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도록 주선한다. 마이클은 그룹명을 바꿀 것을 제안하는데, 마이클이 몸담았던 그룹 뉴 에디션(New Edition)의 노래 제목이었던 보이즈 투 맨으로 이름을 확정짓는다.
보이즈 투 멘은 1991년 달라스 오스틴(Dallas Austin)과 트로이 테일러(Troy Taylor)가 공동 프로듀서하고 코메디물에서 이름을 따온 데뷔 앨범 [Cooleyhighharmarmony]로 대중들 앞에 첫 선을 보였다. 라디오에서 굉장한 반응을 얻으며 순식간에 차트 3위를 기록하였으며 플래티넘 고지를 점령한 첫 싱글 "Motownphilly"는 모타운 사와 보이즈 투 멘 자신들을 홍보하는 내용(모타운+필라델피아의 신조어를 제목으로 따옴)에다 뉴 잭 스윙 형식을 취한 현대적 두 왑 곡으로 그들의 은인 마이클 비빈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랩을 담당했다. 경쾌한 댄스곡 스타일인 이 곡은 후에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조용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이 프로의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 곡이 아카펠라의 맛 보여주기를 시도했다면 두 번째 싱글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는 아카펠라의 진수를 보여준 곡이었다. 그들의 주무기인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 이 곡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lack or white'에 밀려서 2위에 수주간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들의 음악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명곡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곡의 영향으로 보컬 그룹들은 가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아카펠라 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앨범에선 이외에도 고급스런 R&B 스타일을 선보인 "Uhh Ahh"(이상 3곡의 싱글은 차례로 R&B차트 정상에 올랐다.)와 '맨하탄스(Manhattans)'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Please Don't Go' (9위)등이 인기를 얻었고, 앨범도 최고 순위 2위까지 오르며 9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엄청난 히트작이 되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R&B 부문의 상들을 휩쓸며 아직 10대의 티를 벗지 못한 4명의 소년들을 R&B계의 가장 주목할 신성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의 활동에서 데뷔작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2년 그들은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첫 인연을 맺고 에디 머피(Eddie Murphy) 주연의 영화 <부메랑(Boomerang)>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이자 역작인 "End of The Road"를 부르게 된다. 다분히 보이즈 투 멘을 위해 만들어진 곡임을 증명하듯 4명의 멤버는 자신들의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의 인기와 맞물려 인기를 얻었던 이 곡은,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Don't Be Cruel/Hound Dog"으로 기록한 11주(당시 최고 기록)의 기록을 훌쩍 넘어서 13주간 싱글차트 정상을 지키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1992년 2월 그래미 시상식에서 'Best R&B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부문을 수상했던 보이즈 투 멘은 "End of The Road"로 1993년 또다시 같은 부문의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며 플래티넘을 획득하였다.
같은 해 또 하나의 사운드트랙 <더 잭슨스: 아메리칸 드림(The Jacksons: An American Dream)>에 다시 아카펠라 곡을 선사한다. '파이브 새틴스(Five Satins)'의 1956년도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전통적인 두 왑 스타일의 "In The Still Of The Night(I'll Remember)"로, 이 곡 역시 팝 차트 3위, R&B차트 4위에 오르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3년 발매된 캐롤 앨범 [Christmas Interpretations]은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제작에 참여하고 함께 입을 맞춘 "Let It snow"(19위)로 인기를 모았으며, 이듬 해인 1994년 대망의 두 번째 앨범 [II]를 발매하여 R&B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게 된다. 이들에겐 소모포어 징크스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의 훌륭한 보컬은 당시 립싱크로 비난받았던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라던가 백인으로서 랩을 구사했던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를 몰락시켰으며, 외모와 부드러운 태도 등으로 인해 십대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로 데뷔하여 5주간 그 자리를 지켰고 미국에서만 1,2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모타운 레코드사에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베이비페이스가 만들고 프로듀서한 첫 싱글 "I'll Make Love To You"는 빠른 속도로 차트 정상을 점령하더니 14주간이나 머물러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불과 1년만에 갱신한 대선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타이를 이루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곡을 차트 1위에서 끌어내린 곡이 두 번째 싱글 "On Bended Knee"였다는 점이다. 비틀즈와 엘비스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기록을 20대 초반의 흑인 청년들이 손쉽게 이루어낸 사실에 팝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지미 잼 &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서한 "On Bended Knee"는 아름다운 화음과 세련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 1위 자리를 2번에 걸쳐 오르며 총 6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 외에도 "Thank You"(21위), 매끄럽기 그지없는 "Water Runs Dry"(2위), "Vibin"(56위)등이 차례로 차트에 올라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앨범에는 팝계의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했다. 앞서 언급한 베이비페이스와 지미 잼(Jimmy Jam) & 테리 루이스(Terry Lewis), 데뷔 앨범을 함께한 달라스 오스틴, 트로이 테일러, 브라이언 맥나이트, 엘 에이 레이드, 토니 리치 등 모두가 쟁쟁한 일급 프로듀서들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보이즈 투 멘은 다시 한번 1995년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한 "One Sweet Day"로 인기 정점에 오른다. 당대 최고의 여가수와 최고의 보컬그룹의 만남을 대중들은 16주간 차트 정상이라는 신기록으로 환호했으며 판매고는 200만장을 훌쩍 넘어섰다. 이 앨범으로 보이즈 투 멘은 1995년 2월 두 개의 그래미상('Best R&B Album', 'Best R&B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을 수상하게 된다.
같은 해에 보컬 그룹으로 드물게 리믹스 앨범 [The Remix Collection]에 도전했는데 이 앨범엔 브랜디(Brandy)와 와냐의 듀엣곡 "Brokenhearted"(9위), 엘 엘 쿨 제이(L.L. Cool J)와 함께한 플래티넘 싱글 "Hey Lover"(2위)등이 기존의 히트곡들의 리믹스 버전과 함께 수록되어 있었고 신곡 "I Remember"(46위)도 선전을 했었다. 이들은 또한 1995년에는 미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 앞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미국 국가를 불러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보이즈 투 멘은 해체설이 나돌기까지 할 정도로 오랜 기간 침묵을 지켰다. 숀 스톡맨 등이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던 보이즈 투 멘은 2년 동안을 필라델피아 교외에 묻혀 앨범 제작에 몰두했다. 1997년 이들은 세 번째 앨범 [Evolution]을 들고 나타났지만 이들의 새 앨범은 기대만큼 큰 화제를 얻지는 못했다. 그 단적인 면이 앨범 판매고에서 나타나 신작은 반짝 인기에 그치며 200만장을 넘기는 것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의 "4 Seasons Of Loneliness"와 베이비 페이스의 "A Song For Mama"를 적극 밀었지만 첫 싱글은 차트 1위에 1주간 머무르는데 그쳤고, 두 번째 싱글은 영화 <소울 푸드(Soul Food)>에 삽입하면서 홍보전략을 폈지만 7위까지 오르는 그들로선 평범한 히트를 기록하고 말았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퍼프 대디(Puff Daddy)를 프로듀서로 초빙한 수고로움도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결과만 초래했다.
1998년에는 다이안 워렌이 만든 <이집트의 왕자(The Prince Of Egypt)> 사운드트랙의 수록곡 "I Will Get There"(32위)로 차트에 다시 등장했고, 데뷔 이후 모타운 레코드의 달러박스로 큰 몫을 차지했던 이들은 이듬해 레코드사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유니버셜(Universal) 레코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대망의 2000년을 맞이하여 멤버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네 번째 앨범 [Nathan Michael Shawn Wanya]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그 동안의 앨범 작업마다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들의 이름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멤버 자신들이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서 했기에 자신들의 색깔을 제대로 냈고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처음 시도하는 빠른 라틴 비트의 "Beautiful Women", "Good Guy"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테크노를 듣는 듯 신선한 "Bounce, Shake, Move, Swing", 포크 송처럼 부드러운 "Do You Remember", 특기인 아카펠라를 가미한 두 왑 "I Do" 등 전체적으로 수작으로 손꼽을 만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홍보가 미비했고 세 번째 앨범에서 시작된 대중들의 피로감 때문에 이미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린 탓도 있었다. 결국 보이즈 투 멘은 2001년 베스트 앨범 [Legacy: The Greatest Hits]를 끝으로 소속사를 아리스타(Arista) 레코드로 옮겼다.
보이즈 투 멘은 2002년 앨범 [Full Circle]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1997년의 [Evolution] 앨범을 제외하고는 줄곧 호흡을 함께 해 온 베이비 페이스 그리고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콤비의 이름이 다시 올라있었으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003년 베이스 마이클 맥커리가 척추만곡-척추가 굽는 현상-이 심해져 팀을 탈퇴해 3인조 체제로 개편한 보이즈 투 멘은 아리스타(Arista) 레코드를 떠나 MSM Music Group과 계약을 맺고 2004년 리메이크 앨범 [Throwback Vol.1]을 발표했다. 대즈 밴드(The Dazz Band)를 비롯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알 그린(Al Green),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 등 R&B 음악계의 전설들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 앨범은 제대로 된 홍보 한번 없이 2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작은 성공이 미국 내에서 그들의 활동에 다시 불을 지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점점 낮아지는 그룹의 인지도는 자연스레 이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이들의 인기는 여전히 최고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뮤지션과 함께 만든 크리스마스 앨범 [Winter/Reflections]는 2005년에 아시아에서만 발매되었다.
결성 15주년이 되던 2006년 보이즈 투 멘은 4년만에 정규 앨범 [The Remedy]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 역시 오로지 일본에서만 발매되었으며 2007년에서야 미국을 비롯한 세계 발매가 이루어 졌다.
2007년 유니버셜(Universal) 레코드사와 계약한 보이즈 투 멘은 모타운의 전설적인 클래식송들을 재해석한 퍼펙트 커버송 앨범 [Motown : A Journey Through Hitsville USA]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으로도 유명한 R&B계의 살아있는 전설 랜디 잭슨(Randy Jackson)의 총지휘 아래, 보이즈 투 멘의 완벽한 하모니로 모타운 사운드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미국 음반 협회(RIAA)가 공인한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R&B 그룹'인 보이즈 투 멘은 지난 1998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차트 40년간의 히트곡 집계에서 "One Sweet Day"가 1위, "I'll Make Love To You"가 3위, "End Of The Road"가 7위, "On Bended Knee"가 1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보이즈 투 멘은 국내 가수인 빅마마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10대에 데뷔한 이들이 오랜 기간동안 팝과 R&B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들 이후 많은 보컬그룹들이 생겨났다는 점과 더불어 이런 보컬 그룹들의 음악적 실력을 비교하는 잣대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많은 곡들이 차트에 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유독 이들의 노래들만은 오랫동안 머물며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이들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웅변하는 대목이다.
보이즈 투 멘 본인들이 우상으로 삼고 있는 80년대의 슈퍼 밴드 뉴 에디션(New Edition)의 대를 잇는 이들의 대성공 이후로 보이즈 투 멘과 비슷한 스타일의 '남성 4인조 R&B 보컬 밴드'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지만 그 어느 밴드도 이들이 만들어낸 환상의 하모니를 능가하지도 못했고 더더구나 이들이 거둔 화려한 차트 상에서의 성공을 재현해내지 못했다(10대 시절 만난 보이즈 투 멘은 처음엔 현재 멤버인 네 사람 외에 후에 '에즈 옛(Az Yet)'의 멤버로 활동하는 마크 넬슨(Marc Nelson)이 포함된 5인조였지만 정식 데뷔 무렵엔 마크가 탈퇴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