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논평
비움의 미학
풍요롭다 못해 모든 것인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까운 걸 잘 모르니 버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세대일 것 같지만, 아무리 비우고 비워도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걸 보면 무언가를 버리는 것보다는 취하는 게 더 익숙한 중생이긴 한가 보다.
운문사는 2024년에 들어서면서 정리의 해가 시작되었다. 곳곳에 물품들과 자료들의 정리가 절실함을 느낀 사중에서는 팔을 걷어붙인 소임자들에게 각자의 정리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참 방지한 채 지내던 자신의 방을 모두 한번쯤은 정리해 본 적이 있겠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정리했던지 알 수 없는 일을 정리한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면 쓰레기나 존재가치가 떨어진 것들을 없애려던 목적은 어디로 가고, 옛것들을 구경하며 추억의 늪에 빠져버리는 경험도 해봤을 것이다. 손에 잡히는 물건들이나 오래된 편지, 사진앨범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USB 스틱 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noname CD 한 장을 발견해 컴퓨터에 삽입했을 때 증발해버린 시간을 기억하는가?
물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의 정리가 만만치 않음은 누구나 다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원의 공간에 있는 디지털 자료들의 정리를 시도해 보았는가? 예를 들어보자. 필림카메라보다 디지털카메라가 좋은 점은 완벽한 한 컷을 찍기 위해 천 장까지도 찍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 한 장을 선별한 뒤에 나머지 999장을 지우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사진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메일도 마찬가지다. 이메일 한 통을 보낼 때 약 4g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한다. 이메일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하여 서버를 가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스팸메일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만 연간 1,7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했는데, 이는 3,300대가 넘는 디젤 차량이 도로에서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버금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비움, 공空, 무소유, 미니멀리즘 - 분명 이 개념들이 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로 인신되곤 하지만, 이 인식이 시각적 물리적 차원(색色)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정신적 실천적 차원(수상행식受想行識)까지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심해 봐야 한다.
신학기가 되면 너도나도 특별할인을 내세우며 물건을 판다. 낡은 걸 버리고 무조건 새것을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낡아서 사용을 하지 못하는지, 원래 필요없던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보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지 모른다. 한 치 앞만 내다봐도 우리는 이런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나 자신도, 내 이웃도, 더 나아가 이 지구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필요없는 물건들과 더불어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번뇌도 화끈하게 버릴 수 있는 수행자가 되기를 발원해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렇다고 무소유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사물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연꽃에 진흙이 묻지 않는 것처럼
그른 참으로 '평안한 사람' 이다
-숫타니파타
이 글은 불기 2568년 雲門지 봄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2hQrga-PY?si=tB-cO_infK5Bb0_m
https://youtu.be/OtQQbjCm9SA?si=o2StWMl5FK0l3ux6
저는 항상 운문사 학인스님의 수행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꼭 훌륭한 수행자로 성장해주시기를...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더워진 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_()_
비움 읽는동안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디지털 기기의 에너지 소모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음도. 올여름 본격적인 폭염앞에 기후열대화에 적응해 가야하는 현실이 되었음을 ..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