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인생이 없듯 쉬운 바위도 없다
두꺼비 암장이라할지라도.
2013년 11월 4일 강사님을 모신 51기만의 공식등반이다. 학생장 민기가 주선했는데 정작 민기가 빠져 기분이 착잡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펙트럼처럼 머리를 스친다.
49기 졸업을 마치고 춘클을 등반하다 4피치에서 추락하며 회전근 하나가 끊어져 바위를 타면 지금도 진통제를 복용하게 만든 곳을 다시 찾게 된 거다.
딱 1년만이다.
끊어진 회전근으로 7피치까지 정상을 찍은 게 더 심각한 부상을 불렀다.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죽지 않고 바위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부상 하나씩은 다들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바위의 경험은 3번의 등산학교와 설악 환영등반 2번, 설악심화 반이 전부이다.
50기 땐 회전근 때문에 선인. 인수도 패스해야했다.
51기 땐 비 때문에 선인 박쥐길도 1피치로 끝내야했고.
손 꼽으면 채 10번이 되지 않은 너무나 가난하고 부실한 등반경력이다.
비소식이 있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세컨을 볼 48기 한 명을 데리고 온다하더라도 함강사님 혼자 51기 6명을 리딩한다?
그렇지 않아도 날 추락시킨 바위를 다시 간다는 것만도 부담이 되는데 제대로 잠이 올리 만무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올라가야 한다는 하늘의 뜻이다.
미량이가 보석을 데리고 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설악 한시길 리딩을 해준 유순준 선배가 온다는 얘기다. 천군만마를 얻었다. 안심이다. 걱정스런 강사님 표정도 펴졌다.
나도 안심하고 진통제를 복용하고.
승용이가 장비를 차며,
“어프로치가 짧아 정말 좋은데요”
글쎄 좋기만 할까?
두고 보면 알 거다
먼저 도착한 함강사님과 젊은오빠와 나와 승용. 48기 현주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순준이가 오니까 뒤에 미량. 삼승. 유심은 순준이에게 맡기면 되니 먼저 올라가자"
함강사님이 줄 2개를 달고 선등을 하고 현주가 세컨을 보고 .승용이. 나. 그리고 젊은 오빠가 말구를 맡고 줄줄이 사탕으로 올라갔다.
2피치와 3피치는 내가 말구였다.
무슨 정신으로 올랐는지 기억조차 없다.
드디어 운명의 4피치!
함강사님이 올라가고 다음은 젊은 오빠,
출발~~점잖고 조용하게 외친다 어머, 왠 내숭? 집에선 그리 목소리가 크면서!
다음으로 승용이가 올라가고 그 다음이 나, 말구가 현주다. 앞에 간 젊은 오빠와 승용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다들 고전.
난 지난 번 추락한 절벽 쪽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절벽을 타고 가는데 긴장해서 퀵드로에 줄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줄을 달라고 소리쳐도 줄이 내려오지 않는다. 그리그리가 아닌, 마이크로트렉션이나 슈퍼베이직으로 빌레이를 보고 있는 거다.
밑에서 리딩을 하고 있던 순준선배가 몸을 바위에 밀착 시키고 퀵드로 자체를 빼버리라고 소리쳐준다. 직벽이라 손을 놓아도 추락하지 않으니 힘들면 손을 놓고 쉬라고. 정말일까? 부들부들 떨며 한 손 한 손 놓아본다. 정말이다!
너무 고마워 눈물이 찔끔.
하지만 바위에 배를 몇 번을 밀착시켜도 퀵도르는 꿈쩍도 않했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면서 최대한 바위에서 몸을 떨어뜨리고 바위에 배를 튕기듯 밀착시켜 겨우겨우 힘들게 퀵드로를 뺐다. 뱃가죽이 얼얼.
오름짓을 하는데 격하게 자일의 정을 주셔서 바란스가 깨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이 닿지 않은 곳은 퀵드로를 걸라고 소리쳐 준 순준선배. 한시에서 절대 퀵드로를 쓰지 않게 했는데 웬 떡이니? 퀵드로를 잡고 올라와 바로 회수. 정신가출에 퀵드로를 배낭 줄에 걸고. 뒤에서 현주가 배낭 줄에 걸려다며 빠지겠다고 소리친다. 회전근이 터지지 않는다면 이까짓 퀵드로 쯤이야!
"그런데 말구는 현주인데 왜 내가 퀵드로를 회수하냐?"
"언니가 자처했잖아요!"
'그랬나??? 내가 미쳤었나보다'
절벽을 따라 ㄴ자로 도는데 앞줄이 헐렁헐렁
"텐!텐! 줄 당겨!"
그래도 여전히 느슨. 진행을 안하려고 해도 이미 들어선 곳이라 멈출 수도 없다
"빌레이 똑바로 안 볼래! 내가 바위 하면서 욕하지 않는데 정말 욕 나오네! 줄 당겨!!!"
절벽 밑에 인천구조대 팀이 그런 날 보고 싱글싱글.
지난 여름 변형 기존길을 3피치까지 갔는데도
줄 당겨!!! 사람살려!! 텐텐!!! 발광하던 때가 떠올랐다
조용하던 설악에 내가 악 쓰는 소리만 들렸다
바위를 탄다는 사람들이라 자존심이 있어 소리치지 않고 조용했다.
저존심이고 뭐고 살고봐아지!
기존길 정상을 찍은 울산팀이,
"누님 목소리에 저도 텐션 받아 올라갔어요"
무척 쪽 팔렸는데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된 거다.
'아! 개쪽 팔려! 올라가기만 해봐라'
올라가 보니 젊은오빠가
빌레이를 멈추고 확보줄을 놓고 승용이와 심각하게 정상회담 중.
역시 빌레이를 마이크로 트렉션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은 초보들이니 어쩌면 그리그리보다 안전한지 모르겠다. 그리그리로 빌레이를 보다 줄 달라고 할 때 레버를 무작정 내려 10m쯤 추락하면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와 대면 할 수도 있으니까.
뭘로 빌레이를 보던 멈추면 대기라는 말은 해야지!
이것들을 그냥 확!!!'
"빌레이를 안 볼 땐 "대기!"라고 해야지! 추락함 어쩌려고!!"
"에이,추락 안 해. 줄이 있는데, 추락은 무슨. 끌어올리는데 엄청 무겁더라 살 좀 빼"
"뭐라고? 기가 막혀! 내 살은 내가 알아서 할 거고! 1m라도 추락함 바위가 울퉁불퉁해서 재수 없음 면상 나가거나 부상입어!! 꼭 대기라고 외치라고!!!"
소리치다 문득 추락함 좀 무섭고 아프겠지만 그걸 기회로 얼굴을 20대로 고칠 기회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급 너그러워짐
드디어 4피치 정상. 춘클의 포토존. 멀리 잉어인지 붕어섬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었다. 다시 민기가 생각난다. 같이 왔음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 내년에 오면 되지. 춘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사진을 찍고 강사님은 뒷팀 빌레이를 보고 우리들은 하강지점으로 이동. 쇠줄에 굴비 엮듯 줄줄이 확보줄을 걸고 진행. 매듭부분이 걸리자 잠시 손으로 쇠줄을 잡고 다시 확보줄을 바꿔 끼운다.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톤이 올라갔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렇게 만만히 볼 때 사고나는 거야! 이럴 때 이중확보기가 있음 편리하겠지만 한번을 쓰려고 이중 확보기를 가지고 다니기도 거추장스러우니까 퀵드로에 실링줄 연결해 하네스에 걸고, 쇠줄에 걸 거나 뒷사람 확보줄에 걸어 확보한 다음에 확보줄을 풀어 다음 쇠줄에 걸고나서 퀵드로를 회수해야지!!"
현주,
"오우 누구에게 배웠어? 확실한데!"
젊은 오빠,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리 복잡하게."
저 저 안전불감증.
"바로 이 정도 쯤이야 방심하다 사고 나는 거라고! 확보줄 푸는 순간 뒤에 사람이 옆으로 돌다 배낭으로 치면? 앞 사람이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면?사고는 순식간이야"
모두 내려와 행동식을 꺼낸다
"승용아 나무 뿌리에라도 확보한 다음에 행동해라"
"여기서요?"
"응. 항상 쉬운 곳에서 사고 나. 백 번을 잘해도 한 번 잘못함 소용없어. 무조건 내 확보가 먼저야. 사고가 나면 일차적인 책임은 무조건 자신에게 있어. 그러니 어디서든지 자기 확보가 최우선이야"
간단히 행동식으로 때우고 또 다시 진통제를 복용한 다음 강사님은 뒷팀을 위해 남고 현주도 탈출.
나. 젊은 오빠. 승용이만 리지화로 갈아신고 5피치로 출발. 본의아니게 작은 바위일 망정 선등. 아닌 길잡이 선등이 됐다, 마지막 절벽이 좀 위험해 보여 망설이는데 승용이가 웃으며,
"선등하시게요?"
젊은오빠,
"위험해! 위험해!"
그래! 만용부리지 말고 겸손하자!
강사님 안 볼 때 재빨리 뒤로 돌아가는 반칙.
'암벽화만 신었다면 올라갔을 텐데...'
아쉬움은 벼랑에 남겨두고.
6피치에서 승용이는 뒷팀을 위해 남고 내가 7피치까지 강사님 세컨 빌레이를 봤다. 워낙 잘 하는 분이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부담이 크니 긴장되는 건 당연. 신경이 곤드섰다.
그때 젊은 오빠가 다른 자일을 자기 쪽으로 달라고 한다.
“말 시키지 마! 빌레이 볼 땐 말 시키는 거 아니야! 선등자를 절대 눈에서 놓쳐서는 안 돼! 자기도 선등자가 어떻게 올라가나 발자리 잘 봐 둬. 자일 밟지 마. 모래가 들어가면 자일 상해!”
생각해 보니 등반 내내 멘토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젊은 오빠나 승용이에게 하고 있었다
잊지 않고 있다니 내 머리 아직까지 쓸만하네!
바위에선 냉정해져야 한다. 오직 바위와 나. 고독과의 싸움이다. 바위에 오르는 순간 판단은 자신의 몫이고 그 결과도 오로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만 잘해서도 안 되는 곳이 또 바위다. 함께 하는 팀웍도 중요하다.
내 생명줄을 쥐고 있는 빌레이어. 올라오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게 팽팽한 텐션감을 주는 자일의 정, 크로스 체크, 다음 사람을 위해 퀵드로를 걸어주는 배려 등등.
혼자 오르지만 함께 시작하고 함께 끝내야 하는 경기다. 바위의 매력이다.
7피치는 약간 쉬운 왼쪽으로 돌아가는 코스로 진행했다.
함강사님,
"난 이리로 올라가지만 왼쪽으로 돌아서 와요. 거긴 발자리들이 많으니까."
"네네 감사합니다"
드디어 다 올랐다!
추락한 지점에서 두려움을 깨고 뛰어넘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끊어진 부위가 민감해 수술도 포기하고 어깨 뼈 사이로 주사를 맞아가며 힘들게 재활치료한 과정들이 스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도 팔을 움직일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나고 바위를 탈 때마다 진통제를 복용하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았다.
젊은 오빠,
"늙어서 완치가 늦는 거야!"
말 참 예쁘게 하신다
"늙어서 완치는 힘들 거야. 바라지 않는 게 좋아"
협박질까지.
"난 운동이라면 젊었을 때부터 빠지지 않았지만 당신은 나이도 있는데 유연성 하나로 버티는 거니까 조심해야지"
하다하다 지 자랑까지.
삼승이가 가져온 버너로 물을 끓여 몸살기운이 있어 커피 대신 쌍화탕으로.
"고마워 삼승아"
배려하는 마음은 예쁘지만 너만 힘들잖아
다음엔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 가볍게 와.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안전하게 하산해 모두들 안전완등을 축하하며 힘듬. 무서움. 아찔함. 보람. 감사함 등이 들어간 잔들을 부딪치며 건배!
51기 모두들 고생 많았다!
뒤풀이 없는 암벽은 얼마나 삭막할까.
4피치에서 내려오고 싶었다던 승용이.
함강사님이 내일 "악어의 꿈" 리지를 가는데 비가 와 뒤풀이로 끝날 것 같다는 말에,
"그럼 저 참석할게요!"
승용아 네가 있어 뒤풀이가 더 즐거웠다.
유도를 하면 귀가 달라진다는 네 말에 순준 선배가 바로,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봐도 순준선배 귀는 정상이더라.
다음엔 뒤풀이만 참석해도 용서할게.
마지막 잔을 들어
춘클 완등한 우리을의 건배!
강사님과 선배님을 위해 건배!
감사합니다 강사님!
고맙습니다 선배님!
두 분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첫댓글 춘클 후기 잘 읽었습니다.
바위가 자꾸 밀어내도 바위와 자주 친근하게 붙으면 친숙하게 될겁니다.
자주 등반후기 기대 할게요.
영복아 숨은벽 리지 담엔 같이 가자
그런데 내 등반후기를 너무 애정하는 거 같다
느즈막 에 등산학교 3수생
대단 합니다
박선희~~홧팅
오오 형!
고마워!
형도 대단해^^
누님 빨리 다음편이요 현기증 날 거 같아요 ㅋㅋㅋㅋ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오우
우리 관식이
잘 지내지?
현기증은 내가 나야 하는데 왜 네가?
ㅋㅋㅋㅋ
바위를 가야 다음 편을 쓰지!
네가 나 좀 델꼬 가주라
후기는 책임지고 써줄게^^
ㅡ 산악 소설가 또는 산악 수필가 ? 로 데뷰해도
될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분발해보겠습니다!!!!
이제는 작가가 많는듯 합니다...!!^&^
아닙니다
선배님
많이 부족합니다.
격려가 마구마구 필요합니다
좋은 글,멋진 등반후기에 빛이 나내요.^^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고생 덕분에 설악 한시길도 춘클도 가능했습니다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럴까 형?
내가 대통령이 됨 10년만 혼인관계를 유지할 법을 만들 거야
아이는 첫 번째 혼인에서만 낳는 걸로
어때 형?
근사한 법이지?
인구 소멸죄로 탄핵~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