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편히 쉬소서!
- 오랜 벗, 박경만 형을 보내며
햇볕이 따사로운 화요일(1월 10일) 오후, 뜻밖에 날아온 60년 막역지우(莫逆之友) 박경만 형의 부음을 전해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작년 5월 용인의 수지에 칩거 중인 친구를 찾았을 때 오랜 만의 만남을 반기며 재회를 기약하였는데 이처럼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다니 너무도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이다.
작년 5월에 친구를 만난 후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신실함의 본이 되는 친구를 찾아서
토요일(5월 7일) 오전에 청주를 출발하여 용인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낮 12시, 마중 나온 아들과 함께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수지구청 인근의 친구 집으로 향하였다. 아내랑 함께.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박경만 형, 1960년 입학이니 60년 넘는 막역지우인데 코로나 여파로 만난 지 3년이 지났다. 아내와도 남매처럼 친근한 사이, 오랜만의 상봉에 눈물이 핑 돈다. 잠시 환담 후 친구가 정성들여 정리한 앨범과 20여 년 전 친구의 정년을 맞아 내가 쓴 편지글, ‘훌륭한 삶, 아름다운 정년’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내놓는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품대로 가지런히 정리한 앨범에 친구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앞부분에는 고등학교 때 교복차림으로 둘이서 찍은 사진이 선명하다. 내게는 없는 사진, 이를 스마트폰에 담았다. 내가 쓴 책자의 표지도 함께. 나는 칠순을 맞아 친구부부들과 함께 한 해외여행 사진과 기록 일부를 담은 화면을 카톡으로 건네기도.
친구의 앨범에서 찾은 고등학생 때의 풋풋한 모습
친구 부인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인근에 사는 딸 내외가 손님을 맞는다. 연구소장의 직함을 가진 사위는 어느새 내가 쓴 편지글을 다 읽고 장인과 내가 주고받는 지난 시절의 추억담이 편지글 속에 다 적혀 있다며 우리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경청한다. 친구는 투병 중에도 아직 어린 손자에게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자 200여 쪽 넘는 자서전형식의 기록을 이어가는 열정과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역작으로 마무리되기를.
정년에 즈음하여 내가 쓴 편지글의 일부분,
‘2004년 12월, 42년간의 공직생활을 영예롭게 마감한 자네의 노고를 위로하고 공적을 치하하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쓰네. 며칠 전 백남근 사장내외가 정성으로 마련한 만찬장에서 주마등처럼 흘러온 45년 우정과 60년 세월을 뜻깊게 자축하고 회상하였거니와 자네를 비롯하여 우리는 성실하고 근면하게 이순(耳順)의 나이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
소년이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는 말처럼 60년 세월이 이처럼 빠르게 다가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터, 우리 모두 크게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떳떳하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보람과 긍지를 가져도 좋으리라 여기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런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잠언 22장 29절)처럼 우리를 대표하여서 나라가 그 공을 인정하는 근정훈장을 받고 언론에서도 정년에 이르기까지의 공직생활을 크게 상찬(문화일보 2004. 8. 24, ‘41년간 “공직은 돈보다 사명감"소신 지켜)함이 이를 확인하는 일이라 여기네.
만리동에서 기거하며 효창공원 언덕에 살고 있던 나와 매일 등‧하교 길을 함께 하던 일, 반 대항 400미터 계주경기에 함께 뛰었던 일, 간장 팔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허탕했던 일 등이 오랜 세월에도 잊히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음이 대견하게 느껴지네.
사랑하는 친구여,
그 동안 수고하였네.
영예롭게 정년을 맞이함이 자랑스럽네.
청렴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삶이 훌륭하였네,
남은 때 더욱 건강하고 보람된 날들이기를.’
잠시 뒤 이전에 자주 만나던 친구 둘이 합류하여 두 시간 넘게 담소를 나눈 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언제 다시 만나려나.
다음날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 ‘시간 내서 방문해주어 고맙네. 친구란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제 만난 후부터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빠졌네. 방문한다는 연락 받고 가슴 설레서 밤잠을 설쳤다네. 어제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 말로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자네들 손을 꼭 쥐며 눈물을 보여 미안하네. 모두 건강하기 바라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장 17절)
작년 11월 하순, 두 달여 미국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60년 막역지우 박경만 형이 불편한 몸을 추스르며 각고의 노력 끝에 출간한 자서전(민들레, 홀씨로 날다)이 배송되었다. 출국 때쯤 책자를 보낸다는 전갈에 귀국시기에 맞춰 배송해 줄 것을 당부하였는데 이에 맞춰 도착한 친구의 역작이 그를 만난 듯 반갑다. 곧바로 전체를 탐독,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한반이었던 친구는 깔끔한 노트정리를 필두로 매사에 성실과 정성을 다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인생 전체를 그런 자세로 일관한 모습이 꼼꼼한 기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함께 공유한 학창시절의 까맣게 잊힌 추억의 사연이 반가워라. 지난 5월, 문병 차 방문하였을 때 마지막 탈고과정에 접어든 것을 알았지만 이를 완성하여 깔끔한 책자로 펴낸 친구의 집념과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책을 읽고 보낸 메시지, ‘보내준 자서전을 잘 받았습니다. 역작의 출판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받자마자 통독하였지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출판하기까지의 집념과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후예들은 물론 주변의 여러분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친구의 자서전 표지
지난 연말 2022년을 돌아보며 쓴 글, ‘힘들었던 2022년에 가꾼 보람’에서도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려웠던 한 해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보람을 가꾼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희귀질환을 견디며 회고록을 펴낸 죽마고우를 비롯하여 역경에 굴하지 않고 힘차게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우리 모두 새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기를 비는 마음이다.’
아! 아! 성실하고 근면한 박경만 친구여! 역경에 굴하지 않고 힘차게 비상하는 독수리 되어 이 세상 시름 잊으시고 하늘로 오르시는가. 부디 먼 길 훨훨 날아 고통과 괴로움 없는 영원한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
2023년 1월 10일
부족한 벗, 김 태 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