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05일(일요일) 서해랑길 6코스 탐방일정
47,000원 1월21일 송금 완료, 1번 좌석
탐방지 : 서해랑길 6코스
[서해랑길 6코스 : 길이 15.5km, 소요시간 6시간, 난이도 어려움
서해랑길 6코스 개요
- 아름다운 경관과 수많은 특산물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고장 진도로 오는 첫 번째 관문
- 명량대첩 승전보가 울렸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서려있는 길
관광포인트
- 이순신장군과 함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도군민들의 호국정신을 담은 '이충무공 승전공원'
- 명량대첩 승전 광장의 랜드마크 '진도타워'
- 이순신장군과 명량대첩을 기념하고 참전 전사자를 기록한 '이충무공 전첩비'
- 바위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벽파정'
탐방코스: [ 녹진 국민관광단지 –(0.8km)- 진도타워 –(9.4km)-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1.6km)- 연동마을 –(3.7km)– 용장성 ] (15.5km/5시간30분)
일시 : 2023년 02월 05일(일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20분 소요)
06:50~11:30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근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 4-3 번지에 있는 녹진 국민관광단지로 이동 (401km)
[이충무공 승전공원(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진도대로 8439-19)
진도대교 아래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좁은 해협을 '울돌목'이라 한다.
울돌목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로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으로,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역을 이루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의 유속인 11노트(20㎞)의 조수가 흐르며, 물소리가 크고, 거품 물이 용솟음쳐 배가 운항하기 힘든 곳으로,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히며 좁은 해협을 통과하면서 울음소리를 낸다 하여 '울돌목'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해협을 사이로 진도군에는 '이충무공 승전공원'이 있다.
승전공원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도군민들의 호국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조성된 광장으로, 임진왜란·정유재란시 참전한 진도 인물 안내판과 함께 충무공 어록비(語錄碑) 패널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당시 충무공이 판옥선에서 해전을 지휘하는 형상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충무공 동상 주변의 해안에는 산책할 수 있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승전공원 옆에 위치한 해양에너지 공원에는 거북선을 형상화한 전망대가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11:30~11:45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 4-3 번지에 있는 녹진 국민관광단지에서 출발하여 진도타워로 이동 (0.8km)
[진도타워(위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만금길 112-41)
진도타워는 진도대교 근처에 있는 망금산(106.5m) 정상에 위치한다.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 등이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진도군 관광의 랜드 마크로서 군민들에게 자긍심을,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 하고 있다. 진도타워 입장요금은 1천원이다.
진도타워에서 바라다보이는 피섬은 녹진 망금산 관방성(강강술래터)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섬으로 면적은 331㎡, 높이 25m이다. 이곳은 어지바위로 불리었으나 명량대첩 당시 수장(水葬) 된 왜군 수군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보인다 하여 피섬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명량'에서 일본 수군이 대장선을 폭파하기 위해 폭약선을 보내는 위급상황을 알리려 민초들이 옷을 벗어 소리치며 흔드는 장면의 촬영지인 해안 바위도 타워 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망금산 강강술래터[진도타워 ~ 강강술래터 : 400m]
망금산은 1597년 음력 9월 16일 정유재란 발발 시 13척의 배로 133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해전지(울돌목)에 연접하여 울돌목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해발 115m의 나지막한 산이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으로 하여금 우리 군사가 많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 망금산에 토성을 쌓고 부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을 시켜 산봉우리를 원을 그리며 반복하여 돌게 하였는데, 이를 대규모 군사 이동으로 오인한 왜군은 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주로 추석날 밤,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며 추던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를 의병술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망금산 산봉에는 망터가 있고, 그 밑으로 강강술래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긴 강강술래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망금산 관방성(望禽山 關防城)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망금산(111.5m) 정상에서 동남쪽 500m에 있는 작은 봉우리(67m) 산허리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460m의 성으로, 성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의 퇴뫼식 산성이다.
초축 시기는 『조선보물 고적조사자료』에는 려말 삼별초의 진도 진입 시에 왕온이 쌓은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의 유물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 시기에 산성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망금산 관망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필요에 따라 사용과 폐기, 그리고 재사용을 거듭하면서 단속적으로 사용되었던 산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망금산 관방성은 명량대첩의 역사 현장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곳은 당시 전쟁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관방 유적이며, 성안에서 백제 와당이나 신라 토기를 수습한 점, 그리고 많은 성 가운데에서도 물목을 지키는 관방성이라는 점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하여 보존하고 보호할 가치가 크다. 조선시대 임진ㆍ정유란 때 강강술래를 했던 곳이라 전하고 있으나, 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형여건 등에서 보면 고증하기가 어렵다.
충무공 이순신이 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판중추부사 유두수는 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이라 한 점, 『동국여지지』에 "해로요해지지(海路要害之地)"라 한 것은 울두목(咽喉之地)을 이른 것이다.]
11:45~12:10 진도타워 탐방
12:10~14:40 벽파진 전첩비로 이동 (9.4km)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
벽파항 포구 뒷편 암산에 오르면 이충무공 전첩비가 우뚝 서 있다.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에 건립되었다. 비신의 높이는 3.8m, 폭 1.2m, 두께 58cm 이며,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벽파리(碧波里)는 벽파정(碧波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또한 벽파는 해변의 벽도(碧桃: 선계(仙界)에서 열린다는 복숭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인데, 벽파항 언덕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보면 신선과 같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벽파진항은 1984년 진도대교(珍島大橋)가 개통되기 전 과거 뭍으로 오가는 뱃길의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서, 울돌해협 건너 해남군 황산면 삼지원(三枝院) 나루와는 직선거리 약 2.5㎞로 철부선이 왕래하였었다. 비록 진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해협은 울돌목이나 조류 속도가 빨라 육지와의 연결 항로로 부적합하였기 때문에 삼지원 나루로 운항한 것이다. 1984년 진도대교가 준공되자 벽파진과 삼지원의 나루 기능은 정지되었다.
또한 일찍부터 벽파진에서 진도읍을 연결하는 벽파선 도로가 1928년에 만들어져, 진도읍까지는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과 대파, 봄배추 등이 생산된다. 벽파방조제로 생긴 간척지가 농경지로 중요한 터전이 되고, 벽파염전과 일부 새우양식장으로 생활환경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동지지』 진도군 기록에서는 “고려에서는 대진(大津)이라 칭하였다. 해남현의 삼지원(三枝院)과 통하는 큰 길(뱃길)이며, 관리 책임자는 수진장(守津將) 한 사람이며, 10리[약 3.93㎞] (서쪽) 우수영(右水營)으로 통한다.”라고 하였다.
『해남읍지』[1872]에는 양안 사이 중류에 송도, 승이도가 있는데, 혹 풍파를 만나면 이 섬들에 의지한다[中流有松島鼎島或值風彼不順依於此等島].”라고 하였다.]
[벽파정(碧波亭)은 1207년(고려 희종 3년)에 창건되었으나 잦은 왜구 침입과 여말선초의 어수선한 상황 때문에 버려져 있다가, 1465년(세조 11) 제13대 진도군수 박후생(朴厚生)에 의해 중건되었다.
이 정자는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내왕하는 관리와 사신들을 영송(迎送)하고 위로하던 곳으로 정객과 문인들이 아름다운 경승과 감회를 읊어 많은 시구를 남긴 명소이다. 벽파진은 정유재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12척 남은 배를 이끌고 16일 동안 바닷목을 지키실 때 향민들은 공을 도와 죽음으로 명량대첩을 이루었고, 고려 말에는 삼별초군이 들어온 유적지이기도 하다.
1465년(세조 11) 제13대 진도군수 박후생이 벽파정을 중건한 직후 그의 친구였던 이숙감(李淑瑊)이 진도의 풍광과 벽파진을 보고 감탄한 글이 『신증동국여지승람』「누정조(樓亭條)」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산이 높고 물이 깊으며 땅이 기름져서 목장에선 말이 유유히 목초를 즐기고 운금(雲錦)이 온 들을 뒤덮고 유자나무가 숲을 이루니 황금 같은 유자가 방울같이 매달렸으며 그 외 보물이 전 군에 가득 찼으니 남한 여러 고을 중 제일이다."]
14:40~15:00 사진촬영 후 휴식
15:00~15:30 연동마을로 이동 (1.6km)
15:30~16:30 진도 용장성(珍島 龍藏城)으로 이동 (3.7km)
16:30~16:45 용장성 탐방
[고려 원종 때에 몽고 항쟁 중에 왕실이 몽고에 굴복하자 삼별초는 끝까지 저항했다. 배중손 장군은 몽고군에게 쫓기어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겨와 새 나라를 세웠다. 그는 한동안 본토 일부와 제주도까지 세력권에 넣는 등의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여몽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다. 그때 삼별초가 항쟁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이다. 용장산을 두르고 있는 성이 용장산성인데 주로 석성이지만 부분적으로는 토성이 섞인 곳도 있다. 이 안에 있는 용장성은 몽고에 무릎을 꿇은 고려 조정에 반발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킨 삼별초가 여연합군에게 패해 제주도로 퇴각하기까지 원종11년(1270년) 8월부터 9개월 동안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용장성 홍보관 앞에는 고려 항몽충혼탑이 있다.]
16:45~16:50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87-1 번지에 있는 진도 용장성 주차장으로 이동
16:50~17:00 휴식
17:00~21:30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87-1 번지에 있는 진도 용장성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411km)
서해랑길 6코스(15.5km)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