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으면 인생이 다채로워진다. 초고속 무선광대역 네트워크가 깔려 있고 수많은 사이트로 가득 채워진 인터넷 세상에서 한 군데에만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낭비다. 마치 바닷가에서 싱싱한 성게가 널려 있는데도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쳐다보기만 하는 것과 같다. 언어는 칼과 지식의 종합체다. 언어를 도구로 사용해 문화를 감싸고 있는 뾰족한 가시와 단단한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면 환상적인 속살과 마주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억 명이 넘게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 영어, 힌디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벵갈어, 포르투갈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우르드어가 있다. 사용자만 보면 중국어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힌디어 순이다.
말레이시아 친구들의 언어구사능력을 곁에서 지켜본 다음 여러가지 언어를 학습한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선천적으로 언어적 재능을 갖춰서가 아니라 절박한 필요성 떄문에 외국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에 강한 동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들 가운데 왜 제2외국어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를 설명하는 이유도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발음에 크게 신경 쓰지만 언어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어렸을 때 해당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생활한다면 현지인의 발음을 구사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어떻게 배우든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완벽하게 현지인의 발음을 구사하기란 극소수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굳이 오랫동안 현지에 가서 살지 않아도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며 현지인이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외국어 학습에서 중요한 점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한 언어를 '제법 잘' 구사하는 것과 '정통'한다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수준에서 멈추느냐로 결정된다. 어떤 언어든 배움에는 끝이 없다. 아무리 배워도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한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학습하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면 그 언어가 또 하나의 모국어가 될 때까지 먹고 자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그 언어를 공부하는데 쏟아 부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은 열려 있고 느슨한 태도로 공부하는 게 낫다. 집중적으로 공부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나면 발걸음을 조금 늦추는 것이다. 나중에 언어 능력을 더 향상시킬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회화능력을 훈련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놓치지 말고 연습하고, 새로 산 옷에서 그 언어로 된 라벨을 발견한다면 그 속에서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익히면 된다.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랐다고 해서 완전히 한쪽으로 밀어두고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의 단어카드는 백지 명함으로 만들어졌다. 타이베이 스다루 야시장의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명함이었는데 명함지갑 하나에 백 장씩 들어 있었다. 언제 어디를 가든 단어카드가 든 명함지갑 몇 개는 나의 필수품이었다. 백지 명함의 앞면에 단어나 문장을 하나씩 쓰고 뒷면에는 그 단어와 문장의 뜻을 쓰고 여백에는 발음이 비슷해서 자꾸 헷갈리는 글자나 관련 단어, 반대말, 유용한 문장 등을 기록했다. 십 년 동안 특정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단어카드를 기록했는데 너무 빽빽해서 알아보기 힘들거나 복잡해서 남아 있는 여백에 다 쓰지 못하는 것들은 새 명함에 적어 별도의 명함지갑에 넣고 다녔다. 또 그 다음에 새로 배운 것들은 새 명함에 적어 다른 명함지갑에 넣었다. 그렇게 난이도별로 여러 개의 명함지갑이 만들어졌다.
에라드는 이렇게 말했다.
"비밀과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초판티(언어천재)의 남다름은 단어카드를 따분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았다는 데 있다. 천부적인 재능과 학구열이 그렇게 대단한 선순환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부러움을 넘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들이 언어천재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우리가 따분해 하는 언어 학습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는 것뿐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결코 천재가 아니며 그저 힘들고 따분하게 여겨지는 언어 학습에서도 즐거움을 찾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언어학습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한 가지 언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된 후에 다른 언어를 공부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한 번에 한 가지씩 두 가지 언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합치면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힘겹게 공부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더 짧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공부해 능통해지려고 하면 우화 속 욕심 많은 사자처럼 토끼와 사슴을 모두 놓치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손으로 단어카드에 직접 단어를 적어야 더 쉽게 암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같은 글 속에서 한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할 때 온라인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고 넘어가면 다음 단락에서 그 단어가 또 나왔을 때 뜻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단어의 뜻을 다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처음 그 단어가 나왔을 때 단어카드에 직접 단어와 뜻을 써놓는다면 손이 두뇌의 기억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 글을 다 읽을 때까지 다시는 그 단어 때문에 사전을 검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 살 때 이웃 중에 나이 든 퇴역장교가 있었다. 그는 내가 이집트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유창한 아랍어로 말을 건넸다. 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랍어를 어디에서 배우셨나요?" 그는 수십 년 전 젊었을 때 캘리포니아 주 몬트레이에서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언어학교에서 아랍어 교육과정을 수강했다고 한다. 처음 그 과정을 수강할 때 그는 아랍어를 단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때까지 누군가 아랍어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그는 아랍어로 막힘없이 듣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었다. 그의 아랍어 실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와! 아랍어를 이 정도로 듣고 읽고 말하고 쓰기까지 얼마나 걸리셨어요?" 내 질문에 그는 놀라운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지. 그때 교육과정이 꼭 63주였어." 상당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속하는 아랍어를 63주 동안 그것도 현지에 가지도 않은 채 그 정도 수준으로 배웠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이집트에서 공부를 할 때 동창들 가운데 이른바 '귀국자녀'들이 있었다. 귀국자녀란 타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어서야 본국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그들도 이집트에서 공부한지 10년이 다 되도록 아랍어로 글 쓰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한번도 외국에 가본 적 없는 미국인이 어떻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아랍어를 능숙한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했다.
"그 63주 동안 우리는 철저히 폐쇄된 환경에서 생활했어. 아랍어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나중에는 꿈도 아랍어로 꿀 지경이었다니까!"
현지에 가서 현지 언어를 공부했다면 당연히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내가 중남미 항해를 기회로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습득하고자 하는 외국어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공부해도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외국어를 공부할 때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수는 없다. 내가 10개 국어 남짓 공부해본 경험에 따르면 외국어를 배울 때 두 번의 고비가 찾아온다. 그 두 번의 고비를 잘 극복한다면 광활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 첫 번째 고비는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찾아온다. 조금 공부해 보니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가장 포기하기 쉬운 시기이다. 아직 많은 노력을 들인 것도 아니니까 지금 그만둔다면 큰 손해도 아니다 싶다. 이런 생각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손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이 언어를 할 줄 모름으로써 평생 놓치고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자. 이 언어를 배우지 않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 클수록 입문 단계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 고비는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랐을 때 찾아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이쯤이면 됐다'라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늦추고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런데 남들이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그들에게 존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은 사전적인 의미나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나타낸다. 어쩌면 상대방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거칠고 교양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고비만 잘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떤 언어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10~20년 동안 특별한 실력 향상은 없더라도 그 언어로 된 신문이나 인터넷을 꾸준히 보고 인터넷을 통해 그 나라의 라디오를 듣고, 또 거리에서 여행객을 만났을 때 먼저 말을 걸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면 실력을 지킬 수 있다. 자전거는 타는 법을 일단 배워놓으면 오랫동안 타지 않더라도 언제든 금세 기억이 돌아와 능숙하게 탈 수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실력을 길러놓는다면 정식으로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더라도 수준은 계속 유지된다.
단어 습득은 언어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휘가 풍부한 사람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다 쉽게 존중받을 수 있다.
20세기 상반기에 활발하게 활동한 미국 시인 겸 소설가이자 기자인 크리스토퍼 몰리는 그의 책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인생은 외국어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잘못 발음한다."
발음, 단어, 문법은 내가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가 되었다. 이 세 가지를 병행해서 학습한다면 어떤 외국어든 마스터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외국어 학습이 부자연스럽고 틀리기 쉬운 일이라면 어째서 시대를 막론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전철을 밟아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 걸까? '필요성'과 '호기심'은 인류 역사에서 외국어 공부라는 횃불을 쉼 없이 타오르게 만든 중요한 연료다.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주변 세계를 단순화시키려 한다. 우리에게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것을 소홀히 할 것인지 미리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 발짝만 내딛어도 너무 많은 소음과 광경이 우리를 정신없이 자극한다. 우리는 이런 단순화된 의도를 '가설' 또는 '이론'이라고 부르며 스스로 만든 울타리 안에 몸을 가둔 채 '국제화'를 '외국어 학습'에만 국한시키곤 한다. 문제는 세계관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많은 부모들의 기대처럼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고홍명은 피라항족과 비슷하다. 그는 외부에서 온 모든 것은 빌려온 것이지 자기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이에게 외국어 조기교육을 시키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외국어는 '빌려 온' 것이며 그 때문에 자기 것을 잃는다면 아이에게 자기 문화를 잃어버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외국어 조기교육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언어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언어 모두 그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보다 어휘량이 적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다중언어구사자들은 한 가지 언어만 할 줄 아는 사람에 비해 언어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알고서도 기꺼이 이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기교육을 해봐도 좋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외국어 학습에서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 바로 '어감'이다. '어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감이 무엇인지 느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외국어나 방언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궁금해도 이해할 수 없다.
언어란 먼저 널리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의 사용습관을 정리해 일정한 법칙을 발견하고 문법을 정립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문법은 언어학자들이 후손이나 외국인들이 그 언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규칙이다. 전 세계 어떤 언어도 먼저 문법규칙을 세운 후에 언어로 발전된 경우는 없다.
문법은 언어 규칙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어떤 언어든 문법 공부는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서 포기하기 쉽다. 모국어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온라인게임을 할 때 머리를 싸매고 전략을 연구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부터 즐기다 보면 대부분의 규칙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러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만 공략집을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규칙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규칙은 문법이 아니라 '어감'이다.
문법은 언어의 시작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언어든 문법 규칙에 예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학 방정식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모국어에 있는 여러 가지 문법적 예외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식하지 못 하고 또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법 규칙에 따라 그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문법상의 예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외국인이 우리에게 어째서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말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면 대부분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그래야 자연스러우니까요" 또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듣기에 부자연스러우니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듣기에 자연스러우면 맞고 듣기에 부자연스러우면 틀린다. 이것은 문법이 아니라 바로 어감이다.
캘리포니아대학 언어학과의 스티븐 크라센 명예교수는 "이른바 '언어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헝가리인 카토 롬(Kato Lomb)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롬은 냉전 시기 헝가리에서 활동한 통역사다. 그녀는 어릴 적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다. 1996년 크라센이 부다페스트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80세 고령임에도 중국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16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여전히 히브리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롬은 스스로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중국어와 폴란드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다. 모두 소설을 읽고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학습방법은 소설을 읽는 것이다. 크라센에 따르면, 실제로 롬은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여러가지 언어를 배우려는 열정을 가졌고 효과적인 학습방법을 사용했다는 것 외에 그녀에게서 특별한 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수십 가지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능력을 충분히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적은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로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를 찾았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작가 겸 방송인이 진행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 진행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시나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들을 타이어로 바꿔보세요." 그는 몇 문장을 읽어주며 내게 그 자리에서 '쇼'를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하자 그는 아주 신이 난 말투로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그걸 일본어로도 해보세요!"
나는 웃으며 거절했다. 일본어로 말하면 그 다음에는 또 스페인어로 해보라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걸 다해내면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겠지만 해내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다"고 쑥덕거릴 것이었다. 문득 상당한 지성을 갖춘 사람들도 언어에 대해 커다란 착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는 소통하기 위한 것이지 서커스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어를 과시하듯 보여주는 것은 여행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노점상들의 언어와 같다. 살기 위해 남들이 하는 말을 어깨 너머로 주워듣고 따라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으로 외국어 공부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언어를 자랑거리로 삼지 않으며 심심풀이 공연처럼 보여주지도 않는다.
모르몬교의 선교사 교육이든 미국 국방부의 해외파견병사 교육이든 외국어 학습은 모두 듣기부터 시작했다. 먼저 배우고자 하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 많이 듣고 어감이 생긴 후에 본격적으로 공부하면 훨씬 수월하게 배울 수 있다. 그런 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기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듣기부터 시작해 어른의 말을 모방하고 반복해서 모방하다보면 저절로 익히게 된다고 말한다.
단기외국어캠프는 얼핏 방학에 이루어지는 단기해외연수와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단기해외연수는 비싼 학비만큼의 학습효과를 내지 못 한다. 요즘은 단기해외연수가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2주 만에도 외국어 실력이 급속도로 향상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부하러 혼자 간다.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없으므로 모국어를 쓰지 않을 수 있다.
둘째, 홈스테이를 한다.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외국 학생이 함께 홈스테이를 하지 않는 가정을 선택한다. 그래야만 억지로라도 의식주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회화를 하게 되고 하루 종일 그 가정의 가족들과 내가 배우고 싶은 언어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말다툼조차 외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셋째, 1대1로 배운다.
다른 외국인들과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방식은 시간낭비다. 개인교사는 똑똑하고 전문적이며 에절바른 언어를 구사하고 현지인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칠고 수준 낮은 언어를 배우게 된다.
넷째, 현지 언어만 사용한다.
자국민과 대화를 할 때에도 현지의 언어만 사용해야 한다. 모르몬교훈련센터에서 외국어를 가르칠 때에도 선배와 후배가 1대1 또는 2대2로 짝을 이뤄 학습하게 한다. 외국에서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선배와 곧 선교사로 파견될 후배가 24시간 함께 생활하는데 반드시 파견지의 언어로만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다섯째, 현지 기사를 읽고 듣는다.
매일 현지의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는다.
여섯째, 책을 읽는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쉬운 책을 골라 천천히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단어카드에 적는다. 귀찮다고 생각하거나 진도가 느리다고 조급해 하지 않는다.
일곱째, 현지 문화에 관심을 갖는다.
현지 문화를 볼 수 있는 공연이나 명절행사에 참가한다. 외국어 공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현지인 친구를 사귄다.
모국에서 함께 온 친구들과 현지에서도 늘 붙어 다녀서는 외국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아홉째, 정확하고 멋진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 몇 문장이라도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발음이야 어떻든 상대가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자.
열째, 백지 단어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새로운 단어는 직접 듣거나 사용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곧장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열한째, 그날 일은 그날 끝마치는 습관을 기른다.
그날 들은 새 단어를 단어카드에 적고 뜻과 용법을 찾아 정리하지 못 했다면 절대로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 자고나서 다음날 단어카드를 완성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또 이렇게 미루다가 정리하지 못한 단어들이 쌓이면 단어카드 만드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북에 접속하기 전에 반드시 어제의 단어들을 한 번 복습해야 한다. 그날 이해하지 못한 것은 따로 보관해뒀다가 다음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선생님에게 그 단어에 대해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열두째, 현지 젊은이들의 유행어를 배우고 핫이슈에 관심을 갖는다.
현지인들과 나누는 대화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열셋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자신감을 갖는다.
10~15일, 즉 약 2주만에 간단한 일상회화를 아무 문제없이 말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목표가 아니다.
출처:blog.naver.com/kwonwheemoon/221756866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