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8월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 공군은 서울 도심에 대규모 폭격작전을 벌인다. 북한 조선인민군이 6월 28~29일 점령한 서울 용산역과 그 앞 시가지, 용산·서빙고 옛 일본군 기지 등에 수십여톤의 막대한 폭탄을 쏟아부어 용도 불능으로 만드는 융단폭격이었다. 그해 7월16일 비(B)29 중폭격기 47대가 용산역전과 철도공작창, 조차장에 소이탄 더미를 투하해 완전히 파괴한 대공습을 비롯해 9월까지 이어진 4~5차례의 공습폭격으로 용산역전 시가지와 철도시설, 용산기지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다.
2022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용산 폭격 동영상과 주요 사진들이 언론에 공개된데 이어, 최근 당시 연쇄 폭격으로 해방 뒤 월남한 민간인들이 모여 살던 용산기지 북동쪽의 해방촌(현재 서울 용산동2가∙후암동 일대)도 전면 초토화하는 피해를 본 사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식보고서 발굴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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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과 신당동, 서빙고동도 일부가 파괴됐다고 덧붙였지만, 전체가 완전히 파괴된 피해 대상 목록에 민간인 마을로는 유일하게 해방촌이 올라있다. 전 교수는 “해방촌은 용산기지 북동쪽에 있고 서빙고동 군수창고로 가는 중간 지점이어서 폭격대상에 합쳐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 때 월미도 폭격처럼 전시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한 폭격은 엄격히 금지된 제네바 협정 3조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주장했다.
해방촌 폭격은 전쟁 당시 서울 정릉에 살면서 폭격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기억과 여러 풍문을 소개한 김성칠 서울대 사학과 교수의 회고록 ‘역사 앞에서’(2018·창비)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김성칠은 전언이라고 소개하면서 “맹폭으로 수천명의 무고한 사상자가 났다”고 증언해 폭격 사실은 어렴풋이 알려졌으나 공식 문서기록은 전무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시아이에이 보고서 발굴은 이를 정사로 입증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전 교수는 논고에서 미군은 이후 유엔군 행정처, 한국 정부와 함께 9~10월 대대적인 피해현황 조사를 벌여 같은 해 11월14일 유엔군사령부는 미국 육군부 병참참모부(G-4)에 ‘전쟁피해 조사보고서-남한’(WarDamageSurveyReport – SouthKorea) 보냈으나 인명피해 대목은 전혀 없이 시설의 피해 상황과 복구액수만 추산해 의도적으로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짚었다. 또 전 교수는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도시 민간인 구역 공격과 같은 민간인 살상 폭격이 70여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도 벌어졌던 정황을 전해주는 공식사료들이 수집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댓글 미국도 원흉이긔 6.25전쟁 일어난 과정보면 얘네들도 책임없다고는 말못하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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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