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경동교회 임영섭 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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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평화로 나아가는 길: 교회의 활용 가능한 자원을 중심으로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교회의 자원
한반도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언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긴장 상태에 처해 있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 GFP)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이 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 5위 한국, 7위 일본) 이뿐만 아니라 핵보유국으로서 북한 그리고 대만이 한반도 주변에서 각각 군사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평화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교회를 포함한 세계 평화와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폭력 행위를 고려할 때, 정의로운 평화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가장 긴급한 역사적·신학적 과제이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으로 폭력과 전쟁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폭력과 전쟁에도 반대하는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주류 교회들은 일제 식민지배, 한국전쟁, 분단체제, 독재정권, 민주화, 경제발전 등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지배이념을 지지하고 강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국가안보, 경제발전, 친미주의, 반공주의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지배담론은 필요에 따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 Theory)의 입장을 취해 왔으며, 그것은 한국의 주류 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국전쟁 당시 발표한 ‘토론토 성명’에서도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력 동원에 지지를 보내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던 중 한국교회가 정의로운 평화 전통을 재인식함으로써 분위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촉구하던 교회와 단체들은 냉전체제 아래에서 군사적 긴장이 증폭되고 한반도 갈등이 고착되자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제6차 WCC 총회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화가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물리적인 응징이 아닌 세계 전체의 폭력 없는 평화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와 에큐메니컬 단체들은 한반도 갈등으로 인한 구조적 폭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1980-90년대 남북 교회 간 교류를 촉진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의 ‘자원 동원 이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에서는 종교에 의한 평화운동이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통합되며 확산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자원의 상호관계와 연계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물적, 인적, 사회 조직적, 도덕적, 문화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회운동 자원으로서 사회 조직적, 도덕적, 문화적 자원에 초점을 맞춘 에드워즈(B. Edwards)와 매카시(J. D. McCarthy)는 평화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종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첫째, 종교 단체는 평화운동을 위한 사회 조직적 자원이 될 수 있다. 기독교에는 지역, 국가, 세계교회 조직과 신앙 기반의 사회 조직 등 다양한 조직이 있다. 이것은 평화를 위한 담론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잠재적인 자원이 될 수 있고, 인적·물적 자원과 연결되어 평화운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자원 동원 이론을 통해 평화운동을 연구하는 애플비(R. S. Appleby)는 종교인들이 종교전통 내에서 그리고 종교전통들 사이에서 신앙에 기반한 외교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종교는 평화운동을 지지하고 연대를 형성하며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도덕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종교의 경전과 가르침에는 평화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으며, 성서와 교회 역사에서는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하는 전통이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셋째, 종교적 전례와 의식, 정기적인 모임 등은 평화운동을 위한 문화적 자원으로 작용한다. 종교의 의식과 이를 통한 종교적 체험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독교 예배는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적인 플랫폼을 제공한다. 칼슨(J. D. Carlson)과 오언스(E. C. Owens)는 종교나 특정 형태의 종교성이 국가나 민족을 넘어서는 공동체, 공동의 비전 그리고 공유된 가치를 통해 사람들을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을 통해 과거 한국교회의 평화운동을 재평가하는 것은, 현재의 교회가 한반도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용한 이해와 틀을 제공할 수 있다.
국내외 교회와 단체의 사회 조직적 자원
한국교회는 예전부터 국내외 사회 조직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경험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한 여러 에큐메니컬 단체는 평화운동을 펼치면서, 해외의 교회협의회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한반도 평화 노력을 지원하고 지지한 바 있다.
예를 들어, WCC와 CCA는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동북아의 평화와 정의-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고, 1986년에는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를 채택하는 등 이러한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선교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와 재일대한기독교회,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그리고 세계 에큐메니컬 진영의 협력을 통해 1986년과 1988년에는 두 차례 스위스 글리온회의가 개최되어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특히 1988년 2차 글리온회의에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서독, 소련,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체코, 네덜란드 등 세계의 교회 대표들과 조선기독교연맹,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남북한 교회 대표가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예배와 성례, 성서 연구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마지막으로 WCC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글리온 선언’과 ‘한반도 민족통일을 위한 세계기도주일 기도문’을 협의하고 발표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교회의 사회 조직적 자원 활용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회운동에 필수적이다. 현재의 한국교회에도 이러한 노력과 협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2013년 WCC 부산총회 이후 국내 에큐메니컬 운동과 WCC 같은 국제기구의 규모와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현재 남북한 관계와 전 세계의 군사적 갈등을 고려할 때, 국내외의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와 단체들의 연대와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2000년대 이후에는 세계 여러 분쟁 지역에 있는 공동체와 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국의 상황을 알리고 자금을 모으는 풀뿌리운동(Grassroots Movement)을 전개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이러한 활동과 연대는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비록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지만, 21세기에는 사회 조직적 플랫폼이 더욱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서와 교회 전통의 도덕적 자원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교회의 도덕적 자원은 먼저 기독교 신앙의 가치와 윤리에 근거한다. 성서와 교회 전통에서 강조되는 사랑, 정의, 평화, 화해, 용서 등은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의 사회적 행동을 이끄는 동기와 원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규범과 전통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운동에 신뢰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종교나 단체와 더 광범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교회의 도덕적 자원에는 목적의식과 사명감이 함께한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나라라는 궁극적인 목적의식을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추구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다시 회복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회가 이러한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면서 구성원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사회운동에 결속력, 소속감, 신뢰성 그리고 정당성이 생길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주요 교회들은 교회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해 왔다. 성서의 이미지, 상징, 내러티브, 은유 등을 반공주의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공산주의와 북한을 사탄, 마귀, 악마로 규정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이념적 우월성과 반공주의를 자극했다. 남북한의 교회들은 적대감과 혐오를 통한 도덕적 자원을 내세워 한국전쟁 중 군사 무기 도입을 위해 헌금을 모으고 병력을 모집하며, 점령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 후 남한의 교회들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일과, 국가안보와 군사주의를 지지하는 데에도 성서와 기독교 신앙을 동원했다.
반면 에큐메니컬 진영은 정의로운 평화 전통을 재인식한 이후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이러한 가치와 윤리를 연결시켰다. 그 획기적인 사례 중 하나는 1988년에 NCCK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다. 소위 ‘88선언’이라고 불리는 이 선언은 교회와 사회 분야에서 평화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정당성을 이끄는 자원으로 기능했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평화를 위한 성서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고, 반공주의를 앞세워 군사주의를 부추기고 사랑의 계명을 어긴 것을 죄로 고백했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이 인종, 국가, 이념적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초대받았다는 성서적 인간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1:1, 롬 8:14-17, 갈 3:26, 4:7)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평화, 화해,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 안에서 평화의 일꾼으로 부름받았음을 강조하였다.(엡 2:13, 눅 4:18, 요 14:27, 행 10:36-40, 골 3:15, 마 5:23-24) 이 선언은 한반도의 상황을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사회에 반공주의와 국가안보를 뛰어넘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결과적으로 88선언은 종교적 신념이 평화운동의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선언문에 담긴 신학적, 역사적, 정치적 담론은 사회의 다양한 평화운동과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실 성서의 출애굽 해방이나 예언자적 상상력은 일제 식민지배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일으키는 도덕적 자원으로 이미 기능했었다. 이러한 전통이 1980년대 후반 남한의 민주화 과정,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여론 형성, 1991년 ‘남북한의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협정’ 등으로 이어지면서, 교회가 종교적 규범과 상상력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교회의 평화 전통은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자원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남북 갈등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양극화, 세대, 지역, 젠더, 정치 갈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통받고 있다. 교회가 가진 평화와 화해의 가치와 서사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 회복력, 목적의식을 제공하고 사회적 실천에 참여하는 이들의 헌신을 강화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주류 교회들의 신학적 담론은 이러한 사회 갈등을 평화와 화해로 전환시키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설교 주제를 볼 때 정의, 화해, 평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다. 현재 한국 사회와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려하면, 이 주제만큼 사회와 교회에 긴급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신학적 담론은 교회성장, 개인적 번영, 영적인 문제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반공주의나 특정 정치 이념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전쟁이나 폭력 사용을 쉽게 정당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도덕적 자원이 설교 같은 신학적 담론을 통해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 사회와 세계가 안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의로운 평화 전통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교회공동체의 문화적 자원
교회의 문화적 자원은 평화운동의 전략을 세우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배, 성례전, 모임, 상징, 은유, 서사 등 기독교의 문화적 자원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연대와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종교적 전통은 음악, 예술, 문학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표현에 영감을 주어, 다양한 사람들을 참여시켜 평화운동을 증폭시킬 수 있다.
애플비는 비록 종교가 분열과 갈등을 고조할 수 있지만 종교가 가진 공동의 신념, 상징, 의식 등은 분열된 집단을 통합시키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성서와 교회의 전통에는 갈등으로부터 화해와 용서로 전환되는 여러 이야기와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서사, 신화, 역사적 사건은 신앙공동체에 희망을 품게 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동기가 되며 사회 담론과 실천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1980-90년대의 국내 에큐메니컬 운동은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 운동을 촉진하기 위해 성찬식, 기도회, 전례 등을 활용하였다. WCC의 바인가르트너(E. Weingartner)는 글리온회의에서 거행한 성만찬 예식이 남북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게 했다고 말했는데 그는 이것이 기독교 예배와 성례전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일치시키는 강력한 상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글리온회의에서 합의했듯이,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이 매년 광복절 기념주일예배에서 공동 기도문을 발표하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한 것도 중요한 문화적 자원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구약성서의 희년은 본래 의례, 축제, 시간의 주기와 관련된 개념으로 50년마다 축제를 통해 기념하는 거룩한 의식이었다.(레 25:8-17) 이런 성서적 배경 때문에 희년은 교회 예배와 기도회에서 각 개신교 교단과 단체의 슬로건으로 종종 채택되었다.
게다가 성서의 희년 전통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노예 생활에서 겪었던 공동의 경험과 기억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이 개념은 하나의 문화적 자원으로서,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정치에 억눌린 공동의 운명에 놓여 있다고 느끼게 하였다. 더 나아가 희년 전통에 담겨 있는 해방의 의미는 남북한 교회가 이념 갈등을 넘어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열 수 있다는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신학적인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였다.
희년은 이후에도 한국교회의 평화를 위한 문화적 자원으로 자주 활용되었다. NCCK와 WCC는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여 2020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3·1운동과 광복절을 기념해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세계 에큐메니컬 교회들과 함께 ‘평화 기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희년을 비롯한 성서의 정의로운 평화 전통은 정기적으로 예배와 기도회에 동원되어 한국과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신학적, 사회적 담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고, 국내외 평화운동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영감을 주었다.
성서에는 수많은 상징, 은유, 이미지, 서사, 담론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교회는 이러한 문화적 자원들을 활용하여 비폭력적 정의와 평화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도리어 폭력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교회는 한국전쟁과 냉전시대에 이러한 자원을 동원하여 북한과 공산주의를 악마화하는 데 열중하였다. 이는 혐오와 배제의 신학적인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반공주의를 심화시키고 혐오와 배제의 문화를 형성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문화인류학자 기어츠(C. Geertz)에 따르면, 문화현상의 기본적인 특징들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며, 다른 문화현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교회의 문화적 자원이 항상 의도한 대로 사회 담론과 실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사회 구성원들은 문화현상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 가치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특정한 의미와 상징을 통해 사회적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이루어간다.
이에 따라 교회의 폭력을 조장하는 문화적 자원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신념, 가치관, 정체성을 형성하며, 이와 반대로 평화를 촉진하는 문화적 자원은 정의, 화해, 협력의 담론과 실천을 증진한다. 복음서의 하나님 나라 비유와 가르침은 생명의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교회가 동원하는 문화적 자원이 폭력과 전쟁을 통해 전파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앞서 살펴본 몇 가지 사례는 문화적 자원이 어떻게 씨앗처럼 뿌려지고 이후에 싹을 틔우며 꽃을 피워 정의와 평화의 열매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교회와 종교 단체들은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기독교의 정의로운 평화 전통을 재확인하며 평화와 화해를 위해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였다. 이 글에서는 자원 동원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교회가 어떻게 신학적·사회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국내외의 사회 조직적 자원은 남북대화 환경을 조성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담론을 국내와 국제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다음으로 교회 전통의 윤리적, 종교적 규범이 한반도 평화운동의 도덕적 자원으로 동원되었다. 특히 88선언의 경우처럼 성서의 평화적 가치는 장기간 갈등으로 구조적 폭력이 고착된 한국 사회에서 평화운동을 합리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교회공동체의 문화적 자원인 성찬식, 기도회, 전례와 성서의 은유, 상징, 이미지, 서사 등은 평화운동을 위한 신학적, 사회적 담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도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종교의 자원이 동원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과 러시아정교회는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회의 여러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푸틴은 지난해 정교회 성탄절에 교회를 방문하여 성호를 긋는 모습을 노출함으로써 전쟁에 종교적인 함의를 부여했으며, “교회 조직들은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우리 전사들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관영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을 ‘러시아의 세계’를 보존하고 슬라브 땅을 모스크바의 영적·정치적 영역에 두기 위해 서방과 벌이는 거룩한 투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친구를 위해 한 사람의 영혼을 바치는 것보다 숭고한 사랑은 없다.’는 요한복음서 15:13을 인용하면서 러시아 병사들의 희생을 순교로 정당화하였다.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면에는 성서적 근거를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온 유대인들의 ‘자원 동원’의 역사가 있다. 유대교의 여러 절기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문화적 자원으로 기능하는데, 성서의 인물, 지명, 서사, 상징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의 땅으로 여기는 합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는 각 국가에서 정치, 경제, 문화, 외교적인 힘을 발휘함으로써 사회 조직적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와 사회 간의 관계는 한국 사회에 정의로운 평화를 이루기 위해 교회가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좋은 예를 제시하고 있다. 분명 교회는 사회적 조직체로서, 사회 담론 형성과 실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가 지난 ‘자원 동원’의 사례들을 참고하여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를 더 잘 드러내는 방법으로 사회적 자원을 활용한다면, 한반도와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를 다시 한번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영섭|한신대학교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더블린대학교(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논문으로 “초기 이스라엘의 다원주의적 특징과 이슬람 포비아”, “Counter-imperialistic Features in Biblical Israel” 등이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