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는 주님을 입맞춤으로 배신하였다.
주님의 이적과 능력으로 병을 고침 받고
배부름을 경험한 군중들은 예수를 '호산나' 하며 따랐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호산나 외치던 그 입술과
그 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다 못 박으라!' 고 소리쳤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의 죄 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단은 때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성도들을 넘어지게 한다.(고후11:14)
사람만이 입맞춤으로 스승을 배반할 수 있다.
속과 겉이 다를 수 있는 동물은 사람 외엔 없다.
얼마나 악하고 독한가?
잠시 후에 주님을 향하여 돌 던질 사람들이
지금은 '호산나' 를 외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런 모습으로 저기서는 저런 모습으로,
오늘은 이런 사람으로 내일은 또 저런 사람으로
나를 감추고 위장한다.
교회에서의 내가 다르고 홀로 있을 때의 내가 다르다.
목회자 앞에서의 나와 교우들 앞에서의 내가 다르다.
은혜란 단점보다 장점이 크게 보이는 것이며
허물을 위해 잠잠히 기도해 주는 힘이다.
장미에서 꽃과 향기를 찾는 사람이 있고
장미에서 가시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성경은 허물을 보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허물을 목격한 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허물을 보인자는 발을 뻗고 자도
허물을 본 자는 잠을 설치는 법이다.
노아는 자녀들에게 허물을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허물을 들추어낸 함을 저주 하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이야기 하느라 시간을 비하는가?
또한 그동안 받은 은혜와 생명을 쏟고 사는가?
마귀가 박장대소할 일이다.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완벽한 교회와
사람이나 목회자를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다.
신앙이 미숙할수록 남의 허물이 크게 보이는 법이고
반대로 성숙할수록 자기 허물이 크게 보이는 법이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하물며 우리들의 은밀한 대화를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으시다.
남의 허물이 보이면 기도해 주라.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라.
사실 알고 보면 당신이 못 마땅해 하는
그 누군가 보다 당신의 허물은 만 가지도 넘는다.
당신이 말하고 들춰낸 허물이 티끌이라면
당신 속에 감춰진 허물은 들보만 하다.
누군가가 당신의 허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이다.
장미에서 꽃을 찾아 감탄하고 그윽한 향기에 취하라.
왜 당신은 굳이 '장미에서 가시를 세어 보는가?'
당신이 누군가의 허물과 단점을 자신도 모르게 캐낸다면
이미 당신의 영혼은 깊은 상처와 중병에 걸려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 남의 허물이나 단점들을 들추어내고 말하는 사람은
상처가 많거나 성품 적으로 결함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의 성숙지수는 포용지수와 비례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의 유연성을 가지고
품어주고 기다려주라.
예수의 부친 요셉을 보라.
약혼녀가 결혼 전에 임신을 했어도
그 사실을 드러내거나 험담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덮고 품으려 했다.
그래서 요셉은 의인(義人)이었다.
나는 함인가?
아니면 요셉인가?
당신의 생각이나 대화의 대부분을 주님을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하는가?
아니면 남의 허물과 단점을 들춰내어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는가?
생각의 유연성을 소유하라.
나하고 전혀 다른 의견도 존중하고 들어주라.
남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내 생각만 고집하거나 옳다고 하면 망할 수도 있다.
생각이 굳으면 암보다 더 무섭다.
고정관념을 깨뜨려라.
생각과 마음을 넓혀라.
당신이 그렇게 욕하고 흉보는 그 사람보다
당신이 백배 더 못났고 더 악한 사람일지 어찌 알겠는가?
인생이 무엇인가? 풀의 이슬 같은 존재가 아닌가?
오늘 밤에라도 주님이 오라시면 거부할 수 있는가?
아직도 남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가 되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당신은 신앙의 초보도 못 갖춘 영적미숙아이다.
주여! 일평생 남의 장점만 보임으로
영적으로 A⁺인생을 살게 하소서!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