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인들은 학소대 등에서 학의 모습과 동태를 잘 관찰할 수 있었고, 온천장에 놀이를 좋아하는 풍류객들이 많이 모이는 등으로 인하여 춤판이 벌어졌으며, 기녀들과 한량들의 흥취가 고조되어 갔고, 들놀음춤과 사랑방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독립된 춤으로 동래학춤이 이루어졌다
동래에서는 동래야류의 길놀이가 끝나면 연희마당에서는 춤의 명수들이 한바탕 신명나게 학춤 등을 추었으며, 한편으로는 줄다리기가 끝나면 명무수들이 학춤을 추어 승리를 축하했다고 한다. 또한 학춤은 어떤 명무수가 당시 출입복이었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서 덧배기춤을 멋있게 추니까 누군가가 ‘마치 학이 춤을 추는 것 같다’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계속 추다 보니까 좀더 학답게 학의 동태를 가미한 춤사위로 발전하여 동래학춤이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동래에는 예부터 지형이 학의 모습과 같다 하여 학과 관련된 지명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학이 떼를 지어 서식하여 학의 모습과 동태를 잘 관찰할 수 있어, 동래 특유의 덧배기춤이 학춤답게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게 다듬어질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하였다. 학춤을 추는 대상은 멋과 예술적인 기질을 내면에 진하게 깔면서 어느 정도의 인격과 지식도 겸비한 사람들이었다
동래학춤은 동래의 덧배기춤이 예술적으로 발전된 상태이고, 자연미와 예술미의 조화로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춤의 예술성이 모방과 사실성보다는 창조성과 즉흥성, 그리고 상징성에 있다고 볼 때 단순한 민속무의 범주를 넘어 예술적 차원에 도달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동래학춤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에 동래지역에 거주하는 고로들의 증언에 의하여 추론할 수밖에 없다. 동래야류 기능보유자였던 고(故) 신우언 (1899~1979) 선생과 동래기영회 이사장 이였던 고(故) 김인호 선생,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겸 동래야류 예능보유자 문장원 선생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학춤은 특정한 단체와 개인에 의해 독자적으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이 지방의 줄다리기와 야류 등과 깊은 관계가 있는 춤이다.
동래에서는 예전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큰줄땡기기’를 개최했다고 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에게는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해서 마을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가 되는데 이때 학춤도 한몫 끼었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 동래야류의 본 마당에 들어가기 전에 길놀이를 하고, 놀이마당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춤자랑이 벌어졌다. 요동춤, 두꺼비춤, 곱추춤, 병신춤, 홍두깨춤, 엉덩이춤, 문둥이춤 등을 추는데 이때 어떤 이름난 춤꾼이 당시 흔히 입고 다니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덧배기 춤을 멋있게 추니까 이것을 본 누군가가 ‘마치 학이 춤을 추는 것 같다’라고 한데서 동래학춤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 전승되고 있는 궁중무용 학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중에서 추었던 학춤이 분장, 아악반주, 춤사위 등의 연출에 있어서 정중한데 비해 동래학춤은 도포차림에 민속악기인 사물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소박한 토속민속춤이다. 따라서 궁중문화의 민간전파로 보기보다는 자연발생적 토속문화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학춤에 대하여 증언한 고 신우언 선생은 ‘동래학춤은 한량들이 추는 춤사위의 기본형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면서 원래 동래지방 한량들이 즐겨 추었던 동래 덧배기춤과의 유사성을 지적하였다.
덧배기춤은 한국탈춤의 모태로 볼 수 있으며 ‘덧’을 베어버리기 위해 추는 춤이라는 주술적 의미를 지니면서 주로 경상도에서 행해져왔다. 이런 뜻에서 동래 덧배기춤의 주류인 배김사위는 마치 나쁜 귀신을 베어버리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덧배기춤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귀신, 부정적인 것을 없애버리는 춤으로써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춤이 강하고 폭이 커서 위엄과 멋과 박력을 두루 갖춘 남성적 기질의 춤이다. 이 덧배기 춤에 학의 움직임을 추가해서 좀더 다듬은 것이 지금의 동래학춤으로 동래사람들은 학소대 등에서 학의 모습과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었고 온천과 교방이 있어서 춤세가 거세었던 데다가 풍류객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자연히 놀이문화가 풍성했다는 여러 조건이 부합되어 발생한 춤으로 추정된다.
▣ 구성 및 내용
1장 - 악사들이 자진가락(자진모리)을 치면서 등장하여 춤판을 한 바퀴 돌아 한 곳에 정지한 후 장단을 늦추어 굿거리장단으로 바뀌면서 구음이 시작된다. 구음소리를 들으면서 무수들이 ‘활개짓 뜀사위’로 차례로 날라 들어와 춤판을 한 바퀴 돈 후 5장단 정도 즉흥무를 행한다.
2장 - 양팔을 일자로 들어 올려서 팔목을 돌려 양 손바닥이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여 다시 내려서 손등을 양 허리에 붙인다. 장단 수는 2, 3장단이 보통이다.
▣ 춤사위
학춤의 춤사위를 보면, 일반 민속춤과 같이 일정한 순서로 짜여져 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즉흥성과 개인적 멋이 강조되지만 몇가지 춤사위는 도식화되어 꼭 행해졌다. 활개짓 뜀사위, 일자사위, 돌림사위, 모이어룸사위, 외발서기, 옆걸음사위, 좌우 활개사위, 배김사위, 좌수풀이사위, 소쿠리춤사위, 소매걷움사위, 모이줍는사위, 모둠뛰기사위, 좌우활개사위 등 이상의 춤사위는 4번의 배김사위를 한단위로 하여 구성되어 있으며 춤꾼이 춤판으로 들어와 각기 자기 멋대로 덧배기춤을 추다가 위의 춤사위를 행할 때는 일제히 함께 행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동래학춤은 동래의 덧배기춤이 예술적으로 발전한 상태이며 자연미와 예술미의 조화로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춤의 예술성이 모방과 사실성보다는 창조성과 즉흥성, 그리고 상징성에 있다고 볼 때 단순한 민속춤으로서의 범주를 넘어 예술적 차원에 도달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 복식
흰 바지저고리에 흰 도포를 입는데 명주천으로 복식을 만들어 입는 것이 학춤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당시 한량들의 출입복으로도 명주도포와 통영갓은 최고의 의관(衣冠)이었다고 한다. 검정갓에 미투리를 신으며 가슴에는 흰 술띠를 맨다.
첫댓글 동래학춤 촬영한다고 땡볕에서 몇시간 포복하고 담아 온 사진입니다...음악은(??) 그렇지만 즐거운 휴일 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학이 자유로이 뛰노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보이면 다행입니다...좋은평에 감사드립니다 활기넘치는 한주 되세요
동래학춤은 선비들의 멋진 기상과 남자만이 풍기는 넘치는끼가...![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아름다운 선을 통하여 느껴지는 아름다운 춤사위라라고 ...
요즘은 여자분이 훨씬 많더군요...ㅎㅎ...활기넘치는 한주 되세요
학처럼 고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하고 기품있게.. 멋진 춤사위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감 합니다
좋은평에 감사드립니다 활기넘치는 한주 되세요
기품있네요 ^^*
촌장님 감사합니다 활기넘치는 한주 되세요
동래학춤의 기품이 나오는듯하네요 감솨합니다 ^&^
선비들 춤이 없는데 갓까지 쓰고 추는 춤에서 기품이 엿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