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유수연
내가 간디학교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언니가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간디학교의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다들 별로라고 했던 연두색 건물과 파란 지붕도, 보석사 가는 길과 은행나무도 다 마음에 들었다. 옛날부터 시골 감성을 좋아했던 걸까? 2년 반 동안의 시간을 생각하면 나눴던 대화들보다도 그 공간들이 먼저 생각난다. 이제는 몇 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순간순간들을 담아놓으며 살아갈 것이다.
12년 동안 대안교육을 받은 삶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삶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내가 결정한 것이 맞지만, 첫 단추가 부모님에 의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고 언니를 대안 초등학교와 금산간디중학교에 보낸 것도 부모님이시니, 나도 저절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언니가 다니는 학교를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이 빨리 입학시켰다고 한다. 초등학교의 생활은 매우 행복했다.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표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자유로웠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졸업을 하니, 금산간디중학교를 와서 일의 무게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고난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하니까. 초등학교 때는 ‘행복’을 채웠고 중학교 때는 ‘경험’을 채운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무엇을 채우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12년 동안 대안교육을 받으며 살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간디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집중적으로 찾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사회에 노출되는 건 5년도 안 남았고, 사회와 별개로 재미있는 삶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2학년 때부터 ‘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나보다는 타인을 챙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의사/감정 표현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애들은 오래 같이 지내서 잘 수용해 주는 것 같은데 처음 만난 사람은 아직도 조금 불안하다. 그리고 원칙적이다. 원칙적이다 보니 융통성이 없어서 일이 틀어지면 당황했던 적이 많았다. 요즘 들어 내가 생각한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많이 경험하게 되면서 항상 예측할 때마다 ‘안 그럴 수도 있다’를 매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융통성이 없다 보니 불안과 걱정도 많은 편이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힘들어질 때마다 의사/감정 표현과 융통성을 늘리고 불안과 걱정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한다.
생각해 보니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 ‘해결해야 되는’ 성격만 있지, 정작 나의 장점은 찾지 못했다.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니, 결국은 타인이 주는 애정만 먹으며 나의 자신감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애정을 안 준다던가, 내가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 같다든가, 타인이 나한테 막말을 했던 일이 있으면 쉽게 무너졌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찔리는 게 많아서’인 줄만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사람들의 애정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그야말로 ‘관종’이 되어있었다.
현재에 집중하자.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