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신난다 지은이 : 드니 랭동
옮긴이의 글
재미있고 즐거운 신들의 이야기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왠지 따분하고 석연치 못한 느낌 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신화의 줄거리나 구성 그리고 그 의미 에 대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듯해서 우선은 진부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 만 동시에, 신화 속의 어느 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맥락을 정확히 잡아 낼 수 없고 무수히 등장하는 신들이며 영웅의 이름과 개개의 사건에 대해 명쾌 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뭔가 불분명한 느낌, 아직도 신화를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반성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하여 큰맘 먹고 다시 한 번 두툼한 그 리스 로마 신화를 펴들어보지만, 다급하고 강력한 동기가 없는 보통의 독자라면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채, '필독 서양 고전' 중의 하나라는 그 책을 또다시 책꽂 이 속에 얌전히 끼워놓고, 가끔 단편적인 지식이 필요한 순간에만 사전 참조하듯 펴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서양의 신화라는 이유를 들어 그러한 불충분한 독서에 대해 스스로를 너그럽게 용서할지는 모른다. 지금의 우리와는 시공간적으로 너무 거리가 있는 얘기인 만큼 자세히 알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후의 수많은 서양 문화-책을 비롯한 갖가 지 예술적 산물-를 마주할 때마다, 서구 문화의 창조자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암 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신화의 뿌리를 느낄 때마다 우리는 뭔가 기초를 소홀히 했다는 뼈아픈 확인을 하게 된다. 드니 랭동의 (신들은 신난다)는 위와 같은 경험을 했던 독자들에게 아주 적절 한 신화 입문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신화의 세계로 접어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6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직접 얘기로 들려주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만큼, 우리는 마치 이야기를 듣듯이 책을 읽어 나가게 된다. 수사와 현학을 배제한 단순하고 평이한 문장들로 이어지는 드니 랭 동의 '쉬운 글쓰기'는 신화를 우리와 무관한 고어체의 옛날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비추어줄 수 있는 이야기로 되살려내려는 중요한 목적하에 이루 어진 것이다. 신들과 영웅적 인간들이 어떻게 해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 영웅들은 어째서 신들로부터 특출한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는가? 신들은 왜 영웅들이 빚어 내는 수많은 모험에 자꾸 끼여드는가? 결국, '왜 우리는 신화를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그러한 기초적인 궁금증들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신 들과 인간의 중요한 공통점을 지적함으로써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신들을 '감정을 가진 존재'로 설명함으로써 신화가 우리에게 의미로울 수 있는 이유를 간단 명료하게 짚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터무니 없어보이는 신들의 세계가 인간 세계에 대한 상징화된 도식처럼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의 인간 감정을 신들의 일상 속에서 발견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신들이 인간 세계에 끼여들 수밖에 없 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신들과 인간의 공통점을 설명함과 동시 에 그 두드러진 차이를 인간의 관점으로 알기 쉽고 명쾌하게 지적함으로써 신들 이 그저 올림포스 꼭대기에 앉아 있는 불하해한 막연한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신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결코 늙거나 죽지 않는다는 것과 무엇으로든지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신들이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신들은 아무리 더워도 땀을 흘리지 않고, 해를 직접 바라봐도 눈을 깜빡이 지 않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저자의 설명은 얼마나 재밌고도 간결한가! 그런가 하면, 신들을 오늘날의 인간에게 단지 수직적으로만 연결시키는 것이 아 니라, 지금의 인간을 빗대어 신의 세계를 이해시키는 실로 현대적인 발상을 사용 하고 있다. 예컨대,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아테나(미네르바)의 차이를 마릴린 몬 로와 그레타 가르보에 연결시킨다거나, 올림포스 신들의 이기심과 권모술수를 오 늘날의 정치인과 비교한 점 등은 신화를 오늘의 이야기로 부활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를 다시 한 번 엿보게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 신화서에서 보이는 연대기적 서술을 피하고 나 름대로의 소설적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야기들을 시기적으로 나 열하기 보다는 여러 이야기를 적절히 끼워넣어 진행시킴으로써 '달리 이야기하 는' 데서 얻어지는 소설적 재마와 긴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미 잘 알려져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얘기나 신화의 첫 단계에서의 너무 복잡 하다 싶은 얘기들을 교묘히 피해 나가는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또 한, 지나치게 단선적인 이야기 진행을 막기 위해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집어넣음 으로써 독자가 신들의 가공할 이야기에 질식되지 않도록 배려라고 있다. 예컨대, 트로이 전쟁 중의 네스토르가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나, 오디세우스의 모험 중 에 삽입된 칼립소의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오디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를 등장 시킨 방법 역시 그같은 소설적 구성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신화가 전해주는 교육적인 혹은 교훈적인 의미들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하여 놓치기 쉽다. 하지만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게 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하기만 한 신화를 쉬운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어내릴 수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강요적이지 않은 교육적 효과를 얻 어내고 있다. 그리고 신들과 영웅들이 엉켜 빚어낸 드라마는 지금의 우리를 너무 도 잘 보여주기에 굳이 토를 달 필요도 없는 자성의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교 훈적이다. 그러한 여러 가지 예들 중에서, 황천에 내려갔던 오디세우스의 한마디 는 현재의 삶에 대한 건강하고도 지혜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죽은 자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자들의 자질구레한 근심을 듣는 일이 낫다"는 오디세우스의 이 말은 또 한,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암시인 듯하여 더욱 의미롭게 들려온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무겁고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 는 책은 절대 아니다. 흔히 빠져들기 쉬운 이분법적 잣대에서 벗어나, 이 책이 제공하는 '재미있고 즐거운' 신들의 이야기에 끄려 좀더 깊이 있는 신화의 세계 로 빠져들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길 바라며, 나아가서 서양 문화의 뿌리 한 가 닥을 느껴볼 수 있는 쉽고 충실한 안내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1996년 12월 윤정임
1부 올림포스쪽으로
1. 제우스가 세력을 잡다
3천여 년 전의 땅 위에는 수많은 신들이 모여 살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일에 끼여들었다 신들은 여러 면에서 우리들 보통 인간과 닳은 점이 많았 다. 거만하고, 욕심 많고,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치사하고. 거짓말도 하고, 원한도 품고, 질투도 하며, 경박하고, 변덕스럽고 난폭했다. 때로는 좋은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또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서로 싸우고 속 이며, 복수와 용서를 일삼았다. 이 모든 것은 인간과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신들은 매우 독보적인 2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신들은 결코 늙거 나 죽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신들을 '불사 신' 이라고 부른다. 이 놀라운 특성은 신들만이 구할 수 있는 2가지 양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한 데서 유래 했다. 그것은 식물을 원료로 도수 높은 알코올을 빚어 만든 넥타르라는 술 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맛이 어떤지도 확실히 모르지만, 전문 가들에 의하면 달큰한 오트밀과 비슷했을 것이라는 암브로시아라는 음식이 다. 또 하나의 특징은 원할 때면 언제나 모습을 바꾸어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들은 남자나 여자, 동물이나 사물로도 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인간을 속이거나 골탕먹이려 할 때 이러한 능력을 사용하곤 했다. 다행히 그들이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3가지 있다. 첫째, 신들은 아무리 더워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 둘째, 해를 바라보고 있어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다. 셋째, 신들의 몸은 그림자가 생 기지 않으며 물이나 거울에도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신들이 인간의 일에 끼여들어 했던 역할을 고려해볼 때, 우선 신들의 역사에 대해 어느 만큼 할애하지 않고서는 영웅들의 모험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불멸의 신들이긴 하지만 그들 역시 어떤 역사 파란만장하기조차 한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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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