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선명여자고등학교는 전국 여고부 배구에서 '트로이카'의 한 축을 10년 넘게 맡고 있다. 그만큼 이 학교 출신 프로 여자배구선수도 숱하다. 그런데 이 학교 출신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생 시절 학교폭력에 연루됐다는 폭로가 올해 초 있었고, 선수 자격이 박탈됐다. 이후 선수 국제 이적 관련 논란 끝에 그리스로 떠났다. #지난 10월 경북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경남장애인체육회 소속 한 간부가 숙소 인근에서 술에 취해 부하 직원에게 폭언·고함 등 추태를 부리고 폭행했다. 그는 징계를 받고 체육회를 떠났다. 이 간부는 장애인이었고, 부하 직원들은 비장애인이었다. '내가 장애인이다. 뭐 어쩔건데?'라는 태도에 어떻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 '인권 감수성'이 문제였다. #도쿄올림픽 직전 국가대표 사격팀 선수 간 갑질 논란이 폭로됐다. 경남 출신 총감독의 아들과 며느리가 연루된 사건이었고, 결국 며느리는 영구 자격 정지, 아들은 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총감독은 자리를 고수했다. #지난해 말, 양산에서 두 고교 팀이 친선경기를 했다. 이 자리에서 한 팀 감독이 상대팀 선수들에게 쌍욕 등 폭언을 했다가 말썽이 됐다. 이 감독은 상대팀 선수와 부모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무마됐다. #2년 전쯤, 경남 한 여자실업팀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경찰이나 경남체육회는 혹시나 팀 내 갑질이 있었는지 바짝 긴장했다. 결론은 성적과 실력에 대한 비관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쇼트트랙 심석희에 대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2020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팀킴'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적 영웅이 된 컬링 선수단에 대한 갑질, 철인3종 최숙현에 대한 지도자의 폭행 등등. 최근 스포츠계에 성폭행·폭행·갑질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체조 여서정, 배구 김연경, 양궁 안산, 유도 안창림 ……. 코로나19로 1년 늦춰 치른 2020 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성적과 관계없이 국민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메달을 따든 따지 못하든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에 대한 격려였다. 국가대표 선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바뀌고 있는 방증이다. ▲ 체육시민연대, 인권과 스포츠 등 스포츠·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해 7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11일 대법원은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에게 각각 징역 7년,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얼핏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위 사례에서 관통되는 것은 '엘리트주의'라는 게 체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인식이다. 정부와 체육계는 잇따르는 체육계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하게 정책을 검토하고 적용하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근본을 치유하지 않고는 기존 관행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엘리트 체육계에 팽배한 반인권적인 문화를 척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체육계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체육계에서는 '그래 도쿄올림픽에서 제대로 메달 획득 못하는 꼴을 봐야 정신 차리지'라고 대놓고 기존 시스템을 옹호했다. 그러나 앞선 사례에서 봤듯이 국민은 메달 색깔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기량을 세계 무대에서 뽐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주목했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국제대회에서의 메달에 국민이 반응할 것이라고 봤던 체육계의 완패였다. 반면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은 입이 뾰로통해졌다. 그야말로 '한 끗' 차이로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지만, 10년 넘게 올림픽 대표를 꿈꾸며 달려왔던 선수들로서는 '금메달도 못 딴 주제에 무슨 승리자 퍼포먼스냐'는 아니꼬움일 수도 있는 반응이었다. 이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 운동선수로 성장해온 선수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목표다. 군 면제와 체육연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인기 종목 선수는 올림픽 금메달로 종목 인기를 끌어올려 종사자들에게 '엄지 척'을 받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금메달'이 목표이기에 불합리나 불이익이 주어지더라도 목표에 근접할 기회가 있다고 보이면 참을 힘이 생긴다. 결국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되면서 반인권적인 토양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특히 위의 사격 국가대표 사례는 시사점이 많다. 총감독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며 사퇴를 거부했고, 피해자 측에서도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피해자 역시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뛸 만큼 실력을 갖췄기에 이후 지도자로 사격계에서 활동하는 데 약점이 될까 봐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지우는데 주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신석민 경남대 교수는 "체육계는 외부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며 "체육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 아직 스포츠 관련 특별법은 물론 기본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체육계에서는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 위계에 의한 성추행·성폭행, 체벌, 불공정 경기(승부조작), 도박 등 많은 문제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데도 이를 일관된 잣대로 다룰 근거가 없다. 법조계에서는 체육 시스템을 모르고 체육계에서는 법은 모르고 내부에서 형성돼온 관습에 따르다 보니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외부에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하게 벌어지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반인권적인 문화 척결 노력에도 성폭행·폭력·갑질 논란 잇따라 오랜 엘리트체육 중심 문화에 성적지상주의 뿌리 깊게 박혀 경기 내외 인권 문제 포괄하는 제도적 기틀 마련 필요성 제기 이를 두고 한 체육 지도자는 "엘리트 체육에 집중하느냐 생활체육에 집중하느냐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왔다"며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이 14억 인구 중국에 크게 밀리지 않는 국제대회 성적을 거뒀던 것은 엘리트 체육에 국가적으로 집중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육계 종사자들은 "공부를 해 판사·검사·의사가 되는 게 운동을 해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는 것보다 쉽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실제 선수 출신 ㄱ 씨는 K리그 한 팀에 선발됐지만 1년 동안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1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곧바로 타이로 넘어가 축구클럽을 운영하면서 K리그 최고 연봉 선수에 못지않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K리그 출신'이라는 간판이 그의 성공 비결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해서는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고, 그래도 생기는 사고는 일관된 규정에 따라 해결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신 교수는 "1982년 권투 김득구 선수가 경기 중 얻은 부상으로 결국 숨지는 일이 있었다"라며 "근래 제기되는 인권 문제가 주로 지도자 등이 선수에게 가하는 반인권·비인권적인 행태인 데 비해, 정작 선수가 경기 중에 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인권 문제에 사회적 관심은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투기 종목은 경기 중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보완할 각서, 보상에 대한 보험 등 체계적이고 일관된 근거도 없다는 지적이다. 내년 새로 당선될 대통령은 기존 '국민체육진흥법'과는 별개로 전문 체육인에 대한 각종 규제·권장 등을 담은 체육기본법과 체육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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