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횃불트리니티신대원 김현주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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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 본회퍼의 교회와 정부
앞선 세 번의 글에서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45)의 신학사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그 관계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조명했다. 이번 호부터는 본회퍼의 신학사상에 관한 몇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회퍼의 신학사상은 총 17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알려지기 이전부터 몇몇 문구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회자되곤 했다. 이번 호에서는 본회퍼가 나치에 대항한 문구로 널리 알려진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정치와 선동 그리고 구호: 2016년 미국 대선과 본회퍼 끌어오기
얼마 전 치러진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구호와 선동의 언어가 넘쳐났다. 자극적이고 뇌리에 남는 구호를 생각해내는 것이 승리를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여겨졌다. 설령 자극적인 문구나 공약이 표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선동적 문구는 어떤 후보를 좋은 면으로든 나쁜 면으로든 우리 뇌리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그러하기에 뇌리에 박히는 짧은 문구는 건실한 공약보다 더 효과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교묘히 파고드는 선동적 문구는 다른 나라의 정치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갑작스레 디트리히 본회퍼가 소환되어 널리 회자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세기적 대결을 펼친 이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20세기 독일 신학자 본회퍼를 끌어들였으며, 양 진영의 논객들은 상대 당 후보자를 히틀러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일례로 에릭 메탁사스(Eric Metaxas)는 2016년 10월 12일 「월스트리트저널」(TheWall Street Journal)에 “그리스도인은 트럼프에게 표를 주어야 하는가: 트럼프의 행동은 끔찍하지만 클린턴은 개탄할 만한 걸림돌이 한가득이다”라는 글을 기고하며 트럼프 지지를 호소했다.
나치를 반대한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시대 대부분을 그리스도인들이 혐오하는 일을 했다. 그는 악명 높게도 자기 정부의 수반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 그는 그 일에 공포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남아 있으면 수백만 명에 대한 살인이 계속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1
대선을 한 달 앞둔 중요한 시기에 ‘테이프 유출 스캔들’(이른바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 사건)2이 터져 트럼프가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메탁사스는 트럼프의 부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문제가 있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남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클린턴 정부라는 더 심각한 문제를 용인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3 이에 응수하여 미국의 유명한 진보 저널리스트 찰스 블로(Charles M. Blow)는 “트럼프는 히틀러가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는 거짓말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 히틀러와 유사하다고 공격했다.4
분명 양 진영 다 본회퍼의 신학적 권위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어느 편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본회퍼라는 신학자가 미국을 비롯한 현대 정치에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소비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본회퍼의 정치화
본회퍼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미국의 대중적 작가이자 라디오 쇼 호스트인 에릭 메탁사스의 이름이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는 신학자가 아닌 기자이자 작가로 2010년 본회퍼의 전기를 써서 유명해졌다. 지난 호에서 다루었듯이 본회퍼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본회퍼 사상의 수호자였던 에버하르트 베트게(Eberhard Bethge)가 쓴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Dietrich Bonhoeffer ABiography-Theologian Christian Man for His times)는 본회퍼 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전기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메탁사스가 쓴 본회퍼 전기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Dietrich Bonhoeffer Pastor Martyr ProphetSpy)는 영어권 그리스도인들(특히 미국인들)에게 1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11년 「뉴욕타임스」 전자책 논픽션 부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5 본회퍼의 삶을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본 베트게가 친구이자 신학자로서 본회퍼를 조명했다면, 메탁사스는 미국식 복음주의 관점으로 본회퍼의 삶과 사상을 해석했다.
하지만 메탁사스의 책에 대한 본회퍼 학자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미국의 원로 본회퍼 학자인 클리포드 그린(Clifford Green)은 메탁사스가 본회퍼를 미국식 보수주의 그리스도인으로 변형시켰다고 지적하며 서평의 제목을 “본회퍼 납치하기”(Hijacking Bonhoeffer)라고 적었다.6 그린을 비롯한 본회퍼 학자들은 메탁사스의 본회퍼 전기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특히 본회퍼 신학에 대해 이해가 떨어지는 비전문적 서술, 본회퍼를 미국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자처럼 묘사한 점 등을 비판했다.7 아이러니하게도 메탁사스의 전기는 본회퍼의 삶과 신학에 대한 미국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더 나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보수 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소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진보 진영의 정치 평론가들 역시 본회퍼를 그들의 정치 선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8
본회퍼 신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본회퍼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면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본회퍼의 신학과 사상은 특정 교단이나 그룹에 묶어둘 수 없는 다양한 지평이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본회퍼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본회퍼 현상’(Bonhoeffer Phenomenon)을 한층 더 깊이 파헤쳐보면 각 정치 진영에서는 대부분 본회퍼의 신학과 삶이 지닌 진정성을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본회퍼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자기 입맛에 맞게 본회퍼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회퍼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소환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한 신학사상이 어떠한 맥락에서 펼쳐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와 유대인 문제
본회퍼에 대한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어권을 넘어 영미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나치 정권에 항거하던 본회퍼는 독일의 패전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1945년 4월 9일) 본회퍼의 드라마틱한 삶으로 인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과 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본회퍼의 신학사상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1949년 영어권에서 Nachfolge(제자도)라는 책을 The Cost of Discipleship라는 제목으로 번역하면서부터이다.(한국에서는 『나를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또한 본회퍼가 알려진 계기 중 하나는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dem Rad selbst in die Speichen zu fallen, 영어 번역은 seize the wheel itself)라는 말로 번역되는 그의 저작 중 한 구절을 통해서이다.9 사실 이 문구의 출처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며, 그 배경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정치적 논란의 근원이 되는 이 문구에 대한 맥락과 의미를 살펴본다면 독자들은 본회퍼의 이름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동원하고자 하는 선동꾼들의 속셈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나치 정권은 1933년 4월 7일 아리안 조항(Aryan Paragraph)을 공표했다. 국가의 법 시스템을 통해 합법적으로 인종 차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조항이 통과되면서 교회 내에서는 세례받은 유대인마저 배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10 본회퍼는 이에 대해 주저 없이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그는 1933년 6월 Der Vormarsch(전진)라는 잡지에 “유대인 문제 앞에서의 교회”(Die Kirche vor der Judenfrage)라는 글을 기고했다.11 이 글에서 본회퍼는 유대인들로 대표되는 타인종 문제에 관한 국가의 법규제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교회의 역할을 설명한다.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방안이 있다. 첫째는… 국가의 행동이 합법적인 국가의 특징인지 질문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어떠한 사회 질서의 피해자에게도 해야 할 무조건적인 의무가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교회가 자유롭게 자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방식이다. 법이 변화하는 시기에 교회는 이 두 의무를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바퀴 아래에 있는 피해자의 상처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교회의 직접적인 정치 행동이 될 것이다. 이는 국가가 법과 질서를 창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교회가 인식하고, 국가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과도하거나 과소한 법과 질서를 제정했다고 인지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유대인 문제는 현재 시급히 대응해야 할 첫 번째와 두 번째 가능성을 교회에 제시한다. 교회의 즉각적인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은 매번 ‘개신교 공의회’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12
위 글에서 본회퍼는 독일 국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리안 혈통 이외의 시민들을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주요한 직업에서 배제하는 정책의 부당함에 맞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국가가 정당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피해자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가리지 않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국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경우 교회협의회를 통해서 국가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회퍼의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문구는 히틀러 정권의 반인륜적인 인종 혐오 정책의 맥락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랑의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는 인종 혐오 정책이 발효되어 교회로 하여금 특정 집단을 배제하도록 국가가 강요할 때 교회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외침은 오늘날 정치에서 혐오의 프레임을 씌워 상대를 흠집내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분명 본회퍼는 피해자의 상처를 돌보는 것이 교회의 일차적인 임무이고, 매우 이례적인 경우(extra-ordinary circumstances)에 한해 피해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타적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모의에 얼마나 깊이 가담했는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한다. 특히 베트게는 본회퍼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과대평가하거나 지나치게 미화하여 ‘성자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실제로 암살 모의 사건에서 그의 역할이 매우 작았음을 지적했다.13 하지만 본회퍼는 신학자로서 누구보다 먼저 나치 정권의 위험성을 통찰했고 “유대인 문제 앞에서의 교회” 같은 글을 통해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본회퍼 독자들은 흔히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말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본회퍼의 히틀러 암살 음모 가담을 떠올린다. 하지만 1933년 나치 정권이 유대인 배제 법령을 제정하여 아리안 우월 정책을 시작한 것이 그 문구의 직접적 배경이다.
본회퍼가 우려한 바와 같이 타자공동체에 대한 나치 정권의 혐오는 이후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본회퍼가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해야 할 때를 예견한 듯 나치 정권은 집단적 오만에 사로잡혀 타자공동체에 대한 혐오의 광기를 표출했다. 바로 이때가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시기이다. 본회퍼가 그 글과 문구를 쓰고 나서 몇 년이 지나 본격적으로 교회의 투쟁이 시작되고 난 뒤의 일이다.
이 문구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아리안 조항을 통해 보자면, 교회의 역할은 국가가 정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국가의 정책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이며, 완벽할 수 없는 국가의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예외적 상황에서만 교회가 직접적으로 정치 행위를 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때 교회협의회를 통해서 원칙적 결사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본회퍼의 순간’(Bonhoeffer moment)이라고 일컬어지는 교회의 직접적 정치 행위에 대한 조건은 현재 많은 학자들의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 vs. 미친 운전자 이야기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표현보다 더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말은 아마도 ‘미친 운전자’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본회퍼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본회퍼가 테겔 형무소에 있던 시절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인 라트미랄의 구전에서 유래했다. 라트미랄은 본회퍼가 죽은 지 약 1년 후인 1946년 3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며 본회퍼를 인용했다.
만약 쿠담거리에서 한 미친 사람이 인도를 넘어 차를 운전한다면, 나는 목사로서 죽은 자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기만 한다거나 희생자들과 관련된 이들을 위로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차 위로 뛰어올라 운전대에서 그 운전자를 끌어내려야 하지 않을까요?14
라트미랄이 전한 미친 운전자 이야기는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문구보다 더 자극적이고 단순화된 표현이다. 이 이야기는 정치권에서 미친 운전자로 추측되는 정치적 상대를 즉각 끌어내리자는 급진적 구호로 남용되고 있다. 맥락에 대한 이해나 설명 없이 ‘미친 운전자’와 이를 제지하는 용기 있는 ‘시민’의 이야기로 단순화하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회퍼를 정치 구호로 인용하는 선거판에서 미친 운전자가 누구인지, 용기 있는 선량한 시민은 누구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본회퍼가 의도한 교회의 이타적 자기희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상대를 악마화하여 헐뜯고 끌어내리기 위한 선동의 구호만 난무할 뿐이다. 이는 마치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질타했듯이 복음의 참 의미, 곧 십자가의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는 사라지고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구호로 남은 ‘값싼 은혜’(cheap grace)만 넘쳐나던 당시 독일 교회의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933년 유대인 문제를 두고 쓴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표현은 국가에 대해 교회가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할 행동으로, 국가가 자기 의무를 명백하게 저버릴 때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또한 본회퍼는 이러한 결정마저도 먼저 교회공동체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결국 본회퍼에 따르면 국가의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바퀴를 저지하라는 표현은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이웃의 안녕을 돌보는 교회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의 이타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을 쓴 본회퍼는 수년 뒤 히틀러 암살을 위한 방첩단의 일원이 된다. 본회퍼가 비록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고 베트게가 명시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목사로서 이러한 일에 가담한 행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본회퍼는 『윤리학』(Ethics)에서 자신의 행위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거기에서 그는 교회공동체가 교회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개인으로서 오직 ‘죄책을 동반한 책임 행위’(guilt including responsible action)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15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행위는 두 가지를 내포한다. 하나는 본회퍼 자신이 결코 무죄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공동체 전체가 타자공동체의 피 흘림 또는 생명 잃음을 방관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죄책을 짊어지고서라도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책임 행위를 실천하였다는 점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더라도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했듯이(롬 9:3), 본회퍼 역시 죄인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 책임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단순화의 오류를 극복하라: 자유로 가는 길
본회퍼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고 난 뒤 〈자유로 가는 길의 정거장들〉(Stations on the Road to Freedom)이라는 시에서 자유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표현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고 도전해야 한다. 가능성에 머물지 말고 실제를 용감히 붙잡아야 한다. 생각으로의 도피가 아닌 행동에서만 자유가 있다. 두려움으로 인한 망설임에서 벗어나 사건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라.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너의 믿음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자유가 네 정신을 기쁘게 감싸 안을 것이다.16
본회퍼는 올바른 일을 위해 그리고 행동하는 자유를 위해 본회퍼 자신을 소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선동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삭제한 채 본회퍼의 말을 과장하고 구호만으로 단순화한다. 본회퍼는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가 그 맥락과 신학의 풍부함이 삭제된 채 ‘오직 믿음으로’라는 구호로 단순화될 때 ‘값비싼 은혜’는 사라지고 ‘값싼 은혜’만 남아 사람들을 거짓 믿음의 길로 인도한다고 질타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회퍼 당시 교회와 유대인 문제라는 배경과 맥락은 사라진 채 ‘미친 운전자’ 이야기로만 단순화될 때 타자공동체에 대한 기독교의 이타적 사랑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본회퍼 사상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은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라는 단순한 구호 아래 증오의 표적인 ‘미친 운전자’를 색출하는 일에만 골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화해 정신에서는 멀어져 버린 채 말이다.(다음 호에서는 1943-45년 약 2년의 수감 기간에 본회퍼가 쓴 옥중 서신을 통해 본회퍼 신학의 유산과 그 미래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주(註)
1 Eric Metaxas, “Should Christians Vote for Trump?: Trump’s behavior is odious, but Clinton has a deplorable basketful of deal breakers,” The Wall Street Journal, 2016년 10월 12일.(https://on.wsj.com/4a1XTTu)
2 2005년 ‘액세스 할리우드’(Access Hollywood)라는 미국의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한 트럼프가 호스트와 나눈 대화 중 여성에 대한 매우 혐오스러운 발언이 담긴 테이프가 유출된 사건이다.
3 ‘수백만 명에 대한 살인’이라는 표현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지칭하는 동시에 낙태를 반대하는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4 Charles M. Blow, “Trump Isn’t Hitler. But the Lying…,” The New York Times, 2017년 10월 19일.(https://nyti.ms/4dkSnOz)
5 Stephen Haynes, “Readings and Receptions,” The Oxford Handbook of Dietrich Bonhoeffer, eds., Michael Mawson and Philip G. Ziegl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480.
6 Clifford Green, “Hijacking Bonhoeffer,” Christian Century (Oct., 2010): 34-35.
7 낸시 더프(Nancy Duff)는 메탁사스의 본회퍼 전기가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Nancy Duff, “Editor’s Choice,” Theology Today (Jan., 2013): 533.
8 본회퍼와 미국 정치에 관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Stephen Haynes, “Readings and Receptions,” The Oxford Handbook of Dietrich Bonhoeffer, eds. Michael Mawson and Philip G. Ziegl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9 DBWE 12, 361.(DBWE 12는 영문 본회퍼 전집 중 12번째 책 Berlin을 의미한다.)
10 본회퍼의 쌍둥이 여동생 자비네(Sabine)는 유대인 혈통의 남편과 결혼했다.
11 DBWE 12, 361.
12 DBWE 12, 365.
13 Victoria J. Barnett, “Bonhoeffer and the Conspiracy,” Oxford Handbook of Die-trich Bonhoeffer, 65.
14 Gaetano Latmiral, “Brief an G. Leibhoz vom 6. März 1946,” in DietrichBonhoeffer Jahrubuch 1 (Gütersloh, 2003), 30. 김성호, 『디트리히 본회퍼의 타자를 위한 교회』(동연, 2017), 349에서 재인용(번역을 수정함).
15 DBWE 6, 80.(DBWE 6은 영문 본회퍼 전집 중 6번째 책 Ethics를 의미한다.)
16 DBWE 8, 513.(DBWE 8은 영문 본회퍼 전집 중 8번째 책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을 의미한다.)
김현주|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으며(Th.M.),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에서 본회퍼의 죄론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Bearing Sin as Church Community: Bonhoeffer’s Hamartiology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