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김 성 문
집에 들어오니 불빛이 환한 거실 바닥에 아내가 신문지를 깔고 반들거리는 가지와 싱싱한 오이 및 처음 본 녹색 채소를 정렬시켜 두었다. 깜짝 놀라서 물으니,
“봄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동생의 텃밭에 심어둔 채소가 보배를 선물했다.”고 한다. 열 평 정도의 크기를 할애받아서 매주 한 번 정도 처남과 가서 가꾸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채소 농사가 잘못될까 봐 이야기를 지금껏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나 처남은 채소 농사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가꾸었는지 열정에 호감이 간다.
나는 어릴 때 금호강변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채소 농사가 아기 돌보듯 잔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일 삼아 가꾼 채소로 이렇게 신선한 자연식품을 맛볼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 본 채소는 공심채라 하는데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고 잎은 꼭 시금치같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닝글로리라 한다. 줄기 속이 대나무처럼 비어 있어서 공심채란 이름을 얻었다. 동남아 국가나 중국에서는 국민 채소로 흔하게 먹는다. 처음 보는 채소라 맛이 어떤지 실제로 볶음을 해 보았다.
먼저 태국 된장, 피쉬 소스, 굴 소스 등 입맛에 맞게 양념을 준비한다. 잘 다듬고 씻은 공심채를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으깬 마늘과 고추를 볶는다. 공심채 대를 먼저 넣어 숨을 죽이고, 양념과 잎을 넣어 볶으면 야들야들한 공심채 볶음이 완성된다. 나는 단맛을 좋아하지 않아 설탕을 넣지 않으나 설탕을 조금 넣어도 된다.
볶은 공심채의 식감은 매우 부드럽다. 보기와는 다르게 싱그러운 맛이 있다. 싱싱한 미나리를 씹을 때처럼 아삭아삭하는 느낌이다. 아내는 공심채에 비타민 A, C와 다양한 무기질이 풍부하여 체내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켜 준다고 많이 먹기를 권한다. 신진대사에 좋다니 관심이 더 간다. 그 외에도 빈혈 예방, 피부 건강, 뼈 건강, 장 건강에도 좋고, 피톤치드를 이루는 테르펜(terpene)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몸속 해로운 균과 염증을 억제한다니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 아무리 좋다 해도 체질에 따라 효능이 다르다. 공심채는 차가운 성질이 있으므로 몸이 찬 사람은 설사가 있을 수 있고, 알레르기 반응도 있다.
건강에 좋은 채소를 가꾼다니 같이 가 보았다. 텃밭에는 여러 종류의 채소가 자라고 있다. 가지, 오이, 호박, 방울토마토, 공심채, 고추, 고구마, 땅콩이 잡초 속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언뜻 보기에 채소 농사인지 잡초 농사인지 모를 정도로 잡초도 제 잘난 듯 자라고 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밭에 땅콩 농사를 지었다. 빨강 땅콩인데 밭은 물 빠짐이 좋은 사질토였다. 한 알씩 파종한 씨앗의 줄기가 뻗어 나오고 꽃이 피면 그곳에서 가느다란 줄기가 땅으로 내려가 땅콩이 열린다. 땅속에서 잘 자라도록 주위에 있는 흙으로 북돋아 준 기억이 난다. 땅콩꽃이 지는 자리에 씨방이 내려 땅콩이 열리므로 흙을 북돋아 준다는 것을 아버지한테서 배웠다.
텃밭에 있는 땅콩은 꽃이 피고 있는데 시든 것도 있고 지금 막 피려고 하는 것도 있다. 한여름이라 잡초와 땅콩이 같이 자라고 있어 우선 잡초를 제거하고 삽으로 흙을 푹 떠서 북돋아 주기를 하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그래도 즐겁다.
어릴 때 땅콩 수확은 재미있었다. 땅콩 한 포기를 쇠스랑으로 움푹 떠서 들어 올리면 하얀 색깔의 땅콩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누에고치가 주렁주렁 달린 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덜 여문 땅콩은 알이 없고 물만 채워져 있거나 알이 콩알만 하다. 알이 통통한 땅콩은 껍질을 까고 생것으로 먹었다. 비린내와 고소한 맛이 섞여 야릇한 그 맛이 지금도 남아 있다.
땅콩은 땅이 비옥해야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는다. 텃밭 환경을 보니 땅콩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자랐을 때 포기와 포기 사이에 복합 비료를 숟갈에 떠서 조금씩 넣어준 기억도 난다. 아내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냥 심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땅콩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약 5개월 정도 자라면 땅콩이 열린다. 늦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하면 된다. 주렁주렁 달릴 땅콩 모습이 기대된다.
땅콩도 심장병, 동맥경화, 당뇨, 두뇌 발달 등에 효능이 있으나,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고, 습기가 많으면 독성물질이 생성된다니 보관을 잘해야 한다.
텃밭은 자연 땅에도 있고, 집 베란다에도 있다. 베란다 텃밭에는 상추, 방울토마토, 자청파가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다. 토마토와 자청파의 은은한 향기가 아침 공기를 채울 때가 있다. 채소의 향기 중에는 들깨 향이나 토마토의 향기가 조금 진하면서 자극적이다. 왠지 모르게 그 향기가 기분을 전환해 줄 때가 있다. 갑자기 깻잎에 삼겹살을 얹어 소주 한 잔 생각이 난다. 들깨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으로 애용하고 있다.
채소는 애써 농사지어 수확의 희열감도 있겠지만, 본인이 손수 지어 수확한 열매를 선물하는 기분도 클 것 같다. 아내는 채소 가꾸는 기술은 부족하지만, 수확한 채소를 친구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엔도르핀이 생긴다고 한다. 남이 해 준 음식이나 식품은 자기의 정성이 안 들어가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손수 만들거나 가꿀 때 애착심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더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아내는 텃밭에 갔다 오는 날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 속임이 없다. 채소는 가꾸는 성의에 따라 성과를 제공해 준다.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와 오이를 한 봉지씩 땄다. 수확의 즐거움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있다.
첫댓글 말이 텃밭이지 실제 그것도 농사라고 얼마나 힘이 들텐데 사모님도 대단하시네요.
저는 밭구경도 안하고 자라서 그런지 들만 봐도 기분이 좋은 사람입니다.
농사는 못하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요. 텃밭농사처럼 글농사도 잘 되시길 빌어요.
글농사나 밭농사가 비슷한 것 같아요.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려요. ^^
텃밭을 통한 부부애가 너무 보기 좋습니다. 날로 글 실력도 좋아지시네요.
저도 텃밭에 채소 심어서 수확하여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싫다 하여 결국 포기하고 말았어요. 앞으로도 재밌는 텃밭 얘기 많이 해주세요.ㅎ
이정경 선생님!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셔요.♡
회장님!
도시에서 자라서 경험하지 못한 농사를 소재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원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