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한 도시가 이렇게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바르셀로나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드는지 물어 보면 뭐라고 할까? 너무 축구를 잘해서 사람 같지도 않은 메시의 바르셀로나 축구클럽이 있는 도시? 파블로 피카소와 조안 미로를 키운 곳?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가우디의 성 가족 성당이 있는 도시? 사실 이것만 해도 숨이 차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거 외에도 바다를 낀 아름다운 항구도시, 아프리카와 면한 지중해 도시이면서 평균 온도가 여름 23도 겨울 10도를 넘지 않는 도시, 스페인 제2의 도시, 주민 평균 소득이 35,000불이고 스페인 GNP의 20%를 생산하는 도시, 파리, 런던, 로마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오는 도시.
사실 바르셀로나는 우리 부산과 자매도시이기도 하다.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정도면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가봐야 할 번한 도시가 아닌가?
그래도 우리에게 바르셀로나는 1992년 하계 올림픽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잘 안 알려진 도시였다. 사실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로니아 지방은 말 만 스페인이지 스페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뿐만이 아니라 언어 마저 마드리드의 스페인어와 다르다. 하긴 유럽 나라들의 이런 현상은 큰 나라 스페인뿐만은 아니다. 아주 작은 나라 스위스도 독어, 불어, 이태리어를 쓰고 그 보다 더 작은 벨지움도 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쓰는 식이다. 카탈로니아는 지금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크고 정기적으로 이런 운동이 일어나 투표를 하곤 한다.
최근에도 바르셀로나 시장이 시작해서 투표를 하다가 자신이 실각한 일도 있다.
역사적으로 마드리드로부터 피해를 많이 받아 반감이 보통이 아니다. 카탈로니아 사람들에게 ‘너 스페인 사람이냐’고 묻다가는 봉변을 당할 가능성 마저 있다. 자신은 스페니쉬가 아니고 카탈로니아 사람이라는 말이다.
각 나라마다 큰 도시들의 라이벌 성향은 다 있다. 예를 들면 북경과 상해, 도쿄와 교토, 모스크바와 상빼쩨르부르그가 그런 예다. 축구만 따져도 바르셀로나 축구 클럽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쟁은 정말 피를 튀기지만 않지 거의 전쟁이라고 봐야 할 정도이다. 이 두 클럽이 워낙 세다 보니 다른 스페인 축구 클럽은 존재감을 못 드러내고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것이 스페인 축구클럽의 제일 큰 약점이라고 할 정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이고 두 번째가 바르셀로나 축구클럽이다. 22위의 아슬레틱 마드리드가 겨우 그 다음 스페인 축구클럽일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름에는 북유럽을, 겨울에는 남유럽을 택하는 것이 좋다.
날씨로 봐도 여름의 남부유럽은 너무 덥다. 그리고 북부와 중부의 유럽인들이 몰려 와 너무 복잡하고 물가도 비싸다.
굳이 해변에서 살을 태울 것이 아니라면 주인들이 남유럽으로 휴가 가서 조용해 대접받는 북유럽을 가야 한다.
겨울에는 유럽인들이 아무도 오지 않아 조용하고 그래서 물가도 싼 남유럽을 다니면 좋다. 포르투갈, 이태리 남부로 가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에 반바지 입고 다녀도 될 정도이다.
그런 도시 중의 하나가 바르셀로나이다. 겨울이 아닌 시즌에 바르셀로나를 가면 피카소 뮤지엄, 가우디의 카사밀라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 갈려면 한 시간 심지어는 두 시간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겨울에 가면 그냥 들어 갈 수 있다.
진짜 스페인 여성과 같은 바르셀로나
이왕 유럽 문화 비교가 나온 김에 내쳐서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여인에 비교해 얘기를 좀 해 보자. 파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데 감히 의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파리는 건축, 문화, 예술 등 완벽한 도시이나 너무 많이 알려져 미인으로 비교하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미인대회의 미녀 같다. 파리 다음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도시는 러시아의 상빼쩨르부르그이다.
정말 건축, 예술, 문화 어느 한 면 빠지지 않으면서 너무 크기 않고 고졸(古拙)의 미를 갖춘 정말 러시아 미인 같은 도시다.
결점을 말한다면 너무 완벽한 아름다움이나 조금 인공적인 조각 같은 미 때문에 오래 보다 보면 실증이 나는 러시아 여인 같은 도시이다.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시작되어 도시 건축물 어디 하나 허술한 곳이 없어서이다.
그 다음의 도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 내세우지 않는 겸양의 수줍음을 갖춘 도시가 체코의 프라하이다.
우리 한국의 여인 같은 도시이다. 그 다음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이다.
프라하가 수줍음의 미를 가진 동양의 미인이라면 여기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들어내는 서양미인 같은 도시다. 도나우 강 양안에 펼쳐져 있는 부다페스트도 너무 크지 않으면서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미를 갖추고 있으나 왠지 너무 뻐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도시이다.
런던은 부잣집 맏며느리 같이 아름답다기 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언제 봐도 푸근한 여인, 베니스는 너무 예쁘고 귀여워 꽉 깨물어 주고 싶은 애기 같은 도시.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럼 바르셀로나는 어떤 미인인가? 바르셀로나는 정말 스페인 여인 같다. 아주 진하게 화장을 하고 머리에 꽃을 꽂은 플라맹고를 열정적으로 추는 스페인 여인 같은 도시가 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 어디에서도 독일 도시 뮌헨, 뒤셀도르프 같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비즈니스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축제나 휴가 도시 같지만은 않은 그런 묘한 경계선상의 도시 같은 느낌이다. 바로 스페인 여인 같은 모습이다. 본토 유럽여인의 모습과 오래 지배 받아 피 속에 완전히 녹아있을 듯한 중동여인들의 모습도 보이는 묘한 모습의 여인.
아주 정열적이면서도 서구 유럽여인들의 거만함과는 다른 그런 모습의 여인. 그것이 바르셀로나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음모론?
바르셀로나는 역사적으로 저항의 도시였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어떻게 보면 항상 침략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슬림 점령기간, 마드리드로부터의 지배, 스페인 시민전쟁 때 공화군 본부가 있던 곳. 이런 것만으로도 카탈로니아의 고난은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시민전쟁이 1939년 끝난 후 프랑코 총통이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라로니아 지방에서 카탈로니아 말을 금지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이후 각종 탄압과 차별은 역으로 카탈로니아 지방 사람들로 하여금 스페인 다른 지방 사람들과는 달리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들어 스페인 어느 지역보다 더 잘사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여파로 95%의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카탈로니아 말을 들으면 이해는 하나, 75%만 말하고 읽을 줄 아나, 실제 쓸 수 있는 사람은 47%에 불과하다. 슬픈 역사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도시로 시작되었으나 전설로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세웠다고도 하고 풀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알프스를 최초로 군사를 끌고 넘었다는 카르타고Carhage의 영웅 한니발의 아버지가 세운 도시라고도 한다.
바르셀로나가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문이다. 올림픽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도시 중에 가장 먼저 예를 드는 도시가 바르셀로나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숨은 일화가 있다.
바르셀로나가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무슬림 국가 사이에 올림픽 보이콧트 운동이 한 때 있었다. 그 이유는 무슬림이 700년간의 스페인 지배를 끝내고 철수 한 해가 1492년이고 철수지가 바르셀로나였다는 이유이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연합해서 무슬림이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한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무슬림 마지막 철수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는 음모론 때문이다. 얼마 가지 않아 잠잠해 지긴 했지만 한 때 해외토픽에 등장하던 뉴스였다.
민족적 감정, 투우 없애다
바르셀로나는 운동화 끈을 꽉 졸라 매고 걸어서 다녀도 될만한 크기이다. 워낙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어 지도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도 전혀 없다, 구시가지인 고딕지구만 골목이 좁고 좀 복잡하지 그 나머지 시가는 직선대로들로 사각형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보면 바둑판 같은 길로 연결되어 있어 어쩌다가 방향을 잃어도 곧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결국 관광객들이 가는 곳은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안톤 가우디, 파블로 피카소, 조안 미로와 관련된 건물이나 미술관들이다.
그런 관광지 사이 사이로 카탈루나 광장, 람블라스 거리, 스페인 광장, 몬주익 언덕 등이 있다. 예를 들면 스페인 광장을 중심으로 언덕 한 쪽에는 카탈로니아 미술관을 비롯해 조안 미로 미술관이 있다.
그 건너편에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 있는 식이다. 특히 몬주익 언덕에 위치한 카탈로니아 미술관 앞 분수에서는 6월부터 9월 사이 매주 목요일~일요일 사흘 밤에 걸쳐 분수 쇼를 한다.
이는 여행 중 아무리 피곤해도 한번은 봐야 할 구경거리이다.
그 뒤의 카탈로니아 미술관은 원래 스페인 왕의 왕궁이었으나 지금은 대단한 미술품 콜렉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일행이 스페인 광장을 갔을 때는 마라토너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마라토너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스페인 광장을 스피커에서 나오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선풍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카탈로니아 미술관 옆에 위치한 바르셀로나가 나은 또 하나의 자랑 조안 미로의 미술관이 있다. 보통 조안 미로의 작품은 조형디자인 판화 같은 작품만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이 미술관에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미로의 대형 작품들이 야외에 서 있다. 스페인 광장 한 편에 원래 투우장이다가 지금은 대형 쇼핑몰로 바뀐 원형경기장 뒤에도 미로의 거대한 작품이 서 있다.
카탈로니아에서는 투우가 금지 되었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투우가 동물학대라는 명분이지만 사실은 투우가 스페인 전통민속이지 카탈로니아 민속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내려 오던 풍습이 이런 민족적인 감정적인 이유로 중단되는 사례로는 더 이상 좋은 예가 없다.
바르셀로나의 혼, 가우디
바르셀로나의 건축물은 로마시대로부터 내려 오는 건물도 간혹 있지만 거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고딕과 아트 누보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다.
그 중에 우리가 가야 할 가우디의 건물들이 시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라시아 거리 코너에 있는 1910년에 지어진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주거용 아파트로 지은 건물이다.
가우디 특유의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외관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자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는 가우디는 자연에는 완벽한 직선은 없다는 주장으로 그가 설계한 건물에 직선이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쉽게 볼 수 있는 수평선이 직선 같기는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마저도 직선이 아니다.
파도가 쉴 새 없이 출렁이니 말이다.
가우디와는 반대로 자연을 싫어해 곡선과 초록색을 전혀 안 쓴 피에르 몬드리안 생각이 난다.
몬드리안이 영국에서 살 때 자신의 집 정원의 지방문화재 나무를 자르려고 구청에 신청을 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그는 자연을 싫어했다.
두 예술가가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카사밀라는 밀라 라는 부자 부인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지금은 카탈루나 카서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 은행의 로고도 조안 미로가 디자인 했다.
카탈로니아 지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저금통에 사람이 돈을 집어 넣고 있는 모습이 이 은행 표시이다. 일단 건물을 들어 가면 하늘로 뻥 뚫린 건물 중앙에 압도된다.
그 이유는 건물의 모든 방에 자연광이 들어 갈 수 있게 자연채광창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또 건물 주민들 사이의 소통을 유도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한층 건너서 설치 해 놓았다.
지금도 네 가구가 살고 있고 제일 위의 두 층만 공개를 한다. 카사밀라의 구경거리는 옥상이다. 중간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그 옆의 로봇 같은 모습의 굴뚝을 봐야 한다.
이 로봇 같은 모습의 기둥은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이라고도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벽에도 보이는 우주인 혹은 일본무사 같은 모습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서 석조물을 담당하고 있는 석수장은 일본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물석물 모양이 일본무사나 일본 만화 로봇처럼 생겼다고 평한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가우디의 도시다.
인도의 보도 블록도 가이디 작품, 그 옆의 벤치도 가우디 작품, 그것들을 밝히는 가로등도 가우디 작품이다. 과연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궁금하다.
2026년 완공예정, 130년 대공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는 석제, 나무, 철 등을 자신 건축의 재료로 많이 썼다. 아버지가 보일러 제작소를 운영해 어릴 때부터 철로 된 재료들을 많이 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 건설이 시작되어 130년 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상태의 속도라면 가우디 사망 100주년 되는 2026년에나 완공될 듯 하다는 예상이다.
원래는 2028년 완공 계획이라고 안내서에 나오지만 현대과학으로 컴퓨터 설계, 전동절삭기구, 자동차운송, 타워크레인 등이 가우디 당시에는 없던 현대 과학 기구이라 이들 덕분에 당겨 질 것이라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성당은 정부보조나 교계의 지원 없이 모두 관람객 입장수입과 개인들의 성금으로 지어지고 있다.
2009년 예산이 1,800만 유로였다고 한다. 31살의 가우디가 1883년 전임 설계자로부터 이어 받아 설계를 자기 특유의 고딕과 아트누보 스타일 디자인으로 완전히 바꾸어 74살로 죽은 1926년까지 정열을 쏟았다.
특히 죽기 10년 전부터는 이 성당 건설에만 전념했으나 그래도 겨우 1/4만 완공된 상태를 보고 죽었다. 설계 디자인은 바깥 첨탑이 18개이고 그 중 바깥 12개는 예수 12제자, 그 안의 4개는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선지자 4명 그리고 성모 마리아 탑, 정중간의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 탑을 합쳐 도합 18개이다.
완성이 되면 170미터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 건물이다. 또 이 높이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몬주익 정상보다 1미터가 낮다. 가우디는 신의 작품보다 인간의 작품이 더 높아서는 안 된다고 해서 그 높이로 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상당히 내성적이고 과묵해서 괴팍하다고 소문이 났으나 실제 가까운 친구들은 대단히 친절하고 자상했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다 극단의 채식주의자여서 정기적으로 단식을 했는데 이 때문에 건강을 많이 해쳤다.
가우디를 사람들은 ‘신의 건축가’라고 부르고 있고 성인추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설계도를 거의 그리지 않고 모델을 직접 만들어서 보고 그대로 건축을 진행했다.
젊을 때는 아주 핸섬했고 멋쟁이답게 치장하고 다녔으나 늙어서는 외관에 전혀 신경을 안 써 남루한 오래된 옷을 입고 다녀 거지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결국 그런 옷차림 때문에 전차에 받혀 중상을 당했는데 신분증도 없고 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 지금은 실내는 거의 완공이 되었고 덕분에 2010년 11월에 베네딕트 16세에 의해 축성미사를 거행했는데 성당 안에 6,500명, 밖에 5만 명이 참석을 했고 전 세계에서 100명의 주교, 300명 신부가 참석하는 대행사였다.
사실 그 동안 이 성당 건설 문제로 바르셀로나 시민들 사이에는 말이 많았다. 가우디의 디자인을 무시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로 설계하자는 의견부터 성당 지하로 고속철도가 지나가게 되어 있어 논란이 크게 되었었다. 완공이 되면 세계에서 유례없는 가장 독특한 고딕건물이 될 것이다.
피카소 박물관에 가야 할 이유
그 다음에 발길을 돌려야 할 곳은 파블로 피카소 미술관이다. 구시가지 고딕지구에 있는 옛 수도원 건물을 수리해 사용한다. 사실 바르셀로나의 매력은 이 고딕지구에 다 있다.
골목길이 너무 좁아 조금 멀리서 보면 사람 하나 겨우 지나 다닐 듯 하나 보기보다는 넓어 차가 지나 다닌다. 그 옆으로 정말 영화에나 나올 듯한 카페, 그 옆의 발길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 아름다운 수공예품 가게, 3-400년은 된 성당, 금방 콜럼버스가 나올 듯 한 오래된 건물.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 전으로 온 듯한 모습이다. 그 안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실제 이 피카소 미술관 안에는 우리 눈에 익숙한 눈과 입과 코의 위치가 막 뒤 바뀐 듯한 피카소의 후기 그림들은 별로 없다.
아니 피카소가 이런 그림도 그렸어? 놀랄 정도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화 그림들이 대단히 많다. 그 중 눈 여겨 봐야 할 그림은 피카소가 15살에 그렸다는 ‘첫 영성체’는 사람들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15살 소년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고 화가 겸 미술학교 교사였든 피카소의 아버지 루이즈는 ‘나는 너를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비명을 지르게 만든 작품이다.
단숨에 루이즈는 아들의 비상한 능력을 알아 보았고 그 이후 자신을 능가하는 어린 아들을 보고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그림을 포기하려 했을 정도였다. 피카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행과 같이 가지 말고 반드시 혼자서 조용하게 가서 자신의 시간을 가져도 보람된 일이 될 것 같다.
바르셀로나는 말 할 것도 없이 요리의 도시다. 풍부한 스페인의 농산물을 비롯해 지중해에서 나는 해산물이 얽혀져 만들어 내는 요리는 프랑스 요리와 비교해 절대 못지 않다,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야 요리를 골라 먹게 되는데 바르셀로나는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요리는 어느 식당을 가도 욕하고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