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관심뉴스는 야외상영관을 펼치는 우리의 동네 이웃집 아저씨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슬서글하게 우리를 편하게 해주시며 영화 등을 상영해주시는데, 목적은 이 상영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하신답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입니다. 광주광역시에 사시는 박길용님의 훌륭한 사회사업이 번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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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길 공원 '비디오 아저씨'의 작은 바람 [노컷뉴스 2007.08.02 14:34:48]
"세상 탁한 공기 정화시켜주는 나무처럼…"
광주 광역시 남구 진월동 푸른길 공원에 '비디오 아저씨'가 등장해 화제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푸른길 공원. 곱게 단장된 보행자 도로에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한다.
매일 이맘때가 되면 승합차량이 공원에 들어선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차량 짐칸에서 주섬 주섬 뭔가를 내린다. 그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물건들을 조작하니 금세 '야외극장'이 생겼다.
수개월째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는 사람은 식품유통업체에서 배송 일을 하고 있는 박길용(57ㆍ광주시 서구 금호동 )씨. 해가 지면 어김없이 푸른길에 나타나 무료 야외극장을 여는 이유는 뭘까.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서두는 추상적이었다.
"요즘 세상이 그래요.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어느 것 하나 사람들에게 이로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나쁜 것만 보여주는 세상, 가족의 의미가 자꾸만 실종되어 가는 세상이 안타까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일입니다"란 설명을 듣고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줍은 미소와 달리 그의 어투는 확신에 차있었다.
"나무 하나하나가 숲을 이루고 그 숲이 이 세상 탁한 공기를 정화시켜주고 산소를 공급하듯이 제가 하는 이 작은 일이 세상 사람들의 탁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것이 푸른길 공원 비디오 아저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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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화폐속의 인물 (튀니지:1/2 Dinars) 부르기바 태어남.
하비브 이븐 알리 부르기바(Bourguiba, Habib)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1957∼1987)
1903. 8. 3 ∼2000. 4. 6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던 아랍권의 대표적인 지도자.
하비브 부르기바는 작은 어촌 알무나스티르에서 퇴역한 베이(튀니지의 통치자) 군장교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튀니스로 옮겨가 아랍어와 이슬람교 교리를 공부하는 한편 프랑스어와 서유럽 사상의 습득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4~27년 파리의 소르본대학교에서 법률과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들
및 알제리·모로코의 독립운동가들과도 교분을 쌓았다.
1927년 튀니스로 돌아온 부르기바는 이후 7년 동안 변호사업에 종사했고 1932년 프랑스어판 민족주의계 일간지를 창간했다.
1934년 그때까지 대(對)프랑스 독립투쟁을 주도해왔던 데스투르당이 쇠퇴의 기미를 보이자 당내 소장세력은 데스투르당을 탈퇴, 신(新)데스투르당을 창설했고 부르기바를 서기장으로 선출했다.
부르기바는 1934년 이래 튀니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한 단계 한 단계의 축적이 실질적인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진주의의 확신은 훗날 '부르기비슴'(bourguibisme)이라는 개념으로 보편화되었다.
그는 독립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집약해낸 장본인이었으며 도시 인텔리겐차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왔던 튀니지 독립운동을 거국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탁월한 조직가였던 그는 인적이 드문 벽지 촌락에까지 당조직을 확장시켰고 식민 당국의 무력탄압에 대비, 간부들을 대거 육성함으로써 체포나 추방으로 인한 지도부의 진공상태를 능히 극복해냈다.
신데스투르당은 도합 8차례 조직개편을 거듭하면서 10여 년 동안 당 지도자가 구금되는 역경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프랑스의 비시에 억류되어 있던 부르기바는 연합군의 승리를 충분히 예견하고 먼저 튀니지의 독립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추축국의 연합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대전 종식 후 1945~46, 1951년에 그는 중동·미국·극동·유럽 지역을 순방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에게 튀니지 독립의 필연성을 납득시켰다.
1954년 피에르 맹데스 프랑스 총리는 부르기바와 협상을 시작했고 이듬해 4월 부르기바는 에드가 포레 총리와의 협상과정에서 외교·국방을 제외한 자치권의 획득을 성공시켰다.
1956년 3월 20일 기 몰레 내각은 튀니지의 독립을 공식 승인했으며 이듬해에 비제르테를 제외한 튀니지 전역에서 군대를 철수시킨다는 협정원칙이 합의되었다.
같은 해 군주제가 포기된 직후 하비브 부르기바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년 후 선포된 신헌법에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일부다처제를 폐지하는 한편, 이혼을 억제하고 노동생산성에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논란이 되어온 라마단(이슬람력으로 제9월)단식을 받아들였다.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동시에 군사 쿠데타의 위험을 제거해야 했던 부르기바는 최소한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통령인 그는 프랑스의 군사통치를 받던 남부지역에 5만 명의 유목민들을 정착시켰고 근대적인 행정원칙에 입각해 전국을 14개 주로 분할 통치했다.
튀니지의 경제는 대외원조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대통령은 주로 중립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했으나 오랫동안 문화적·교육적 교류 속에서 프랑스와의 관계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튀니지와 프랑스의 관계구조는 향후 2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61년 주변 아랍 국가들의 압력을 받은 듯 대통령은 1956년의 협정에 따라 프랑스의 육·해군 기지로 남아 있던 비제르테에서의 철군을 요구했다.
프랑스 정부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자 그는 비제르테에 대한 군사공격을 명령했고 철군은 2년에 걸쳐 1,000여 명의 인명을 살상시킨 대가로 확보되었다.
1964년 프랑스 거류민의 소유지를 포함한 전국토의 국유화 조치는 또다시 양국 사이에 긴장을 야기시켰다.
비제르테의 철군은 프랑스로부터의 경제원조를 단절시킴으로써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으나
부르기바의 대내외적인 위신은 크게 부각되었다.
부르기바는 아랍권 정치에서 이채로운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는 아랍 연맹의 만장일치 결의나 일방적인 강요에 대항해 대담한 독자노선을 추구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튀니지는 대통령의 온건 사회주의 정책기조에 입각, 비교적 엄격한 농업협동조합주의와 무역 및 산업에 대한 국가통제를 실시했으나 경기침체의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자 그는 다시 점진적인 개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975년 튀니지 국회는 하비브 이븐 알리 부르기바를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의 건강이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권력승계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1986년 초로의 부르기바는 측근 자문관들과 손수 지명한 후계자인 모하메드 음잘리 총리를 해임시키는 등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7년 초기에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정부전복기도를 분쇄해낸 벤 알리 내무장관을 총리로 임명했고 그해 11월 벤 알리는 "부르기바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고 너무 노령이어서 더이상 국정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라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한 뒤 스스로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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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인류역사상 최초의 북극점을 통과하는 해저 항해의 위업을 달성했다.
노틸러스호의 역사적 탐험은 7월 23일 진주만에서 시작해 베링해협을 거쳐 북극으로 이어졌다. 이번 항해에서 노틸러스호는 포인트 베로우와 알래스카의 만년 극빙 밑으로 들어가 단 한차례 잠수함의 방위를 검사하기 위해 잠망경을 올렸을 뿐 그곳에서 잠수한 채 머물러 있었다.
노틸러스호가 북극의 빙원을 통과한 시각은 이날 오전11시45분으로 이후 4일간 북극지역을 항해해서 8월 7일 아이슬랜드에서 탐험을 마쳤다.
노틸러스의 함장인 해군중령 W.R.앤더슨에게는 레종 공로메달이 주어졌으며 110명의 승무원들과 동행한 참관인 모두에게는 표창장이 수여됐다. 1954년 1월 21일 진수된 노틸러스호는 영어로 '앵무조개'란 뜻을 가진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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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롬버스 스페인 파로스(Palos)에서 신대륙을 향한 첫 항해 출발
해외 식민지 팽창에 관심을 갖고 있던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여왕 이사벨 1세 부부의 지원으로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신대륙 탐험을 위한 첫 항해의 돛을 올린다. 신규 획득 토지의 총독 직위 보장과 경제 산물의 10% 배당 및 상속 특권이 콜럼버스의 계약조건이었다.
8월 3일 핀타호, 니냐호, 산타마리아호로 명명된 선박 3척과 함께 출항한 탐험대는 동년 10월 12일 오늘날 바하마 제도에 위치한 와틀링섬을 발견한 데 이어, 쿠바 근처의 산살바도르섬에 도착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백인이 첫 발을 내딛은 사건이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당시 사람들에게 현대와 같은 의미의 '세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 역사적 사건이자,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지배와 백인 사회 건설의 초석이었다.
그러나 신대륙 정착지에서 보여준 콜럼버스의 인디언 학살과 약탈 행위는 '신대륙 발견'의 역사적 의미 강조로서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인간 콜럼버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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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제임스 2세(James II), 스코틀랜드 왕 세상떠남
1492년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스페인의 팰로스(Palos) 항구를 출발하여 '핀다(Pinta)'호, '니나(Nina)'호, 산타-마리아(Santa Maria)'호 등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는 극동으로의 서쪽 루트와 새로운 영토를 찾으러 출발.
1610년 헨리 허드슨(Henry Hudson), 허드슨 만(Hudson's Bay) 발견.
1631년 사계(沙溪) 김장생 사망
177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라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La Scala opera house) 개관
1792년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 영국 발명가 세상떠남
1801년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 영국 건축가 태어남
1811년 안전 엘리베이터를 발명한 오티스 출생
1857년 캐나다 작가 미첼 비보 사망
1858년 영국 탐험가 스피크(John Speke), 나일 강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수(Lake Victoria) 발견
1867년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영국 정치가 태어남
1872년 호콘 7세(Haakon VII), 노르웨이 국왕 태어남
1887년 루퍼트 브루크(Rupert Brooke), 영국 시인 태어남
1892년 러시아, 청 전선협정 성립
1900년 월북작가 한설야 출생
1903년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1957-87) 부르기바 출생
1904년 영허즈번드(Francis E Younghusband)가 이끄는 영국 탐험대, 티벳의 '감춰진 도시(Forbidden City)'인 라싸(Lhasa)에 들어간 최초의 서구인들이 됨
1908년 1974년 군사과두체제에 의해 대통령직에 오른 브라질의 대통령 가이셀 출생
1908년 영국 양로연금제 채택
1914년 독일, 프랑스에 선전 포고
1914년 독일의 벨기에 침공으로 제1차 세계대전 시작.
1914년 완공된 파나마 운하에 처음으로 배가 지나감
1916년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이며 외교관인 케이스먼트(Sir Roger Casement), 아일랜드의 '부활절 봉기(Easter Rebellion)'와 연루되어 사형.
1918년 일본 전역에서 쌀폭동
1920년 상해의용단의 문일민 등 평남도청에 투탄
1924년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영국 소설가 세상떠남
1926년 토니 벤넷(Tony Bennett), 미국 가수 태어남
1929년 미국의 사회학자 손스틴 베블런 사망
1938년 이탈리아, 유태인의 대학통학금지. 취학금지
1940년 라트비아(Latvia),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USSR)의 한 국가로 합쳐짐
1940년 마틴 쉰(Martin Sheen), 미국 배우 태어남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 미 육군 장군 패튼(George S. Patton)이 전쟁 노이로제에 걸린 병사를 구타하는 사건 발생
1947년 여운형 사회장 거행
1950년 유엔군, 북한 남하저지를 위해 왜관철교 폭파하고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방위선인 워커라인 구축
1950년 유엔군, 워커라인(마산, 왜관, 영덕을 잇는 방위선)구축
1951년 정전반대 국민대회 각지서 연일 개최
1953년 유엔 중립국감시위원회, 판문점에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설치
1954년 프랑스 여성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Colette), 사망
1958년 미국의 첫 핵잠수함 노틸러스(Nautilus)호, 북극 아래를 지나감
1960년 니제르, 프랑스로부터 독립
1960년 북한군 정낙현 소위 MIG-15기로 귀순(속초 북방 육군비행장)
1963년 비틀즈(Beatles), 고향인 리버풀(Liverpool)에서 마지막 공연
1964년 신문편집인협회, 언론윤리위법의 위헌성 지적하고 법시행정 거부성명
1966년 레니 브루스(Lenny Bruce), 미국 코미디언 세상떠남
1966년 산림청 신설
1967년 보사부, 기생충 국민감염률 처음으로 발표
1972년 박정희 대통령,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경제조치(기업사채 동결)) 발동
1975년 로열 에어모로코항공 소속 보잉707 여객기 추락. 188명 사망
1981년 갬비아 전역에 비상사태 선포
1981년 미국 관제사들 파업
1983년 삼성반도체, 64KD램 개발 성공
1988년 미국 상원, 수퍼301조 가결
1990년 전대협대표 박성희양 평양 도착
1990년 헝가리 대통령에 아르파드 겐츠 당선
1992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 African National Congress), 남아프리카에서 대규모의 저항 캠페인 시작
1994년 시사 만화가 안의섭 화백 별세
1997년 정부, 북한에 납치된 안승운 목사 송환을 UN에 협력요청. 인권판무관실에 서한 보냄.
1997년 카리브 해의 몬트세라트(Montserrat)섬 소프리에 힐(Soufriere Hills) 화산이 분화, 화산 쇄설물 분출
1998년 대만, 미사일 요격탄(ATBM) 실험 성공. (속도 마하 4)
1998년 박준규 제15대 국회의장 피선
200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수성탐사선 ‘메신저(Messenger)' 발사
2004년 프랑스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 타계
2005년 황우석 교수팀, 개 복제 세계 첫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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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푸른공원 비디오 아저씨께 감사 - 누군가가 필요할 때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제는 한글도스님께서 지점장으로 발령나셨으면 글 올리실 시간이 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2년 동안 대부분의 과거 소사는 잘 보았으니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잘 만들어진 책 마냥 그날 그날 전의 것을 보면 되니까요.
비디오아저씨의 내용을 보며 얼핏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계몽이나 건강관련 영상물이지만 쉽지 않은일이고 많은 노력과 자금이 투자되는 일인데 감사합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저같은 사람이 좋아하는 동영상을 공짜로 볼 수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