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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박원순 당선에 '패닉'. 또 색깔공세 <조선> "左민변 右참여연대", 조갑제 "내전적 상황 대비해야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당선에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패닉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SNS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은 박원순 당선은 오프라인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패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격이 워낙 컸던지,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킨 동인중 하나인 구태의연한 색깔공세를 계속 폈다.
<조선일보>는 27일자 사설을 통해 우선 "이번 선거 결과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권과 집권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의 표시"라며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疏通)을 외면한 채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밀어붙여 온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크게 쌓여 왔다는 뜻"이라며 이번 선거결과를 'MB 심판'의 결과물로 규정했다.
<조선>은 그러나 이어 "이번 선거의 수수께끼는 박원순 후보를 승자로 만든 서울시민이 승자의 본 모습을 모른다는 것"이라며
"서울시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시민운동가로서의 박 당선자 얼굴밖에 없다. 박 당선자가 반대하는 세력은 분명해졌으나 그가 누구와 어깨동무하고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그의 오른쪽엔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해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그의 왼쪽엔 UN에 천안함 사건의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서를 보낸 참여연대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며 "이제 박 당선자가 행동을 통해 자신의 머리에 담고 있는 생각을 서울시민에게 그대로 드러내고, 서울시민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를 지켜볼 차례"라며 시민들에게 악담성 경고로 글을 끝맺었다.
<조선>은 이날자 3면 해설기사에 '수도 맡은 시민운동가...그 옆엔 '左민변 右참여연대'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박원순 당선자를 찍은 시민들에게 저주성 악담을 퍼부었다.
그는 "종북이나 이적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관념적 유희는 조지 오웰의 통찰대로 전쟁과 같은 유혈사태나 경제공황을 부른다"며 "삶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쟁이나 경제공황이다. 그런 꼴을 예방하려면 선거를 잘 해야 하는데, 이런 국민수준, 이런 정권 수준, 이런 정치 수준, 이런 언론 수준으로는 어렵다"고 비난했다.
그는 더 나아가 "실패의 체험에서 배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할 일은 내전적(內戰的) 상황까지 대비하면서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여 종북의 근거지가 소멸되면 좋은데, 이것도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며 '내전'까지 거론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을 통해 "박 시장은 진보좌파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좌우 편 가르기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세력에 대한 배척으로 우리 사회를 더 분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박 당선자를 찍은 시민들을 '좌파'로 규정한 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좋다"며 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박 당선자에게 경고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그의 당선을 보는 서울시민의 마음속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그를 지지한 사람은 기대감이 크겠지만, 나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에겐 불안감이 앞선다"며 "평생 진보 NGO 활동에만 몸 바쳐온 박 시장이 과연 서울시장이란 막중한 공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에 대한 검증이 혹독했던 것은 이런 보수 유권자들의 우려가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박 시장은 이제 특정 NGO나 정치집단의 대표가 아니라 서울시민의 대표다.반대표를 던진 유권자의 마음도 헤아리며 시정을 펼쳐야 한다"며 "특히 이념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신중해야 한다.무상급식에서 대중교통요금 인상까지 어느 하나 민감하지 않은 것이 없다.많은 유권자는 박 시장이 복마전 서울시정을 개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찍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상당수는 박 시장이 그간 연대했던 급진적 성향의 NGO나 정당들에 휘둘릴까 우려하고 있다"며 거듭 색깔론에 기초한 우려를 나타냈다.
[사설] 서울지역 민심은 ‘한나라당 응징’이었다
범야권과 한나라당이 정면승부를 벌인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결국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승리로 끝났다.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의 결집 현상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나타난 선거였으나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뒤엎지는 못했다. 어제 함께 치러진 기초단체장 재보선 결과 등도 의미가 있지만,우리 사회 민심의 평균적 척도라 할 서울지역 유권자들의 선택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무척 크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 한나라당의 오만함에 대한 응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정치적 변화와 혁신,새로운 리더십 출현에 대한 유권자들의 갈망도 확인됐다.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의 주요 아이콘으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역대 어느 선거보다 낡은 정치질서 타파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이 강하게 표출된 선거라 할 수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사실 한나라당이 패배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선거였다. 선거 자체가 오세훈 전 시장과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주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발에서 비롯된 점부터가 그렇다. 정권의 숱한 실정에 더해 권력 핵심의 치부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은 겸손함 대신에 오만함, 뼈를 깎는 변신 노력 대신에 변화 욕구 깎아내리기였다.선거전을 이끈 것도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세,상대편 후보에 대한 빨간색 덧칠하기, 보수층 결집 호소 전략 등 구태 일변도였다.이번 선거가 한나라당에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계속 외면하는 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를 통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의원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명성의 문제가 아니라 박 의원의 태도다. 박 의원 역시 좁은 인식의 틀에 갇혀 변화에 둔감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잠재적 라이벌로 떠오른 안철수 교수를 의식해 더욱 방어적이고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이번 선거 결과는 야권에도 무거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야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야권으로서는 선거 결과에 자족할 형편이 못 된다. 야권은 이번에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단일후보를 선출하고 공동 선거운동을 펼쳐 승리에까지 이르는 보기 드문 경험을 했다. 하지만 속내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손발이 안 맞는 선거운동, 시민운동 세력과 정당 간의 미묘한 갈등,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 현상 등 여러 가지 부정적 현상도 나타났다.야권은 승리의 기쁨에 환호하거나 안주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기존 정당뿐 아니라 시민운동 세력까지 야권 통합·연대에 본격적으로 가세함으로써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과제까지 안게 됐다. 야권은 이번 선거 과정에 대한 차분한 복기를 바탕으로 통합과 연대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지를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는 열린 마음, 민심에 대한 겸허한 자세임은 물론이다
26일 재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명확한 세대 투표 현상에 대해
"이런 현상이 아마 오래 갈 것이다"는 평가가 나왔다.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광범위한 민심 이반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면서 "박근혜 대세론도 발밑이 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원순 vs 나경원, 20대는 '2대1' 30대는 '3대1'
이날 오후 8시 일제히 공개된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9.2%포인트 차이로 여유있게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서남권이나 동북권의 박 후보 지지율이 훨씬 높은 전통적 지역투표 현상도 여전했지만 세대 투표 현상은 더 현저했다.20대의 박 후보 지지율은 69.3%로 30.1%에 불과한 나 후보와 33.2%포인트 차이였다.더블스코어 이상이다.30대에서는 격차가 더욱 컸다.30대의 박원순 후보 지지율은 75.8%로 23.8%인 나경원 후보를 52%포인트 이상 따돌려 3대 1의 격차를 보였다.40대 역시 박 후보 지지율이 66.8%로 나타나 나 후보 예상 지지율인 32.9%보다 두 배 이상이었다.
50대에서는 나 후보 지지율이 56.5%로 박 후보 지지율인 43.1%보다 높았다.60대 이상에서는 나 후보 지지율이 69.2%로 나타나 30.4%에 불과한 박 후보를 압도했다.
"투표율, 50대 이상은 늘어날 여지도 없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장덕진 교수는 "서울 내 권역을 막론하고 젊은 층에서 박 후보 지지가 압도적이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장 교수는 "박근혜 대세론이 빈약하다는 것이 이미 나타났었는데 이번에 더 명확해졌다"고 말했다.장 교수는 "지난해 재보선부터 투표율,특히 젊은 층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여권, 박근혜 전 대표의 주된 지지층인 50대 이상은 투표율이 더 높아질 공간이 없는데,야권 지지층인 20대와 30대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 더 높아질 여지가 남아있다"고 풀이했다.한나라당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확장성'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다.
장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 이반은 내년이라고 해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야권 통합 과정의 내홍 여부, 한나라당의 쇄신 등을 변수로 꼽았다.
"트위터, 한나라당 물량 투입에도 잘 안 바뀔 것"
트위터와 득표율 상관관계를 지난 4.27 재보선에서 분석하기도 했던 장 교수는"오늘 출근시간 전 투표독려와 투표 열기는 분당을 선거보다 훨씬 뜨거웠고,그 결과 아침 투표율 매우 높았다"면서 "투표율 증가 추이가 둔화됐던 오후에도 트위터 에너지는 계속 축적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보수 진영도 트위터 등 SNS에 공을 들이지 않겠냐'는 질문에 장 교수는 "양적인 면에선 약진하고 있다.작년이 99대 1이라면 이젠 양적으로만 보면 7대 3 내지 6대 4는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장 교수는 "트위터같은 SNS는 소통의 공간이라 자발성과 네트워킹이 중요한데 한나라당 등의 경우엔 일방적 '홍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양적 투입은 더 늘어나겠지만 이런 진보 우위 현상이 잘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총선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 졌다.
이번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역별 득표율을 분석한 결과 한나라당이 안심할 수 있는 지역은 강남 3구 등 4개 지역 외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 소재 국회의원 지역구 총 48개 중 사고 지역구 4개를 빼면 44명 현역 의원이 활동중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한나라당 의원은 36명이다. 무소속이 1명, 민주당이 7명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보선 결과 서울시 25개구 중 한나라당이 박원순 당선자를 꺾은 지역은 강남, 서초, 송파, 용산구가 전부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전 시장이 강남, 서초, 송파, 용산, 양천, 영등포, 중구, 강동구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꺾은데 비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더 충격적인 셈이다.
이 4개구를 지역구로 둔 한나라당 의원은 총 6명이다.단순 계산하면 6명을 뺀 나머지 30명의 의원들은 자신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물론 서울 양천구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당선자에게 6%포인트 이상 뒤졌지만,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추재엽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눌렀다.이는 지역구 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결국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나라당이 10석~15석을 얻는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홍준표 지역구 있는 동대문, 9%p 이상 차이로 패배
강남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강남구(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사고지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61.33%를 박원순 당선자는 38.37%를 받았다.서초구(한나라당 이혜훈, 고승덕 의원)에서도 60.12%대 39.61%로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송파구(한나라당 박영아,유일호 의원,민주당 김성순 의원)에서는 51.12% 대 48.53%로 지난 지방선거(오세훈 51.28% , 한명숙 43.09%)에 비해 격차가 상당히 줄었다.용산구(한나라당 진영 의원)에서는 한나라당이 51.82%로 47.82%를 얻은 박 당선자를 눌렀다.
반면 여권의 거물급 정치인 소속 지역구를 포함해 대부분의 강북 지역 민심은 썩 좋지 않다.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지역구를 두고 있는 동대문구(을 한나라당 홍준표, 갑 장광근 의원)의 경우 나 후보가 45.24%를 얻어 54.32%를 얻은 박 당선자에 비해 무려 9%포인트 이상 뒤진 것으로 나왔다.
차기 주자군에 포함되는 정몽준 전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동작구(을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 갑 민주당 전병헌 의원)에서 나 후보는 43.60%를 얻어 56.05%를 얻은 박 당선자에 무려 12%포인트 이상 차이로 졌다.한때 정권 최고 실세였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의 지역구가 있는 은평구(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갑 민주당 이미경 의원)에서도 나 후보는 42.64%, 박 당선자는 56.96%를 얻어 무려 14%포인트 이상 차이로 뒤졌다.나경원 후보의 지역구였던 서울 중구에서도 나 후보는 47.65%를 얻어 51.96%를 얻은 박 후보에 4%포인트 이상 차이로 뒤져 굴욕을 당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서대문구(을 한나라당 정두언, 갑 이성헌 의원)도 나 후보 43.03%, 박 후보 56.57%로 뒤졌고, 이명박 정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진수희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성동구(갑 한나라당 진수희, 을 김동성 의원)도 나 후보가 45.32%, 박 당선자가 54.30%로 뒤졌다.지난해 오세훈 전 시장이 당선될 당시 한명숙 후보를 눌렀던 양천구(갑 한나라당 원희룡, 을 김용태 의원)는 나 후보가 45.97%, 박 당선자가 53.47%로 역전이 됐고, 영등포구(갑 한나라당 전여옥, 을 권영세 의원) 역시 나 후보 46.01%, 박 당선자 53.63%로 역전이 됐다.
그 외에 나경원 캠프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인사들의 지역구도 위험하다.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관악구에서 나 후보는 36.85%를, 박 당선자는 62.74%를 얻었다.무려 25%포인트 이상 차이다.나 후보 캠프 대변인을 지낸 안형환 의원의 지역구인 금천에서도 나 후보는 41.12%, 박 당선자는 58.42%를 얻어 17%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나 후보 캠프 홍보본부장 진성호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중랑구에서 나 후보는 44.75%를 얻었고,박 후보는 54.80%를 얻어 역시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뒤졌다.중랑구는 지난 지방선거 때 강남3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한나라당 구청장이 탄생한 곳이었다.
'음주 방송'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나경원 캠프 대변인 출신인 신지호 의원이 지역구를 두고 있는 도봉구에서 나 후보는 44.87%를 얻어 54.72%를 얻은 박 당선자에 비해 9%포인트 이상 뒤졌다
박원순 승리의 일등공신은 누구일까? 물론 서울시민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그 다음은?
안철수 원장? 이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그는 처음과 끝을 장식한 사람이다.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을 10배 끌어올린 이가 그이고,흔들리던 지지율을 다시 곧추 서게 한 이도 그이다.하지만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일등공신 반열에 오를 인물이 한 명 더 있다.이명박 대통령이다.
복기해보면 그렇다. 나경원 캠프는 일찌감치 인물론으로 승부를 걸었다.박원순 캠프가 들고나올 심판론에 정면대응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애당초 인물론으로 컨셉을 잡았고,그에 따라 네거티브 공세에 몰두했다.한데 초를 쳐버렸다.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이 나경원 캠프의 이런 전략에 생채기를 내버렸다.마치 X맨처럼 나경원 캠프의 선거전략을 교란시켜버렸다.더불어 힘을 보탰다.심판론을 적극 제기하지도 않고,그렇다고 인물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박원순 캠프에 멀리서나마 힘을 보탰다. 박원순 시장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심판론이 유지·강화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나경원 캠프에 초를 쳐버렸다면 박원순 캠프엔 보약을 선사했다.
보고 또 봐도 틀림없다.이명박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다.
끝난 일 같지가 않다.서울시장 보선이 끝났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까지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제2라운드와 제3라운드에서 펼쳐질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상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에게 떨어진 불은 혁신이다.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서울시장 보선과 같은 결과를 빚지 않으려면 환골탈태는 필수다.시작은 전열정비다. 뼈대부터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지도부 개편 또한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교란시킬지 모른다.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환골탈태를 제어할지 모른다.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파문을 수습하면서 했던 말을 빌리면 '본의 아니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은 한나라당 지도부에겐 면피용으로 제격이다.우리는 앞에서 열심히 싸웠는데 내곡동 사저 파문이 뒤에서 총질하는 결과를 빚었다며 책임론을 청와대로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러면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는 요원해지고,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체질 개선은 무위로 끝난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내부 분란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만이 가득 찬 눈길을 밖으로 돌려놓는 것이라는 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3라운드에서의 역할이 남아있다. 이 역시 교란이다.
한나라당이 살려면 선을 그어야 한다.이명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당 주도의 국정운영을 실현해야 한다.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쥐고 국정 전반을 이끌어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감을 줄여가야 한다.과거처럼 대통령의 탈당까지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여권의 질서는 확실히 바꿔놔야 한다.
문제가 없다.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흐름은 순응하면서'정권 재창출에 필요하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등짝을 내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하지만 요원해 보인다.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4년간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건대 이런 헌신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워낙 부지런하고 앞장서기를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로 봐서도 그렇다. '워커홀릭'에게 망중한은 고문이다.
게다가 임기가 적잖이 남아있다.총선 이후,즉 임기를 반년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차기 대선주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에서 뒤로 한 발 물러나는 건 그렇다쳐도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지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분석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상이 계속된다면 한나라당에겐 악재가 되고 야권엔 호재가 된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거듭 확인했듯이 물결치는 민심의 핵심은 반MB 정서이니까
나경원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조직총괄본부장인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관련해
"우리가 이번에 제대로 심판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김 의원은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시민들이 '한나라당 너희들,지금 그 상태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준 것"이라면서"'MB정부 결코 잘하지 못했다,잘못했다,그렇기 때문에 집권당 너희들 책임져라'는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김 의원은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크게 바꿀 수 있는 그런 당 내의 몸부림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서울시민들은 지켜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떠들썩하게 MB정부 심판론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표현한 결과는 (결국 정권 심판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선거전의 결정적 패인과 관련해 "(연회비 1억 원의) 피부샵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이어 "저희로서도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솔직히 캠프에서는 그 18살짜리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은) 딸아이에 대한 모정을 보여주려고 여러가지 후보에게 건의를 했지만, 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겠다는 후보의 마음에 우리가 더 이상은 상처를 주지는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그나마 선전한 건 박근혜 지원 덕"
김 의원은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고,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 먹히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의원은 "선거에서 실질적으로 조직총괄을 했던 사람으로서 선거 끝나자마자 당내 지도부의 책임론 운운하고 이런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또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두고 그나마 한나라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막판에 박빙으로 갈 수 있었다"며 "이번 선거의 패인은 박근혜 전 대표라기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마음"이라고 박 전 대표에 대한 보호막을 쳤다.김 의원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선거 영향력이라는 것은 본인도 이제 막상 현실정치에 뛰어들면 여러 가지 또 검증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면 안철수 원장의 그런 신드롬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낮게 평가했다.
26일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외신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은 26일(현지시간) 서울시장 선거는 '매우 중대한'(critical) 선거라며 "아시아에서 4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한국의 향후 6년 간 정치적 미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서울 인구는 한국 전체 인구의 1/4에 가깝고 이번 시장선거 결과가 내년 대선에서의 민심의 향방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만약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다면 이는 한국의 양당체제에 대한 전례없는 항의 투표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신문은 복지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장이 될 것이라며 박 후보의 "복지는 사람들에게 시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라는 발언과 나경원 후보의 "복지는 재정 건전성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발언을 대조시켜 소개했다.
또 신문은 박 후보와 나 후보의 대결이 각각 그들을 지원하는 두 명의 '지배적 인물'(dominant personality) 때문에 더 관심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신문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을 '지배적 인물'로 들며 박 의원에 대해서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며 전 군사 독재자 박정희의 딸"로, 안 원장에 대해서는 "인기가 높은 소프트웨어 기업가로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수출 기반 시스템에 매우 비판적인 인물"로 소개했다.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25일자 관련 기사의 제목을 "여당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심각한 타격'(serious blow)을 입을 위험이 있다"고 달았다. <블룸버그> 역시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내년 대선 레이스의 전초전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계측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선거에 진다면 이명박 정부와 집권당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은 지난 17~21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집권 초기 78%였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2.8%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통신은 박 후보와 안 원장에 대한 지지가 젊은 세대에서 높은 양상을 보인다면서 선거가 평일에 이뤄져 투표율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이 "박 후보에게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같은날 '서울 시장 선거에서 반역의 분위기가 엿보인다'(서울l Mayoral Race Takes Rebellious Tone) 제하의 기사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신문은 "1%의 특권층과 나머지 99%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박 후보의 TV 토론 발언을 전하며 "미국에서 시작한 '월스트리트 점령'의 구호를 받아 울리고 있다"고 평했다. 신문은 박 후보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유 있게 앞서갔지만 최근 몇몇 조사에서는 나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책 실종된 선거전, 혼탁하기가 '공포영화' 수준"
그러나 외신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선거의 혼탁한 선거전 양상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울의 유권자들은 하수도나 교통 문제 같은 실제적 지역 이슈가 아니라 반대적 수사를 쏟아낸 두 명의 후보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장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비꼬았다.신문은 "선거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주제는 후보자들의 외모"라며 "언론은 나 후보의 피부관리 및 미용 비용에 집중하고 있고 박 후보의 패션도 관심거리"라고 소개했다.
<LA타임스>는 "서울시장 선거가 진흙탕 싸움, 등 뒤에서 칼 꽂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무시무시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이번 선거전 양상을 '공포 영화'에 빗대기도 했다.신문은 "한국은 국회의원들 간의 주먹다짐과 머리끄덩이 잡기, 넥타이 잡아당기기 등이 흔한 치열한 정치의 나라"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양 진영 간의 '저격'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열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파이낸셜타임스>도 이번 선거전이 '매우 개인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박 후보는 그의 학력과 북한에 대한 태도를, 나 후보는 피부관리 비용과 구 식민지배국이었던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방어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안철수 '핵폭풍', 여야 잠룡들 휘청[전망] '승리의 종결자' 안철수, 야권의 메시아인가?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으로 2012년 대선 판은 요동치기 시작했다.정계개편을 포함한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갔다.한나라당은 '신(新) 계파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그간 '상수'였던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야권의 강한 응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있다.당 중심의 정치 외에 시민 사회 기반이 없는 한나라당은 뾰족한 수가 없다. 반면 야권 연대의 노하우를 꾸준히 쌓아왔던 민주당은 큰 틀에서 정계개편을 통해'박근혜 대세론'으로 기울어왔던 대선판을 바꾸려 할 것으로 보인다.안철수를 등에 업은 야권은 좋든 싫든 '변화'의 길에 내몰렸다.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정당의 테두리를 벗어나 야권'빅뱅'을 시도하면 한나라당은 수세적 입장에서 야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안철수 바람' 이전에 정치판을 설명하는 단어는 '박근혜 대세론'이었다.이 틀거리가 뒤틀리면서 박근혜 전 대표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당내 도전에 노출됐고,여론의 관심에서'안풍'에 밀렸다.'박근혜 대 안철수'가 아니라 '박근혜 현상' 대 '안철수 현상'으로 흐를 수 있다.서울시장 재보선을 기점으로 프레임은 인물 구도에서 세력 구도로 넘어왔다.
야권의 '메시아'된 안철수
이같은 변화, 그리고 정계 개편의 핵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그는 박 당선자에게 건넨 편지를 통해 야권 성향 유권자에게 "행동"하기를 호소했다.'야성'을 또렷하게 내비쳤고,'반 한나라당'임을 명확히 했다.서울시장 선거 측면 지원을 통해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그가 내년 4월 총선에 개입할 것은 확실하다.그가 박원순 후보 지지 편지를 통해 "저는 지금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변화의 출발점에 서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기존 정당과 정치 세력을 넘어 제 3의 정치 세력을 만들고 그 중심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이 경우,전제는 한나라당이 최소한 해체에 준하는 절차를 밟고,방심한 야권이 분열을 일으킬 때다.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안 원장이 직접 판을 짜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않더라도'안철수 파워'는 지속성이 있다.'제 3의 정치세력화'가능성을 내비침과 동시에 야권을 지원하는 안 원장의 모호한 태도는 오히려 안 교수의 '몸값'을 올리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몸값이 올라가면 정치적 무게는 자연히 커진다.본인이 직접 나서 '인물 구도'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 한 '인물론 프레임'은 의미가 없다. 그는 현재 야권의 '메시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야권이 가야할 방향은 더욱 명징해졌다.
안철수의 존재감에 머쓱해진 野, 상처 입은 與
문제는 여야 대권주자들이다.이번 선거를 계기로 여야 잠룡들은 모두 상처를 입었다.야권의 경우 부산 동구청장 선거 패배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타격이 될 전망이다.문 이사장은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혁신과 통합'에 참여,주도적인 역할을 보여줬지만 정작 자신의 지역 기반인 부산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전국구 인물'은 됐으나 부산 지역 야권을 대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손 대표 역시 별다른 성과는 없고 숙제만 잔뜩 받아왔다.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여전히 시달릴 수밖에 없고, '품은 잔뜩 들였지만 남 좋은 일만 했다'는 불만도 받아들여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보선을 '승리한 선거'로 만드는 데 손 대표가 한 역할은 분명히 있다.
손 대표는 민주당의 담을 허물고 야권 연대를 더욱 가속화시켜야하며,그 경쟁에서'민주당 간판'으로 승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계산서'는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으로 야권 주자들의 관계는 적어도 총선 때까지 '협력'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안철수의 지원은 야권의 '협력'과 '통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반면 한나라당은 심각한 상황이다.'부동의 1위'였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선거 최대 피해자다. '박근혜 바람'이 '안철수 바람'에 밀렸다. '수도권을 잃고 대선 승리 못한다'는 '정설'앞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박 전 대표는 향후 이어질 야권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대세론이 확장성을 갖지 못하면 그간 구축해온 자산만 깎아먹을 수 있다. 뾰족한 수도 없다.
여권의 또 다른 잠룡인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 개인의 활동 공간은 넓어졌을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라는 '난파선'에 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도, 10.26재보선에서 '조연'의 역할도 하지 못한 '존재감'은 김 지사의 고민거리다. 정몽준 전 대표는 딱히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지만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의 탈당론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대권 주자'를 자임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존재감을 전혀 증명하지 못했다.
야권의 '경험'과 한나라당의 '구태'가 대결하면 결과는?
안철수의 부상과 야권의 약진은 박근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대권 판을 분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간 '박근혜 대세론'으로 연명했던 한나라당은 정권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는 변화의 준비조차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안철수-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당시 한나라당은 "좌파 단일화 정치 쇼"로 이를 폄하했다. 이후에도 한나라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안철수 대통령'의 시나리오로 이어지는 야권의 '정치 기획'일 뿐이라고 판단했고, "노무현 만들기의 수법이 보인다"(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며 음모론으로 몰고갔다. 한나라당의 사고는 이 지점에서 멈춰 있다. '범보수 결집' 운동이 있었으나, 당 외곽 보수 세력의 역량은 한나라당의 아성조차 뛰어넘지 못함을 보여줬다. 그래서 안철수에 당했다.
안철수 바람을 탄 야권은 정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승리를 쟁취한 경험을 갖게 됐지만, 한나라당은 '친박-반박', '우파-좌파' 프레임에서 사고가 멈췄다. 여권의 구태와 야권의 실험이 격돌하면 결과는 비교적 자명하다.선거의 1차 전제는 뜻을 같이 하는 정치 세력의 통합이다. 통합이 있은 후 심판이 있고 비전이 있다. 대선을 1년 2개월 앞두고 벌인 '전초전'은 통합과 포용이라는 프레임 전쟁이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 '내곡동 게이트' 등은 '2차전'인 총선을 앞두고 '심판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이 토대에서 여야는 3차전, 즉 대권에서 비전을 내 놓아야 한다. 1차전 결과, 한나라당은 이미 밀리고 있다
'무소속' 서울시장 박원순 앞에 놓인 '세가지 난제'[전망] 잔치는 끝났다…박원순, '진정성' 빼고 다 바꿔라
박원순 서울시장(보궐선거라 당선 다음 날 바로 취임하므로 편의상 시장으로 쓰겠다)이 참여연대에 있었던 마지막 해인 2002년에 인터뷰를 했었다.
"나도 한때는 정치를 생각했었다. 변호사를 하던 지난 85년 전직 국회의원 등 고향(경남 창녕) 선배들이 출마를 권유했었다. 지역주민들한테 때 되면 편지도 보냈다. 그러다 '젊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정치권으로부터 호명됐다. 2007년 대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고, 구체적인 압박도 들어왔다. 10년 가까이 완강히 버티던 그의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극소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랄만한 급작스런 결정이었다. 지난달 6일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급히 내려와 수염도 깎지 못한 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 후보 단일화 합의 기자회견을 가진 모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젊은 시절 한때 정치를 생각해봤다는 얘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개인' 박원순 입장에선 일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인권 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시민운동의 영역에서도 권력감시운동에서 기부운동, 사회창안운동까지, 그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시민운동에서 정치로 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 진입 성공 여부는 단순히 '개인 박원순'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그가 좋아하지 않는 수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시민운동가로서 그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이겼지만, 그가 졌다면 시민사회의 정치 진출은 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선거라는 게임의 룰과 박원순의 상징성을 연관시켜봤을 때, 그의 급작스런 개인적 결정은 비판받을 여지가 분명 있다. 더욱이 박 시장의 정치 진출은 그간 시민사회진영에서 진행돼온 현실 정치 참여를 둘러싼 논의와 별개의 개인적 결단이었다.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하는 첫날 굳이 '과거지사'에 해당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이렇다.정치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과정과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박 시장의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서울시장은 일년에 21조 원의 예산을 주무르고, 3000여 개의 정책을 조율하고, 1만5000명의 공무원 인사권을 가지며, SH공사 등 11개 산하기관도 관할하는 자리다. 당선 다음 날인 27일 임기를 시작하는 박 시장은 당장 내년 예산을 짜서 시의회에 넘겨야 하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바로 코앞에 놓여져 있다.
"시민운동 리더십으론 안 된다"
박 시장은 '실무가형 리더'다. 일에 있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꼼꼼하다는 게 함께 일해본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일에 대한 장악력이 높으니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도 높다. 한 참여연대 전직 간사는 "팀 워커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혼자 앞서서 던지고 달리는 스타일"이라면서 "솔직히 민주적 리더십은 아니다"라고 평했다.한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박 시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시민운동 리더십"을 꼽았다.
"시민단체는 다 '후배'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박 시장은 이미 지적이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조직이다. 도덕적 권위에 따른 위계질서에 입각한 시민단체에서 작동했던 리더십과 서울시장으로 요구되는 리더십은 다르다. 스케일 차이 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집단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야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절감했겠지만 '박원순의 정당성'은 작동되지 않는 공간이다."
선거 초반 민주당과 경선룰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양측 실무자들끼리 논의가 진행 중인데도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안을 수용하겠다"고 결정한 일,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후보가 직접 나서서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일 등은 모두 박 시장의 '독선적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줬다.특히 박 시장이 선거 중반까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정치 아마추어의 '순진함'이 그대로 반영됐고, 선거 참모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선거전에서 네거티브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거다. 한나라당이 '박원순, 너 뭔데' 이런 식으로 도덕성 검증을 하는 거 자체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별로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에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말을 왜 그렇게 험하게 하세요'라는 식으로 난망해 하는 걸 볼 때마다 솔직히 아찔했다." (민주당 의원 보좌관)
'복마전'으로 불리는 서울시정을 이런 '순진무구한 리더십'으로 개혁해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 9단'으로 불리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 승부사' 기질을 자랑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정운영에 있어 '관료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박 시장은 행정집행에 대한 경험이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문제제기 능력은 강하지만 갈등 조절 능력까지 강할지, 이런 게 위험 요소가 아닐까 싶다." (전 참여연대 간사)
무소속 야권단일후보에게 당선 후 날라온 '계산서'는 어쩌나
박 시장은 야권단일후보였지만 무소속이다. 한나라당 정권 하에 무소속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우호적 관계보다는 비우호적 관계에 노출된 상태"(여론조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와 관계는 우호적일 수 있나?두 가지 변수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정무부시장 등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 둘째,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지는 야권 재편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달렸다는 것.
민주당은 호남 등 일부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입당'을 끝까지 압박하지 않았다. 또 선거 중반 이후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응하고 맞불 작전에 투입된 것도 같은 '선수'들인 민주당이었다. 박 시장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에 빚을 진 셈이다. 박 시장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에 제가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으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본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덧붙이자 현장에 있던 민주당 당원이 "반드시 입당해야 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민주당의 정서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야권이 단합해 선거를 치뤘으니 서울시정부 구성도 공동으로 구성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시민후보였던 박 시장이 앞에 놓인 난제 중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인사의 문제다.
"인수위 구성이 첫 단추가 될텐데, 결국 사람의 문제다. 선거과정을 보면 민주당에 의존적인 선거를 한 셈인데, 기존 정당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만한 인적 구성을 할 수 있을까. 정무부시장이 누가 되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까놓고 민주당 인사를 제치고 하승창('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처럼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을 선임할 수 있겠냐."(전 참여연대 간사)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같이 선거를 치룬 것인데,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를 정무부시장으로 할 것인가 등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된 뒤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자리 배분 문제를 놓고 선대위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고려해야할 역학 관계가 민주당과 시민사회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진보정당들도 있다.민주당과 관계 설정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야권통합과정에서 박 시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이냐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시장이 야권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을 해소돼야 하는 존재로 볼 것이냐, 아니면 보완해야할 존재로 볼 것이냐, 이에 따라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장이 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의 민주당 지지자들을 "내가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한나라당이 되는 걸 막으려고 찍은 거 아니냐"고 비난하면서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짧은 잔여임기 동안 시정부의 인적 구성, 민주당에 대한 부채, 대통합 과정에서 스탠스 등이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정치일정과 맞물려 애초 기대했던 시민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애초 구상했던 것들이 이런 문제들과 혼재돼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전 참여연대 간사)
박원순의 새로움, 구호는 있는데 내용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박 시장은 선거 과정에서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서울시정을 '낡은 것'으로 평가하면서'새로운 희망'을 얘기했다.하지만 박 시장의 대표 공약이나 구호를 묻는다면 떠오르는 게 없다.'새로움','희망'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화할 내용이 정작 드러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 때문에 각 후보들의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 탓도 있다.하지만 전문가들의 정책 검증에서 박 시장이 받은 성적도 그닥 좋지 않다. 급작스럽게 출마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격에 억울하다고 읍소했는데 정치엔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네거티브를 뚫고 나가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내는 게 정치력이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전에 왜 밀렸는가. 시민운동을 했다는 '과거의 무기'는 있는데, 앞으로 뭘 하겠다는 '미래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 아닌가. 네거티브를 덮을 비전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희망'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비전들, 뭐가 새로운 건지, 새로운 걸 통해서 뭘 만들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정책도 정책이지만 시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겠다고 했는데 시민들과 어떻게 새로운 시정 모형을 만들 것인지 제시돼야 한다."(김윤철 교수)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시민사회, 노동계의 관계는 시너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어정쩡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박 시장이 복잡한 정치지형 속에서 새로운 정치, 진보정치의 기반,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전 참여연대 간사)
이는 박 시장이 자신이 놓인 정치적 지형과 무관하게 자신을 찍은 지지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이기도 하다.박 시장을 당선시킨 동력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박탈감'이라고 할 수 있다. 20-40대가 박원순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말하는 '희망 서울'에는 부의 일차적 분배에 해당하는 노동, 조세 등 문제에 대한 구상이 뚜렷하지 않다. "사람을 위한다", "복지를 우선하겠다"는 말만 있다. 박 시장은 앞으로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대세론' 붕괴…飛上하는 안철수, 非常걸린 박근혜[분석] 박근혜, '수첩'도 '파스'도 안 통했다
현 집권 여당이 '길거리 선동세력'이라고 깎아내리던 무소속 시민후보에게 패했다.'정당후보 대 시민후보'가 맞붙은 사상 초유의 선거에, 결과는 한나라당의 '판정패'였다.문제는 선거 이후다.내년 대선의 예고편 격이었던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국정 장악력 상실은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판도의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당장 4년여 동안 견고하게 유지돼온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엔 빨간불이 켜졌고,한나라당도 패배 책임을 놓고 자중지란하는 모양새다.선거 승리를 계기로 범야권이 통합에 속도를 내는 반면,한나라당은 또다시 '집안싸움'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대세론, 여권 '내부'의 대세론으로
여야 정치권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사활을 건 이유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간 치러진 역대 선거에서 '서울시장 승리=대선 승리'라는 공식이 성립된 바 있고, 범야권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여권의 박근혜 전 대표가 각각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선거가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했다.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는 박근혜 전 대표일 수밖에 없다.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던 박 전 대표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8차례나 서울을 찾는 등 나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18대 총선 당시 '공천 학살' 이후 4년여 만의 지원이었다.
선거 전날인 25일엔 나 후보 캠프를 찾아 자신이 직접 작성한 수첩을 전달하는 등'이례적 행보'를 보였고,수많은 시민과 악수를 하느라 손목에 파스를 붙인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그러나 '박근혜의 수첩'은 '안철수의 편지'를 누르지 못했다. '선거의 여왕'이란 명예엔 흠집이 났고,힘이 빠진 대세론은 곧 여권 내 역학관계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우선 정몽준 전 대표,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등 범친이계 대권 '잠룡'들을 중심으로 박 전 대표를 견제하며 세 불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대선과 당내 주도권 싸움을 놓고 또다시 계파 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있는 것.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고,선거 캠프를 친이재오계 의원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친이계가 쉽사리 '반격'에 나설 수 없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선거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책임론이 돌아올 여지는 거의 없다.선거 초반 20~25%포인트까지 뒤지던 나 후보의 지지율을 박빙 구도까지 올려놓은 것이 박 전 대표의 공이라는 주장도 상당하다.이에 따라 이 대통령과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유지했던 박 전 대표가 오히려 조기 등판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 '내부'가 아니라 '외부'다. 대세론이 유지되더라도,한나라당 '내부의 대세론'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대세론이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한나라당 내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유의깊게 볼 것은 전체 대선 판도에서 박 전 대표의 독주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권은 '통합' 바라보는데…여권 '집안싸움' 스타트
선거 패배의 책임을 놓고 계파간 공방도 예상된다.벌써부터 친이계 일각에선 지도부 책임론 및 내년 선거를 대비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개편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저격수 본색'을 발휘, 박원순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이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적지않다.홍준표 대표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선거 하루 전 기자간담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지 이 선거가 전부는 아니다"라며 "선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고,선거가 끝나면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리부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홍 대표의 한 측근은 "2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나던 선거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누구냐"며 "홍 대표가 애초 '정권 심판' 구도의 선거를 '후보자 검증' 구도로 전환시켰다는 면에서 지도부 책임론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그러나 패배의 후폭풍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안감에 휩싸인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쇄신 요구가 높아질 것이고,박근혜 전 대표가 본선 무대 진출에 나서면서 한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친박계-쇄신파 '연합군'의 결별도 예고된다.여기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보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일부 인사들의 '탈당 러시'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이를 두고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키는 친박계가 쥐고 있다"며 "친박계가 당장 당을 접수해 내년 총선부터 공천권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홍준표 체제가 쉽게 붕괴하겠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그렇게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나라, '예고된' 패배…지나친 '네거티브' 부메랑으로
패배의 원인을 놓고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우선 나 후보 측이'검증'이라고 주장해온'네거티브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나 후보는 선거 초반부터 박 후보의 병역과 학력,아름다운재단의 대기업 후원 문제 등을 들며 전방위적 공세에 나섰다.이런 공격은 선거 하루 전날까지 계속돼,홍준표 대표는 "박원순은 종북주의자"라며 색깔론까지 꺼내들었다.급기야 나 후보 측은 선거 직전 "박원순은 쓰레기 같은 인간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가 이후 논평 문구를 수정하기도 했다.
특히 박 후보의'천안함 발언'등을 물고 늘어져 집중 포화를 퍼부은 모습은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기도 했지만,과도한 네거티브 전략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도층 유권자의 이탈을 낳았다.당 대표까지 나서 박 후보에 대한 공격적인'검증'에 나섰지만,정작 나 후보가 자신에게 겨눠진 검증의 칼날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많다.나 후보는 부친 소유 사학재단에 관한 각종 의혹에 "이번 선거는 내 선거"라며 선을 그었다가 10년째 사학 이사를 맡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보자의 신뢰에 금이 가기도 했다.
선거 막판 터진'초호화 피부과 출입 논란','부친 학교에 대한 감사 배제 청탁 의혹'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해명보다는"(박 후보 측의) 흑색선전"이라며 짜증섞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 역시 유권자의 표심을 떠나게 하는 배경이 됐다.나 후보 본인이 먼저 겨눈 '네거티브' 효과가 부메랑이 돼 다시 돌아온 셈이다.'박근혜 효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한 25.7%의 보수층에만 기댄 채 젊은층의 표심을 공략하지 못한 점 역시 패인 중 하나다.나 후보 측은 선거 막판 안철수 원장의 박 후보 지원이 현실화되자 "협찬 후보", "정치판에 기웃대지 말고 교수직에 충실하라"며 안 원장에게도 공격을 퍼부었지만,나 후보 역시 선거 초반부터 박 전 대표의 지원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과 상관없이 지난 6.2 지방선거에 이은 '정권 심판' 차원의 선거였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한나라당의 패배가 박원순 후보에 대한 강한 지지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정권 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안철수 현상과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축제의 시청광장,박원순"승리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김제동 "이제 서울시장이죠?시민들에게 까불지 마세요
"내곡동 일대를 사려함은 / 십자가 짐같은 그린벨트 / 내 인생 소원은 재테크 하면서 / 재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서울 시청광장에 찬송가를 패러디한 노래 '내곡동 가까이'의 반주가 울려퍼졌다.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합창했다.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개표에서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다.26일 저녁부터 자정을 넘겨 27일 새벽까지, 시청광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지난해 6.2 지방선거 날, 바로 이 자리에서 한명숙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며 "오세훈 방 빼"라고 외쳤던 시민들은 곧이어 들려온 오세훈 전 시장의 재선 소식에 망연자실 자리를 떴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절망의 축제가 1년만에 희망과 열정의 축제로 달궈졌다.2000여 명의 시민들이 이날 밤, 새 서울시장을 맞았다. 주로 직장인과 대학생, 연인,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 등 20~30대 젊은 층들이 주를 이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장년층도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새벽 12시 40분께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 박영선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광장에 나타나자 시민들은 환호했다.박 당선자는 "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여러분은 단 3일 만에 선거에 필요한 39억 원의 돈을 마련해 줬고, 조직이 없다고 할 때 유모차 부대를 끌고 왔다. 여러 언론이 나를 공격할 때 스스로 미디어가 돼 나를 지켜줬다"며 "무엇보다 시민 여러분이 바로 이번 승리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박 당선자는 또한 "시청광장은 앞으로 시민 여러분의 것"이라며 "시민이라면 누구든 나와서 무슨 말이든 마음껏 주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용산참사와 같은 잔혹한 일이 서울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새 서울시장에 대한 기대를 묻자 박준형(가명·34) 씨는 "오세훈 전 시장은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기득권 입장만 대변했던 것 같다"면서 "새로운 시장은 대중과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타지에서 서울로 상경해 직장에 다닌다는 문윤현정(27) 씨는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나가서 저축은 꿈도 못 꾼다"며 "새 시장이 사회초년생을 위해 주거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그는 "서울을 디자인한다는 게 말만 거창하지만 너무 외관에만 치우쳤다"면서 "서울 디자인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디자인해야 할 때다. 서민 복지를 위해 예산을 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26일 오후 6시경에는 일찌감치 광장에서 '인증샷 놀이'를 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투표 인증샷을 서로 자랑하는 5~6명의 직장인들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이채란(26) 씨는 "그냥 심심해서 왔는데 설렌다"며 "높은 투표율을 각하께 헌정하고 싶다"고 말했다.직장이 근처라서 잠깐 구경나왔다는 강진구(가명·33) 씨는 "사회에서 몰상식한 일이 너무 많다"며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인증샷 10문 10답'에서 유명한 사람이 투표 인증사진을 못 올리게 한 건 말도 안 된다"고 운을 뗐다. 강 씨는 "진보, 보수 정치성향을 떠나서 현 정권이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며 "정권이 트집 잡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광장에는 연예인 김제동 씨가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김 씨는 "오늘 선거가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줘서 기쁘다"며 박원순 후보에게 "이제 시장이시죠? 정치인이 된 순간 코미디의 대상,감시의 대상이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그는"권력을 잡은 자들은 시민들에게 까불지 말라"며 "대통령,국회의원이 모두 비정규직이다.그러니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지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26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결국 노사이드다.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26일 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 기자회견을 한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를 빠져나가면서 선거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홍 대표는 “우리가 서울을 제외한 강원, 충청, 경북, 다 회복했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에서 다 승리한 상황”이라며 “8곳에서 완승한 것을 보면 이번 선거는 의미있는 선거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수도권대책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로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에 미리 선을 그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홍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추진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상임위별로 27일까지 에프티에이 이행법안 심의를 완료해 28일 본회의에서 에프티에이 비준안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5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온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신이 받아들 성적표를 미리 엿본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큰 격차에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서울의 한 의원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7%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지는 것으로 드러나자 “지더라도 격차가 5%포인트는 안 넘을 걸로 봤는데 너무 걱정스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의 한 중진 의원은 “민심이 이 정도라면 내년 총선·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006년 서울시장·경기지사 선거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0년 서울시장·경기지사 선거까지 ‘수도권 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선과 8·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10·26 서울시장 보선까지 줄줄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 의원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의원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대대적인 당 혁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서울의 원희룡 최고위원은 사실상 지도부 동반 사퇴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원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년 총선·대선에서 지게 생겼는데 당권이나 대권 후보 대세론에 연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네거티브, 색깔론, 상위 10%에 기대는 구태정치와 단절하고 젊은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정당으로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즉각 동조하는 의견이 이날 밤까지 많지는 않았다. 대체로는 ‘공동 책임론’과 ‘대안 부재론’을 들어 현 지도부를 유지하면서 당을 혁신하자는 게 낫다는 의견을 보였다.
서울 친박계인 구상찬 의원은 “청와대, 홍준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등 누구도 이번 선거 결과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누구를 끌어내릴 일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함께 국민에게 잘못을 빌고 채찍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서울의 다른 초선 의원도 “현 지도부를 유지하면서 홍준표 대표와 당내 대선주자들이 참여하는 총선 대비 조기선대위를 꾸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선대위에서 정책과 정치 문화 등 당 개혁 방안,총선 전략,공천 준비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안에 대해서는 친박계에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한 재선 의원은 “지도부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지도부와 친박계, 소장파 등이 현재의 기득권과 내년 총선 공천 등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현 체제 흔들기에 나설 주체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의원은 “전면 쇄신론이 얼마나 내부 동력을 얻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위기를 맞은 것은 확실하다.”
10·26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26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서슴없이 ‘박근혜 위기론’을 거론했다.
그는 “이런 흐름을 한때의 변덕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잘못 대응하면 박 전 대표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했다.
박근혜 위기론은 지난달 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뒤에 그의 위상은 단번에 대선주자급으로 바뀌었으며, 각종 여론조사의 가상대결에서 박 전 대표와 어금버금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는커녕 당분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가 서울 구석구석을 돌면서 유세에 나서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음에도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안철수 원장이 미는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력전을 펼친 박 전 대표와 달리 안 원장은 단 한 차례 박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찾아 가볍게 지지를 표명했을 뿐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전 대표의 명성에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흔들림은 있을지라도 여권의 유일한 대선주자라는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선 영남과 충청권 등 8곳의 기초단체장 선거는 초반의 불리함을 뒤집고 한나라당이 모두 이겼다”며 “박근혜의 힘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도 “‘박근혜=무적함대’라는 생각은 흔들리겠지만 보수진영에 다른 대안이 없기에 박 전 대표 중심으로 여권이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 운영의 중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당분간 야권의 재편 등 정치권 상황을 관망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며칠 전 나 후보 사무실을 찾아가 정책수첩을 전한 것은 그가 평소 강조하던 신뢰 정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수첩공주를 캐릭터로 하는 페이스북 계좌(www.facebook.com/#!/parkgeunhye.kr)를 개설한 것도 신뢰를 매개로 대중과의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인식되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대응 수위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다른 측근 의원은 “그동안 내년 대선에서 겨뤄야 할 야권의 상대가 안 보여 힘들었는데 안철수라는 상대가 조기에 떠올라 편해진 면이 있다”면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데 박 전 대표의 성격상 야권의 흐름, 특히 안 원장의 움직임을 보면서 수동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5% 박원순 당선시켜-당분간은 정치행보 안보일듯- 안풍’ 위력 입증…태풍의 눈으로
박원순 후보의 당선에 안 원장이 기여한 공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9월 초 서울시장 출마 뜻을 살짝 내비친 것만으로 폭풍 같은 ‘안풍’을 휘몰아치게 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5% 안팎의 미미한 지지율에 머물던 박원순 후보에게 안 원장이 “꼭 당선되시라”는 말을 남기고 장외로 빠져나가자 박 후보는 단숨에 지지율 선두로 뛰어올랐다. 한나라당의 검증 공세에 박 후보가 고전하자 선거전 막판, 안 원장은 홀연히 다시 나타나 “투표합시다”라는 내용의 편지 한 장으로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켰다.
이 과정에서 안 원장은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들며 단숨에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선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인물은 바로 안철수”라는 말들이 나왔다.
안 원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가장 닮고 싶은 ‘시대적 멘토 안철수’, 그리고 ‘잠재적 대선주자 안철수’다. 그는 대선주자로서 아직 검증받은 바 없다. 그에게 대선에 나서겠다는 권력의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서울시장 출마를 고심했던 것도 ‘시장을 하겠다’는 욕망이 아닌 ‘고통스럽지만 져야 할 짐’이라는 자기희생이라고 여겼다는 게 가까운 이들의 설명이다.
어쨌든 주가가 더욱 치솟은 그에겐 대선주자로 나서달라는 주문이 밀려들겠지만, 당분간 그는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럴수록 그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합니다.” 당선소감을 읽어내려가는 박원순 후보의 목소리는
다 쉬어 중간중간 끊겼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이겼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표정에 한껏 묻어났다.
그를 둘러싼 지지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해냈다’는 감격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훔쳤다. 온통 수염에 뒤덮인 얼굴로 백두대간 종주를 중단하고 산에서 내려온 게 지난달 6일. 이후 정확히 50일 동안, 그는 기존 정치권의 관습과 문법에 맞서면서 어느덧 단단한 정치인이 된 듯했다.26일 자정께 당선이 확정되면서 그는 서울 안국동 캠프 상황실을 찾아 “상식과 원칙이 이겼고,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민이 시장이라는 정신은 온전히 실현되었으며, ‘사람이 행복한 서울’은 시정의 좌표가 될 것”이라며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서민들에게 11월이면 벌써 한겨울입니다. 취임 즉시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시의원들과 생각을 조율해 따뜻한 월동 준비를 하겠습니다”라며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선거 과정에 대해선 “네거티브가 심했는데, 제가 당한 것이야 제가 참을 수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것은 너무 미안하고 슬펐다”고 소회를 밝혔다.그는 이날 ‘시민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앞으로 그가 열어나가야 할 길은 걸어온 길보다 훨씬 험난해 보인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야권통합 등의 정치 일정에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의 무소속 시민후보로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대통합을 통한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뜻’을 확실히 정치권에 각인시킨 탓도 있다. 박 후보 선대위에 참여한 핵심 인사는 “박 후보의 당선으로 시민정치의 흐름이 확인된 만큼,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당선된 것 자체로 야권통합을 위해 이미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행정가로서 서울시장이 야권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역할을 맡거나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가 서울시 야권공동정부를 큰 갈등 없이 구성하고 끌어간다면 야권통합과 연대의 ‘모범사례’로서 간접적이지만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안팎의 기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 후보가 야권 통합논의 기구를 구성하면 여기에 참여함으로써 통합의 당위성에 무게를 실을 수도 있다.향후 야권통합 논의 과정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상당한 비중과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와 야권을 잇는 다리 구실을 박 후보가 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그는 이날 당선 뒤 “안 교수님은 저와 오랜 신뢰관계에 기초해 이번 선거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런 신뢰관계는 앞으로도 유지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선대위의 우상호 대변인은 “박 후보 스스로 만들어놓은 시민정치세력이 향후 예정된 야권통합 논의 과정에서 좀더 책임감을 갖고 조율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 무게추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박 후보의 정치적 근거와 바탕이 되는 시민사회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관심사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박 후보 선대위에 참여한 한 인사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박 후보의 정치권 진출로 당분간 시민운동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며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의 적절한 협력과 견제가 이뤄질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도 박 후보의 과제”라고 말했다
출구조사 결과를 세대별로 분석해 보면 30대가 박원순 야권통합 후보(무소속)를 지지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30대의 75.8%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 나경원 후보를 지지한 30대는 23.8%에 불과했다. 30대는 왜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을까. 그 목소리를 들어봤다.
△30대 직장인 유지은씨
“지난 5월에 결혼했는데 집 구하기 엄청 어려웠다. 남편 직장이 대전이라 강남 버스터미널 근처로 집을 구해야 하는데 가진 돈에 적합한 곳이 없었다. 결국 5개월을 끙끙 앓다가 잠실에 14평짜리 방2개짜리를 1억4천만원에 전세로 구했다. 가진 재산만 40억원이 넘는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이런 서민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것 같다. 주요 3대 공약이 재건축 규제완화 아니었나.나는 결혼 전 20회짜리 피부관리를 50만원에 받는데도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것도 결혼 전 일생에 한 번이다. 그런데 평상시에 1억원짜리 피부클리닉에 다니는 그녀가 서울시장이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30대 프리랜서 김현진씨
“우린 안다.고액 피부관리, 절대 못 받는다는 것을. 지금의 20·30대는 1억원 주고 피부 관리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일자리 없고, 집값은 수억대다. 인턴, 알바 등 비정규직 일자리로 먹고 사는 게 20대다. 우리가 박원순을 좋아해서 뽑은 게 아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극단적 거부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30대 인디가수 ‘브로콜리너마저’ 보컬 윤덕원씨
“천박한 자본과 권력,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구 정치권력에 대한 반발감으로 나를 포함한 젊은층이 결집했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열심히 일한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유통의 과정에 있어서 대기업에 유리하게 돼 있고, 대형 기획사들 위주로 짜여져 있다. 성과물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이 제일 문제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투표를 삼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경쟁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다. 경쟁하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모두 경쟁하고 있다. 그렇게 누적돼온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경쟁을 조장하는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성격의 투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10.26 서울시장 보선 최종 투표율이 48.6%로 잠정집계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8시 투표 마감결과 서울 유권자 837만4천67명 중 407만81명이 투표해 48.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4.27 분당 재보궐 투표율 49.1%보다 0.5%포인트 낮은 수치이나, 평일 실시된 보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높은 투표율은 '퇴근 투표' 때문에 가능했다. 이날 오후 6시 투표율이 39.9%에 그쳐 야권을 초조하게 만들었으나, 퇴근 1시간만인 이날 오후 7시 투표율이 42.9%로 상승하더니, 오후 7시에서 8시까지 한시간만에는 48.6%로 투표율이 5.7%포인트나 급등했다.
결국 오후 6시 퇴근 후 2시간 동안에 74만명(부재자투표 포함)이 투표장으로 몰리면서, 투표율을 단숨에 8.7%포인트나 끌어올리면서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승리를 확정지은 셈이다.
지난 4.27 분당을 재보선 때도 오후 7시 42.8%였던 투표율이 막판 1시간만에 투표율이 6.3%포인트 올라가면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극적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청와대는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9% 포인트 차이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나와 온종일 투표율을 주시하면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지만, 오차범위를 벗어나 패배한 것으로 집계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참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막판에 나 후보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해볼 만하다고도 생각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다"면서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니까 계속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모는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과 함께 연령대별 투표 성향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면서 개표함이 완전히 열리기 전이지만 결과를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날 오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투표 현황과 결과에 따른 국정운영 방향 등에 대해 논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청와대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시간대별로 나오는 재보선의 투표율을 보면서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이날 여느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출ㆍ퇴근 시간을 1시간 범위에서 조정하라고 수석실별로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청와대가 투표 결과에 민감한 것은 비록 이번 선거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여권에서 청와대 책임론이 불거지고 참모진 개편 요구가 대두될 수 있다는 전망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온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과 내곡동 사저 논란 등이 이번 재ㆍ보선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여당이 선거에서 큰 차이로 패배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반기 성공적인 국정 마무리를 위해 새롭게 진용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인적 쇄신 폭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이 25일 "이외수 소설가 등 상대후보가 자랑하는 파워 트위터러의 팔로워 수치를 확인하면
거의 기가 죽을 정도"라며 한나라당이 SNS에서 거의 왕따인 현 상황을 개탄했다.
정옥임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린, 같은 날 <아시아투데이>에 기고했던 칼럼을 통해 "오프라인 진영에서는 호각세인 대결 구도가 온라인상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긴장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는 기막힌 선거운동 환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어느 권력보다도,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손가락 파워의 역동성과 위력이 두드러진다"며 "여간해서 동요하지 않는 오프라인의 안정적 표심이 과연 얼마나 선방할 것인지도 선거의 관전 포인트"라고 탄식했다.
그는 또한 "과연 다른 나라의 선거에서도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아연할 정도"라며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와 얼마 전 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방증하듯 SNS는 이미 놀라울 정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며 거듭 SNS의 가공스런 파괴력에 전율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다윗과 골리앗의 승자는 다윗이고, 과거 중국의 인해전술이 반드시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역사의 잔상에 위안 삼으며 온라인상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당이 선거 후 다음 총선과 대선을 위해 개편, 강화, 심화해야 할 영역이 바로 SNS이라는 점은 불문가지"라며 향후 선거에서도 SNS가 가공스런 파워를 작동할 것으로 내다보며 대책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나경원, 진 것만은 아니다-국민정치인 자리매김-당내 입지 강화 예고
졌지만 지지 않았다.’ 정치인 나경원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얻은 성적표다.이번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의 ‘국민 정치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나 후보는 밤 11시께 캠프 사무실을 찾아 “선거 결과에 나타난 시민 여러분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정치권이 더 반성하고 더 낮은 자세로 변화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딱 네 마디를 던지는 사이 그는 울먹였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개인기를 평가받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나 후보가 강단 있고 콘텐츠도 풍부하다는 것을 텔레비전 토론회 등을 통해 보여줬다”며 “이번에 전국적 인지도를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콘텐츠 부재론’은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결점이었다.
나 후보는 2002년 정치 입문 이후 실상 정치적 좌절이 없었다. 자신을 정책특보로 부른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에서 패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음에도 2004년 비례대표, 2008년 지역구 의원으로 독자적 입지를 키웠다. 한 의원은 “서울시장만 준비해온 것도 아닌데 이번 패배를 정치적 좌절이라 보기 어렵고, 외려 당이 어려울 때 총대를 메고 선전했다는 평가가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확장성의 한계도 분명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선거 과정을 통해, 서민의 삶을 살아온 이는 아니라는 이미지도 강하게 심어줬다”고 말했다. 사학 재벌, 재산형성 과정, 피부클리닉·탈세 논란 등으로 주류 보수 정치인의 전형이 드러나면서 서민들과의 심리적 거리감도 선명해졌다는 얘기다. 자신의 지역구인 중구에서 패했다는 점도 그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의 당선에 민주당은 환호했다.
26일 저녁 8시 출구조사 결과 발표 순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는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한편에선 “이겨서 좋긴 한데…”라며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통합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당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더구나 호남 지역을 뺀 5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했다는 소식에 침통함이 감돌았다.
야권은 통합 국면으로 급속도로 빨려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통합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일대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는 그런 논의의 결론을 맺는 장이다.
당내에선 통합 논의를 서둘러 12월께 통합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 11월께 전당대회를 열어 통합 추진을 결의한 뒤 내년 1월께 ‘혁신과 통합’ 등 다른 정치세력들과 함께 통합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민주당과 다른 세력이 일대일로 통합하는 연합정당을 제안한 ‘혁신과 통합’의 ‘압박’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혁신과 통합’의 핵심 관계자는 “이번 선거 승리로 변화와 혁신이 시대적 화두임이 입증됐다”며 “민주당이 통합에 어떤 답을 내놓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도 통합의 ‘명분’을 부정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박원순 후보 선대위 대변인인 우상호 전 의원은 “더 큰 민주당으로 가자는 흐름이 대세”라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시민사회 세력, 부산·경남의 개혁 세력 등 여러 세력이 협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도권 싸움이 치열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박원순 후보일 때와 박원순 시장일 때는 위상이 다르다. 민주당의 협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바람’과 ‘박원순 당선’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허약해진 상황에서 제1야당의 위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또다른 당직자는 “어려운 선거를 민주당 중심으로 치렀고, ‘시민후보’로는 쉽지 않다는 경험을 했다”며 “민주당의 역할, 이길 수 있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이날 밤 당사에서 “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의 승리”라며 “이제 더 큰 민주당으로, 민주진보진영 대통합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날은 불투명해 보인다. 당내 경선 과정과 통합경선 패배, 사퇴 소동 등을 겪으며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로 어려움에 처한 박원순 후보를 지켜내면서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막판까지 선거판을 주도한 건 안철수 원장이었다. 손 대표 앞에는 당장 두 가지 과제가 놓여졌다. 본격적인 통합 논의의 테이블을 마련하는 일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안 문제를 지도력을 발휘해 돌파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나 후보의 당내 입지는 상당히 강화될 것”이라며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릴 경우 친이계에선 대안으로 나 후보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도전받는 정당정치 시스템/새정치 갈망 젊은 유권자/기존정당 대신 ‘멘토’ 선택
‘3연패’ 한나라 혁신 필요/민주도 새 인물 수혈 시급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최종 승리함에 따라 한나라당,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지난 9월 초 발생한 ‘안철수·박원순발 쓰나미’는 두 달도 안 돼 민주당, 한나라당을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이런 놀라운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열망이다.이명박 정부 들어 실업난과 양극화가 가중됐지만 기존 정치인들과 정당은 해결책을 거의 내놓지 못했다.20~30대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위로해 주는 ‘멘토들(안철수·박원순)을 정치적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둘째,
민주당·진보정당·시민사회의 연합정치가 위력을 발휘했다.1987년 6월항쟁 당시 이들은 힘을 합쳐 신군부 세력을 꺾어본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23년이 지난 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연합이 이뤄졌고, 2011년 4·27 재보선,그리고 10·26 재보선까지 연합정치가 성공을 거뒀다.기존 정치세력의 변화는 한나라당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한나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부터 이번 선거까지 세차례 패배함으로써 ‘삼진아웃’을 당한 꼴이 됐다. 특히 이번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치명적이다.
‘친이명박’-‘친박근혜’ 세력이 모처럼 힘을 합쳤고,보수 성향 언론 및 시민단체,대형교회까지 힘을 몰아줬는데도 비교적 큰 표차로 졌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이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 시스템을 유지한다면,내년 4·11 국회의원 선거,12·19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이번 선거를 초기부터 면밀하게 관찰해 온 김종인 전 의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이번 선거의 본질은 나경원 대 박원순 싸움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다.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박근혜 전 대표가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면 재집권의 기회가 사라질 것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박근혜 전 대표 중심으로 당 강령과 당명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수혈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빼고 가자는 얘기다.당장 홍준표 대표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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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통합을 해도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된다는 것도 입증됐다.새로운 시민적 요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과제를 안게 됐다.야권은 20~30대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갖춘 사실상 새로운 통합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통합이 아닌 선거연대’를 선호한다.따라서 당장은 민주당,‘혁신과 통합’,시민사회가 뭉친 불완전한 연합정당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결국 여권과 야권은 ‘변화’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내년 총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의원들 “당 쇄신” 한 목청
홍대표 체제는 유지한 채/개혁작업·조기 선거준비로/국면 돌파구 모색 나설듯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 큰 충격에 빠진 채 이렇게 입을 모았다.불과 5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온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신이 받아들 성적표를 미리 엿본 것과 같기 때문이다.예상보다 큰 격차에 충격이 더한 모습이었다.
서울의 한 의원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7%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지는 것으로 드러나자 “지더라도 격차가 5%포인트는 안 넘을 걸로 봤는데 너무 걱정스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서울의 한 중진 의원은 “민심이 이 정도라면 내년 총선·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006년 서울시장·경기지사 선거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0년 서울시장·경기지사 선거까지 ‘수도권 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선과 8·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10·26 서울시장 보선까지 줄줄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 의원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의원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대대적인 당 혁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특히 서울의 원희룡 최고위원은 사실상 지도부 동반 사퇴론을 제기하고 나섰다.원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년 총선·대선에서 지게 생겼는데 당권이나 대권 후보 대세론에 연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네거티브, 색깔론, 상위 10%에 기대는 구태정치와 단절하고 젊은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정당으로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즉각 동조하는 의견이 이날 밤까지 많지는 않았다.대체로는 ‘공동 책임론’과 ‘대안 부재론’을 들어 현 지도부를 유지하면서 당을 혁신하자는 게 낫다는 의견을 보였다.
서울 친박계인 구상찬 의원은 “청와대,홍준표 대표,박근혜 전 대표 등 누구도 이번 선거 결과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누구를 끌어내릴 일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함께 국민에게 잘못을 빌고 채찍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서울의 다른 초선 의원도 “현 지도부를 유지하면서 홍준표 대표와 당내 대선주자들이 참여하는 총선 대비 조기선대위를 꾸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선대위에서 정책과 정치 문화 등 당 개혁 방안,총선 전략,공천 준비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안에 대해서는 친박계에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한 재선 의원은 “지도부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홍 대표도 이날 밤 당사를 나서며 기자들에게 “서울시장을 제외하고 후보를 낸 8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해, 책임론에 미리 선을 그었다. 홍 대표는 “앞으로 수도권 대책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홍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추진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상임위별로 27일까지 에프티에이 이행법안 심의를 완료해 28일 본회의에서 에프티에이 비준안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압박했다.
당내에서는 “지도부와 친박계, 소장파 등이 현재의 기득권과 내년 총선 공천 등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현 체제 흔들기에 나설 주체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의원은 “전면 쇄신론이 얼마나 내부 동력을 얻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역풍… 나경원, 자기 지역구서도 뒤져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48)가 끝내 고개를 떨궜다. 유력한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나려던 꿈이 좌절된 것이다. 그는 지역구인 중구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나 후보는 패배가 확정된 직후 “정치권이 더 반성하고 낮은 자세로 변화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나 후보는 박 당선자에게 “새로 당선될 시장이 서울의 먼 미래를 위해서 훌륭한 시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판사 출신인 나 후보는 2002년 이회창 전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서 당선돼 보수진영의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내 경선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패배했지만 올해 7월 전당대회에서 3위로 지도부에 입성하는 만만찮은 득표력을 보였다.
이번 선거는 그에겐 거물 정치인으로 부상할 도약의 기회였다. 그러나 출마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홍준표 대표(57)는 “탤런트 정치인”이라고 흔들었고 안철수 신드롬에 맞서 보수 시민사회에서 이석연 변호사(57)를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선거에 나선 그는 정권 심판론과 안철수 현상에 부딪혔다.그나마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59) 출전이 위안거리였다.나 후보는 초반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해 박 후보의 상승세를 꺾는 성과를 얻었다.TV 토론에서도 화려한 언변을 선보이며 박 후보를 몰아붙였다.하지만 거기까지였다.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가 돌출했고,고가의 피부과 출입과 부친 소유 재단 학교의 감사 청탁 배제 의혹이 불거지면서 ‘특권층 후보’라는 역풍을 맞았다.결정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의 등장이었다.나 후보는 “예상했다”고 했지만 마땅한 대항 카드를 마련하지 못했다.결국 고색창연한 ‘색깔론’을 꺼내들었지만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나 후보 패배의 저변에는 정권 심판론이 깔려 있다.나 후보는 지역구인 중구에서도 4.3%포인트 차이로 박 후보에게 졌다.나 후보의 정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당내에서는 열세로 시작한 선거에서 선전하면서 역량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나약한 이미지 정치인”에서 선거를 거치며 “강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에서는 졌지만, 정치인 나경원의 그늘과 희망을 동시에 남긴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 한계… 빛 잃은 ‘선거의 여왕’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59)가 다시 시험대에 섰다. 10·26 재·보선 선거지원에 심혈을 쏟았지만,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박 전 대표는 당 지도부와 나경원 후보(48)의 러브콜을 받고 고민 끝에 출전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과 실무진은 반대했지만 “승패를 계산하지 말자”며 결단을 내렸다. “이번에 돕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당내외 보수세력의 압박도 강했다. 안철수 바람에 대세론이 흔들린 상황에서 선택의 길에 내몰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4년 만의 첫 출정이었다.
박 전 대표의 선거 지원은 예상보다 강력했다.나경원 후보를 “우리 후보”로 치켜세우며 손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박 전 대표의 지원은 나 후보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았다.현 정권에 등을 돌린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재·보선 결과는 박 전 대표에게 큰 부담을 지울 것으로 전망된다.박 전 대표의 수도권 파괴력은 높지 않았다.한 수도권 의원은 “솔직히 박 전 대표하고 나 후보하고 서울에서 인기는 같다.박 전 대표가 실제로 도움이 안됐을 것”이라고 밝혔다.특히 20~40대가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55)에게 압도적으로 투표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박 전 대표 파괴력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박 전 대표의 수도권 영향력이 미미한 것으로 나오면서 내년 총선을 앞둔 수도권 의원들의 박근혜 의존 현상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은 더욱 아픈 대목이다.안풍(安風)은 박풍(朴風)보다 위력적이었다.박 전 대표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부인했지만 서울시장 보선은 ‘안철수·박원순’ 대 ‘박근혜·나경원’의 팀대결이었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 민심을 안 원장이 박 전 대표보다 더 파고들었다.박 전 대표가 가진 확장성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이로써 ‘40 대 0’의 승리를 기록했던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은 빛이 바랬다.박근혜 대세론은 위기에 처했다.안 원장과의 가상 여론조사 대결이 아닌 실전에서 패배한 것이다.
관심은 박 전 대표의 선택이다.박 전 대표는 27일 광주에서 열리는 최측근 이정현 의원(53)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다.지난 16일에는 ‘수첩공주(박근혜)’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대권 행보를 서두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내년 1월로 예정됐던 대선캠프 출범을 오는 11월로 앞당길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 개혁을 내걸고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친박계 핵심 인사는 “이 같은 당을 두고 총선도 대선도 어렵기 때문에 과거 천막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도 박근혜당으로 갈지 말지 분기점에 서는 것이다. 위기의 박근혜가 내놓을 착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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