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遇했던 國舅와 수원 이해 길라잡이: 심온선생묘, 수원박물관 - 용인, 수원[4]
심곡서원에서 심온선생묘로 가는 길은 조금 주의를 요한다. 좌회전하여 큰길인 수지로에 들어서 조금 가면 오른쪽 산록에 정암 조광조선생의 묘역이 있고, 그 지점에서 43번국도(포은대로)에 합류하게 된다. 길은 곧 고가도로 구간이 되는데 고가가 끝나자마자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가야 한다. 이 진입로를 놓치게 되면 다시 한 바퀴 돌아 같은 시도를 반복해야 한다. 현재 이 일대는 광교택지개발지구에 인접해있어 어수선한데, 공사가 완료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포털지도들에는 선생묘 서쪽에 광교역사박물관이 들어선다고 되어 있고, 옆에 있는 조선 태종의 아들 혜령군 이지의 묘 이장을 둘러싼 수원시-경기도시공사간의 분쟁도 아직 미해결 상태인 것 같다. 아무튼 혜령군의 묘는 진입로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일단 오늘은 건너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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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는 심온선생묘(沈溫先生墓 팔달구 이의동 산13-10)의 주인공 심온(1375~1418)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중옥이다.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의 국구[왕비인 소헌왕후의 아버지]로 청천부원군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안효이다. 세종 원년(1418)에 영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발생한 무술옥사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에서 화를 입었으나, 이후 무고로 판명되어 문종 1년(1451)에 복관되었다. 시호(諡號)는 안효(安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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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묘역은 매우 넓었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앞쪽에는 많은 나무와 怪石, 한반도 모양을 닮은 자그마한 연못 등 조경이 아름답게 되어 있고 그 뒤로 산자락 끝에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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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는 홍살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신도비각이, 정면에 사당이 있다. 사당의 이름은 시호에서 따온 安孝祠이며 규모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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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장대석을 이용해 상ㆍ하 2단으로 구분하였는데, 위쪽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공의 외손자인 안평대군 이용이 글씨를 쓴 묘표와 상석이 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장명등이 있고, 그 좌우에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서 세우는 문인석 1쌍이 있다. 한편 묘역 입구의 비각에는 신도비가 안치되어 있는데, 영조 7년(1731)에 공의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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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은 태종의 왕권강화책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집권 이후 끊임없이 주변 인물들을 압박하며 왕권강화에 골몰해온 태종은 집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처남들을 죽였고, 많은 공신들도 죽이거나 귀양 보냈으며, 아들 세종의 장인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세종은 장인의 죽음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차마 자신의 아버지가 한 일을 부정할 수는 없었나 보다. 위에 언급한 문화재청의 설명문에 따르면 심온은 외손자 문종에 의해서 복권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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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묘를 돌아 나오며 해결되지 않는 의아한 점이 있다. 그의 부인 순흥안씨의 묘는 현재 경기도 안성에 있는데 순흥안씨가 1444년(세종 26년) 11월 24일에 죽자 세종은 안씨의 무덤을 용인시 수지면 이의리[아마 현재 심온묘 인근이 아닐까 생각된다.]에 예장(禮葬)하도록 하였다. 이후 1467년(세조13) 5월 3일 왕명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미 문종 때 심온이 복권되었는데 왜 오히려 이의동에서 안성으로, 외손자인 세조에 의해 천장되었으니 이상하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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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사박물관으로 향한다. 심온묘에서 지근거리인데 여기도 조금 조심해야 하는 것이 왼쪽 43번 국도, 포은대로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좌측 차로로 옮겨야 한다. 곧 나오는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우측 2개 차로는 영동고속도로 동수원나들목으로 들어가는 길이니까.
수원박물관에는 수원역사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 사운이종학사료관이라는 세 명칭이 병기되어 있다. 자세한 사정은 알아보지 않았지만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전시공간도 이렇게 셋으로 구분되어 있다. 메인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역사박물관 안에는 수원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지만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박유명초상과 동종만을 눈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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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489호 박유명초상(朴惟明 肖像)의 주인공인 박유명(朴惟明 1582∼1640)은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고, 1623년에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박유명 초상>은 낮은 오사모를 쓰고 과장된 둥근 어깨를 하고 있으며 단령이 뒤로 뾰족하게 뻗친 모양, 바닥의 채전 등에서 17세기 공신 도상의 형상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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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팔달문동종(八達門銅鐘)은 고려 1080년(문종 34) 2월, 개성에서 주조되어 수원 만의사에서 사용되다가 숙종 13년(1687) 3월, 만의사 주지승 도화가 다시 주조되었다.[문화재청 설명문인데 결국 조선 숙종 때 再鑄造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정조 때 화성축성과 함께 파루용의 기능으로 전락하여 화성행궁 사거리(종로)에 종각 설치 후 이전되었으나 1911년 일제에 의해 정오 및 화재경보용으로 팔달문 누상으로 다시 이전·설치되어 팔달문동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높이 123cm, 구경 75cm의 육중한 대종(大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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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건립한 상설전시 서예 전문 박물관으로, 2003년 유명 서예가인 근당 양택동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물을 계기로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현재 소장 유물은 약 6,000여점에 달한다.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예의 이해’, ‘서예의 감상’, ‘문방사우’ 등으로 전시 구분되어 있고, 중요 작품으로는 영조와 정조가 친히 쓴 어필첩 등이 있다. 서예박물관 쪽에는 보물 제1631-3호 영조어필-읍궁진장첩(英祖御筆-泣弓珍藏帖)과 보물 제1675호 박태유 필적 백석유묵첩(朴泰維 筆蹟 白石遺墨帖)이 있을 것 같지만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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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이종학사료관은 수원 출신의 서지학자이자 자료수집가인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였으며, 선생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일제강점기의 자료와 금강산, 독도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유족들은 생전에 선생이 수집한 자료 2만 여점을 수원시에 기증하였고 이들 유물 중 ‘조천증행록’, ‘금강산 10폭 병풍’, 각종 수원관련 사진자료 및 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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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밖으로 나간다. 먼저 건물 입구 왼쪽에 있는 자그마한 비석부터 살펴본다. 槐木亭橋라고 새겨져 있다. 정조의 현륭원 원행길에 이정표로 세운 비석 가운데 하나인데 이 비석을 비롯한 다섯 기의 비석이 지난 2006년 ‘화성 관련 표석 일괄’이란 이름으로 수원시 향토유적 제16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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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당에는 고인돌도 한 기 놓여 있다. 금곡동고인돌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 고인돌은 칠보산 자락에 있었는데 택지개발에 따라 이 박물관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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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박물관 앞에 대개 두 마리의 석수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두 마리의 거북이 있다. 꽤 큰 체격인데, 보기에 오른쪽 것은 왼쪽 것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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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 쪽으로 나가니 귀부에 이수까지 갖춘 번듯한 비석 한 기가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府使 李時白 善政碑’라고 새겨져 있다. 이시백[李時白 1581년 ~ 1660년]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돈시(敦詩), 호는 조암(釣巖)이다. 인조반정의 주역 중 하나인 李貴의 아들이자, 본인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연양군(延陽君)에 봉해졌다. 일곱 번이나 판서를 역임했고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청빈해 빈한한 선비집 같았다 한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이시백은 1624년부터 1629년까지 수원도호부 부사로 재임하였으며, 그 인연으로 이 선정비가 1629년(인조7)에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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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물관 정문 쪽까지 내려가 여기서부터 옥외에 전시된 유물들을 살피면서 올라오기로 했다. 먼저 비석 및 문인석 일부를 지나쳐 동래정씨 약사불(향토유적 13호)을 본다. 석불은 가운데 약사여래상, 양옆으로 시동이 새겨져 있다. 삼존상이 동일석으로 조각된 것으로, 본존은 연화대좌위에 좌상으로 새겨져 있고 양쪽에는 협시상으로 동자상을 입상으로 조각하고 있다. 본존의 높이는 120cm로 두광, 육계, 이마 중앙에 백호, 삼도, 통견의의 표현을 하고 있다. 화서동 숙지산의 동쪽에 자리한 동래정씨 세장지 아래쪽에 자리하던 것을 2008년 이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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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정문에서부터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진입로의 오른쪽에는 각종 비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비석들은 수원의 역대 목민관들의 불망비 및 선정비로서 모두 37기에 이른다. 이 비석들은 수원역대목민관송덕비군이란 이름으로 1998년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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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효자문도 하나 있는데, 전주류씨 효자정문(향토유적 제17호)이다. 상촌의 전주 류씨 사호공파의 종가인 류원상씨 댁 대문 옆에 있었으나 2008년 수원박물관으로 이전 · 설치하였다. 정려각 안에는 류태명과 류의 효자 정려가 상하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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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석만 빠진 듯한 모습의 석등으로 생각되는 부재도 하나 놓여 있다. 하지만 옥개석의 모습이 일반적인 석등과는 다르고, 원래 어디 있던 것인지, 무엇인지 설명이 없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 때 제작된 석등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니 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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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동 석곽묘(향토유적 7호)는 장안구 이목동에서 발굴조사되어 이전 · 복원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무덤이다. 이목동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2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구멍무늬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돌칼 등과 통일신라시대의 굽다리완, 뚜껑달린 굽다리접시, 병, 완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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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설명문 출처: 문화재청, 수원시청, 수원박물관사업소 홈페이지]
첫댓글 날이 많이 춥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청주...
감사합니다. 푸른바다님도 건강한 겨울 보내시길 빕니다...
어릴 적 동무들은 산소를 무서워 하였는데 나는 산소에서 꼬닥꼬닥 졸다가 오빠인데 추도곤을 당하고는 하였습니다.
지금도 묘나 부도나 사리탑을 만나면 이상하게 잠이 옵니다. 묘 답사기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묘소와 관련한 특별한 경험이 있으시군요. 다른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 못할 것 같은데요.
수도권 답사는 묘역을 빼면 갈 데가 많지 않으니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카페 분들은 별 흥미가 없는 것 같지만 혹 한 두 분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좋고, 아니더라도 제가 다녀온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