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고배작품
위 조 지 폐
질척질척 도로가 젖어 있었다. 새벽에 비가 왔는데 또 물청소차가 지나간 듯 하였다. 표응표가 운전하고 있는 4천5백cc 8기통엔진의 고급승용차는 흙탕물이 튀어 금방 지저분해졌다.
큰 거사를 앞두고 있는 표응표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앞의 두 건을 무사히 넘겨 한층 고무되어 있던 기분도 가라앉았다. 재래시장을 택해 사용했던 위폐[위조지폐]. 상인은 오늘 나온 5만원권 새 돈에 신기해하더니 잔돈이 없는지 여기저기 몇군데를 들러 거스름돈을 가져왔다. 그만큼 경제 한파는 재래시장까지 집어삼켜 하루 장사를 해도 5만원짜리 하나 바꿀 수 없을 만큼 어려워져 있었다. 그는 재래시장을 나와 H백화점 지하마트에 들렀다. 재래시장보다는 부유한 그들의 시장바구니도 경제 한파 때문인지 그다지 흥청대지는 않았다.
재래시장 3만7천원, 백화점 2만4천원의 거스름돈을 받아 쥔 표응표는 그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최소한 위폐를 받아들고 한번쯤 불빛에 비춰 숨은 그림이라도 찾아 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 나온 돈을 받고 마냥 신기해 할 뿐 의심 같은 건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그는 40년을 기다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교도소신세를 진 건 2년 전이었다. 그는 사기꾼에 악랄한 치기배였다. 술 취한 취객을 야구방망이로 쳐서 금품을 약탈하거나 힘없는 부녀자를 겁탈하고 지갑을 뺏었다. 그에게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가락동 새벽시장에 우거지를 주우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보상금으로 나온 약간의 돈은 외삼촌이란 자가 가로채고 그를 고아원 앞에 버렸다. 고아원을 탈출한 그는 외삼촌 집 앞에 숨어 있다가 술에 취에 귀가하고 있는 외삼촌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금품을 털었다. 돈은 좋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큰누나 나이나 됐음직한 여자가 어린 그 앞에서 옷을 벗었다. 돈을 만들기에는 외삼촌에게 썼던 방법이 제일 쉬웠다. 그 후 그는 돈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았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더니 나이 마흔에 전과7범이 돼 있었다. 5년 전 1심에서 5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됐을 때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이 찾아와 흥정을 했다. ‘2심에서 형량을 반으로 줄여줄테니 3천만원만 쓰시오.’라는 그의 말에 ‘5년 더 살테니 그 3천만원 날 갖다주슈.’하니 두말도 않고 돌아갔다.
2년 전 표응표가 출감을 1달 남겨 놨을 때, 범털-부유한자-이 한 명 들어왔다. ‘경제방’으로 갈 위인을 간수가 뭔가 콩고물을 노리고 강, 절도방인 표응표방에 집어넣은 것이다. 다단계인가 뭔가로 사기친 돈이 몇백억이라고 했다. 역시 돈의 위력은 빵[감방]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그날부터 표응표 방에 음료수에 쇠고기육포에 차입이 넘쳐났다. 감방에서 얻어먹는 것을 낙으로 사는 죄수들은 모두 살살 기며 늙다리에게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간수까지 방을 기웃대며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십니까?’ 하고 호의를 베풀었다. 표응표가 ‘씨팔 어디 개털[빈곤한자]기죽어 살겠나.’하니 늙다리가 ‘젊은 사람이 위아래도 모르고 욕지거릴 하면 되는가.’하며 젊잖게 꾸짖는다. ‘이 영감탱이가 여기가 당신 집 안방인줄 알아 어디서 훈계야.’하며 대드니 ‘이놈아 넌 어미애비도 없냐.’하고 맞받아친다. ‘그래! 다 뒈지고 없다’하니, ‘이런 후레자식.’하면서 차입품이며 세면도구를 내 던진다. 간수가 달려오고 다른 죄수들이 뜯어말려 싸움은 일단락됐다. 표응표가 늙다리를 죽일 듯 노려보니 그 역시 씩씩대며 분을 못 삭이고 있었다. 그때 늙다리 곁에 있던 죄수들이 뭐라곤 가 늙다리에게 귀엣말을 했다. 순간 늙다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마도 표응표가 어떤 죄를 짓고 들어왔는지 얘기해 준 것 같았다. 늙다리가 간수를 찾았다, 표응표는 ‘방을 바꿔 달라는 말을 하면 영감이 이방을 나가기 전에 죽는다.’라고 말했다. 늙다리는 간수에게 아무런 말도 못했다. 표응표가 잠자리에서 혼자 말했다. ‘영감, 눈을 뜨고 자야할 거야. 내가 언제 목을 밟아 부러뜨릴지 모르니까.’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늙다리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이쿠, 감방장님 제가 늙어 치맵니다. 부디 화 푸시고 이 육포 좀 뜯어보십시오.’하며 차입한 쇠고기육포를 들고 표응표 곁으로 기어왔다. 표응표는 늙다리가 들고 있는 육포를 후려쳤다. 순간 늙다리 얼굴이 파랗다 못해 까맣게 변했다. ‘영감, 날 거지새끼로 알아? 어떤 새끼가 주절댔어? 내주특기가 뒤통수 뽀개는 거라구,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고 했는데…….’ ‘사, 살려주십시오.’ 늙다리가 표응표의 팔을 잡고 울며 애원했다. ‘내 평생소원이 큰 돈 만져보고 뒈지는 거야.’ ‘네?!’ ‘씨팔, 영감이 사기치려고한 게 한두가지가 아닐 거 아냐. 그중에 한 가지만 내게 얘기해달라구. 나도 나가서 크게 한탕 좀 하게.’ ‘아! 예!’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위폐 만드는 방법이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을지로5가를 통과한 4500CC의 표응표의 자동차는 청계천을 지나 종로5가에서 4가쪽으로 좌회전을 했다. 4가를 지나자 막 점등으로 화려한 보석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표응표는 5만원권 위폐 두 다발[천만원]을 뒷 자석에 있는 2개의 007가방 중 한 개를 열고 꺼내 양쪽 안주머니에 한 다발씩 나눠넣고 차에서 내렸다. 언제나 범죄를 저지를 때면 그렇듯 심장에서 두방망이질 해대는 소리가 났다. 머리도 윙윙거렸다.
“병신 같은 새끼야 돈이 생기는 일이야. 돈 몇 푼에 니가 부숴버린 골통수를 생각해봐. 이건 그보다 훨씬 가벼운 죄야.”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보석상을 향해 걸어갔다.
늙다리영감은 종이가 위폐의 관건이라 했다. 돈을 만드는 종이는 국내에서도 구할 수 없고 수입도 안 된다 했다. 유로화가 우리나라 돈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영감 나랑 장난해!’ 표응표가 거두절미 하라고 했다. ‘중국에서 돈 만드는 종이로 문구용품을 만들어 수입을 하는 겁니다. 전지 1/4 크기의 스케치북형태로 수입 한 후 용수철 부분을 재단하고 앞뒤 표지를 떼어내면 다시 돈 만드는 종이가 되는 거죠.’ 영감은 대단한 아이디어라며 입에서 침을 튕기며 제 자랑을 했다.
“그럼 인쇄는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소?”
표응표가 영감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아이고 무슨 말씀입니까. 상품권을 찍어도 경찰 입회하에 찍는 겁니다.”
표응표가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컬러복사기를 사용하는 겁니다. 컬러복사기는 사무실만 있으면 임대도 해줍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혼자 사무실에서 작업하기엔 안성맞춤이죠.”
인쇄는 기계와 잉크 온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컬러복사기는 색상이 완벽하게 똑같다고 했다. 대전의 지폐박물관에서 확인까지 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돈에는 위조방지장치가 여러개 있다고 하던데 컬러복사기에 복사가 된단 말이오?”
“안되죠. 그러니까 돈이 처음 나오는 날 똑같이 위폐를 만드는 겁니다. 진짜돈가짜돈 구분이 안 될 때 위폐를 사용하고 튀는 겁니다.”
“어서 오십시오. 뭘 찾으세요?”
보석상 상인들의 가벼운 호객행위가 벌어졌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있을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불경기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보석상까지 호객을 할 만큼 절실하게 만들었다. 표응표는 문에서 가까운 적당한 가게를 물색했다. 재래시장도 대형마트도 속였다. 보석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앞에 사용했던 위폐가 벌써 탄로 나서 경찰이 그를 쫓고 있을 것만 같았다. 표응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위폐 만드는 방법을 다 전수한 늙다리가 정색을 하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조심스레 말했다.
“위폐를 만들다 걸리면 무기징역입니다. 그러니까 다시한번 잘 생각해서 하시는 게…….”
그러다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멈췄다. 표응표가 눈을 부라리고 죽일 듯 노려봤기 때문이다.
“씨팔 늙은이야. 진짜 내가 가짜 돈이나 만들려고 그딴 걸 물어 봤는지 알아? 출감날짜 받아놓고 하도 시간이 안 가 물어봤지.”
“그렇죠? 나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늙다리도 환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진짜 만들면 안 됩니다. 잘못되면 인생 끝장이라고요.”
그는 재차 다짐을 했다. 그 눈은 진정으로 걱정하는 눈이었다. ‘영감 이런 큰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난 내 심장을 꺼내다 팔 수도 있어.’하며 앞의 모든 걱정을 깨끗이 잠재웠다.
“어서 오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표응표의 생각을 깨웠다.
“선물하실 건가요? 골라보세요. 카드도 됩니다.”
표응표가 걸음을 멈추자 여자가 적극적으로 호객을 했다.
“현금이면 좀 깎아줍니까?”
그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귀염성 있는 동그란 얼굴에 눈이 크고 살집이 적당히 오른 표응표 타입의 여자였다. 그녀에게서는 풍족한 자만이 느끼는 도도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아무리 도도한 것들도 돈 앞에선 벌거숭이가 된다.’고생각하며 표응표가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현금이신데."
여자가 웃으며 소형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얼마나 깎아줄 거요?'
"어머, 땀 좀 봐. 이것 좀 시원하게 드세요. 가계가 조명 때문에 좀 덥죠."
여자는 손님을 반은 잡았다는 듯 뚜껑을 딴 음료수를 건네며 예쁘게 웃었다.
"저기 행운의 열쇠는 몇 냥 짜립니까?"
표응표는 음료수를 반쯤 들이켜고 진열장 가운데 놓인 제일 큰 열쇠를 가리켰다. 살짝 곁눈질로 여자를 보니 큰돈이 남지 않는 순금구매 손님에 적이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여자의 실망따위는 모른다는 듯 계속 열쇠를 주시했다.
"순금은 깎아드리지 못해요 금시세가 뻔하잖아요."
여자가 진열장을 열고 제일 큰 순금열쇠를 꺼냈다. 몸을 숙인 그녀의 윗옷이 약간 벌어지면서 가슴위의 통통한 살이 드러났다.
"거 엄살은, 약속은 약속인데 10원이라도 깎아줘야죠."
여자가 진열장 위에 헝겊을 깔고 올려놓은 순금열쇠를 집어 들면서 표응표가 말했다.
"그럼요, 10원이야 깎아드려야죠."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대답을 했다.
"얼맙니까?"
"오늘 금시세가 16만8천원이거든요. 그러니까 닷냥은……."
그녀는 손바닥에 계산기를 놓고 두들겼다.
"8백4십만원이네요."
"8백에 합시다!"
"순금은 그렇게 많이 안 남는다니까요."
여자가 예쁘게 눈을 흘기며 이야기했다.
"그럼 관두슈, 여기아님 금파는 가게가 없나."
치기배인 표응표는 금의 도매값을 뻔히 알고 있었다. 오늘 시세가 닷냥에 대략 6백75만원. 세공비를 빼고도 백만원은 남는 장사였다.
"사장님 엉터리! 하두 장사가 안 되니까 드리는 거예요. 수표시죠?"
"아니요. 현금이요."
표응표가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위폐가 손에 들어왔다. 갑자기 늙다리의 환청이 다시 들렸다.
‘걸리면 무기징역이요, 평생을 감옥에서 썩는다구요.’ 그의 말이 귀에 윙윙 울렸다. ‘내가 돈으로 그 감옥을 사지.’ 더 이상의 환청은 없었다.
"그렇죠. 돈을 차에 두고 오신 거죠?"
여자는 표응표가 처음 차에서 내려 들어오는 것을 다 지켜본 것 같았다.
"아니오."
표응표는 안주머니에 있던 5백만원 위폐 두 다발을 꺼내 진열장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곳도 들려볼걸 그랬단 생각을 했소."
"어머! 오만원권 신권이네."
여자는 표응표의 말을 짐짓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오늘 나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처음 봐요. 용케도 구하셨네요."
표응표가 두 번째 다발을 뜯어 일련번호로 40장을 뗀 뒤 여자에게 건넸다.
"세아려 보시오."
"세긴요, 일련번호 맞춰보면 뻔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도 지폐 계수기 쪽으로 돈을 가져갔다.
"촤르르르르"
기계가 돈을 세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꼭 맞아요. 백육십 장."
말을 하며 여자가 위폐 한 장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표응표는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심장이 요동을 쳤다. 등에서 흐르는 땀이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이줄줄 흘렀다.
표응표는 오늘아침 일찍 한국은행에 가서 5만원신권으로 20장(100만원)을 바꿨다. 그는 늙다리가 가르쳐준 대로 인쇄소에 들려 5만원짜리 가짜 돈을 찍었다. 가짜 돈 앞 중간에 ㅇㅇ단란주점을 넣고 그 밑에 ‘본 권을 지참하신 분께서는 술값에서 5만원을 할인해 드립니다.’ 라고 작은 글씨를 인쇄해 넣었다. 종이의 두께는 돈과 똑같은 65%의 모조지였다.
"이렇게 얇은 종이 갖고 홍보가 되겠습니까?"
인쇄소 사장이 걱정을 했다.
"비닐코팅을 할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는 눈꼽 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낸 전단지 100장을 밑에 깔고 100장의 위조지폐를 올려놓은 뒤 다시 전단지 100장을 까는 방식으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숨은 그림 쪽은 0.5%, 전체적으로는 0.1%의아미를 깔아 인쇄를 해야 돼요. 그래야 불빛에 비쳤을때 그림도 나타나고 컬러복사기 토너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방지할 수가 있어요.’ 늙다리는 숨은 그림 공정까지 세심하게 설명했었다.
"네 틀림없네요."
여자가 숨은 그림을 보고 진폐임을 확인한 듯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표응표는 마음이 조급해져 차있는 곳까지 한걸음에 내닿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가 차 있는 곳까지 배웅한답시고 쫓아 나왔다. 배웅은 하는 말이고 아마 승용차번호를 확인하려는 수작일거라고 표응표는 생각했다. ‘헛수고 하지 말어, 그 번호는 똑같은 급 차량에서 떼어낸 다른 차번호니까.’ 그랬다. 표응표는 완전범죄를 하기 위해서 4500cc최고급 차량을 렌트한 뒤 인천공항 장기고객 주차장에 가서 똑같은 차량의 넘버를 떼어낸 뒤 바꿔달았던 것이다. 번호를 떼어낸 차량은 덮개를 씌워 번호판 뗀 것을 들키지 않게 세심한 신경을 썼다.
"안녕히 가세요."
여자는 운전석 옆까지 와서 깍듯이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자 여자의 가슴살이 또 들어났다. 표응표가 애써 외면을 하고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청소물차가 물을 튕기며 지나갔다. 옷에 물이 튀었는지 소프라노 톤으로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차에서 내려 여자대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음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강남 어느 구청에선가 처음 시작했다는 물청소는 지금은 서울시내 모든 구청에서 실시하고 있었다. 그 물청소가 얼마만큼의 청소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사고를 유발시켰으며. 남의차를 더럽히고 도로를 망가뜨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런 시민의 원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물차는 밤새 비가 온 날 아침에도 충실하게 도로에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닷냥짜리 황금열쇠는 물차로 인해 격했던 표응표의 기분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그는 종로3가보석상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로가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문짝에 얼룩진 흙탕물의 잔해가 눈에 띄었다.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보석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위폐대신 황금열쇠가 들어있었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보석상 앞에 ‘다이아, 14K, 18K, 24K고가매입’ 이라는 글씨가 그의 눈에 띄었다.
“어서 오세요. 뭘 찾으세요.”
그가 들어가자 주인 인 듯한 30대 후반의 조금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자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팝시다.”
표응표가 황금열쇠를 진열대위에 올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주인이 표응표와 열쇠를 한번씩 번갈아 보더니 열쇠를 집어 저울위에 올려놓았다.
“닷냥짜리네요.”
저울눈금을 확인한 그는 태극마크를 보면서 말했다.
“얼마 줄 겁니까?”
“육백 드리지요.”
그는 금값을 너무 후려 친 것에 미안했든지 표응표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오늘 시세대로 합시다.”
표응표가 뭔가 아는 티를 내자 그가 금방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두 좀 남아야지 아직 개시도 못했어요.”
“육백 오십 주쇼.”
“육백사십, 더 이상은 절대 안됩니다.”
그는 손사래까지 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더 버티면 오만원은 더 받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현금으로 주슈.”
“자기앞 6장 하구 40은 현금으로 드릴게요. 신분증을 좀.”
“거참 귀찮게시리.”
“통과의례라는 거 다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세요.”
표응표는 평소 때라면 세운상가 뒤 나까마[도매] 골목을 찾았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표응표도 업자로 통했다. 얼굴이 곧 신분증이었고 문제가 될 만한 금은 녹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곳은 오후6시면 다 철수 하는 것을…….
“다른 신분증 없죠?”
얼굴이 다 지워진 구형 운전면허증 을 보고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됐어요, 됐어. 열쇠 안 팔 거니까 이리 줘요.”
표응표는 순간적으로 열이 확 뻗쳤다.
“그냥 물어 본건데 뭘 화까지 내고 그러십니까.”
그자는 표응표와 궁합이 잘 안 맞는지 말하는 투 하나하나가 표응표의 신경을 건드렸다.
돈을 받아들고 차로 돌아오자 언제 갖다 붙였는지 주차위반딱지가 붙어있었다. 표응표는 주차위반 딱지를 보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
“인천공항에 있는 차가 종로에서 주차위반했다고 딱지가 날아오면 참 기막힐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열쇠를 팔아치웠던 보석상주인이 표응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식은 원래 심통이 꼬인 놈이군.”
그는 차를 몰고 종로2가 쪽으로 가며 새로운 범행 장소를 물색했다. 간혹 마음이 움직이는 보석상이 있기는 하였지만 퇴근시간과 겹친 시간대로 인해 도저히 주차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약간의 공간이 생겨 주차를 하고 막 내리려는 순간,
"호르르륵"
호각을 불며 교통경찰이 달려왔다.
"지금 정신이 있는 겁니까? 여긴 버스정류장이에요."
표응표는 두말도 하지 않고 차를 빼서 줄행랑을 쳤다. 그의 40년 인생은 경찰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다보니 경찰만 보면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듯 일단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이 몸에 베어있었다. 그는 종각에서 조계사 쪽으로 우회전을 했다. 그러자 바로 앞에 물청소차가 또 물을 뿌리며 가고 있었다.
“야! 개자식들아 밤새도록 물을 뿌려 댈 작정이냐.”
그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물차를 추월했다. 차는 창덕궁 쪽 담을 타고 가다가 종로4가 쪽으로 빠져나가서 이번에는 종로3가에서 비원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D극장을 조금 지나자 소방서 못 미쳐 제법 큰 공간이 나타났다. 그는 그 공간에 주차를 하고. 자동차 뒷좌석에 있는 두 개의 007가방 중 위폐 두 뭉치를 꺼냈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극장 일층에 있는 보석상을 향해 걸어갔다. 몸이 굳고 가슴에선 또다시 두방망이질이 시작됐다.
3층 이상이 영화관인 이 건물은 예전에는 전체가 다 영화관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는 대형영화관 한 곳에서만 영화를 개봉했었다. 그래서 히트한 외화라도 상영하게 되면 극장표를 사려는 관람객이 종로3가 지하철역입구까지 늘어서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진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어려운 경제 때문인지, 한창 관람객으로 붐빌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이 한산했다, 손으로 눌러 여는 자동문이 열리자 양쪽으로 금과 보석 목걸이 등이 전시된 진열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열장 두세 개의 넓이마다 제각기 주인이 달랐고 그 행렬은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까지 이어졌다.
"손님, 뭘 찾으세요?"
"구경하고가세요."
"안 사셔도 괜찮아요."
황금열쇠를 사러 들어갔던 보석상보다 조금 더 호객행위가 심했다. 여기는 거의 옷깃을 잡는 수준에 가까웠다.
“1kg짜리 금괴도 있습니까?”
그는 서른 살쯤 돼 보이는 약간 뚱뚱하고 키가 작은 남자의 점포 앞에서 물었다. 점포간판에는 Y당 이라고 써 있었다.
"네, 손님. 키로짜리 있습니다. 몇개나 필요하세요."
표응표가 방금 지나친 K점포의 여주인이 얼른 표응표의 말을 가로챘다. 키로짜리란 1kg의 금괴의 은어였다. 표응표가 돌아보니 마흔 쯤 돼 보이는 삐쩍 마르고 눈이 작은 안경을 쓴 여자였다,
"거, 왜 남의 손님에게 말참견을 하고 그래요."
Y남자가 거친 말로 K여자를 타박했다.
"왜 그래? 우리 가게를 지나친 손님이잖아."
K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자 표응표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앞으로 좀 더 나아가 S점포로 갔다. S점포의 주인은 인상이 깨끗하고 호감이 가는 40대중반의 남자였다. Y와K가싸우는 소리는 이제 거의 악쓰는 수준에 가까웠다.
“신경쓰지 마세요 하두 장사가 안 되니까 악들만 남아서 그래요.”
S는 망가진 상권과 두사람을 싸잡아 공격하며 말했다.
"키로짜리 몇 개가 필요하세요?"
아마 S도 1kg짜리금괴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이상가 전체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가 필요한 개수를 말하면 그만큼 나까마를 통해 공수 받을 것이다.
“글세……. 몇개라기보다…….”
표응표는 잠시 망설였다. 한개 또는 두개 갖고는 이 밤을 꼴딱 세도 원하는 물건을 다 살수가 없을 것 같았다. 거듭된 성공으로 간덩이도 조금은 부어있었다ㅡ그때 다시 늙다리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욕심이 죄요 나도 조금 해먹고 튀었으면 이렇게 큰집신세까지는 안지는 것인데, 성경구절에도 있지요 지나친 욕심은 사망을 잉태하느니라.’
“씨팔,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 이제 처음 크게 한탕하려는데.”
하고 뇌까리면서 다섯개라고 말을 하는데 ‘와장창’하며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Y와 K의 싸움이 더 커져서 물건을 집어 던지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근처의 점포 사람들까지 둘로 나뉘어져 K가 잘못했네 Y가 큰누나뻘에게 너무하네 하며 편이 갈려있었다.
“잘못 들었는데 다섯 개라고 하셨지요?”
S가 표응표가 하는 말을 소음 때문에 또렷이 못 들었는지 되묻는다.
“김사장이 한 개 있을테고, 박사장에게 말하면 두 개는 구해 줄테고.
하며 혼자 열심히 계산을 맞춘다.
“네! 다섯 개 구해주시오.”
표응표는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리고는 대충 금괴값을 계산해보고 깜짝 놀랐다. 금괴값이 이억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다섯 개는 조금 힘들겠는데요. 시간도 늦었고.”
S가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되는대로 구해주시오.”
“현금 결제라면 내가 한두개는 구해볼 수 있는데…….”
표응표와 S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옆 M점포가 바로 전에 있었던 싸움 때문인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그는 나이가 50은 돼 보였다.
“형님! 김사장 하구 박사장이 갖구있는 거 빼구 말씀 하신 거죠?”
“당연하지 상도의라는게 있는데.”
그래도 S는 M이 못미더운지 불안스런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렇다 종로보석상의 생리라는 게 다 그랬다. 어차피 하루물량의 금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한치 건너 두치로 나까마를 통해 조금이라도 비싼 쪽으로 유통되기 마련이었다. 종로에 그 많은 보석상들이 줄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다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서울시내 보석상들이 다 만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표응표의 금괴구입은 이상가에서가 처음이며 마지막인 것이다. 그가 이 상가에서 나가 금괴를 사려고 또 보석상을 기웃거린다면 서울시내 보석상 모두가 그를 수상하게 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끼어든 이 불청객이 표응표에게는 한없이 반가웠다.
“네! 현금으로 결제하겠습니다.”
표응표의 말이 떨어지자 M이 일어섰고 S는 M에게 상도의를 재차 당부했다. M이 나가자 S도 전화기를 들고 여기저기 금괴를 가지고 있을만한 도매상을 수소문했다. 표응표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자 매우 기분이 좋았다. 잘하면 목적했던 금괴보다 훨씬 많은 금괴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표응표의 등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돌아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젊은 남자들이 아까 싸웠던 여자의 점포에서 떠들면서 보석류며 반지며 고르고 있었다.
“앗!”
표응표는 자기도 모르게 단발마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니, 저 새끼가 누구야?”
짧달막한 키에 하루만 면도를 안 해도 온 얼굴이 털복숭이가 되는 자. 도치! 장도치였다. 그는 상가나 백화점 등을 여럿이 몰려다니며 네다바이[사기]하는것이 주특기였는데 같이 간 일행들이 물건을 고르며 주인에게 이것저것 상품을 꺼내놓게 하면 기회를 봐서 준비해간 비슷한 물건으로 바꿔치기하는 전형적인 눈속임꾼 이었다. 표응표보다 1년 늦게 출감 했을 테니 빵에서 나온 지 1년쯤 됐을 터였다.
표응표는 될 수 있는 대로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S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요즘 그렇게 힘든 가요. 만나는 사람마다 죽겠다죽겠다하니 그래도 큰돈 만지는 보석상은 좀 났겠지요.”
“말마십쇼, 요즘엔 상가세도 맞추기가 쉽잖아요. 당장 때려치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짓밖에 다른 걸 해봤어야지요.”
S와 대화를 하면서도 표응표의 모든 신경은 장도치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장도치가 빨리 한탕하고 이 상가에서 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우리 마누라가 부업으로 양품점을 하네 꽃장사를 하네 하는데 안 된다고 해야겠네요.”
“내가 뭐 압니까? 우리끼린 노는 게 남는 거라고들 해요.”
장도치 때문인지 표응표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걸리면 빵에서 평생을 썩는 겁니다.’ 늙다리의 환청도 들렸다. 순간 표응표는 ‘이거 일이 잘못 되는 거 아냐.’ 그동안 숱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일을 그르쳤을 때마다 느꼈던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디 아프세요?”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표응표를 보고 S가 한마디했다.
“아, 아니오”
표응표는 손사래를 쳤다.
“어휴, 이 땀 좀 봐. 땀이라도 좀 닦으세요.”
S가 진열대 밑에서 티슈상자를 꺼내 표응표 앞으로 밀어 놓았다.
“고마워요.”
“두 개는 구했습니다.”
M이 오면서 말했다. 표응표가 티슈를 잡으며 무의식적으로 M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장도치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장도치가 표응표를 보고 웃고 있었다. 순간 앞이 깜깜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의 자신의 앞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반항하고, 수갑이 채워지고, 개 끌고 가듯 끌려 나가고, ‘지금이라도 이 상가를 뛰쳐나간다면 황금열쇠를 판 돈 6백4십으로 한 동안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2년간 자신을 속이고 산 것에 대한 배신이었다.
표응표는 오늘을 위해 범죄와도 손을 끊었다. 대리운전기사로 취직해 밤이면 서울경기인천 등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 업계는 전과자를 차별하지 않았다 운전만 잘하고 사고경력만 없으면 무사통과였다. 손님을 고르지 않고 열심히만 뛰면 하루 10만원벌이는 됐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몽땅 위폐를 만드는 자금이 됐다. 처음엔 10만원권 위폐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10만원권 뒷면에 들어갈 독도그림이 일본과의 외교마찰 우려로 무기한 연기되는 바람에 5만원권으로 긴급 수정했다. 그로 인해 비용도 두 배로 늘어났다.
“안 준다는 걸 억지로 뺏어왔네.”
상황을 전혀 모르는 M사장이 노랑헝겊으로 싼 금괴보자기를 진열장 위에 놓고 펼쳤다. 금괴1kg 266돈6푼6리 도매가 3천6백만원 소매가 4천5백만원짜리 금괴 두 개가 보석상의 조명을 받고 위풍당당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순간 표응표는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됐다. 그를 괴롭히던 두통도 사라졌고 두방망이질 치던 심장도 조용해졌다.
“아이고 송파 구 사장님 아니십니까?”
무슨 꿍꿍인지 장도치 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송파 구 사장이란 송파구치소에서 만났다는 은어였다.
“아! 장 사장 대전에 있는 줄 알았는데 서울엔 어쩐 일이오.”
그는 대전교도소로 이감됐었다.
“대전 다 접고 서울 온지 한 일 년 됐습니다.”
출소한지 일 년임을 암시했다.
“그래, 하는 사업은 여전 하신가 보네. 보석상도 다 오시고.”
“친구 애 백일이라 반돈짜리 금반지 하나 보려구요.”
여전히 네다바이냐는 물음에 조그맣게 한탕 한다는 답이었다.
“일행들 기다리는데 가보셔야지.”
“너희들, 이리 좀 와 봐.”
가보라는 말에 그는 오히려 일행을 불렀다. 뭔가 냄새를 맡았다는 암시였다.
“인사들 해라, 내가 늘 말하던 송파 구 사장님이시다.”
“아이구 송파 사시는군요. 저도 학교[구치소]를 그쪽에서 나왔지요.”
“송파 거기 땅값 무지하게 올랐죠.”
“생각보다는 나이가 드셨네.”
첫째 둘째놈은 같은 전과자끼리 큰 건이면 나눠 먹자는 뜻이었고, 셋째는 나이 먹고 까불다 다친다는 협박이었다.
S와 M은 이 새로운 불청객들의 등장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표응표만을 바라보았다.
“많이들 기다리셨지요,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청계4가에서 여길 오는데 30분이 걸리네.”
“아! 박사장. 김사장과 함께 오는 줄 알았는데 혼자 온 거야?”
“김사장 공장에 들렸다 온다던데.”
“내가 그렇게 바쁘다고 했는데 공장은…….”
박사장의 등장으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상인들 쪽으로 넘어가고 박사장은 안주머니에서 흰 면으로 감싼 금괴 3개를 꺼내놓았다.
“뭐야? 한 개가 늘었네.”
“안 되는 거야? 있는 대로 가져오라며.”
“옆의 형님이 두 개를…….”
하면서 S가 M을 가르킨다.
“내거 하나 빼면 돼지 뭐.”
“아닙니다. 이걸루 됐습니다. 시간도 없고 오랜만에 아는 사람도 만났고…….”
“형님, 아니! 구 사장님 저희들 신경 쓰지 마시고 볼일마저 보십시오.”
형님이란 말을 듣는 순간 S와 M, 박사장의 표정이 굳었다. 표응표가 장도치를 당장이라도 쳐죽일 듯 노려봤다.
“만일 장도치 때문에 이일이 실패한다면 난 기필코 그놈의 골통을 부숴버릴 것이다.”
그런 표응표의 속마음은 아랑곳없다는 듯,
“그때 송파하우스에서 포커 칠 때 형님아우하기루 했잖아요.”
표응표는 장도치의 말을 멈추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장사장, 그만 좀 빠져주시오. 난 지금 중요한 거래 중이오.”
“그쪽 거래만 중하고 내게 갚을 빚은 중하지 않다는 거요? 노름빚은 떼먹어도 되는 거냐고.”
4대1이라는 쪽수 때문인지 장도치는 표응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 그 빚이 얼마란 거요?”
“적어 논 것을 집에 두고 왔네. 항시 갖고 다녔는데, 아마3백은 훨씬 넘을 거요.”
“자 5백이요. 어서 가지고 가시오.”
표응표가 가방을 열고 100장 위폐 한 뭉치를 장도치 에게 던졌다. 순간 모든 시선이 가방으로 쏠렸다. 가득한 돈은 금방 상가 분위기를 급반전시켰다. 주춤하고 있던 S와 M, 박사장이 포장을 풀고 금괴를 저울에 달았다. 주위 점포 주인들까지 몰려와 돈 구경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이거 위조지폐는 아니겠죠.”
“뭣!”
표응표는 등줄기에서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장도치가 위폐에서 홀로그램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5만원짜리 지폐가 나오는 날, 똑같이 5만원짜리 모양의 단란주점 전단지를 찍는 겁니다. 돈과 똑같이 만들어야. 광고 효과가 있다면서, 광고지에 돈과 똑같은 홀로그램을 박는 거죠 물론 앞의 백장은 전단지지만 뒤쪽 백장은 위폐죠 인쇄소사장은 전단지에 홀로그램 인쇄를 한 것이지만 사실은 반은 위폐에 한 거죠.”
늙다리가 말한 홀로그램 제작방법이었다. 돈의 일련번호[넘버링]도 같은 식으로 찍었다. 넘버링을 찍어주던 마스타 인쇄소 사장이 탄성을 질렀다.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새 돈이 나오는 날, 돈과 똑같은 전단지를 만들다니.”
그 역시 중간에 있는 위조지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만일을 위해서 표응표는 그에게 캔맥주를 사다 먹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인쇄기계와 멀리 떨어져 있게만 했다.
“마지막으로 제단을 한 뒤 백 장 단위로 인쇄된 단란주점 전단지는 꼭 태워버리세요.”
늙다리는 마지막 충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는 전단지를 태워버렸다.
“위조지폐는 아닌가 보네, 홀로그램이 긁히지 않고 일련번호도 일정한 것을 보니.”
장도치의 돈을 펄렁대는 행동이 우스웠는지 상가사람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그러나 표응표는 하나도 우습지가 않았다. 그자가 버티고 있는 한 왠지 일이 틀어질 것만 같았다. 장도치도 이런 표응표의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적어논 거 보고 남으면 돌려줄께요.’ 하면서 일당들과 함께 상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들이 돌아가자 상가는 이내 원래의 상권을 되찾았다. S가 말했던 김사장이 나중에 금괴 2개를 더 가지고와서 총7개의 금괴를 사들였다. 주위사람들도 0.5kg짜리도 사달라고 하도 조르는 바람에 여섯 개[3kg]을 더 사들여 총10kg의 금괴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물청소차는 대로가 다 끝났는지 좁은 D극장 앞 도로에까지 물을 뿌리고 있었다.
표응표는 이제는 지겨워 욕하는 것도 포기하고 주차한 소방서 쪽에 있는 승용차로 걸어갔다. 평소에 그라면 뒤따르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쉽게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뜻 하지 않은 수확으로 기분이 한층 고무되어 있었다. 그는 승용차에 다 달아서야 차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미행자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표응표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뒤통수에 일격을 당했다. 그가 그동안 써왔던 퍽치기였다.
“어때? 맨날 치기만 했는데 맞아보니.”
땅바닥에 뒹굴어 올려다보니 장도치가 일당과 함께 웃고 서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해야 겠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뭘 보고만 있어 이 새끼들아 뺏지 않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달려들어 표응표가 들고 있는 것 들을 빼앗으려고 했다. 위폐가 든 가방은 빼앗겨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금괴보따리는 빼앗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생명줄이었다. 아니 생명보다 더 소중했다. 땅바닥에 굴러 몸부림치자 물차에서 쏟아진 물이 몸에 스며들며 정신이 번쩍 났다. 그가 이빨을 갈며 싫어했던 물차가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강도야! 사람 살려.”
표응표가 악을 썼다. 그제 서야 주위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 온다 튀어!”
“보자기를 못 뺐었어.”
“가방 뺏었으면 됐어.”
장도치와 그 일당들이 가방을 빼앗아 N악기 상가 쪽으로 달아났다. 그들에게 있어 한때나마 감옥일망정 동거동락을 같이했던 동료애 같은 것은 없는 한낮범죄자 들에 불과했다.
“애애애앵.”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차가 달려왔다.
“저기 악기상가 쪽으로 달아났어요.”
“강도인줄 몰랐어요, 싸우는 줄 알았거든요.”
사람들이 경찰 을보고 저마다 한마디 씩 했다.
“다치신 데 없으십니까?”
경찰이 다가와 표응표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 없어요.”
표응표가 경찰 부축을 거부했다. 아직도 그에게 있어서 경찰이란 친숙할 수 없는 존재이기만 했다.
“피가 납니다. 구급차를 불러 드릴께요.”
“괜찮다지 않소.”
경찰을 뿌리친 표응표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흙탕물에 뒹군 그의 모습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차가 출발하자 경찰이 뒤에 서서 뭔가 적고 있었다.
“밤새도록 적어봐라. 아무것도 건질게 없을 테니.”
그가 조소를 머금고 목을 만져 보았다. 뒤 머리에서 흐른 피가 이제는 목을 지나 등까지적시고 있었다.
“찢어졌나? 씨팔 진짜 병원에라도 가야 할 것 같군.”
‘애애애앵’ 그때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그를 쫓아 오고 있었다. 표응표는 직감으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라는 걸 알았다.
“이거 뭐야! 뭐가 잘못 된 거야? 잘못 될 것은 한 개도 없었다. 위폐가 탄로났나?
그럴 리 없었다.
“장도치가 잡혔나? 난 피해잔데……. 뭐야 저 새끼는!
앞에 물차가 편도 일차선을 가로막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물차를 추월했다. 마주 오는 차가 있었다.
“쾅!”
자동차의 보닛이 꺾어져 올라갔다. 상대편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며 뭐라고 욕지거릴 해댔다.
“뭐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소?”
다가서는 경찰이 말했다.
“선생님차량은 수배차량입니다,”
“뭐……뭐라고? 내차가…… 수배 차량! 이건 말도…… 안 돼. 말도……안 돼……. 야! 이개새끼야 다 너때문이야.......”
표응표는 물차 운전자에게 악을 써댔다. 끝 [읽기만하시고 퍼 가지는 마십시오.]
첫댓글 강타님 고배는 마셨지만 ... 멋집니다. 다음 기회에는 꼭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녀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넘 길어서리..다음에 다시..ㅎㅎ
관심을 같고 천천히 읽으시노라면 다시 새해가 밝을거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요즘 정말 경기 바닥임을 이용한 사기꾼들이 극성입니다. 표근표씨.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그러심 안되죠.ㅋㅋㅋ.....
수선님 관심 고맙습니다. 새해는 이루시는소망 이루소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장황한글 미흡 하온데 독파 하셨다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천천히 읽겠습니다~~~^^*
ㅋㅋ 제건그래도 좀 짧은 편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강타님,복 많이 받으세요!
채송화님 대체 어디 계신거예요? 넘 뜸 하신것같아요. 소식 좀 자주 주셔요.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십시오..복 많이 받으시고요~~
온나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 내 두루 평안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