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감동한 사실이 있다면 찬찬히 떠올려보자. 언제, 어디서, 무엇에 감동했는가? 자녀의 말 한 마디에? 자연의 변화에? 누군가의 배려에? 흔히 나이 먹을수록 감동할 일도 함께 줄어든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쉽게 감동한다, 안 한다는 개인의 성격 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감동한다는 것은 곧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마음은 성격이 아니라 감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동갑이라도 감성을 녹설지 않게 관리한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의 감성은 전혀 다르다.
나이 들어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잃지 않고 살려면 무덤덤한 마음, 무색무취의 감정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몸은 뻣뻣해지고 활동량이나 움직이는 폭이 좁아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2. 30대 못지않게 유연한 사람도 있다. 비법은 간단하다. 평소 신체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마음도 그렇다. 녹슬지 않고, 멈추지 않도록 늘 움직여야 한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자. 그러려면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다.
가령 올림픽에서 누군가가 메달을 땄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 사실만으로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수의 배경을 알고 경기를 보면 ‘정말 애썼네!’, ‘대단하다’며 감동하게 된다. 소설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줄거리 몇 줄만 봐서는 감동이 일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 집중해 소설을 읽고, 영화를 직접 봤을 때 비로소 감동이 차오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두지 않고 겉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감동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내 시간과 관심을 들이지 않고 뭔가에 감동하기란 쉽지 않다.
점점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에게서 멀어지고 둔감해지고 있지 않은가? 감동을 맛볼 기회를 스스로 줄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마음이 움직이는 일, 감동할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좀 더 젊었을 때 나를 감동시켰던 일들을 떠올려보자. 크고 대단한 무엇이 아니었을 것이다.
감동할 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덤덤히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녹슨 감성에 기름칠을 하자. < ‘인생 절반은 나답게(사이토 다카시/김윤경, 심플라이프, 2019)’에서 옮겨 적음. (2019.07.14.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