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4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만일 주께 드리는 그의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자기의 예물을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에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제단 곁에서 흘릴지니라. 그는 그 모이주머니와 깃털을 뽑고 그것을 제단 옆 동편에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그 날개들과 함께 그것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곧 불 위의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제사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14-17)
('And if the burnt sacrifice of his offering to the LORD is of birds, then he shall bring his offering of turtledoves or young pigeons. 'The priest shall bring it to the altar, wring off its head, and burn it on the altar; its blood shall be drained out at the side of the altar. 'And he shall remove its crop with its feathers and cast it beside the altar on the east side, into the place for ashes. 'Then he shall split it at its wings, but shall not divide it completely; and the priest shall burn it on the altar, on the wood that is on the fire. It is a burnt sacrifice, an offering made by fire, a sweet aroma to the LORD.)”
임마누엘!!
오늘은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따르면 새의 종류가 8800-10,200종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새들도 성경은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정결한 새’ 곧 하나님께 예물(제물)로 드릴 수 있는 새와 부정(不淨)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못할 새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비둘기’는 ‘산비둘기’의 새끼도 정결한 것으로 인정하여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모습입니다. 여기에 큰 비밀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에 맨 먼저 비둘기를 언급한 것은 창 8:6-12의 말씀입니다.
“사십 일이 지난 후에 노아가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들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여기저기 오갔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들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였으나 온 지면에 물들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로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 오는지라,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붙들어서 방주 속 자기에게로 끌어들였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보라, 그 입에 잡아 뜯은 올리브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물들이 땅에서 줄어든 줄 알았더라. 또 여전히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제네바 한글 성경)
‘산비둘기’는 히브리어 'tor(토르)'는 ‘호도애(呼悼哀,turtledove)’입니다.
이는 애도어린 울음 소리를 기억하게 합니다. 비둘기의 울음 소리는 아주 인상적이고 슬픔을 담고 있d서 나온 이름인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4회 나옵니다.
토드는 이주하는 철새이며(아 2:12, 렘 8:7),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며(시 74:19), 가난한 자들이 드릴 제물로 규정되었습니다(레 5:7, 레 12:2, 레 12:6-8).
비둘기들의 울음소리를 알고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먼저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비둘기와 같이 울라는 의미이고, 그 다음은 그 당시 온 땅에 사는 나라와 민족들을 위하여 울며 중보하는 민족이 되라고 택하셨으나 저들은 자기의 죄도 알지 못하고 애통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돌위에 돌하나도 남기지 않는 완전 패망이요 파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하십니까?
한국교회와 한국 민족은 어떠하십니까? 이스라엘을 위하여 우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희희락락할때가 아닙니다. 깨어 있어야 하고,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다시 곧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할 때입니다.
‘집비둘기’는 히브리어 'yona(요나)'.‘비둘기(dove, pigeon)’. 이 단어는 인명이나 시편 제목(56:1)으로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 32회 사용되었습니다.
1) 요나는 70인역본에서 페리스테라(peristera)로 번역되었으며, 레위기에서 "어린 비둘기"로 번역된 '들이나 바위 비둘기' (field or rock dove)를 가리킵니다. 고대로부터, 이 비둘기는 식용으로, 그리고 전서비둘기로 사육되어 왔습니다. 이 비둘기는 토르(호도애,turtledove, 70인역본 트루곤)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요나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모든 다른 종류의 비둘기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2) 레위 법전에서, 요나는 번제(레 1:14)나 속죄제를 드릴 때, 보다 값비싼 소나 양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犯過)를 속하기 위하여 산비둘기(토르)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요나)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레 5:7). 더구나 정결 의식 때 출산한 여자는 이중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어린양과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 올 수 있었습니다(레 12:6, 레 12:8). 마리아는 가난한 사람들의 방식에 따라 자기의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언급하는 눅 2:24을 참조하면 유익합니다. ‘비둘기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유 재산을 의미합니다.
3) 비둘기는 이스라엘 가정에 매우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비둘기의 습관은 직유나 은유의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비둘기의 우는 소리는 애도나 애곡을 나타내는 직유로 사용되었습니다(예: 히스기야의 "나는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사 38:14). 사 59:11, 나 2:7을 참조하십시오.
시 55:6에서 다윗은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렘 48:28을 참조하십시오.
의미 없이 앞뒤로 나는 것은 에브라임이 앗수르와 이집트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을 나타내는 직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호 7:11).
호세아는 또한 앗수르로부터의 포로 귀환을 묘사해주는 상징으로서 비둘기가 이주하여 되돌아오는 것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 11:11).
4) 비둘기는 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로 올라 오실 때 하늘에서 성령이ㅡ비둘기같이 임하셨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속에서 올라오시니,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임하심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태 3:16-17)
비둘기 같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머리 위에 임하신 주 예수님은 사역으로 이렇게 입증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주셨사오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고자 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안식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마태11:27-30/제네바 한글 성경)
“오! 내 주의 성령이여, 내 영혼에 비둘기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