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경
산행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관계로 비교적 수월한 오름 한 군데를 찾아왔다
뒷산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왕복 1시간 정도? 산이 싫은 사람도 가볍게 올라가서 정상의 감동도 느낄 수 있는 가성비 끝판 코스~
말을 방목하기 때문에 입구는 놀이기구 출입하는 그것처럼 U자 형태로 되어 있다
들어서는 곳은 정말 비좁지만...
안쪽은 광활한 벌판이 바람과 빛을 담고 있다
그 그럼 올라가 볼까
가빠지는 것은 고도에 의한 것인가
나빠져간 나의 체력에 의한 것인가
올라가는 길 북쪽에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형상의 산이 있었다
그렇다 일명 보아뱀산
국딩때는 분기별로 학교에서 추천하는 책을 강제로 사서 읽어야 하는 아주 고약한 풍습이 있었다
난 어린왕자를 골랐고 일주일간 보아뱀처럼 또아리를 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어린왕자가 왜 사막에 내려갔는지 바오밥 나무가 왜 자라게 됐는지 너무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학교와 담임선생님 그리고 부모님과의 평화를 위해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난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 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마지막 10장의 페이지를 남겨놓고 나서야 서서히 기쁨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림의 행복을 깨달았던 거 같다
그러나 그럼 뭐하나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이다음 분기의 추천도서 리스트는 나를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렇게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 인생이란 걸 11살의 그 시절엔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다...오르고 올라도 왜 계속 같은 풍경이...!?
바닥만 보고, 앞만 보고 걸으니 똑같지
사방팔방 저 멀리를 보며 걷자
이제야 막 탁 트이는 기분이 목캔디처럼 퍼져 나간다
저기 펜으로 가리키는 곳이 주차장이다
산행이란 게 그런 것이다
그 산의 크기를 알아야 내가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가늠이 가능하다
(산도 한번 안타본 놈이 헛소리를ㅋㅋㅋ)
그리하여 그는 30분 만에 정상에 올랐으니...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기념사진을 찍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겠지만 이렇게 해내고야 말았다
장하다 자랑스럽다!
(산 좋아하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저기 왼쪽에 제주도로 태양빛이 제일 먼저 닿는다는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그러니깐 제일 동쪽이 되겠지
일출의 장관은 수많은 사람들을 경이로움에 빠져들게 한다고 한다
이번 여행엔 가지 않을 계획이다
다음을 위해 남겨 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미라고 생각한다 헉헉.....!(말도 안 되는 핑계를..!)
힘들고 배고프고 고단하다 이 3중고를 짊어지고 어서 하산하자
휘청~~~!!으어엇~
포기하지 마랏
산지특산 제주감귤도 못 먹어보고 쓰러질 순 없다
그것과 더불어 흑돼지 수제버거도 꼭 먹어야 한단 말이다
렌트카 안 시트가 이리도 안락해 보였나
무사히 골인을 했을 무렵엔 해는 동쪽으로 그림자를 길게 느러뜨리고 있었다
내 키의 2배 정도 되는 그 검은 것은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짙은 색깔이 풀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전에 전복김밥과 함께했던 아이스아메리카노
많았던 얼음은 이제 완전히 커피 속으로 녹아들어 버렸다
내가 이번 여행에 서서히 녹아든 것처럼
연하지만 한껏 가벼운 맛에 테이크아웃 잔을 자꾸 들었다 놨다 했다
적당한 식당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일단 준비한 간식을 개봉한다
그리 달지 않은 찹쌀모나카를 먹으며 식사는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오늘의 루트엔 적당한 식당이 체크되지 않았다
결국 참 크래커 비슷하게 생긴 아무 맛도 안 나는 과자를 한 봉지 더 까고 나서야 출발했다
'어디든 걸리면 그리로 들어가자'라는 생각을 한 것이 실수였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보이는 건 검은색 아스팔트와 파란 하늘뿐이었다
맛집동호회의 행복했던 나날들이 차창 밖을 지나는 풍경들과 같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던 순간 어느 한 가옥처럼 생긴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적 드문 4차선 왕복 도로 사거리에 홀연히 나타난 문제의 식당
그는 과연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들어선 순간부터 묘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냥 동네 슈퍼마켓 중간에 테이블이 2개...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도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
그땐 배가 고파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마저 일었다
그래도 회사에선 변덕쟁이 사장님 덕분에 욕도 많이 먹지만 풍족하게 점심도 먹지 않는가
"김치찌개 주세요"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주인장은 서랍에서 밥을 꺼낸다
무려 햇반...... 잘못 본 건가..?!아니다 저 거친 손등 안쪽으로 파지되어 있는 건 분명 하얀색 용기에 들어있는 햇반이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곳 시그니처 메뉴인 김치찌개는 패스트푸드 마냥 빨리도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 그릇을 향해 부들부들 떨리는 숟가락을 얹었다
'크어헉~~~~!'
이...이 맛은...??
내 혀는 기억하고 있었다
십수 년 전 군대에 임일병으로 있었을 때다
나는 파견 통신병이었기에 컵라면 보급이 '농심 새우탕'으로 특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우탕이 동이 나는 바람에 일반 보급품인 <육개장 사발면>을 받게 되었다
끓는 물을 붓고 기다리기를 3분....
'이런 육시럴...!'
뚜껑을 따고 맛보는 사발면은 새우탕과는 천지차이였던 것이었다
그날 저녁엔 새우탕을 그리며 수양록에 눈물로 번진 일기를 썼던 거 같다
정확히 그 맛이었다
어찌 그때의 기억이 여기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는 것인가
덜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육개장 사발면맛 김치찌개라니...그것도 제주도에서..!! 라면스프를 도대체 몇 개를 넣은 거란 말이냐!
햇반 전부와 고기만 건져 먹은 나는 도망치듯 그 가게를 빠져나왔다
사이다 하나 추가해서 기가 막힌 가격 8,000원을 지불한 내 손등 위로는 제주도 특유의 바닷바람이 나를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다
어디서든 위로받고 싶었다
난 그렇게 제주도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김치찌개는 이제 잊자
다행히 뻥 뚫린 도로의 한산함이 아까 마신 사이다의 기분과 앙상블이 되어 전면창을 시원하게 때려주었다
일정한 시속을 맞추며 경쾌하게 질주하는 12년식 아방이md 카오디오에선 두근대는 다음 코스를 알리는 흥겨운 음악이 헤드레스트에 부딪혀 내 귓속으로 튕겨 들어왔다
다음 일정은 제주도에서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미니미니랜드
가는 길에는 맛있어 보이는 식당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후회와 원통함이 앞 좌석 창문 옆으로 스치어 미련의 갈퀴를 만들어 내는 것만 같았다
날씨가 이렇게나 맑은데 웬일인지 자동차 앞 윈드 실드에는 습기가 가득 차 버리고 있었다
첫댓글 팬심!!!!!!!!!!!
제가 쓰는 펜의 심은 0.7mm입니다.....ㅋㅋ
a방이
b스토~
제주도가 엄청 넓군요~
수도권 지역의 서울경기만 하잖아요~
@유자차 아~ 그렇군요.. 그렇게 크다니. 나도 가보고싶네요
좋은 글이 꼭 진지해야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많이 웃고 갑니다 ^^
진지한 글은 쓰기 정말 힘듭니다~ㅋㅋ
결국 차가 뭡니까?!! 유자차 말고요ㅎ
차가...버섯은 역시
차가...워
-유자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