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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만 한 놈이 무슨 공부를 한다고….”
“너 인생은 왜 항상 도전이냐?”
프로농구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유학을 결정한 성준모(31·전 대구 오리온스). 그의 또 다른 결정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다. 성준모는 주변의 삐뚤어진 시선을 뒤로하고 2008년 마지막 날 아침 8시 비행기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기약 없는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유학길에 오르기 하루 전인 12월 30일 서강대 캠퍼스. 그와 어렵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도전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고민도 많이 했던 그였지만, 몰래 떠날 이유도 없었다. 그만큼 스스로를 믿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은퇴 결정 후 그는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늦깎이 도전
지난 10월 14일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KBL 은퇴식에 참석한 성준모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행복한 모습이었다. 뜻하지 않은 은퇴 선언으로 농구 판을 뒤흔들었던 안타까움은 그의 웃음과 함께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 역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성했던 그의 FA 결렬 뒷소문에 대해서 함구했다. “어차피 지난 일이지만, 별별 소문이 다 있었다. 돈 때문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은퇴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가 짊어지고 갈 짐 아니겠나?”
사실, 그가 은퇴를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2007-2008시즌을 마친 5월,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준비했다. 전문적인 지도자 관련 학업을 위해서다. 전주 우석고 선배인 오중일 씨가 텍사스에 위치한 UTPA(University of Texas Pan American) 체육학(Physical) 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NCAA 1부 리그 소속인 UTPA 농구팀 톰 스쿠버스(Tom Schuberth) 감독과도 인연을 맺었다. 스쿠버스 감독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쓴 소리만 들었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아예 올 생각도 하지 마라. 의사소통도 안 되고 회의도 참석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것 같으면 한국에서 하지 왜 오느냐.” 이미 지도자 연수라는 명목으로 잠깐 동안 미국을 다녀간 수많은 한국 지도자를 경험한 스쿠버스 감독의 호통이었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할 당시부터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던 그에게는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니었다. 미국을 다녀 온 후 그는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차와 보험을 모두 해지하고,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농구를 처음 시작한 늦깎이 농구선수다. 뒤늦은 결정에 부모의 반대도 심했다.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지금껏 모아온 성적표를 찢어버렸다. 농구로 성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 그의 의지는 곧 부모의 허락을 얻어냈다.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었지만, 이번에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공부를 하겠다는 그의 뜻을 마냥 뒷바라지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 어머니는 한 달간 입원까지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그의 결정에 부모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아버지는 “쓰러져 죽을 각오로 농구를 시작했던 네가 다시 결정한 것을 믿는다”며 허락했고,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새우잠 자며 주경야독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루에 문장 3개씩을 외워 꼬박꼬박 물어보고 반복했다. 같은 팀 소속이었던 김효범과 이동준에게도 수시로 찾아가 모르는 영어에 대해 배웠다. 차로 이동하며 회화 테이프를 듣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주변의 많은 선수들도 “네가 뭐 알아?”라며 그의 그런 모습을 비웃었다. “프로선수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하다. 아무 것도 안 해도 저절로 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위해 토플 책을 폈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운동을 하면서 어설프게 공부한 것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지인을 통해 중학교 문법부터 영어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2개월 정도 과외를 받으면서 서울에 위치한 토플 전문 학원도 등록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수강생들과 섞여 스터디 그룹을 짰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강의를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자율학습 시간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주경야독을 계속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강생들과 함께 몇 개월간 편의점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도 때웠다. “그 새벽에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 첫 2개월은 거의 새우잠을 자다시피 하루에 단어만 6~8시간을 외웠고, 다른 것은 손도 못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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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단순한 지도자 연수로 알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지도자를 넘어 코치 지도학을 전공해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다.” 그는 생활체육이 강조되는 최근 스포츠 분야의 전문적인 학업을 목표로 삼았다. 그가 전공을 하려는 것은 ‘코치 지도학’. 그는 적어도 3~4년 내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단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는 웃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생활이 정말 쉬웠던 것 같다. 나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 코트 위에서 뛰어야만 꼭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지금도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펜을 잡는 선수들
과거 몇몇 선수들에게 대학원은 군입대 시기를 미루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미 병역의무를 마친 선수들 중에서도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수가 많다. 우지원(울산 모비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2007년 프로농구 시상식 도중 그는 자리를 비워 그를 찾던 이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알고 보니 대학원 수업에 참석했단다. 그는 뒤늦게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체육교육을 전공했다. 선수 시절 그의 소속은 법학과였지만 그때는 학업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은퇴 후를 생각할 시기가 오자 그는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의 롤-모델은 모교 선배이자 모비스 고문이었던 방열 교수다. 언젠가는 방열 교수처럼 지도자이자 교수로도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안양 KT&G의 김일두도 비슷한 케이스다. 아직 은퇴를 고려하기엔 이른 나이이지만 그는 벌써부터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다. “선수 생활을 평생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학창시절부터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포츠 마케팅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됐다.”
평소 훈련량이 많기로 소문난 KT&G였지만 그는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 비시즌 때는 훈련이 끝난 후 바로 학교로 향했으며, 시즌 중에는 과제물로 대체하면서 학점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덕분에 종합시험과 영어토익 시험, 논문만 마무리하면 석사학위를 받는다며 안도의 웃음을 짓는 김일두다. “학점 관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학기라 교수님들께서 사정을 안 봐줘서 정말 어려웠다. 다행이 시험을 치르지 못한 부분은 리포트로 대체하고 수업 들어갈 수 있는 건 들어가서 시험을 치러 학점을 다 땄다.”
그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학구파 선수였다. 종일 운동이 있는 날이 아닌 이상 오전 수업은 꼭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한번은 운동부들만 따로 시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농구부에서 김일두만이 합격했던 일도 있다. 장래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김일두는 습관의 중요성을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기본 교육이 되어 있으면 공부할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를 등한시한다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
전문가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다른 학생들처럼 전과목을 다 공부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계속 강요하다보면 농구도, 공부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운동선수들도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시간을 잘 관리해 사회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익명을 요구한 한 농구인의 말이다. 현지 시스템을 둘러보고 온 성준모는 이번 연중기획의 토대가 될 만한 결론을 제시해주었다. “사실, 수업 몇 시간 빠진다고 해서 개인 실력이 월등히 좋아지는 것도 팀 성적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농구선수가 성공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낫다. 고등학교 때 운동을 포기하면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적어도 학생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기본 바탕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글 서민교, 정지욱 기자 사진 이청하, 서민교 기자
JUMPBALL 2009년 02월호(발행일 01월 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