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28일
남산 거북능선~황금능선 : 경북 경주시 배동.
▣산행코스 : 포석정주차장 - 삼릉길 - 석조여래좌상 - 거북능선 - 금오봉 - 황금대능선 - 포석정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포석정주차장 출발 09시 12분.
▣산행종료 : 포석정주차장 도착 12시 44분.
▣소요시간 : 약 6.7km / 3시간 32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12 남산 포석정주차장 출발.
09 : 32 삼릉.
10 : 02 석조여래좌상.
10 : 34 거북능선.
11 : 03 금오봉 정상.
12 : 00 황금대.
12 : 44 포석정주차장 산행완료.
▲ 09시 12분 : 포석정주차장... 안쪽에 있는 포석정은 하산후에 가보기로 하고..
▲ 삼릉가는길을 따라 삼릉에서 정상으로 가려한다.
▲ 09시 15분 : 신라 6대 지마왕릉(사적 221호).
▲ 삼불사 석조여래삼존불(보물 63호)..
▲ 삼릉의 소나무.
이곳의 소나무는 유명한 <배명우>님의 소나무사진의 원초지다. 2005년 영국 가수앨린존이 2,800만원,
2006년5월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두점으로 이루어진작품이 1억3,000만원.
2007년11월 영국필립스경매에서는 1억6,000만원에 팔려서 유명세를 탔으며 소나무 한그루 베지 않고 한국의 소나무를
세계에 수출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소나무다.
▲ 09시 32분 : 삼릉.
오른쪽부터 54대 경릉왕릉. 53대 신륵왕릉. 8대 아달라왕릉. 1963년에 도굴되어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무덤들의 원형도 원래는 호석둘레에 큰 받침석을 기대어 놓은 태종무열왕릉과 같은 양식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파괴되어 원형의 봉토분처럼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 2m 거리두기.. 마스크 쓰라고...
▲ 네댓번은 걸었던 삼릉길... 여전히 좋다..
▲ 올때마다 그냥 지나쳤던 마애관음보살상이 60m... 가보자..
▲ 마애관음보살상(경북 유형문화재 19호).
▲ 어린애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있어서.. 한컷 부탁했더니... 두컷을 찍어준다..
▲ 헐!~~ 이기 머꼬... 우째 이런일이 늘어나도 너무 길어졌다.. 키다리아자씨다...ㅎㅎㅎ
1970년부터 달성공원에 근무했던 키다리아저씨 "류기성" 씨를 기억하시는지...
달성공원에 가면 취직이 될랑가?...ㅋㅋㅋ
▲ 불두가 없는 석조여래좌상.
1964년 8월 동국대생들에 의하여 땅속에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부처님은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 선각육존불(경북 유형문화재 21호). 삼불씩 바위 두면에 새겨져 있다.
▲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삼릉계곡.. 수많은 남산 등산로중에 가장 많이 찾는 코스로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 석조여래좌상(보물 666호).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얼굴의 부처님이다.
▲ 거북능선을 가늠해 본다.
▲ 거북능선 오름길...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서 별로 어렵지 않고 릿지산행 기분까지 내며 쉽게 오를수 있다.
▲ 희미한 족적 찾는 재미도 있는데 철 늦은 철쭉이 반기니 더욱 재미있는 오름이다..
▲ 거북능선에 거북바위가 있다는데...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 같은 바위를 뒤에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무엇을 닮았을까?...
▲ 금오봉이 능선 너머로 보인다..
▲ 거북능선에서 바라보는 남산 최고의 조망처인 상사바위.. 금송정... 그아래 상선암이 살짝 보인다.
▲ 황매산 모산재의 순결바위가 생각나는 분위기다. 여기서... 리모컨 놀이다.
▲ 다시 사진으로 설정하고 리모컨 인증샷 놀이... 마스크도 벗고... 자세가 쬐끔 나아지는 것 같다.. ㅎㅎㅎ~
▲ 지나온 거북능선... 역시나 훔쳐먹는 사과가 맛이 있다...ㅎㅎ
▲ 녹음이 우거지니 희미한 길마져 가리지만.. 내가 가는길에 녹음이 태클이 될수는 없다..ㅎㅎ
▲ 그래도 간간히 싱싱하게 남아있는 철쭉이 있어 심심치 않아서 좋다..
▲ 주 등산로인 약수골 등산로와 만난다..
▲ 11시 03분 : 남산의 주봉인 금오산. 평일인데도 몇팀이 올라와 있다..
▲ 상사바위쪽으로...
▲ 화장실 방향으로 가면 남산의 어디던 연결이 된다.
▲ 남산 최고의 조망쉼터에서... <남산과 망산의 유래>..
사시사철 언제나 복된 땅이며 동이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고 불리우는 서라벌
이곳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고 한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이었고, 또 한 신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 이었다고 한다.
두 신은 서라벌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살땅이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새별의 들판에 진동을 했다고 하는데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곳을 보고는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쪽으로 걸어 오는걸 보고
처녀는 겁에 질려 산봐라~하는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산 같이 큰 사람을 봐라~ 라고 해야할 말을 마음이 급한 나머지 산봐라 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 들려오는 소리에 두 신은 깜짝놀라 그자리에서 발을 멈추었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수가
없었다 한다. 두 신은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수 없는 산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들의 소원대로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
영원히 살게 되었다 한다. 남신은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남산과 망산에 전해오는 유래다.
▲ 상사바위와 맞은편의 금송정 아래로 마애불이 보인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158호).
남산에서 가장높은 암자인 상선암에서 남산 불상 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이다.
▲ 상사바위.. 낙석의 위험으로 등산로가 폐쇄 되었다... 과거에 저 밑에서 산악회 시산제도 지내고 했었다.
▲ 상사바위.
▲ 금송정(琴松亭).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玉寶高)가 가야금을 타며 즐기던 곳이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 삼아
가야금을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하는 곳이다.
▲ 11시 39분 : 바둑바위...
▲ 오릉. 나정. 육부전.. 창림사지와 하산 지점인 포석정이 한눈에 보인다.
▲ 황금대 능선으로 하산이다.
▲ 황금대능선과 이웃하고 있는 남산전망대... 지난 4월 15일에 다녀 갔던 곳이라 반갑다..
▲ 늠비봉 오층석탑도 그림이다..
▲ 바둑바위에서 부터 여기까지는 육산이었는데.. 바위군들이 나타나는걸 보니 황금대가 가까운것 같다.
황금대능선은 유달리 묘가 많다..
▲ 12시 00분 : 황금대...
석양이 바위에 비칠때 마을에서 바라보면 암벽이 황금처럼 보여 "황금대" 라고 불렀다고 한다.
▲ 하트바위가 틈새에 걸려 있다..
▲ 사진상으로는 느낌이 안오지만 암벽 크레바스가 아찔하게 깊다..
▲ 하산지점인 포석정..
▲ 황금대 상부... 너무 높아서 카메라모니터에 들어오지 않는다..
▲ 암벽이 붉은 빛이 돈다... 철분이 빗물에 섞여 나오면서 붉게 산화된듯 하다.
▲ 조금아래에서 황금대를 뒤 돌아보니.. 마을에서 황금이라고도 하겠다..
▲ 바위가 우둘투둘 돌기된 모양의 하나하나가 오백나한처럼 보인다..
▲ 포석정에서 부흥사로 가는 들머리...
▲ 12시 44분 : 포석정 주차장 산행 완료...
▲ 산행을 마치고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신라를 불국토로 만든 이차돈의 흔적을 찾아 소금강산 자락의 백률사로 간다.
▲ 석탈해왕릉...
백률사로 가는길에 석탈해왕릉이 있어 잠깐 들린다.
▲ 석탈해왕릉 앞의 숭신전의 홍살문... 숭신전은 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석탈해의 후손인 친구가 있어 몇년전에 저곳을 들어 가본적이 있다.. 친구는 향사에서 "참봉" 을 맡고 참석하고 있다.
▲ 소금강산 입구... 국립공원이다.
▲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121호).
"삼국유사"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경덕왕(재위 742∼765년)이 백률사(柏栗寺)에 행차하여 산 밑에 이르렀을 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그곳을 파게 하였더니 큰 돌이 나왔다. 그 돌 사면에는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掘佛寺)라
이름을 지었다” 이 상이 바로 굴불사의 불상이다.
▲ 백률사 범종... 전면애 이차돈성사봉찬범종이라 되어 있고 뒷면에도 똑같이 되어 있다.
토착 신앙에 기반을 둔 귀족들이 불교를 강력하게 반발하자, 527년, 이차돈(異次頓)은 신라의 23대 법흥왕(法興王)에게.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아침에 불법(佛法)이 행해지면 불교가 일어나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소신의 목을 베어 만민이 굴복하게 하십시오"...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처형된다.
당시 형리(刑吏)가 이차돈의 목을 베자 머리는 소금강산 정상에 떨어지고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더니 꽃비가 내렸다... 라고 《삼국유사》는 적고 있다.
이차돈은 처형 직전 “부처가 있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 예언이 맞아 떨어지자
불교 공인(公認)을 반대하던 신하들도 마음을 돌렸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는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불교를 공식으로 받아들였다. 법흥왕 14년, 이차돈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다.
대웅전에 이차돈(異次頓, 506~527) 공양석당(供養石幢)이 봉안되어 있다던데 보지는 못하였다.
다음달 5월 19일이 부처님 오신날이어서인지
중장비가 동원된 진입로 공사로 어수선한 백률사를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