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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갔다. 멧돼지를 기다리다 지쳐 심심풀이 삼아 나무 아래 있던 밤 송이의 가시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마침내 숫자를 다 세는데 성공했다. 814개였다.
그후에도 계속해 멧돼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조짐이 없었다. 심심함을
이기느라 밤 송이 하나를 또 주어 들었다. 아까 밤송이의 삼분의 이 밖에 안 되는 작은 것이었다. 하나, 둘, 셋… 8백 여개가 조금 넘었다.
그 사냥꾼이 한 말. “밤송이는 크기에 상관없이 가시의 숫자가 일정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약 팔백여 개더라. 이 말씀.”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지인의 덧붙임이 더 재미있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나뭇가지를 몇 개나 물어 나르는지 아는 사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도 답을 못하자 그가 말했다.
“2천에서 2천2백 개 사이야. 어릴 때 내가 나무에 올라가서 세 봤지.”
위 얘기는 성석제의 ‘인간적이다’라는
소설 중에서 나오는 한 에피소드이다. 성석제는 ‘관촌수필’로 유명한 토속작가 이문구의 대를 잇는, 입담이 풍성한 작가로 손꼽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풋풋한 여대생 시절, 성석제의 첫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책을 버스 안에서 읽다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소설가 중에 입심이 좋은 작가를 만나면 참 소설 읽는 맛이 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밤잠을 놓친
적이 있다. 비단 나 뿐만 아니다. 그 작품이 수많은 독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의(어쩌면 번역가 이윤기의 우리나라 말 실력이 너무 뛰어나) 입담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일 것이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같은 작품이 비슷한 범주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덧붙이면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도 포함시켜 주고 싶다. 이런 작품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읽는 재미가 새롭다. 이유는 어쩌면 내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부러울 것도 없고, 비교할 것도 없이
그저 편하디 편한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성석제는 수필집을 포함, 수 십편의 소설책을 펴냈다. 성석제가 책을 낼 때마다 그 책들은 수많은 독자들의 품에 안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말이다. 그 중 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최고작품으로 꼽고 싶다. 여덜 편의 단편을 모은
이 책은 ‘황만근은…’을 포함, 작품 하나하나가 웃지 않고 또 울지 않고 읽을 수 없는 작품들 뿐이다.
‘황만근은…’은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황만근의 길지 않은 일생을 담고 있다. 시골 마을의 모든 궂은 일을 한 마디 불평
없이 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의 순수성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을 넘지만 그의
행동이 그리고 그의 어설픈 말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석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의 질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해학도 좀 떨어지고 쏘는 맛도 좀 늘어지고… 그래서 성석제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그가 쓴 초창기 작품을 주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읽는 재미, 그리고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황만근…’을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네 이민살이도 결코 만만치 않은데 글 좀 쓰는 그 어느 누구가 한
많은 이민사를 소설로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잔디깍이 제임스 박, 스시 아줌마 헬레나 킴, 데어리 아저씨 존 초이… 이들의 삶도 그 어느 누구못지 않게 할 말이 많지 않겠는가?
<코리아타운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그 여대생이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저도 황만근씨 좀 빌려주세요. 아니 그 책이요...^^. 그런데 참, 짜라투스트라는 뭐라고 말했었지요?
어처구니..는 누가 빌려갔어요.
좋은 책을 누군가와 공유하는게 제 사명인지라...(제가 욕심이 없어서요^^)
그런데 조금 미리 눈치를 주시면
따로 빼놓을 수도 있어요.
저도 사람 보는 안목은 있으니까요.
<그곳에 어처구니가 살았다>는 저도 가지고 있어요, 아직. 그 대학생 시절부터 여적지...^^. 황만근씨 돌아오면 연락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