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제목 : 《차원과 시대의 관계》
- 작가 : 하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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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년은 왜 이제 쳐 기어 나와?!"
잘못 걸렸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도 보지 않고 들어온 것이다. 아버지의 출근 시간과 겹친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내가 바보지, 암. 또 복날 개 패듯 맞았다. 이리저리 멍들고 찢기고, 피나고... 이젠 담담할 정도의 아픔.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얼른 일어나 교복을 탁탁 털었다. 행동이 왜 이렇게 굼뜨냐고, 더 맞고 싶냐고 할 어머니가 계시기에 빨리 집에서 나가야 했다.
"왜 빨리 빨리 않나가고 여기 있는 거야?"
한발 늦었다. 잔소릴 한 바가지 얻어 먹고 겨우겨우 집을 나갈 수 있었다.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17년 동안 살아온 것이 아깝고, 나의 죽음 때문에 친구들의 눈에서 흐를 눈물도 별로 보고싶지 않았다. 뭐..진짜 까놓고 말하자면 친구라고 해봤자 윤현 하나지만. 현이 하나라도 있는게 어디냐.
외고의 오빠 때문에 집안의 수치가 되버린 것은 한 순간 이었다. 유화고등학교. 이곳도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멸시를 받았다. 왜 내 가족들은 나를 이리도 싫어하는 걸까...자문해도 알 수 없었다. 생일 선물, 그런 거 받아 본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업혀보지도 못한 나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듯했지만, 늘 서운함과 알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심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르륵-탁!'
"어! 현아~와 있었네? 왠일이야, 맨날 지각하더니?"
"응-. 오빠가 또 않깨우고 가기전에 복수도 할겸 오빠 자명종 꺼놓고 왔지롱~"
"그치만..; 그럼 오빠가 너 가만 두진 않을텐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어.."
조금 많이 두려워 보이는 현이를 뒤로하고 현이의 자리에서 별로 멀지 않은 내 자리로 와 앉았다. 시험 기간을 넘겨서 인지 일찍오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나와 현이, 그리고 반의 1,2등 정도 하는 공부 벌레들 만이 와 있을 뿐이 었다. 애들이 참..게으르다;
"야, 서예린..너...이거 다 뭐야.."
"아...이거..?"
"또 아빠 짓이냐?"
"...(끄덕)...괜..찮아! 늘 있는 일인데, 뭐~"
"휴..대체 느이 아부지는 널 왜 그렇게 싫어하신 다냐."
"나도 그게 궁금하네요~"
"분명, 계모, 계부가 분명해-!"
그럴지도..모르겠다. 진짜 난 그집 자식이 맞을까. 아무도 않믿을 것이다. 내가 친자식 이란걸...유전자 검사 해보고 싶네, 큭.
"예린아, 그러지 말고 나랑 동거하자니까?"
"도, 동거? 에이-너네 오빠도 있는데~"
"괜찮아. 그 놈은 남자 아니야. 그리고 우리오빠, 너 무지 좋아해~!"
"하하;; 그래도 폐가 되잖,"
"쓰읍! 유 셔텁. 저스트 팔로우 마이 오더."
되도 않는 영어를 쓰며 강제로(?) 나를 이사시키는 현이. 뭔가..불안하긴 해도 않맞아서 좋기야 하겠네. 후아-현이는 편한 친구다. 현이와 함께 있으면 어릴 적 부터 받아왔던 멸시의 눈초리들이 모두 잊혀지는 기분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현이와 지내다 보니, 정신을 차린 후 달력을 보자, 어느새 동거 일주일 째. 오늘은 현이의 오빠, 찬오빠의 생일. 아침에 현이와 학교로 향하는데, 뒤에서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일찍 와!!!' 하는 바람에 현이가 창피해 죽겠다며 짜증을 부렸다.
"내가 저 인간 때문에 못살아, 진짜..!!"
"왜~푸훗, 귀엽잖아~"
"저,저게?! 귀여워? 어딜 봐서!!"
현이는 좋겠다. 오빠와 이렇게 투닥투닥 거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서. 오빠랑 마지막으로 대화한게 언제더라.. 기억도 않나는 옛날인 것 같다.
"아, 내가 저번에 음악쌤이랑 내기한거 있잖아-"
한 4일 전인가? 현이가 먼저 가래서 집에 가는데 찬이오빠가 뒤에서 헐떡이며 달려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 때 오빠에게서 들은 것 같다. 현이가 뭔가 큰 일을 벌이는 것 같다고. 그로부터 이틀 후인 어제, 바로 콩쿨을 나가 현이가 펼친 플룻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
"아, 그 콩쿨 1등으로 입상하면 레스토랑에서 저녁 사준다는 거-?"
"응! 드디어 그 짠돌이의 지갑을 열 수 있게 됬어!!"
"푸하, 콩쿨 1등으로 입상했구나?"
"응, 당연하지!! 내가 누구냐? 윤현 이잖아~윤현 하면 플룻 아니냐~!!"
아마 오기로라도 열심히 연습했을 현이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해 푸훗-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자, 왜 웃냐고 묻는 현이에게 그냥이라고 대답한 뒤, 왠지 불길한 예감과 함께 돋는 소름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2
"너,너!! 서예린 이년아!!"
이 목소린..아버지다. 하..대낮부터 술에 만취하시다니, 참 대단하세요. 그대로..현이가 보는 앞에서 머리채를 잡힌 채 집으로 끌려갔다. 아..이러다 나 탈모 되겠네.
혹시나가 역시나. 엄청 맞았다, 이번에도. 이곳저곳이 아주 않쑤시는 데가 없다. 아침 등교할 때부터 맞았는데, 현재시각 9시 30분. 게다가 창문을 내다 보니..A.M.이아니라, P.M.이었나보다. 이런..편의점 알바 지각. 하루 종일 맞았더니 걷기도 힘드네. 휴으..
'딸랑-'
"서예린 너-!!지금이 몇시야?"
"응?음..9시 35분..아, 이게 아니라 미안해, 진우야..그럴만한 사정이..;;"
"후, 내가 못살ㅇ....야...너 싸웠냐?"
쳇, 눈치 빠른 놈..이 놈은 동갑내기 알바친구(?)다. 얜 저녁 시간. 난 밤시간. 원래 이런건 남자가 밤시간 해야 되는 거 아냐? 치사한 김진우. 쨌든..진우가 가고, 나 혼자 남겨진 편의점. 왠지 무섭구나..; 핸드폰이나 켜볼까..아까 아버지가 던졌는데..작동이나 될까 모르겠다.
'띠링-띠링-띠링-띠링-'
"오우..대체 이게 몇통이야?;;"
참..문자 43통에, 부재중 전화가 50통.. 전화 3통은 담임쌤. 나머진 다..현이 꺼네. 헐, 현아 미안..
급하게 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린아!!!!너 괜찮아??!!!"
"응..나 괜찮은거 같아..."
"휴, 진짜 내가 너네 아부지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진짜 독하시네."
"하핫..그런가..내가 잘못했으니까.."
"으구, 물러 터진 것. 쯧쯔."
오늘따라 한가한 편의점 덕에 몰래 문자와 전화를 주고 받으며 수다를 떨었다. 이상한 날이네..한가한 게 이상한 위치의 편의점인데. 회사 사무실이나, 학원으로 주변이 다-둘러 쌓인 지점이라..이상하지만 않오는 게 뭐 어때서. 요즘 이상한 고민이 많아진다. 설마..나 소심해 지는 건가..?!
"으아!!끝났다!!!......슬퍼."
드디어 알바를 끝내고..들어가기 싫은 집에 가야할 시간. 아이고, 그 지옥같은 곳에 또 가야 하다니..
횡단보도.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지, 불안허게 시리.
'빠아앙-!!!!'
오 주여. 이 어린양을 벌써 대려가시오이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트럭하나. 빙판 때문인지 트럭 안의 운전기사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하다. 머릿속엔 어릴 때부터의 기억들이 모두 스쳐간다. 이게 주마등이구나.....
현아..이 언니 먼저 간다..
......
"으...여기가 어니지..."
눈을 떠보니..여긴 무슨..정신병동인가. 사방이 다 하얗다. 게다가...아무 것도 없네. 우와-신기ㅎ....한게 아니잖아!!!! 여긴 대체 어딘 거야?!! 오 주여 세상사람들, 현아- 날 좀 보소 구해다오...
"이름. 서예린. 나이. 17세. 유화고등학교 재학 중. 교통사고사(死). "
"...헛!!!"
"뭘 그리 놀라느냐."
"누, 누구신데 저에대해 그렇게..!"
왠 머리가 땅에 끌릴 것 같은 외국인이..만화에서만 보던 하늘하늘한 소재로 된 옷을 걸치고(?) 있었다. 뭐지? 난 분명히..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왜 여기에 있고, 또 저 사람은 누군데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거지? 호..혹시.스토커?!
.......설마. 내가 예쁜 것도 아니고..
"후...너는 사 후 세계란 것도 들어보지 못 했느냐. "
"아뇨..들어는 봤죠...그럼 여긴..."
"역시 인간이란 종족은 다 하나같이 바보같군."
"...;; 그,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데요!"
"나? 흠..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난 내세를 관장하는 신, 타이시스다."
"시..신...?...푸하하하하!!!!!!"
"...왜 웃지?"
"그런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하다니...푸하하하하!!"
'딱!'
"응? 으븝으브븝!!!"
남자가 열받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한 번 딱! 하고 튕기니, 입이 않 떨어진다. 헐, 진짜 신인가 봐..잘못했습니다, 주여...
"주는 아니다. 조용히 하고 들어라. 지금부터 네가 걷게될 내세를 정할 것이다."
이런 믿기 힘들지만 왠지 믿어야 될 것 같은 말을 하신 신님은..눈을 감고 자기 혼자 음-불쌍한 것. 이렇게 중얼중얼 거리다가...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네가 걸을 내세가 결정됬다."
"으읍으브브브?"
"흠..."
'딱!'
"으아! 그렇게 빨리요?"
다시 손가락을 튕기니 입이 떨어진다. 오우, 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어. 감사합니다, 신님.
"감사할 것 까진 없고. 네 내세나 들어라."
아네...역시 신은 괜히 신이 아니군..독심술을 하잖아....
"별 생각을 다하는 군. 네 내세는- 신(神)이다."
#.3
". . . 파든미 . . ?"
모 쏠로 여가수의 노래 겸 드라마 OST이기도 한 노래, '말도 안돼' 가 귓가에 맴돌았다. 뭐요? 시, 신? 왜 굳이 당신과 같은 계급으로 정하셨나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일부러 묻진 않았다. 아마- 이 타이시스란 신은 다 읽고 있을 테니까.
"리히엔 타힌스. 당신의 이름입니다."
"예,예 . . ?"
"당신의 이름은, 리.히.엔. 타.힌.스. 입니다."
왜 갑자기 경어를 . . . 신 됬다고 그러는 건가. 하하. 권력이란 . . .
타이시스는 나를 무슨 원 안에 가둬놓고 뭐라뭐라 블라블라 멈블멈블 하기 시작했다.그가 주문 외는 것을 끝마치자마자, 원이 눈이 아프도록 빛나기 시작했다.
" . . . 이게 뭐죠?"
"이동진 입니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눈을 감아주십시오."
"네 . . . 그럼 전 어ㄷ. . . 아악!!!"
내가 소릴 지른 이유는, 내가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 . .
꿈을 꿨다. 아주 조금은 . . 슬픈 꿈. 꿈에서 난 모르는 바닷가의 해변을 걷고 있었다.
내 옆엔 . . 나보다 한 뼘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굴까. 하고 생각하던 중, 남자가 내게 말을 해 왔다.
"예린아."
" . . . 네?"
그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나와 아는 사이인가?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등지며 모든 고민을 혼자 진 사람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만약에 . . . 아주 만약에 말이야 . . . "
". . . . ."
"내가 . . . 널 떠나게 되면 . . ."
"그런 말 하지마."
" . . . . . . "
나도 모르게 나가버린 말. 그가 누구길래 내가 이리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말 않고 가만히 서있다가, 빠르게 뒤돌아 나를 꽉 안았다.
". . . 금방 올께."
이 말만 남기고는, 다시 뒤돌아서 우리가 함께 걸어온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남자 때문에 울어야만 했다. 한 참을 울다 제풀에 지쳐 쓰러져 버린거 같다.
. . . . . .
"으으 . . . 여긴 또 어디야 . . . "
눈을 떠보니 어느새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여긴 또 어디지? 자꾸만 바뀌는 장소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아네 . . 뭐 . . . 조금 어지러운 것 빼곤 . . . 근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왠 은색(그것도 어두운 은색)의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낀 사람이 나를 빤히-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 내 이마에 얹었다. 아 . . 저기 부담스러운데 . . . 얼굴좀 치워주심이 . . . 손이 왔다고 얼굴까지 같이 올 필요는 . . .
"저는 카다힐 바넨 입니다. 의술을 담당하고 있죠."
당신네도 신이셨군요. 사람이 아니었어 . . 아, 나도 방금 신 됬지 . . . ? 잠깐! 카이시스씨, 신되는게 왜 이렇게 쉬운건데?!
"저기 . . 카다힐님 . . . 제가 . . 왜 여기 . . . "
"후 . . 리히엔님이 하도 않깨어나시길래, 헤이닌이 리히엔 님을 데리고 저를 찾아 왔다고 하더군요."
"헤이 . . 닌 . . 이요 . . ?"
"네.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방금 전에 담당차원으로 돌아갔습니다. "
아 . . . 헤이닌을 또 누구냐 . . . 대체 왜 이렇게 다들 이름이 어려운지. 내 이름이 되어버린, '리히엔 타힌스' . . . '카이시스' . . '카다힐 바넨' . . . 이젠 '헤이닌'이냐 . . 게다가 뭐? 담당차원? 그건 또 뭐지 . .
"흐음--신생이란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네? 아 . . 네. 리히엔 타힌스 입니다."
"예, 리히엔님. 알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담당하신다고요?"
워매 무안한거. 참 사람,아니-아니지. 신 무안하게 만드는 데 뭐 있으시네..
"네뭐 . . . 감저ㅇ. . . 네 . . ?!"
"감정이요. 아니십니까?"
"하 . . 하하 . . . "
좋아. 좋아 . . 릴렉스 . . . !! 하 . . 하하하 . . 감정 . . . 그래, 감정. 제 화도 하나 못 컨트롤 하는 내게 . . 감정. . 담당 . . . 이라고 . . .
카이시슨지 카드시슨지, 당신네는 아마 날 잘못 판단한 게야.
"완치 되신 것 같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리히엔님의 차원에 가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말을 끝 마친 카타힐이란 신은 다른 환자들이 있었는지, 급히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어떻게 이 곳에서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4
<3인칭 시점>
"...뭐하십니까?"
"으,으응..? 누구..세요?"
"아-저는 여신 님의 보조천사, 헤이닌 시폰타입니다."
"보조..천사..?"
"네. 저는 3급 천사로써, 카이시스님의 명을 받들고자, 앞으로 리히엔님을 보필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짙은 초록색이 소름 돋으리 만치 잘 어울리는 차가운 인상의 이 남자, 아니, 천사. 자신이 예린(리히엔)의 보조천사라고 한다. 예린은 대체 신으로써 해야 할 의무가 뭐 길래 보조 천사까지 있는 거지? 라는 생각에 잠겼다.
"어서 가시죠, 리히엔님."
"어, 어딜요?"
"그야, 당현히 리히엔님의 차원이죠."
"아...네..."
예린은 카이시스가 필히 자신의 성격을 죽이기 위해 이런 기가 센 놈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헤이닌을 빤히-쳐다 보았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아니요.."
"...않가십니까?"
"응? 아, 응..가야지..가야겠죠..."
예린은 체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헤이닌은 그런 예린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않가십니까?"
"......"
명색에 그래도 신인 예린, 리히엔은 자신보다 급이 낮은 천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창피했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곤 헤이닌을 불렀다.
"저기요, 헤이닌씨?"
"그냥 헤이닌이라고만 불러주십시오."
"네네...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요...나 어떻게 이동하는지 몰라요.."
"...후, 마음 속으로 이동하고 싶은 곳을 그리십시오."
"하하하...감사합니다..."
예린은 창피함에 두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이동하고 싶은 곳을 그렸다.
'어디보자...내 차원으로 가야하나?'
- 이동 -
"우왓!! ...여긴 또 어디야..."
"..제대로 오셨군요, 리히엔님. 이 곳은 차원 제 104829. 당신의 차원인, '엔티힌' 입니다."
"엔티힌..이라...저의 차원이라고 하셨나요? 그렇다면..설마..국가같은 게 있나요?"
"리히엔님이 예상하신 그 설마가 아마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는 총 3개. '루트', '하타르', '샤단' 입니다. 현재 루트와 샤단이 냉전 상태여서 중립인 하타르는 곤란한 처지이며, 샤단제국의 황제인, '사마란 샤단'은 매우 잔인한 인간으로 전쟁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리히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피튀기는 전쟁터를 상상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않간다는 것을 만면에 쓰고 있었다. 헤이닌은 잠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금 말을 이었다.
"루트의 황제인 '타샤닌 세인트'는 애주가로, 두 제국의 냉전의 원인은 이에 있습니다."
"응? 왜요? 애주가랑..전쟁 좋아하는 미치광이랑..뭔 일이 있었길래..."
"전쟁을 치루고 싶어 안달난 사마란 샤단이 타샤닌 세인트가 잔뜩 취해 있는 틈을 타 먼저 시비를 건 듯 합니다."
"...무서운 사람들..."
"그 들에게 그런 일이 있고나서 며칠 뒤에 이상한 낌새가 보이더니, 그 다음날 바로 전쟁이 시행 되었습니다. 냉전은 약 6년정도 되었으며, 냉전상태가 된 후, 총 4 일어났습니다. 사마란 샤단은 현재 아주 만족스러워 하고 있지만, 타샤닌 세인트는 이 전쟁이 둘 중 한 제국이 무너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겠다며 6년 전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헤이닌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무고한 생명을 죽여나가는 두 제국의 황제들을 무척 싫어하는 듯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차갑고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일었기 때문이다.
"...전대(前代)의 감정의 여신이셨던, '타미네 나오비' 님이 계실 때의 일인지라, 그 분은 그들의 전쟁을 막기 위해 그들을 어르고 달래고, 무서운 벌을 내리겠다는 협박도 하셨었지만, 전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헤이닌은 그들의 피 튀기던 전쟁터가 생각 났는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으려고 했으나, 헤이닌이 리히엔 자신의 전대인 '타미네 나오비'을 언급하자, 리히엔의 관심은 그녀에게로 꽂혀버렸다.
"'타미네 나오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그 분은..."
무뚝뚝하고 차가운 그의 얼굴에 리히엔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짧은 미소가 걸렸다.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마음이 정말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렇구나. 어떻게 생기셨는데요?"
리히엔의 이어지는 물음에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그 물음에 대답했다.
"...당신과 꼭 닮았습니다."
"저랑요? 음..내가 흔한 얼굴은 아닌데.."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거울 보셨습니까? 당신은 인간 서예린 때의 모습이 아닙니다만.."
"에에?! 에이~말도 안돼! 거짓말 않하게 생겨가지곤,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구라를 치다니!"
"..구라가..뭡니까?"
"...아니에요..별 뜻없어..감탄사에요..."
리히엔은 그에게 '구라'가 감탄사라고 말하며, 그에겐 정말 못 당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헤이닌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한 쪽에 놓인 화려한 전신거울이 걸린 곳으로 갔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레몬빛의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실크의 연노랑색의 긴 원피스였다. 어깨 선이 있는 부분부터 손목 끝 까지는 반투명이었으며, 허리라인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리본으로 보이는 끈이 허리에 감겨있었다. 이런 조금은 불편한 의상과 한 두뼘은 길어진 머리카락과 색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건가 하고 생각하며, 헤이닌을 돌아 보았다.
"그럼...이 곳에서 제가 할 일은 그들의 전쟁을 중재시키기만 하면 되나요?"
"네. 현재로썬 그렇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신전에 기도를 오는 사람들의 소원도 고루 보셔야 하지만, 일단 모든 이들의 소원은 전쟁이 끝나는 것이니 전쟁부터 막으셔야 하십니다."
헤이닌의 눈빛은 마치, 전대의 여신도 해 내지 못한 일을 신생에다 전생이 인간인 네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라고 묻고 있는 듯 날카로워졌다. 그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리히엔은 결심을 굳혔다.
"두고봐요. 내가 꼭 그들을 화해시킬 테니."
#.5
"...진심이십니까?"
"그럼 당연히 진심이죠~!!;;"
"흐음-..."
헤이닌은 진심이라고 주장하는 리히엔을 보고 그녀의 말이 조금은 미심쩍은지, 그는 심지굳은 눈으로 한치의 떨림없이 자신을 보고 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뭐야, 그 눈빛은.. 못믿겠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을 하실 것이죠?"
"음-아무래도 신계에 숨어서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한다면 듣지 않을 것이 뻔할 뻔자이니-직접 가지, 뭐."
"그럼 먼저 제 설명을 ㄷ..."
"아이고, 걱정은 그만~변신은 하고 갈테니!"
'딱!'
언제 익혀 두었는지, 그녀는 폴리모프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는, 헤이닌이 뭐라고 할 새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리히엔ㄴ...!!......"
'파앗---'
헤이닌이 말을 끝맞히기도 전에 그녀는 어디론가 이동해 버렸다. 대책없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못말리는 분이군. 후..."
......
"...여긴 어디냐..."
리히엔은 무턱대고 마음 속으로 하타르 제국을 그렸다. 그녀가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인 것 같아보이긴 했다. 무사히 잘 도착했구나-하고 안심할 때쯤, 헤이닌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것이 조금 불안해져 왔다. 하지만..지금 그녀의 상황은 그런 것을 걱정할 만한 처지가 못 되었다. 지금 그녀는...
"넌 누구냐!!!"
"응? 허, 허억.."
"갑자기 나타나다니...게다가 옷도 상당히 이상하고..!이 이상한 자를 묶어라!!"
지금 그녀는 하타르 제국의 병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뾰족하게 빛나는 창과 칼들을 보고 겁을 먹은 리히엔은, 어찌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병사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후아...웃어야 할지..울어야 할지..."
분명히 이대로 끌려가면 하타르 제국의 왕, '케이온 시라우스'에게 갈 것이 뻔 하지만, 이렇게 잡혀 가는 것을 보면 까딱했다간 감옥에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곳에 오기 전 헤이닌의 말을 끝까지 들을 걸.. 이라는 후회가 쓰나미로 몰려왔다. 그리고 폴리모프를 할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아야 했었다. 복장이 너무 튀는 것이다. 이 세계, 그러니까, '엔티힌'의 평복을 모르는 리히엔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인간이었을 적 기억 속의 평복으로 폴리모프하고 만 것이다.
"어서 들어가라!!"
"우와앗!!"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동안, 궁에 다 왔는지, 리히엔을 묶은 밧줄을 잡고 앞장서 끌고 왔던,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남자가 그녀를 거칠게 어떤 방에 밀어넣었다. 그 덕분에 리히엔은 넘어지고 말았다.
"으으으...아퍼라.."
"뭐하느냐! 어서 황제폐하와 왕자마마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에, 에에..?"
남자의 말에 무릎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안락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와 그 옆에 앉아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보자마자 그들이 하타르 제국의 황제와 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흠-"
"아...안녕하십니까...하하하..."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길래 우리 제국에 그런 이상한 차림을 하고 갑자기 나타난 것이지?"
"저는..."
황제의 질문에 자신을 무엇으로 소개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던 리히엔은 좋은 것이 생각났는지, 좁히고 있던 미간을 곧게 폈다.
"저는 마법사, 히넬린 시네시스입니다."
"마법사? 흐음..마법사라..."
"...히넬린 시네시스라고 했나. 그대는 왜 우리 제국에 그런 차림으로 왔는가. 차림으로 보아하니, 우리 제국은 물론이고 루트와 샤단의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
리히엔은 과연 예리한 왕자라고 생각하며, 그 것을 넘길만한 변명거릴 생각했다. 마법사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숲에 사는 마법사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잠시 제국 안 마을에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옷은...새로운 모양의 옷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흐음..그렇군. 그 옷은 별로인 것 같다. 다른 옷이 있다면 그 옷으로 갈아입고 오너라. 없다면 시종에게 말해 옷을 받아 입고 다시 이 곳으로 오너라. 만약 도망 친다면, 너를 꼭 찾아내고 말테니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말거라."
꼼꼼한 왕자같으니라고..대체 빠져나갈 구멍을 다 차단해 버리는 구만..속으로 신세한탄을 한 리히엔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온 여시종을 따라 황제와 왕자가 있는 방을 나섰다.
......
리히엔은 여시종을 따라, 이번엔 조금 전의 방 보단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나오세요."
"아..네. 감사합니다."
"무, 무슨 그런 과하신 말씀을..저는 물러나 있겠습니다."
리히엔의 감사하는 말에 상당히 당황하던 여시종은 황급히 방을 나갔고, 그녀는 그런 여시종이 방을 나가는 것을 물끄럼히 보다가 많은 옷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입었다. 그녀가 고른 옷은, 밑단에 하얀색 레이스가 달려있고 끈으로 된 심플한 딱 봐도 고급소재일 것 같은 원피스 였다.
"..저어..입고 나왔는데..."
"아, 네. 저를 따라오세요."
"후아..."
리히엔은 조금 전의 근엄하다 못해 무서웠던 황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시종은 황제와 왕자가 있는 방앞에 그녀를 놔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야 왔군. 마법사라고 했는가? 그렇다면 몇 써클 정도인가?"
"아...그게..."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보아라."
"으으음..."
황제와 왕자의 재촉에 그녀는 써클이 무엇인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릴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몸의 이곳 저곳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으응..?꺄, 꺄아악!!!"
통증은 점점 심해져 오더니, 어느새 리히엔의 몸을 감아 올라와 그녀의 정신을 투둑-끊어 놓았다.
#.6
"...씨이, 뭐야..나 왜 여기있어..."
"그러길래, 제 말을 끝까지 듣고 가셨어야죠."
"으으...나 왜 여기있는건데요.."
"못말리는 신생 여신님이로군요? 라히엔님."
"리히엔이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좋아, 한 때 닉네임 제조기라 불리우던 내게 도전을 해? 카다힐 바넨이라고 했었지? 난 널 카드힐 조넨이라고 부르겠어..흐흐흐...'
리히엔은 카다힐을 흘겨 보고는, 머리를 가다듬었다. 흡사 고양이 같은 그 행동에, 카다힐은 아무래도 머리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다힐의 옆에서 그녀의 생각을 읽은 헤이닌이 말했다.
"아무래도..머리쪽에 이상이..."
"헤이닌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바로 집었다."
말은 같으나, 생각은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여기있는 건지 설명해 줄 사람? 아니지 아니지. 신?"
그녀의 질문에 자신의 결론이 더욱 확실해 진 것을 느낀 카다힐이 입을 열었다.
"라히엔님은 역소환 되셨습니다."
"역..소환? 그게 뭐죠?"
"흠..쉽게 말씀드리자면, 억지로 불려오는 거죠."
"...나 무슨 잘못한거..있어요..?"
"예. 있습니다. 버켄의 허락없이 인간계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게 당신의 잘못이죠. 역소환된 것을 보아하니-당신, 버켄을 찾아가지 않았군요?"
"버켄..? 그건 또 누군가요..."
모르는 것이 계속되자, 그녀는 지쳤다는 듯이 어깨의 힘을 빼며 고개를 푸욱- 숙였다. 신계에 온 후, 계속 모르는 것들의 연속 때문에 지쳐버린 것 같았다. 카다힐은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버켄 아오빌. 유희를 관장하는 신이죠."
"유..희? 왠 유희? 그런 것도 허락 받아야 돼요? 신인데?"
리히엔은 어이없음을 느끼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카다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지껏 가만히 있던 헤이닌이 드디어 입을 뗐다.
"이 곳, 신계에선 모든지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않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허락과 동의를 통해 이루어지지요."
"흐응...뭐가 이리 복잡한 거야..."
"역소환 때문에 온몸에 통증이 오셨었죠? 회복시켜 드렸으니, 통증은 없으실 겁니다."
"고마워요, 카드힐 조넨님."
"...예?"
"감사하다구요, 카.드.힐. 조.넨.님."
"......하하하! 재밌는 분 이시군요-. 그럼 전 이만-"
카다힐은 잠시 당황한 듯 했으나, 특유의 능글한 성격으로 둥글둥글하게 넘어가 버렸다. 그런 그에 리히엔은 약간의 짜증이 첨가된 듯한 표정으로 궁시렁 거렸다.
"그럼-이제 엔티힌으로.."
"흥! 카드힐 조넨이 않먹히다니..저런 능구렁이 같은!"
"...리히엔님. 이제 그만 엔티힌으로 돌아가심이.."
"알았어, 알았다구요. 가면 되잖아. 쳇."
침대에서 일어나 '나 삐졌어요' 라고 항의하는 듯한 발걸음을 옮기는 리히엔을 보며, 헤이닌은 짧게 웃었다.
. . . . . .
엔티힌에 도착한 리히엔은, 헤이닌에게 이 곳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며 설명을 부탁했다. 그가 설명을 시작하자, 그녀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헤이닌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이 곳, 그러니까 신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주신을 중심으로한 나라라고 보시면 쉽습니다."
"나라? 그럼-주신의 밑에 있는 신들은 모두 국회의원인가..."
"예, 뭐..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신들께서 관장하시는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으나, 주신께서는 그것을 모두 통제하는 최종 권리가 있으시니까요. 그리고 추가로 말씀 드리자면, 이 곳에는 인간과 신 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과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에, 리히엔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헤이닌은 그런 그녀를 보고 속으로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먼저, 엘프 (Elf)입니다. 인간보다 귀가 긴게 특징입니다. 신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나고, 감각은 야행성 생물을 훨씬 능가하지만 빛에 약합니다. 정령과의 친화력이 매우 높고, 공포란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인간과 같은 속도로 자라다가 청년의 외모에서 더 이상 늙지 않습니다. 신기하죠?
하프 엘리멘탈(Half Elemental), 인간과 정령의 혼혈입니다. 이 종족은 혼혈한 정령에 따라 다르나, 대체적으로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령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정령과의 친화력 역시 강합니다.
드워프 (Dwarf), 이 종족은 대단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염을 기르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제 생각에는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여성도 수염이 나더군요. 유독 마법은 전혀 쓰지 못하나, 기본적인 완력이 강합니다.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습니다. 아, 대체적으로 동굴에서 살더군요."
"허엇..어떻게 그걸 다 외운거죠..?!"
"그들을 오래 전부터 많이 봐와서 그렇습니다. 아, 인어 (Mermen &Mermaid) 가 있었군요. 생김새는 리히엔님도 잘 아실거라고 믿습니다. 바다에 잠든 보물들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역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만, 능력이 아니라 마법입니다. 평소에는 온화하나 자격 없이 보물을 소유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즉시 공격하여 살려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뭐...기분이 좋으면 보물을 쉽게 내주지만 기분이 나쁘다면 아무 이유도 없이 지나가는 선박들을 침몰시키는 등의 만행을 저질러, 바다를 관장하는 여신인, 페리메라님께 혼이 난다고 합니다. 이 종족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프시다더군요."
"변덕이 심하군요..;; 불쌍하신 여신님이시네요..."
리히엔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본 헤이닌이 말했다.
"...당신께서 하실말씀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네? 저는 왜요? 저한텐 인어가..."
"크흠. 혹시..못 느끼시는 겁니까?"
"네?; 저..불감증 아닌데요..."
"..아니요. 당신 주위에 있는 요정들과 정령들을 말하는 겁니다."
헤이닌이 검지로 리히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멀뚱히 있는 그녀가 답답한 듯, 한 숨을 쉬었다.
"후...나중에 얘기해 드리도록 하고-마저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헤이닌은 신족(God-man), 뱀파이어 (Vampire), 요정 (Fairies), 거인 (Giant), 낭인족 (狼人族), 묘인족 (猫人族), 락샤사 (Raksasa), 약사 (Yaksa)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말을 잠시 끊어 집중하고 있던 리히엔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자, 리히엔도 왜 더 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턴 주의깊게 잘 들으십시오. 꼭 알고계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종족은, 마족 (Fiend). 마왕을 중심으로 되어있는, 신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나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족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그들 주변엔 항상 살기와 같은 것이 느껴져서..왠만하면 가까히 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마력에 의해, 즉 힘에 의해 계급이 형성되고 철저하게 관리 되고 있습니다. 물론 계급이 낮더라도 마력이 높아 상위 신분을 밟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밟아서 위에 서게 되는 방식입니다. 아주 무서운 종족이죠."
"흐음...그들과는 별로 만날 일이 없지 않을 까요?"
"만나지 않는다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데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제 소견입니다만..샤단 황제가 전쟁에 미친 것도 마계의 신인, 마신이 그리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허억...그..그럴수가...!;;"
"확실하진 않습니다. 아, 마족 중에서도 데몬 (Demon)이라 불리우는 날개가 달린 인간과 비슷한 괴물이 있는데, 이들 또한 조심하셔야 합니다. 마법도 신체적 능력도 중간 정도인 마족인데,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으며, 그림자와 안개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 인간들을 자주 골려 먹죠.
이 들은 정말 사제들에게 잘 말해두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신전에 가기라도 하는 날엔...후, 상상만 해도 진땀이 나는군요. 신성력에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가장 위험한 마족입니다."
"그, 그렇군요...알겠습니다..."
리히엔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헤이닌은 그런 리히엔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리히엔님, 버켄님께 다녀오겠습니다. 당신의 '유희의 서'를 받으러 말이죠."
"아, 네. 다녀오세요-."
헤이닌이 버켄에게 가고, 리히엔은 자신이 골똘히 생각하던 것을 마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신의 짓이라..헤이닌의 소견이었지만,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것을 즐기는 마족의 신인데..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리히엔은 너무 집중한 탓에, 소리없이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알아체지 못했다.
"여어-안녕하신가요?..감정의 여신. 리히엔님."
#.7
"...누구시죠?"
"아~이런. 제 소개부터 하죠. 저는,시타르 라센느입니다."
"...그러니까..누구시냐니까요."
자신의 시간을 방해한 것이 상당히 짜증났는지, 리히엔은 평소에는 잘 내보이지 않던 까칠함을 내보였다. 시린 듯하면서도 따뜻한 은색의 눈과 머리색을 소유한 그 남자는 적지 않게 당황한 듯했다. 자신을 시타르 라센느라고 소개한 남자는 곧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알겠습니다. 제대로 소개해 드리죠. 저는-"
"...?"
"마계의 3대 공작, 시타르 라센느라고 합니다만-."
"마계의 3대 공작이 ㅁ..마..마계...?"
"네, 그렇습니다. 저는 마신이신, 세뮤안 케이센님의 명을 받들어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저..저를, 아니, 나를 왜요?"
리히엔은 겁먹지 않으려고 경어를 쓰는 것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지, 그녀의 눈이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을 본 시타르는 입꼬리를 위로 살며시 올리며 웃었다. 그냥 본다면 반할 만큼의 상당히 매력이 있는 웃음이었지만, 리히엔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미소였다.
"하..하하...마신께서, 신생인 나를 왜 보자고 하신 것인지...잘 모르겠다만..?"
"그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같이 가주셔야 겠습니다."
"시,싫다면?"
그녀의 답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활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납치해야겠지요?"
......
"모셔왔습니다. 세뮤안님. 아, 오시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바람에, 잠시 재워드렸습니다. "
"기분이 나쁘셨을 테니, 나중에 사과 드리거라. 쿡..이만 물러나도 좋다."
"네, 세뮤안님.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쿡쿡...반갑습니다...리히엔, 감정의 여신."
미남형의 조금은 무서운 인상의 남자가 잠이 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모습은 마치, 악마가 인간을 홀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차가운 미소를 흘리던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테라스에 앉아 앞에 놓인 와인잔을 손에 쥐었다. 밤이 된 마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과 밤 모두 온통 검은색의 하늘 뿐이 었지만, 그는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전혀 상반된 말을 내뱉었다.
"이런...마계는 이래서 별로인 것 같단 말이지. 큭.."
그의 손에 들려 붉게 빛나는 와인이 그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달빛은 리히엔의 얼굴을 창백히 적셔놓았다. 앞으로 그녀가 격어야 할 일들을 알려주듯, 달은 더욱 시리게 빛났다. 피보다도 더 진한 붉은 색의 와인이 밝게 빛나는 마계의 밤이었다.
"......으으..."
리히엔은 잠에서 깨자마자 보이는 검은색의 천장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작게 신음했다. 이 곳이 어딘지 고민할 새도 없이, 푸른 눈을 가진 흑발의 남자가 그녀의 앞에 다가왔다.
"깨셨습니까? 이거 정말 죄송하군요. 제 신(臣)의 무례함을 너그러히 용서하시지요."
"..누, 누구...!! 마..신...?"
"쿡..이거-알아봐 주시니 영광이군요."
"..저를..보자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그가 그러던가요? 흠, 재미없군요. 천천히 제가 직접 말씀드리려고 했건만.뭐. 납치극은 나름대로 재밌었습니다."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공포와 불안함, 짜증남으로 가득한 그녀에게 그의 미소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급하시군요. 무슨 일이라도? 쿡, 좋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하죠."
와인을 한 모금마신 그는 그녀에게 와인을 권했으나, 그녀는 차갑게 경계하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크흠. 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차원, 엔티힌. 그 곳의 샤단제국의 샤단황제, 아시겠죠?"
"예. 알고있습니다."
"그를 전쟁광(狂)으로 만든 것은 바로 저입니다."
"하아..역시 당신이었군요. 어째서죠?"
화가 난 듯한 그녀의 물음에, 그는 그런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희를 위해서죠. 재밌지 않습니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행동이."
"저는 당신처럼 또라이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만?"
출저를 모를 용기가 마구 치 솟는 탓에, 리히엔은 인간일 적의 욱-하던 성질이 다시 나왔다. 무서움과 두려움이 용기를 많이 억누르고 있었지만, 조금은 역부족 이었는지, 그녀의 용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당신의 머리 속을 해부해 보고 싶군요. 싸이코의 뇌는 어떻게 생겼나, 박물관에 전시해 놓게요. 뭐, 그것이 즐거운 것은 당신의 미친 취향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머리가 있으니 생각을 못하는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요?"
'덜컥!!!'
"감히 이 계집이!!! 이 분이 누구신줄 알고 그리 경박한 말들을 늘어 놓냔 말이다!!"
'우웅---!!'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입술을 빨갛게 물들인 여자가 들어오며, 리히엔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리히엔의 몸을 털 끝 하나 건들지 못했다. 세뮤안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리히엔이 그녀 자신보다 급이 높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녀가 공격하는 것을 가만히 잠자코 앉아 두고볼 정령들이 아니었다.
리히엔은 아직 자각하지 못한 듯 했으나, 그녀 주변엔 언제나 항상 감정의 정령들이 붙어다녔다. 기쁨, 분노, 비애,공포 등..많은 정령들이 언제나 그녀를 보호하며 감싸고 있었다.
방금 전, 용기가 치 솟았던 것도, 유달리 정의를 사랑하는 '기쁨의 정령'이, 이 전쟁을 즐긴다는 마신의 말을 듣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그녀를 꽉 잡고 있던 공포의 정령을 그녀에게서 떨어뜨려 놨기 때문이다.
"꺄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세뮤안님!!!"
날카로운 그녀의 비명이 리히엔의 귀에 파고 들었다. 리히엔은 그녀가 자신에게 분명히 공격을 하려 했으나, 무언가의 힘에 의해 튕겨져 나간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공포에 질린 그녀의 얼굴은, 인간일 때 아버지에게 맞던 자신과 너무나도 겹쳐 보였다. 그녀는 일단 세뮤안을 말려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빨간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는 괜찮으니, 이제 그만 놔주시죠. 제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후, 아이네 레바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져라!"
"크헉...아, 알겠습니다."
아이네 레바라고 불린 그녀는 목을 그러쥐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럼-마저 이야기를 할까요?"
그는 아이네에게 응징을 할 때 넘어졌던 의자를 다시 바로 세워 앉으며 말했다. 리히엔은 흥분으로 잊었던 공포가 다시 스물스물 기어올라옴을 느꼈다.
"제 본론은 이 것입니다. 엔티힌에서 손 떼시죠."
"!! 하지만, 그곳은 저의.."
"상관없습니다. 당신만 좋다면 말입니다."
분명히 여기서 자신이 엔티힌에서 손을 떼버리면, 그 곳은 피바다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자신의 전대인 타미네 나오비에겐 이런 수가 통할리 없으니 제안조차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세대가 교차되어 자신은 신생이니, 만만하게 보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싫습니다."
"어째서죠?"
"풉, 당신은 내가 그 곳에서 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그 아름다운 곳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 뻔할 뻔자임을 알기 때문이죠. 아닌가요?"
"...하하하하!! 거절하는 게 감정의 여신들 주특기인가 보지?"
어느새 경어에서 하락한 말투에 흠칫-한 리히엔은 애써 담담한 척 했다. 엄지손톱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것은 그녀가 불안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여유있게 보이기 위해 약간의 약올림을 첨가했다.
"내가 거절한 게 마음에 안 드신가 보죠?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죄송하실 필요 없습니다, 리히엔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안심하고 뒤를 돌아 보았다.
"!!! 너..너는..!!!"
#.8
"하이 ~ 오랜만 인가?...예린아."
"너..네가..어떻게 여기에..."
"흠-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거야?"
갑작스런 그녀의 출연에 당황한 건지, 리히엔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려깔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어째서..현이가..여기에..!!'
"서운한 걸, 서예린-.굉장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혀, 현아...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거야..?"
"그건 이따가 묻고-지금은 일단 저 마신부터 정리하지?"
"아, 맞다. 세뮤안님, 그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대답, 후회할 겁니다."
......
"예린아~아아-이젠 예린이가 아니라, 리히엔 타힌스라고 불러야 겠는걸?"
"윤 현. 얼른 똑바로 말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왜 네가 여기있어?"
"왜 이렇게 무서워 지셨어, 서예린씨? 아구, 무서워."
"윤 현, 너 진짜!?"
"알았어, 알았어, 말할께. 잠시만-."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폴리모프를 해제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유희 즐기는 중이 었어."
"유..희?"
"응. 내 차원은 아니지만-흥미 있어서 간거야. 거기서 널 만난거구."
"그럼..너희 오빠는..."
오빠의 얘기가 나오자, 빠르게 굳는 안면근육을 어찌하지 못한 현은 표정이 굳은 체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는-..내 보조천사야. 지가 하겠다고 해서 대리고 나왔더니, 더러 사고만 치고 다니고. 못살아. 이래서 여신들은 보조천사를 여자로 만나야 하는 거야."
"하..하하..그렇구나..그럼 너도 여신이란..?"
"그렇지~많이 똑똑해 졌네?"
머리를 쓰담쓰담거리는 현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리히엔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좀 기분 나쁘다?"
"에이~뭘 그래, 칭찬이야-."
"흠. 그래, 넌 어떤 걸 관장하는 거야?"
"맞춰봐!"
"뭐? 야, 그걸 어떻게 맞춰?"
현은 리히엔을 약올리며 맞춰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스물스물 리히엔의 어깨로 기어올라가는 분노의 정령을 본 헤이닌은 살짝 움찔했으나, 현은 그 것마저 즐겁다는 듯, 문제를 내는 어린 애 마냥 헤실거렸다. 그런 현에게 그녀는 차마 빨리 불으라고 괴팍한 짓을 할 수는 없었는지 분노의 정령이 다시 어깨에서 미끄럼을 타듯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 것을 본 헤이닌을 안도의 한 숨을 내 쉬곤, 입을 뗐다.
"그냥 말씀해 주심이 어떠십니까, 레이나님."
"어어-말하면 어떻게! 이름도 맞춰보라고 할 꺼 였는데, 쳇. 이왕 헤이닌이 말한 거, 풀 네임을 가르켜줄께-. 내 원래 이름은 '레이나 핀'이야."
어쩐지 현이 더 어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을 고민했다.
'인간이었을때..먹는 걸 좋아했으니까 음식의 여신 이런건가?...에이, 설마...'
"에이, 설마..."
리히엔의 생각을 본 헤이닌이 피식-웃었다. 레이나가 왜 그러냐며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며 대답을 피했다.
"힌트! 콩쿨 1등 입상-."
"콩쿨?흐음..흐으음..플룻 콩ㅋ...!! 너 설마!"
"니가 예상한 그 설마가 맞길 바래-."
"설마..네가 관장하는 것이..음악..?"
레이나(윤 현)는 만족의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리히엔은 경악을 담은 얼굴을 내비췄고, 헤이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피식-거렸다. 리히엔이 레이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 역시! 노래 가사를 곧 잘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악기의 'ㅇ'도 모르던 네가 콩쿨에 1등으로 입상한 것도 모두 네가 '음악의 여신'이기 때문이었어..!"
"이제 아셨어? 하하, 삿대질 금지, 리히엔 타힌스님-."
"이, 이럴 수가...!"
"네가 인간이었을 적, 감성적 이었던 것도-이 내세의 힘이 작용했겠지. 않그래?"
"흐어억-!"
계속 한 쪽에 서서 피식-거리던 헤이닌이 웃음을 멈추곤, 리히엔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리히엔님. 대체 마신께는 왜 가신 겁니까?"
"응? 아아-나 납치된 거야..;;"
"납치? 어떻게 납치된 건데?"
"아니; 갑자기-누구였더라? 아, 시타르라고 했나? 뭐, 지가 마계의 3대 공작이니 뭐니 하면서 같이 마계가자고 그랬었어. 근데 내가 않간다고 우기니까 납치해 가겠대서. 그래서 납치당했어."
너무 간단하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 듯 말하는 그녀에 조금 위화감이 든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태평한 거야?"
"응? 뭐가?"
"납치 됬었던 사람치고 너무 태연하잖아. 그리고 인간이 었을 때의 너라면 울고 불고 난리 났을 텐데-."
"음-그냥 받아들이는 거 뿐이야. 그러려니 하는 거지. 하도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이젠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고나 할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하던 리히엔은 그런 레이나를 도리어 이상하게 보았다.
"흐음..지금 당장 얘 대리고 카다힐한테 가야겠네.."
"뭐? 카드힐 조넨한테 간다고..?!"
"으, 응..; 뭐야, 이 격한 반응은..너, 설마..!"
"설마 뭐...? 이상한 상상하지마."
잠시 머뭇거리던 레이나는 곧 고개를 설래설래 젓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흠, 아깝네. 울고 불고 난리 치는 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넌 가끔 그럴 때 보면-사이코랑 세디스트를 합쳐놓은 거 같애.."
"뭐야, 내가 왜~"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
다 포기한 얼굴로 묻는 리히엔의 물음에 레이나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려 헤이닌을 바라보았다.
"어이-건장한 청년."
"..예?"
"버켄한테는 왜 왔던거야? 우리 (리)히엔이 어디가?"
"난 히엔이가 아니라 리.히.엔. 이거든?"
"애칭이야, 애칭~."
리히엔은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히엔'으로 바꾸어 부르는 그녀에 대꾸할 힘도 없는 듯, 등받이가 있는 쇼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 그녀를 보던 헤이닌은 시선을 레이나에게 고정했다.
"제가 버켄님께 간 이유는, 리히엔님의 유희를 부탁하기 위해서 입니다."
"당연히 유희를 가기위해 버켄에게 갔겠지! 너무 당연한 대답은 재미없어. 무슨 일을 하려고 간건데?"
"그걸...어떻게 아셨습니까?"
"간단하지. 마신에게 납치까지 당했었는데-이 와중에 즐기기위해 유희를 가는 건 아닐 꺼 아냐. 않그래?"
"..예리하시군요, 레이나님."
"이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지."
"누워서 드시면 목에 걸리실지도 모르니 위험합니다. 앉아서 드시지요."
"...푸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런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하다니, 풉, 재밌는 청년일세?"
리히엔과 레이나가 왜 웃는지 알 리 없는 헤이닌은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는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한참을 웃던 리히엔은 헤이닌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헤이닌 당신 정말 대단하던데요?"
"예? 제가 왜.."
"큼큼-. 먼저! 당신의 예상이 맞았어요. 제게, 그 전쟁의 원인이 마신에게 있다고 했었죠? 바로 집었어요. 마신이 한 짓이더군요."
"역시..그랬군요..마신께서 조금 수상하다 여기긴했으나..그것이 사실일 줄은 몰랐습니다."
"응? 전쟁이라니? 네 차원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아..레이나; 얘기하자면 조금 길어-. 나중에 차차 알게 될꺼야. 아아-그리고 두번째는, 조금 무모하긴 했지만-;; 마신에게 겁없이 공격태세를 갖췄던 거. 굉장했어요."
"저는 '천(天)의 서' 제 3968조를 지킨 것 뿐입니다."
"그게 뭔데요?"
"천(天)의 서 3968조는, '신의 보조천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보필하는 신의 안전을 최우선하며, 해(害)가 될 것은 모두 제거해도 무관(無關)하다.' 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리히엔님의 안전을 위해 공격태세를 갖춘 것이고, 당신께 해가 되는 마신께 공격태세를 갖춘 것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하하; 누가 뭐래?"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 그는 마치, 자신이 사탕을 먹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 버켄 아오빌인가하는 사람한테 나의 유희 허가증은 받아 온 건가요?"
"네. 이제 가셔도 역소환되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에엑? 너 역소환 됬었어?!"
"응. 진짜 아프더라. 카드힐 조넨(카다힐 바넨)만 아니었으면 한 번 더 죽었을 지도 몰라.."
"카드힐 조넨..?;..카다힐을 말하는 거야?;"
"응. 그 작자가 나를 라히엔이라고 불러서. 나의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하여튼, 못말린다니까~. 정말 괜찮은 거야?"
"응! 내가 누구냐~천하무적 서예린 아니냐? 근데 거기다 신까지 됬으니, 세상에 무서울 건 없는 듯? 흐헤,"
레이나는 리히엔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많은 말이 담겨있었다. 그 것을 알리 없는 리히엔은 헤헤, 하고 웃기만 했다.
"그럼 이제-다시 네 차원의 제국으로 갈꺼야?"
"응. 가야지. 흠-...!!..마, 맞다...나 뭐라고 하지..."
리히엔은 하타르 제국의 케이온 황제와 베리온 왕자의 앞에서 바로 역소환 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것이 떠오르자, 머리가 지끈지끈해 지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 졌다. 그런 리히엔을 보고 대충 짐작한 듯한 레이나와 헤이닌은 안쓰러운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침울하게 있던 그녀는 결국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불시에 사라져 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그녀를 보고 레이나와 헤이닌은 서로 마주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동시에 같은 말을 내 뱉었다.
"못말리는 여신님이야-.."
"못말리는 여신님이군요-.."
#.9
레이나와 헤이닌에게 말도 하지 않은 체 리히엔이 도착한 곳은 하타르 제국이었다. 리히엔은 무슨 배짱인지, 마을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궁 안으로 이동했다. 누군가가 있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리히엔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것은 금방 포기해야 했다.
"역시. 너였구나?"
"응?..!! 와, 왕자...님..."
"우리 둘만 있을 땐 경어 안 써도 된다고 했잖아. 잊어버린 거야?"
"..예, 예..?"
"뭘 그리 놀라. 너-..날 잊어 버린 거야?"
"저기..저를 누군가로 헷갈려 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왜 그래, 갑자기. 진짜 섭섭한데, 이거?"
자신을 아는 척 하는 왕자에게 당황한 리히엔은 말을 더듬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왕자는 막무가내로 자신이 아는 사람이 맞다며, 무작정 리히엔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동궁으로 끌고 갔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당신이 아는 분이 아니라고 몇번 말씀드릴까요? 예?!"
결국 참다 못한 리히엔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버럭 말하자, 베리온 시라우스(왕자)는 당황한 체로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 말이 맞구나. 넌 내가 아는 타미네가 아니야..."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그녀의 목에 가져다 데었다.
"넌 누구지..? 누군데 감히 타미네의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냐?"
"정확히 말하면 저는 하타르제국에 온 것입니다만.."
"어서 말하거라!"
"으윽..."
칼이 그녀의 피부에 파고들어 붉은 선혈이 조금씩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아프고 쓰라린 목 부근의 느낌에 그녀는 어떻게 얼버무릴지 변명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문득, 마계에 있을 때 마계의 여공작, 아이네가 공격했을 때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번에는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 힘에 대해 생각을 전환해 버렸다.
그 힘이 정령들에 의한 힘이라는 것을 모르는 리히엔은, 변명거리와 그 힘에 대해 번갈아가며 고민하고 있었다.
"왜? 변명거리라도 찾는 게냐?"
'뜨끔...'
"으으윽..!"
단검의 날카로운 날이 상처가 난 자리를 더욱이 파고들자, 그녀의 목에서 많은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손에서 힘을 빼 칼을 떨어뜨렸다.
'탁-...'
"으으..."
리히엔은 아직도 아픈지 목 언저리를 잡고 신음했다. 사실 정령들은 베리온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리히엔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정령들이 리히엔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파앗-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겁을 먹은 정령들은 그녀에 곁에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는 단도를 떨어뜨리고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위협을 가하지 않은 체,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그를 바라보며 의문의 표정을 띄웠다.
"왜....왜.......어째서......"
그는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머릴 감싸 쥐었다.
그의 슬픈 모습은 다른 보는 이 마저 눈물이 나오게 할 만큼 괴롭고 힘겨워 보였다.
"어째서......넌 타미네가 아닌데....! 그런데!! 왜 그런 타미네와 같은 표정을 짓는 거지..?"
"......"
"......"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고 조금씩 눈물을 떨구는 베리온과,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목 부근을 감싸고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리히엔.
인간이었을 적 자신의 또래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그에게, 대체 전대의 여신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슬프게 울고있는 것일까. 헤이닌도 베리온도. 헤이닌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줄곧, 타미네 나오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살풋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가 금방 지워버리고 예전의 무표정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녀는 그 미소를 볼때마다 따끔거리는 마음 한 구석을 일부러 모른체 했다.
마음 한 구석이 따끔 거렸다. 그녀에 대한 열등감인걸까. 그녀보다 못하다는. 자각하는 것도 아직 하지 못했고, 할 줄 아는 것 이라고는 '이동'과 '폴리모프'밖에 없는 그녀였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 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그녀는 빠르게 일어나 베리온에게 어쩌면, 가짜 타미네로써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선 '이동'했다.
#.10
베리온의 동궁에서 도망치듯 '이동'해 도착한 곳은 신계였다. 도착했을 때, 그 곳에 헤이닌과 레이나는 없었다. 리히엔은 이를 다행으로 여기고는, 쇼파에 몸을 실었다. 신으로써의 자각을 도울 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유희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자각을 돕는 신도 있으리라 무작정 단정지은 그녀는, 레이나에게 가려고 했으나 그녀의 차원이 어디인지도, 그녀가 지금 어디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녀는 유일하게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카다힐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동-
그는 여느때와 같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리히엔의 등장에 의문을 표정을 띄우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끝은 쳐다보며 고민하는 듯한 그녀는 마치, 평소 짝사랑 하던 학교선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여고생 같았다. 리히엔의 그 행동에 답답한 기분이 든 그는 결국 입을 열어 직접적으로 묻기로 했다.
"..? 여긴 무슨 일입니까, 라히엔님? 또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그의 말투엔 어딘가 모르게 귀찮다는 느낌이 묻어나왔다. 역시 카드힐 조넨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띠꺼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한 고민에 대해 물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아뇨. 뭐좀 물어보려구요."
"무엇을 말입니까?"
"저기..그게..."
무슨 고민이길래 저리도 망설이는지, 더욱 호기심의 깊이가 깊어진 그였다. 결국 리히엔은 약 10분 가량을 말하지 않고 서서만 있다가, 그가 자신의 환자에게 돌아가 보려고 하자, 무거운 입을 떼었다.
"저! 저기..! 제 말좀 들어봐요! 저어..저기..그러니까..!...에씨, 자각을 도와주는 신은 없나요?!"
"‘자각’말입니까? 자각이라면..혼자 해야 하는 데요?"
호선을 그리며 웃는 그의 모습에, 리히엔은 잠시나마 그를 어떻게 해야 잘 골렸다고 소문이 자자히 돌까..하고 생각했다. 그녀의 굳은 표정에, 더욱 재밌다는 듯 웃던 그는 자각은 불시에 된다며 어서 맏은 차원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이동-
"휴으..되는 일이 없어...되는 일이!!!......하아."
그녀의 축- 처져 떨리는 어깨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꼭 비를 맞아 추위에 떠는 강아지 같았다. 그녀는 다시금 소파에 몸을 기댔다.
타미네 나오비. 자신의 전대(前代)의 감정의 여신. 그녀와 관련된 두 남자. 베리온과 헤이닌. 왜 이리 신경 쓰이는 걸까? 자신이 스스로 이해가지 않는 그녀였다. 아주아주 만약의 경우에, 자신이 그들을 좋아한다고 쳐도,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베리온과 헤이닌에게 드는 이 감정들은 필히 사랑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베리온에게 드는 감정은 연민이나, 친구같이 친근한 것, 또는 동정과도 같은 것이었고, 헤이닌에게 드는 감정은, 어릴 때 인형가게에서 예쁜 인형을 보고는 사고 싶고, 갖고 싶었던, 말 그대로 충동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타임머신이나 뭐 그런 것이 있다면, 보고 올 텐데. 타임머신을 생각하자, 그물과 같이 엮어져 떠오른 것은 타미네 나오비를 알고 있는 지인이었다. 그들이라면. 그렇다. 그들이라면 그녀의 이 괴로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벌써 고민이 시원하게 해결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들은 모두 그녀보다 일찍이 태어나고 자각까지 마친 신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있는 곳을 모르는 리히엔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타미네......나오...비..."
리히엔은 그녀의 이름을 조심스fp 불러보았다. 심장이 다시금 따끔 거렸다. 타미네 나오비, 베리온, 그리고 헤이닌에게만 이렇게 따끔-하고 반응하는 심장이 미웠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대체 왜 이런 감정을 품어야 하는지, 자신이 너무 미웠다. 심장이 너무 따끔거려서, 가끔은 아예 타버려서 재가 되어버렸으면 했다.
그녀의 정령들은 그녀의 곁을 배회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리히엔은 고개를 뒤로 하고 그 위에 손등을 올렸다. 귓가에 위로의 말들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음성을 환청을로 치부해 버리고는 그녀는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 위로의 말을 하는 목소리들은 그녀가 잠을 청하면 청할 수록 더욱 더 선명해져 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녀는 올렸던 손을 치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 너, 너희는 누구니..?!;;"
「어? 리히엔님~ 드디어 저를 알아봐 주시는 군요!!저 너무 기뻐요~!!」
「리히엔니임...울지 마세요 ㅠ.ㅜ」
「대체 뭐가 리히엔님을 그렇게 슬프게 하는 거죠?!! 에이씨, 당장 해치워 버려요!!!」
「리..리히엔님..우, 울지 마세요...」
항상 그녀의 곁은 맴돌던 4대 감정의 정령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알아보는 것을 느끼고는 한 마디씩 했다. 기쁨의 정령은 정말 진심으로 그녀가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기뻐보였고, 비애의 정령은..참으로 슬퍼하다 못해 울먹이고 있었다. 게다가 분노의 정령은 화를 내고 있었으며, 공포의 정령은 겁에 질린 듯,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런 희귀한 장면을 본 리히엔은 정신없는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감고 도리질을 했다. 꿈일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건 꿈이다...이건...꿈이다..이건 ㄲ..."
「에이, 그건 아니죠, 리히엔님!!!」
기쁨의 정령의 목소리에 깜짝놀라, 도리질을 멈추고 눈을 뜬 그녀는 눈을 더욱 커다랗게 떴다.
"이건...꿈이...아니잖아!!!"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는 정령들에, 자신이 능력의 일부를 자각 했다는 것을 깨닷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이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작은 정령들이 마냥 신기하기도 한 한편, 어쩐지 네 아이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총총총 잘도 따라다니는 네명의 정령들과 놀다가, 자신의 고민도 어느새 잊어버린 그녀였다.
"꺄하하, 내가 이겼다!!"
"이겨서 정말 좋아 보이십니다?"
"응!! 당연히 좋ㅈ...히익! 헤, 헤이닌...;;"
열심히 정령들과 놀다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물음에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본 그녀는, 정령들과 놀고 있는 그녀를 정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헤이닌을 볼 수 있었다. 벽에 기대고 있던 헤이닌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분명...하타르제국으로..가시지 않았습니까..?"
"아..하하하...그게...;;....이씨, 야 너 내가 만만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의 헤이닌에게 그녀는 검지로 삿대질을 했다. 그 이유는 즉슨, 리히엔의 고민의 원인이 헤이닌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진 분노의 정령이, 그녀의 어깨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헤이닌은 그녀와 함께 어깨 위에서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분노의 정령을 발견하고는, 그녀의 자각상태를 파악했다. 그녀는 정령들의 존재를 자각하긴 했으나, 아직 그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정도의 단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저는 당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습니다만."
"너, 너, 너!! 자꾸 우리 리히엔님, 아, 아니지. 내 얼굴에 자꾸 그림자를 새기는 이유가 뭐야? 앙?! 천사 주제에!! 주제 넘게 굴지 말란 말이다!!"
그에 살풋 미소를 지은 그는 그녀의 어깨에서 분노의 정령을 떨어뜨렸다. 뒤로 넘어가서 떨어지다가, 다른 세 정령들에 의해 구제된 분노의 정령은 아직도 연신 씩-씩-거리고 있었다. 분노의 정령답게,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나 보였다.
"그래도 일부 자각은 하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분노의 정령이 떨어지고서 바로 들은 칭찬에 리히엔은 당황스러웠다. 얼떨결에 헤이닌에게 칭찬을 들은 그녀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칭찬에 굉장히 인색해 보이는 그도 그렇지만, 그녀는 살면서 칭찬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잠깐 잊었던 자신의 고민을 떠올렸다. 그녀는 입을 떼 헤이닌에게 말했다.
"저기, 헤이닌. 레이나의 차원에 대려다 주시지 않겠어요?"
"레이나님의 차원..말입니까? 제가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곳엔 무슨 ㅇ.."
-이동-
이번에도 그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정령들과 함께(물론, 정령들이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지만.) 사라져 버렸다. 자꾸만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불시에 사라지는 그녀에게 슬슬 화가 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