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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세계 최고의 여행지 Best 50(영국 BBC 선정) ♣
1위 그랜드캐넌 (미국)
2위 그레이트 배리어리프 (호주)
3위 디즈니월드 (미국)
4위 뉴질랜드남섬 (뉴질랜드)
5위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6위 암리차르 황금사원 (인도)
7위 라스베가스 (미국)
8위 시드니 (호주)
9위 뉴욕 (미국)
10위 타지마할 (인도)
11위 루이스호수 (캐나다)
12위 에어즈락(울룰루) (호주)
13위 치첸이트사 (멕시코)
14위 마추피추 (페루)
15위 나이애가라폭포 (미국)
16위 페트라 (요르단)
17위 피라미드 (이집트)
18위 베니스 (이탈리아)
19위 몰디브 (몰디브)
20위 만리장성 (중국)
21위 빅토리아폭포 (잠비아)
22위 홍콩 (중국)
23위 요세미티국립공원 (미국)
24위 하와이 (미국)
25위 뉴질랜드 북섬 (뉴질랜드)
26위 이과수폭포 (브라질)
27위 파리 (프랑스)
28위 알래스카 (미국)
29위 앙코르와트사원 (캄보디아)
30위 에베레스트산 (네팔)
31위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32위 마사이마라 (케냐)
33위 갈라파고스제도 (에콰도르)
34위 룩소르 (이집트)
35위 로마 (이탈리아)
36위 샌프란시스코 (미국)
37위 바르셀로나 (스페인)
38위 두바이 (아랍에미레이트)
39위 싱가포르 (싱가포르)
40위 라디게섬 (세이셸제도)
41위 시기리야 (스리랑카)
42위 방콕 (태국)
43위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44위 아이슬란드 (아이슬랜드)
45위 진시황 병마용갱 (중국)
46위 마터호른봉 (스위스)
47위 엔젤폭포(앙헬폭포) (베네주엘라)
48위 아부심벨 (이집트)
49위 발리 (인도네시아)
50위 폴리네시아 보라보라섬(프랑스령)
1위 그랜드캐넌(미국)
미국 애리조나주(州) 북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峽谷)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길이 350km(리틀콜로라도강의 합류점에서 미드호까지). 너비 6~30km. 깊이 약 1,600m.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협곡은 콜로라도강(江)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형성되었다.
계곡 벽에는 많은 단구가 계단 모양을 이루며, 계곡 저지에는 콜로라도강이 곡류한다.
그랜드캐니언의 상 ·하류에도 협곡이 이어진다.
원래 콜로라도강이 흐르던 곳에 콜로라도고원의 일부가 융기하여 깊이 약 1,600m의 협곡이 생긴 것
인데, 계곡벽에는 시생대 이후 7억 년 동안의 많은 지층이 나타난다.
지층의 빛깔은 여러 가지이나 적색 또는 주황색이 많다.
협곡의 북쪽은 카이바브 고원이고 남쪽은 코코니노 고원인데, 이들 고원은 평탄하다.
반건조지역이기 때문에 계곡 벽에는 수목이 간간이 있을 뿐이지만, 고원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그랜드캐니언의 단구에는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지구가 있으며, 소규모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고원에는 나바호 ·카이바브 ·후아르파이 등 인디언 부족의 보호지구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의 중심부는 1919년 국립공원(면적 2,600㎢)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카이바브 고원과 코코니노 고원을 잇는 길은곡저에는 작은 길 하나뿐이며,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
는 가장 가까운 길로도 350km나 된다.
국립공원의 하류에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기념공원과 미드호(湖) 국립 레크리에이션 지역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그랜드 캐니언은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랜드 캐니언은 4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으로 446Km에 걸
쳐 펼쳐져 있고, 해발고도가 2,133m에 이른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미대륙의 광활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세계적인 명성
의 관광명소이다.
빙하기에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무구한 세월 속에서 형성된 그랜드 캐니언은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랜드 캐니언은 크게 노스림(North rim)과 사우스림(South rim)으로 나뉘어 있다.
사우스림(South rim)은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연간 약 5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사우스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방문자 센터에 들러 그랜드 캐니언의 역사, 지질학, 야
생동식물 등에 관한 사전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방문객들이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든지 공원 순찰대원을 발견할 수
있다.
뜨겁고 건조한 여름에도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지고 천둥이 치는 등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겨울에는
심한 추위와 눈보라를 만나게 된다.
노스림(North rim)은 사우스림에서 354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사우스림을 찾은 방문객의 10퍼센트
만이 이곳 노스림을 방문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노스림이 사우스림에 비해 아름답지 않다거나 볼거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 노스림은 5월 중순에서 10월 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라스베가스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약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미국 애리조나 주 북서부의 고원지대가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생긴 거대한 협곡.
환상적인 모양과 빛깔로 유명하다.
복잡하게 깎인 이 넓은 협곡 바깥쪽에 당당한 봉우리와 평지에 우뚝 솟은 산,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
가 수없이 늘어서 있다.
폭은 0.2~29km이고 길이는 약 443km인데, 애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에 있는 파리아 강 어귀에
서 시작하여 네바다 주 경계선 근처에 있는 그랜드위시 절벽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이 주류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협곡들과 주변의 고원지대를 통틀어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한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파월 호(湖)에서 미드 호까지 강을 따라
뻗어 있는 약 90㎞의 협곡이다.
협곡의 전체적인 빛깔은 붉은빛이지만, 각각의 지층 또는 지층군은 독특한 색조(황갈색, 회색, 미묘한
초록색, 분홍색, 깊숙한 곳은 갈색, 푸른 빛이 도는 회색, 보라색)를 띠고 있다.
해발 2,500m에 이르는 노스림은 사우스림보다 365m나 더 높다.
그랜드캐니언을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은 1540년 이 지역을 조사한 코로나도 탐험대이며, 그후 스
페인 성직자인 프란시스코 가르세스와 실베스트레 벨레스 데 에스칼란테가 1776년에 다시 이곳을
발견했다.
1800년대 초반에는 사냥꾼들이 이곳을 조사했고, 서부를 탐험하여 지도를 만든 몇 개의 정부 탐험대
가 이 협곡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는 존 웨슬리 피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탐험한 뒤, 이 지역의 지형과 지질·생
물·원주민 등에 대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1919년 이곳을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당시 면적은 4,930.76㎢)으로 지정했다.
그후 1975년 예전의 그랜드캐니언 천연기념물과 마블캐니언 천연기념물 및 글렌캐니언 국립휴양지
의 일부를 비롯한 주변지역을 추가하여, 국립공원의 면적은 훨씬 넓어졌다.
협곡의 노스림(북쪽 가장자리)과 사우스림(남쪽 가장자리)은 포장도로와 협곡을 가로지르는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포장도로를 자동차로 달리거나 횡단도로를 걸으면 협곡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모두 볼
수 있다.
노새 관광과 뗏목이나 동력선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행은 협곡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수많은 푸에블로 인디언과 암굴거주인의 유적은 거기에 남아 있는 유물과 더불어 선사시대에 이 땅
에 살았던 푸에블로족(族)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가까운 보호구역에는 인디언 5개 부족이 살고 있다.
2위 그레이트 배리어리프(호주)
면적 20만 7,000㎢. 길이 약 2,000km. 너비 약 500~2,000m. 북쪽은 뉴기니 남안의 플라이강 어귀에서
남쪽은 퀸즐랜드의 레이디 엘리엇까지 이어져 있다.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으나 군데군데에 무수히 많은 조그마한 산호초가 바다 위에 나와 있어 대륙의
방파제와 같은 외관을 한다.
대륙과의 사이의 초호(礁湖)는 수심 60m 이하의 대륙붕이며, 해저는 평탄하여 동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을 뿐이다.
또한 바깥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갑자기 깊어지며, 파도가 높고 세다.
초호 안을 항행하는 것은 많은 암초 때문에 위험하나, 근래에는 관광시설이 발달하였다.
북부의 케언스 부근에는 산호초에 열대수족관을 만들고 해저에서 수중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시
설을 마련하였다.
관광의 중심은 케언스와 브리즈번인데,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연안에 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산호초 유적 400종의 산호, 1,500종의 어류, 4,000
종의 연체동물 등이 있는 세계최대의 산호초 콜렉션임
멸종위기에 있는 초록거북, 듀공(海牛類) 같은 종이 서식하고 있어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보초)는 호주의 자연유산이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곳곳마다 즐길 곳이 매우 다양하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옥색 빛 파란 바다가 2000km 이상 펼쳐져 있다는 것이
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산호 암초 이기도 하다.
남쪽의 번다버그에서부터, 북쪽 열대에 있는 케이프 요크 위쪽까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 중에
가장 넓은 지역이다.
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가장 큰 형성체라고 할 수 있으며, 2900개 이상의 암초와 900개 이상의 섬
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섬들 중에 몇 곳은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 나머지 섬들은 텅 빈 모래 섬들이다.
퀸즐랜드 북부 해안으로 흐르는 따뜻한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바다 낚시 코스와 다이빙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제공한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1500 여종의 물고기들, 4000 여종의 연체동물, 350 종의 극피동물, 350가지
의 산호들이 있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서의 다이빙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이로운 경험
을 안겨다 줄 것임에 틀림없다.
평균적으로 수온은, 7월에 22도에서 1월에는 27도까지이며, 이는 일년 내내 스노클링과 다이빙하기
에 완벽한 조건이다.
암초는 희귀하고 멸종 직전에 있는 생물들이 대량으로 번식되는 곳이기도 하며, 혹등고래가 남극지
방에서부터 새끼를 낳으려고 이 곳까지 수영해서 온다.
전세계 7종의 바다거북이 중에 6종이 이 곳에 와서 번식을 하고, 해변에 알을 놔두며, 듀공(홍해, 인
도양산의 포유동물)은 이 곳 수초에 자신의 거처를 만든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호주에 오는 여행객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명소중의 한 곳으로, 많은 여행
객들이 이를 체험하기 위해 오고 있으며, 예전에는 특별히 허가된 소수들만 볼 수 있었던 멀리 떨어
진 곳들도 이제는 빠른 배가 여행객을 손쉽게 데려다 줄 것이다.
이에 호주 정부에서는 소중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 여행사에 여행객의
수와 활동에 관련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데, 여기서 바로 ECM (Environmental Manageme
nt Charge)이 생겼다.
ECM은 호주 정부에서 징수하는 돈으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입장하는 4살 이상의 모든 어린이
들과 어른들에게 부여되는 과세로 한 사람당 최소 하루에 4달러에서 최대 12달러까지 지불하게 되며,
이는 여행 예약을 할 때 반드시 여행사에 이와 관련된 금액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햇볕이 밝게 들인 거리, 따뜻한 바닷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등으로 년중 따뜻한 기후를
보인다.
따뜻한 기온과 낮은 강우량을 보이는 건기과 상쾌한 기온과 다소 높은 강우량을 보이는 우기로 2개
의 두드러진 계절이 있다.
3위 디즈니월드(미국)
정식명칭은 월트디즈니월드이다.
세계 최대규모의 종합 휴양지로, 올랜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다.
개발되지 않은 호수·늪지대의 환경을 잘 살려 조성하였으며 1971년 개장하였다.
월트디즈니프로덕션이 경영하고 있다.
건설 당시 면적은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보다 훨씬 넓은 111㎢였다.
마법의 왕국은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과 유사한 내용과 시설로 이루어졌는데, 신데렐라성(城)·메인
스트리트·모험의 나라·개척의 나라·자유광장·환상의 나라·미래의 나라 등의 테마랜드가 있다.
실험적 미래도시인 EPCOT센터(Experimental Proto type Community Of Tomorrow Center:1㎢)에는
미래의 세계와 세계 11개국의 모습이 인공호 주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각국의 역사·특산품·요리 등이
즉석에서 연출된다. '영화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세워진 영화촌 디드니-MGM스튜디오에서는
영화촬영 장면을 직접 보거나 체험할 수 있으며, 할리우드와 뉴욕 거리를 재현한 6개 구역이 있다.
그밖에 6개의 골프장, 포트윌더니스 캠프장, 베이레이크와 세븐시즈래군의 수상 레크레이션 시설,
플레저아일랜드, 동물의 왕국, 쇼핑몰, 호텔 등이 있다.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는 미국 플로리다주 중앙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이다.
4개의 테마 파크, 2개의 워터 파크, 32개의 테마 호텔 및 리조트과 많은 수의 쇼핑, 식사 및 엔터테
인먼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971년 10월 1일에 매직 킹덤으로 최초 개장하였으며, 앱캇이 1982년 10월 1일, 디즈니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1989년 5월 1일 그리고 디즈니 애니멀 킹덤이 1998년 4월 22일에 개장하였다.
시설
테마파크
- 매직킹덤 (Magic Kingdom)
- 엡캇 (Epcot)
- 디즈니 할리우드 스튜디오 (Disney's Hollywood Studio)
- 디즈니 애니멀 킹덤 (Disney's Animal Kingdom)
워터파크
- 타이푼 라군 (Typhoon Lagoon)
- 블리자드 비치 (Blizzard Beach)
또한 디즈니 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남동쪽으로 43km 떨어진 애너하임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최고
의 테마파크이다.
1955년 7월에 월트디즈니가 디즈니 영화의 역사, 미국 개척의 역사, 근대 과학 등을 기반으로 어린이
에서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사랑'과 '꿈'과 '모험'을 주는 대단위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
어트랙션도 매년 1개씩 증설하는 것도 특징이다. 30 헥타르의 면적의 공원 내에는 광장(Plaza)을 중
심으로 7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전부를 대충 둘러보는 것만도 최소한 6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주요 관광명소
-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U.S.A) : 1890년대의 미국 마을들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시청사, 소방서
를 비롯하여 담배가게, 꽃집, 촛불집(양초), 유리 제조공장, 시장, 카페 등 19세기의
미국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 탐험의 나라(Adventare Land) : 강을 배로 내려가는 정글 크루즈는 사실과 너무나 똑같이 재현되어
있어 열대의 맹수들이 모습을 나타낼 때 마다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무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특히 해가진 다음에는 한층 더 분위기가 고조된다.
거대한 나무를 올라가는 '스위스 가족 로빈스'도 탐험의 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일렉트로닉스로 된 새와 꽃이 대합창을 들려주는 딕시룸에서는 폴리네시아의 노래
와 춤을 보여준다.
- 뉴 올리언즈 광장(New Orleans Square) : 뉴 올리언즈의 프렌치쿼터를 생각나게 하는 골동품점,
유리집, 모자 가방집, 과자점, 레스토랑, 카페 등의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노상에서는 흑인 밴드에 의한 딕시랜드 재즈가 연주되어 무드가 만점이다.
묘지에 둘러싸인 유령의 집에는 세계에서 모인 999명의 행복한 유령들이 돌아다니
고 있다.
보트로 카리브해의 해적 동굴을 방문하는 것도 재미있다.
- 곰의 나라(Bear Country) : 18마리의 곰이 악기를 연주하는 컨트리 베어 잼버리가 구경거리 이다.
1회 15분의 소연주회인데도 즐거움에 박수가 그치지 않는다.
- 개척의 나라(Frontier Land) : 미래의 나라와 상반되는 곳.
미국의 개척시대의 교통수단을 이용 일주할 수 있다.
증기선 범선, 화물 수송선, 해적선 등의 선상에서 톰 소여 섬을 바라보면 절벽, 움막
집, 물레방아집, 동굴 등이 흥미를 끈다.
대서부의 사막을 스피드있는 광산 열차로 일주하면 우뚝 솟은 바위산이나 사보덴의
군생지가 나타나 비스듬히 보이는 등 취향도 살려 시대의 고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개원이래 롱런을 자랑하는 웨스턴 쇼는 서부 술집 스타일의 극장 골든
홀스슈에서 즐길 수 있다.
- 환상의 나라(Fantasy Land) : 디즈니의 만화나 동화의 주인공 앨리스, 일곱 난장이, 백설공주, 피터
팬, 탐보, 미키마우스 등이 사는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 에게도 재미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성은 디즈니랜드의 심볼로 기념사진으로 남기기
에 가장 좋은 곳이다.
피터팬 비행과 아사왕의 메리그랜드, 커다란 티컵(Tea Cup)이 회전하는 미친 티파
티 등 재미있는 놀이 기구가 많다.
또 일각에 솟아있는 맛타홀른으로 부터의 보브슬러 강하는 스릴이 만점이다.
- 미래의 나라(Tomorrow Land) : 디즈니의 공상과 미국 근대과학이 미래를 예측하는 나라로 디즈니
가 죽은 뒤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매년 개설하고 증설하고 있다.
지구밖의 우주 여행은 로케트 제트에 타고 북극 해저탐험에는 잠수함으로 즐긴다.
마이클 잭슨의 캡틴 E. O 로 잘 알려진 입체 영화관 3D 극장 에서는 특수한 안경
을 끼고 박력 넘치는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스릴 만점의 스페이스 마운틴과 우주에의 여행 스타워즈도 인기.
4위 뉴질랜드 남섬
뉴질랜드는 호주로부터 1,600㎞ 떨어져 있다.
뉴질랜드는 쿡 해협으로 격리된 남·북 두 섬으로 이루어지는 산이 많은 섬나라로서, 해발 200m 이하
의 땅은 온 섬의 6분의 1 정도이다.
총면적은 북섬, 남섬, 스튜어트 섬, 그 외 작은 섬들을 모두 합쳐 268,680㎞로 영국보다는 약간 크고,
일본보다는 작으며, 미국의 콜로라도주와 비슷하며, 대한민국의 2.7배, 한반도의 1.3 배이다.
전체면적의 43%가 북섬, 56%가 남섬으로서 남섬이 더 크다.
두 섬은 지형적 성격이 크게 다른데, 북섬은 전체적으로 구릉성 토지가 펼쳐지는 가운데 에그몬크산
(Egmont 山, 2,510m)을 비롯하여 화산이 돌출한다.
한편, 남섬은 서쪽에 남알프스 산지가 남북으로 달리고 빙설에 빛나는 고산지형이 탁월하다.
최고봉인 쿡 산(3,764m) 주변에는 태즈만·폭스 등의 대빙하가 발달해 있다.
산록부에는 빙하호, 서해안에는 U자 계곡이 침수한 밀포드 사운드 등의 아름다운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한다.
뉴질랜드는 화산과 빙하의 나라로서 그 지형이 매우 아름답다.
남섬은 아직 원시림으로 뒤덮힌 지역이 많다. 특히 70%가 남알프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산지이
며, 평지는 고작 9%에 불과하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3000m가 넘는 고산준봉이 잇달아 이어지고 빙하의 침식을 받은 피오르드 지형
은 수많은 호수와 U자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변화가 풍부한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북섬의 특징은 지열지대를 포함한 화산지대에 온천과 간헐천, 그리고 크고 작은 호수가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비옥한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국토 최남단엔 스튜어트 섬이 있고 크라이스트처치로부터 동편으로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 캐썸섬(초
atham Island)이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는 온대 지역에 속하지만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섬의 최남단은 겨울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그리고 서안(西岸) 해양성 기후로서 연강수량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600∼1,500㎜인데, 남도는 남알프
스 서쪽 경사면에서는 5,000㎜ 이상에 이르는 지역도 있어, 동쪽지역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전지역이 편서풍대에 속한다.
기온의 교차는 작으며, 연평균 기온은 북섬의 오클랜드 반도에선 15℃ , 남섬의 남부에선 10 ℃안팎
이다.
전국적으로 13개의 국립공원을 갖고 있으며 이중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테와히포우나무 국립공원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통가리로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국립공원이다.
또한 13곳의 해양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다.여타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신생대, 중생대의 생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약 8천5백만년
전인 백악기때부터 다른 대륙과 격리되어 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식물 중에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를 수 있는 카우리 나무로 (전 국토의 4%) 약 40m, 가지가 20m
나 된다.
뉴질랜드 최대의 섬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840km 가량 뻗어 있는 길쭉한 섬이며, 북쪽은 쿡
해협으로 북섬[北島]과 마주보고 남쪽은 포보 해협으로 스튜어트 섬과 마주보고 있다.
산악과 구릉지가 많으며, 중서부의 서던 알프스의 최고봉 쿡산(3,764m) 및 3,000m를 넘는 고봉군(群)
과 많은 빙하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테즈먼 산(山) 부근과 나더 고개 부근은 국립 공원으로 지정
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많은 피오르드가 후미져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동부는 비교적 비가 적으며, 서풍을 직통으로 받는다.
연간 강수량은 평균 2,000mm이지만, 일부 산악지역에서는 3,000∼5,000mm나 되어 삼림의 발달이 현
저하다.
동해안의 켄터베리 평야, 남부의 오타고 고지, 인버카길 평야 등 낮은 대지와 충적평야가 주요한 농업
지역을 이루며 밀 ·귀리 등의 재배 이외에 목축이 성행한다.
서부에서는 석탄과 주요 수출품인 금이 산출된다. 해안지대에 크라리스트처치,더니든 ·인버카길 등의
도시가 발달해 있다.
5위 케이프타운(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이며 케이프 주(州)의 주도(州都)인 항구도시이다
배후에 테이블산(1,087m)과 라이온즈헤드가 솟아 있으며 테이블만(灣)에 면하는 천연의 양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소재지로서 행정부가 있는 프리토리아와 더불어 수도의 지위를 나누어 맡고
있다.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
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1815년 비엔난 의정서에 의해 영국 영토로 되어 1854년에 케이프 식민지 의회가 세워졌다.
1910년에는 영국자치령(남아 연방)이 되었고, 이 땅에 남아프리카 연방 의회가 있었다.
1860년 창설된 독은 수에즈 운하 폐쇄 중에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남극 관측의 보급기지로서도 알려졌다. 조선·기계·냉장·농수산물 가공·제분·제과·가구 등의 공업이 발달
하였으며 상업·금융업도 활발하다.
백인 전용으로 세운 케이프타운대학(1829), 유색인 전용으로 세운 서(西)케이프대학(1960)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학교, 박물관·미술관·도서관·식물원·동물원 등이 있다.
정비된 항만시설이 있는 외에 항공로·철도·도로 등의 기점을 이루는 교통상의 요지로 여름철에는 많
은 관광객이 찾는다. 1666년에 기공한 성곽과 1699년에 기공한 네덜란드의 신교 교회 등 역사적 건
축물이 많다.
이 도시의 배후에는 테이블 산이 있으며, 부근에 희망봉이 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의 주요 거점이었다.
도시의 전체 인구수는 약 290만(2002년)이며 백인의 비율은 약 35%이다.
이 나라의 수도는 프리토리아이나 국회는 이 도시에 있어 이 도시는 입법 수도이다.
희망봉에서 북쪽으로 약 50㎞ 떨어진 케이프 반도 북단에 있다.
시와 교외의 많은 구역이 테이블 산과 그에 이웃하는 산봉우리들의 가파른 비탈을 감고 있어, 케이
프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시의 본역(本域)은 대부분 그 지방의 넓은 평지에 걸쳐 있다.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남서쪽 말단에 자리잡고 있어 최근까지는 이 나라 제1의 해항이
었지만, 1980년대초에 더반 항에 추월당했다.
테이블 베이에 접한 이 도시는 그 항구로 유명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이블 마운틴과 희망봉 등
을 포함한 케이프 플로럴 킹덤에 속한다.
시가지 뒤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는 테이블 마운틴은 1000m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고, 거의 수
직 절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이 산에 얇은 구름이 걸리면, 그 모습이 "테이블"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반도를 관통하는 산맥이 대서양에서 남쪽으로 튀어나와 희망봉이 되었다.
케이프 타운 안에있는 300m를 넘는 봉우리는 70개이다.
케이프 타운의 많은 교외 주택 지구와 본토를 연결하는 케이프 평원이 있다.
케이프 평원은 해저가 융기하여 생긴 육지이며, 모래가 많은 지질이다.
테이블 마운틴은 한때 섬이었다고 한다.
케이프 반도는 온대의 지중해성 기후이며 뚜렷한 계절이 있다.
5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는 겨울은 대서양에서 한랭전선이 강한 비를 동반하여 북서풍을 몰아친다.
겨울은 춥고, 평균 최저 기온은 섭씨 7 ℃이며, 연간 강수량의 대부분은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10월부터 3월까지 계속되는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반도는 동남에서 강풍이 자주 불어온다.
이것은 오염을 밀어내고,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케이프 닥터〉라고도 부른다.
이 동남풍은 남대서양에서 케이프 타운의 서쪽에 물러나 있는 남대서양 고기압에 의한 것이다.
여름 기온은 온화하고, 평균 최고 기온은 26 ℃이다.
아프리카 남서부 대서양 연안 가까이에서 흐르는 벵겔라 해류가 냉각 효과를 미쳐 케이프타운의 기
후를 온화하게 한다.
연평균강우량 660㎜ 가운데 약 절반이 평균기온 13℃의 온화한 겨울(6~8월) 동안에 내리며, 여름은
온난(21℃)·건조하다(여름 평균강우량은 51㎜ 미만). 케이프타운은 큰 강이 없어 담수의 수요를 저수
지 수계로 충당한다.
석유 정제, 화학제품과 비료 생산, 시멘트 생산, 자동차 조립이 대도시권의 주된 산업이다.
시의 본역 내에서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선박 수리이며, 케이프타운에는 세계 최대 규모에 속하는
건선거(乾船渠)가 있다.
경공업으로는 식품 가공, 포도주 제조, 의류·플라스틱·가죽제품 생산 등이 있다. 관광 산업의 비중도
증대하고 있다.
인구의 48.13%를 유색인종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어 흑인이 31%, 백인이 18.75%, 아시아계가 1.43%
이다.
케이프 타운 거주자의 41.4 %가 집에서 말하는 언어는 아프리카어이고 28.7%가 코사어, 27.9%가 영
어, 0.7%가 소토어, 0.3%가 줄루어, 0.1%가 츠와나어, 0.7%가 다른 비공식 언어를 집에서 말하고 있다.
거주자의 76.6%가 기독교인이며, 10.7%가 무교, 9.7%가무슬림, 0.5 %가 유대교, 0.2%가 힌두교도,
2.3%가 다른 종교 또는 불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다.
희망봉 성(城)은 1666~79년 네덜란드인이 건축한 것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
이다.
케이프타운 역(대철도역) 바로 남쪽 시 중심부에 자리잡은 이 성은 북서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는
화려한 말레이 지구 및 서쪽으로 역시 약 1.5㎞ 떨어져 있는 유서 깊은 관청가를 끼고 있는 국립식
물원과 3각형을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테이블 만 연안 2㎢를 매립하여 중앙 상업지구가 옛 중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확장되었다.
남아프리카대학(1829)은 1918년 이 도시의 중심 교육기관인 케이프타운대학교로 승격되었다.
1950년대말부터 케이프타운은 케이프 반도 전체를 연결하는 현대식 고속도로망을 닦았다.
한편 이 도시는 북동쪽으로 짐바브웨와 그 너머까지 연장되는 철도와 도로망의 시발점이기도 하며
이곳에 위치한 D.F.말란 공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3대 국제공항 가운데 하나이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발착하는 남아공아국 제2의 공항이며, 케이프 지역의 여
행자들에게 중요한 관문이다.
대부분 국내 도시로 직항 연결편이 있으며, 많은 국제 도시로 연결되는 직항편도 있다.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6위 암리차르 황금사원(인도)
암리사르 황금사원은 인도 펀자브주 서부에 있는 인도 시크교의 성지이다.
1604년에 제5 대 시크(Sikh) 구루인 구루 아르잔 데브(Guru Arjan Dev)가 완공하였고 1802년 시크교
지도자 란지트싱이 순금으로 지붕을 씌우고 대리석으로 장식하도록 하여 현재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황금사원의 공식 이름은 '하르만디르 사히브'로, '신전'이라는 뜻이다.
황금돔은 약 750kg의 순금으로 입혀져 있으며, 힌두사원이 동쪽을 향하고 이슬람 모스크가 서쪽을
향하는 반면, 허리 먼디르(황금 건축물)는 두 사원 중간에 위치한다.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나나크에 의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사상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이다.
사원건물에는 사방에 입구가 있는데, 들어가는 문이 네 곳인 것도 시크교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반영한 설계로 종교,계급,출신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맞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건물 서쪽의 대리석 통로를 통하면 연못 밖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원 안에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 성인, 순교자 등을 기념하는 장식품이 많이 있습니다.
시크교 가르침은 카스트·신념·성 차별의 거부와 모든 인간의 평등성을 강조한다.
또 따로 건물을 지어 시크교 최고의 경전인 그랜드 사힙(Grand Sahib)을 보관합니다.
이 경전은 매일 새벽 사원으로 들여왔다가 저녁에 다시 원래 건물로 옮겨진다.
인도 시크교의 성지이며, 황금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나나크에 의해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사상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이다.
시크교 총본산인 이 사원은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사원을 찾아온 순례자와 방문객은 신발을 벗고 발을 씻으며, 존경의 표시로 사원 앞에서 나누어 주
는 두건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또 사원 안에서는 술과 담배가 금지되고 고기를 먹거나 약물을 섭취해서도 안된다.
황금사원[골든템플] 의 밤은 햇빛을 방불케 하는 조명으로 인해 낮의 화려함을 한층 뛰어 넘는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낮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밤 늦은 시간에도 사원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크교의 세계관에 따라 황금사원은, 성전이라면 높은 곳에 짓는 풍습과 달리, 둘레 땅보다 낮은 곳
에 지어서 신자들이 층계를 내려가서 들어가도록 지어졌다.
7위 라스베가스(미국)
관광과 도박의 도시로 네바다주 최대의 도시로 미국 네바다주 남동부 클라크 군의 군청소재지(1909)이다.
1700년대 초에 에스파냐인(人)들이 부근 지역을 발견하였고, 에스파냐어(語)로 '초원'이라는 뜻의 지명은
라스베이거스계곡을 처음으로 발견한 에스파냐인들이 옛 스페인 산길을 따라 있는 메마른 계곡 속의 깊은
샘에서 물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초원'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다.
1855년경에 유타 주에서 온 모르몬교도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했다.
모르몬교(敎) 지도자 브리검 영(Brigham Young)이 파견한 30여 명의 교도들이 요새를 지었으나 185
7년에 인디언들이 파괴하였다.
1864년에는 미군이 베이커요새를 세웠다.
1905년 샌페드로-로스앤젤레스-솔트레이크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931년 도박이 합법화되고 1930년대에 후버 댐(47㎞ 동쪽에 있음)이 건설되면서 도시의 발전이 촉진
되었다.
또 미드 호는 부근의 마운트칼스턴 휴양지, 그리고 데스벨리 국립기념지와 함께 관광객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
1940년 이후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는데, 특히 헨더슨 신흥 교외지역과 북부 라스베이거스에서 두드
러지게 증가했다.
이 도시는 고급 호텔과 특이한 카지노 도박장이 즐비하며 이국적인 연예무대 때문에 '환락가'로 알려
져 있고 연중 무휴의 독특한 사막휴양지로서 매우 유명하다.
또한 라스베이거스는 상업과 광산지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라스베이거스 북쪽 근교에는 넬리 공군기지와 소화기(小火器) 사격장이 있고 북서쪽으로 100㎞ 떨어
진 곳에는 넬리 공군사격장과 핵 실험장소(제2차 세계대전중 설치) 및 인디언 스프링스 포 사격장이
있다. 1911년에 시가 되었다.
인구는 47만 8434명(2000)이다.
8위 시드니(호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주도.
오스트레일리아 남동해안을 끼고 있는 시드니는 남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이며 아름다운
항만으로 유명하다.
19세기초 유배지로 세워진 뒤 최초의 개척자들이 내륙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요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거대한 대도시권이다.
시드니의 대도시권은 서쪽의 블루 산맥에서 동쪽의 태평양까지, 북쪽의 호크스베리 강에서 보터니 만의
남쪽까지 뻗어 있다.
시드니 시는 이 항만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구릉 위에 세워졌다.
1788년 1월 26일, 보터니만으로부터 포트잭슨에 들어온 총독 A.필립은 유형수(流刑囚) 770명, 군인 2
50명을 데리고 이곳에서 최초의 식민지 건설을 개시하였다.
시드니 대도시권은 서쪽 블루산맥, 북쪽 호크스베리강(江), 남쪽 보터니만(灣)까지 뻗어 있으며, 전국
인구의 약 1/4이 몰려 있는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다.
중생대의 사암층의 대지와, 서쪽 내륙에는 이암질(泥岩質)의 파랑상(波浪狀)의 저지를 사이에 두고 해
발고도 1,000m 전후의 블루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대지의 계곡은 하류지역에서 익곡(溺谷)을 이루어 포트젝슨만(灣), 보터니만 등을 이룬다.
포트잭슨만의 남안 일대는 세계 3대 미항(美港)의 하나인 시드니항의 항역(港域)이 되어 있다.
이 항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무역액의 1/4, 뉴사우스웨일즈주 무역액의 3/4을 취급한다.
시드니 노동인구의 약 1/3이 제조업에 종사하며, 정유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어느 특정산업
이 우세하지는 않다.
연 2,100만t 이상의 화물을 다루는 항구의 중요도만큼이나 시드니 경제에서 행정업무가 차지하는 비
중은 크다.
이 도시의 2번째 항구가 보터니 만에서 개발되고 있다.
시드니는 수상 스포츠와 위락시설 및 문화생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시드니·뉴사우스웨일스·매콰리
대학교가 있다.
항만의 잔교 남동쪽에 세워진 오페라하우스는 극장·음악당을 모두 갖춘 곳으로 공연예술의 중심지이다.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창단지이기도 한 오페라하우스에는 여러 개의 화랑과 도서관 1개, 박물
관 2개가 있다.
시드니 교회는 급속하게 발달했으나 도시를 우회하는 주요도로가 없어 교통수송에 있어 계속적인 문
제가 야기되어왔는데, 이런 문제들은 통근용 나룻배, 지하철, 광범위한 노선을 가진 대도시권 버스로
부분적이나마 개선되고 있다.
킹스퍼드 스미스 국제공항이 도시 남쪽 10㎞ 지점의 보터니 만에 있다.
면적:시 13㎢, 대도시권 12,407㎢이다.
온화한 기후로도 유명하며, 연간 평균기온은 17.6℃, 가장 더운 달이 21.9℃, 가장 추운 달이 12.3℃로
연교차가 적다.
날씨는 온화하며 가장 따뜻한 2월에는 평균기온 22℃를 기록하며 가장 서늘한 7월에는 12℃의 평균
기온을 나타낸다.
연평균강우량은 1,140㎜이며 대부분이 여름 몇 개월 동안에 쏟아진다.
연평균강수량은 1,205mm이며,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다.
9위 뉴욕(미국)
미국 북동부 뉴욕 주 남동부의 시.
허드슨 강 어귀에 자리잡은 항구도시이며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권의 중심지이다.
맨해튼·스태튼·롱 섬의 서쪽 끝부분, 본토의 일부, 뉴욕항과 롱아일랜드 해협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도시권은 인접한 뉴욕·뉴저지·코네티컷 주의 일부에까지 뻗어 있다.
뉴욕 시에는 정반대의 것들이 너무 흔하게 공존한다.
지리적인 면에서나 인구통계적인 면에서나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경제활동이 가장 다양하며 문화
활동 또한 가장 풍부하고 다각적인 도시이다.
면적 : 시 787㎢, 대도시권 3,585㎢,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헞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 이스트강· 할렘강· 뉴욕만 및 롱 아일랜드 수로(水路)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 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는 맨허튼, 브롱크스, 부르클린, 퀸스 및 스태튼 섬의 5개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街)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縱貫)하
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는 타임스케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驛),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가에 있다.
1524년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가 뉴욕 시가 된 곳을 발견했지만, 뉴욕 시의 첫 발견
1609년 9월 3일 허드슨의 배가 뉴욕 항으로 들어와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허드슨 강으로 불리게
된, 수심이 깊은 감조하천(感潮河川)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때 그는 네델란드 서인도회사 소속으로 인도항로를 찾아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
허드슨은 그의 고용주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훌륭한 항만과 위도상 아열
대쯤에 속할 것 같은 곳에 농경지로 이용될 수 있는 무한한 땅이 있다고 썼다.
이 보고서가 계기가 되어 네덜란드인이 이곳에 정착해서 시의 활력과 자주의 바탕을 마련했고, 이로
인해 도시를 건설한 것이 네덜란드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게 되었다.
영국의 청교도단(Pilgrims)이 플리머스에 상륙하기 6년 전인 1614년, 네덜란드인 선장 1명과 그의 선
원들이 배가 불타는 바람에 맨해튼 섬에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18t급의 새로운 항해용 배를 만들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듯 '레스틀리스'(Restle
ss)로 명명했다.
나중에 뉴욕 시가 된 지역 전체뿐만 아니라 현재의 코네티컷·뉴저지·롱아일랜드에 이르는 지역을 포
함하는 뉴네덜란드 주의 장관이었던 페테르 미노이트가 1626년 인디언 주민들에게 60길더(24달러
상당)어치의 겉만 번드르르한 물건들을 주고 맨해튼을 샀다.
1653년 2월 2일 뉴네덜란드 주의 주도 뉴앰스터댐은 시가 되었고, 이때 시의 인구는 800명이었다.
1638년까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맨해튼의 땅을 팔지 않으려고 했지만, 초기 정착민들은 광대한
농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또한 맨해튼 섬의 많은 지역이 굉장히 단단한 암석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섬의 남
부에 연못 및 개천들과 함께 상당한 늪지대가 펼쳐져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들은 늪지를 배수하여 매립하고 강변지대에 쓰레기를 쌓아 매립지를 조성할 수 있게 했다.
나중에 브롱크스 구가 된 곳은 바위 등성이가 많은 곳이었다.
브루클린과 퀸스가 된 롱아일랜드의 일부 지역은 곳곳에 돌이 있고 모래층도 있지만 보다 완만하여
서 농사를 짓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스태튼아일랜드 구로 된 지역은 구릉지역으로 고도가 125m인 언덕으로, 그곳이 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시를 해외무역도시로 개방하고, 인디언들과 거래를 텄으며, 맨해튼 중심가의 주요거
리가 된 도로들을 설계했다.
1643~55년에 인디언과의 유혈충돌과 불완전한 휴전협정을 많이 치른 후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 섬
과 현재 뉴욕 시의 일부가 된 근처의 지역들에 대한 백인의 영구적 지배권을 확립했다.
1664년 9월 8일 유럽에서 벌어진 영국과 네덜란드 전쟁의 일환으로 요크 공작이 보낸 영국 함대가
시를 함락시키면서 네덜란드인들의 지배는 끝이 났다.
그때 이 시는 쉽게 함락되었는데, 그것은 네덜란드인들이 그들의 완고한 지도자 페테르 스토이베산
영국인들은 시의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다.
1673년 네덜란드인들의 기습공격이 성공하여 영국인의 지배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때 시의 이름은 오라녜 공(公)을 기념해 뉴오렌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체결된 웨스트민스터 조약에 따라, 시는 영국인들의 손으
로 되돌아갔고 뉴욕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1686년 뉴욕은 식민지 전체에서 국왕의 특허장을 받은 최초의 시가 되었다.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들이 맨해튼에서 사이 좋게 지냈기 때문에 식민당국의 변화가 생활과 상거래
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네덜란드계만이 아니라 영국계 이민들까지도 영국의 왕실을 대표하는 자들이 지나치게 독재적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 했다.
1689년과 1691년 사이에 제이콥 라이슬러는 시내에서 반란을 고취하고 캐나다를 공격할 원정대를
조직하려 했다.
그는 1691년에 교수형을 받고 참수되었지만, 시민들의 분개심이 워낙 컸기 때문에 영국 의회는 라이
슬러의 누명을 벗겨주었다.
이와 같이 미국 독립혁명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뉴욕 시는 한번도 잃은 적이 없는 상재(商才)·분방
성과 결합된 강한 독립정신을 길러왔다.
17세기에는 해적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으며 악명높은 윌리엄 키드 선장은 시의 지도층 인사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건축용 블럭과 복합도르래를 기증해 역사적인 트리니티 교회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상인들은 해적들의 약탈을 돕고 노획물을 나눠 가졌다.
뉴욕은 언론의 독립이 처음으로 실현된 곳이다.
자유의 국가적인 기초가 닦인 것은 1734년이었다.
그때 〈뉴욕 위클리 저널 New York Weekly Journal〉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였던 존 피터 젱어가 명예
훼손죄로 고발되고 정부를 상대로 강력히 투쟁하다 투옥되었는데, 그는 이 소송에 맞서 싸운 끝에
1735년 방면되었다.
독립을 위한 최초의 유혈사태도 뉴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정된다.
1775년 1월 18일에 애국단체인자유의 아들단'(The Sons of Liberty)이 영국군과 충돌하여 1명이 숨
지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뉴욕 시는 독립혁명중에 점령되어 거의 파괴되었으나 미국 최초의 수도가 되었다(1789~90).
1789년 4월 30일 이곳에서 조지 워심ㅇ턴이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최초의 주의회 회기가 1784년에 개회되었고, 1796년까지 뉴욕은 주도(州都)였다.
1790년 무렵, 뉴욕 시의 인구는 3만 3,00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으며 18세기가 지나면서는
6만 명을 넘었다.
1825년 이리 운하가 개통되어 버펄로, 오대호, 서부 여러 주와 연결됨에 따라 뉴욕 시는 세계적인 항
구이자 무역중심지로 발돋움했다.
1840년대 뉴욕 시의 연안으로 이민의 물결이 밀려옴으로써 숙련자와 비숙련자를 포함한 값싼 노동
력이 대대적으로 공급되어 급속한 성장과 사회적 동요의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주된 수혜자의 하나는 태머니 홀(Tammany Hall)로 알려진 민주당 지방조직이었다.
주로 사회사업과 애국활동을 목적으로 1789년에 설립된 태머니홀은 아론 버의 지도하에 18세기말부
터 정치적인 힘을 길렀다.
그리고 1828년과 1832년에 있었던 2차례의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앤드루 잭슨을 후원했는데, 잭슨이
잇따라 당선되자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그후 참정권 확대투쟁을 벌인 태머니홀은 한동안 보수파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1840년대에 이민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태머니파는 이민들의 지지를 강력히 겨냥하게 되었고,
그들의 지지표수에 의해 거의 1세기나 지속된 단단한 세력기반을 다져 정치적 보스주의(bossism)의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태머니는 부패의 동의어가 되기는 했지만 가난한 이민들에게 정치적·경제적 기회를 열어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 것도 사실이다.
남북전쟁중에 뉴욕 시는 최악의 폭동이 일어나 큰 타격을 입었다.
1863년 7월 4일에 주로 가난한 아일랜드인들이 가담한 폭동이 일어났다.
그들을 격노시킨 것은 300달러를 내면 징병을 면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징집법이었다.
폭도들은 시 전역을 휩쓸며 약탈·방화·살인을 저질렀다.
가로등과 나무들에는 흑인들이 처형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폭도들이 경찰·주병(州兵)·군대와 충돌하자
전함들이 시를 향해 대포를 겨눴다.
적어도 2,000명이 죽고 8,000명이 다쳤으며, 모든 업무가 무장충돌로 마비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 브루클린·퀸스·브롱크스·스태튼아일랜드를 시에 합병하자는 소리가 높아졌다.
브루클린은 합병으로 인해 태머니홀의 경우와 같은 심각한 타락이 브루클린 지역에서도 벌어질까 두
려워하여 강하게 저항했다.
윌리엄 마시 트위드와 리처드 크로커 같은 정치적 보스 아래에서 태머니홀이 보인 타락은 너무나 명
백했다.
1883년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잇는 브루클린 다리가 개통되자 합병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1898년 1월 1일을 기해 합병이 실현되었고, 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작은 맨해튼이 가장 강력한 자
치구가 되었다.
브롱크스·브루클린·퀸스·스태튼아일랜드가 합병되어 대뉴욕이 탄생함에 따라 뉴욕은 대도시로 성장했
고, 국가적인 도시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1790년 이래 수도로서의 지위는 상실했으나, 미국의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
로서, 또 공업도시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으며, 또 많은 대학·연구소·박물관·극장
·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외를 포함하여 1600만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수용하는 이 거대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
계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이다.
국제적으로는 대무역항으로서 대서양 항로의 서단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1920년대 이후
에는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 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 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20세기초의 20년 사이에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한 뉴욕 시는 이탈리아와 동부 유럽에서 몰려온 수
백만 명의 이민들이 합세해서 더욱 커졌다.
이 거대한 값싼 노동력 집단 중에는 숙련된 인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커가는 시에 필요한 여러 개의 다리·터널·고가도로·지하철들을 건설하는 데 수용되었다.
또 유명한 의류산업을 일으켰고, 인쇄업이나 작은 제조업을 급속히 발달시켰으며 전세계의 기업가들
을 끌어들였다.
현대의 뉴욕은 조합주의와 급진주의의 실험실과 같다.
20세기초 수십 년 동안 공립교육체계를 통해 매우 효율적인 사무직 노동자와 행정직 공무원 집단을
배출함으로써, 점점 복잡하고 급속하게 발달해가는 시의 경제에 대처하게 되었다.
뉴욕 시는 맨해튼·브루클린·퀸스·브롱크스·스태튼아일랜드(옛이름은 리치먼드) 등 5개 자치구로 되어
있으며, 이 자치구들은 뉴욕 주의 5개 군(각각 뉴욕·킹스·퀸스·브롱크스·리치먼드 군)에 해당된다.
이 자치구들은 모두 허드슨 강이 대서양의 어퍼뉴욕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 가까이에 있다.
북쪽으로 웨스트체스터 군, 동쪽으로 롱아일랜드의 나소 군만이 육지 쪽 경계를 이룬다.
그외의 지역은 롱아일랜드 해협, 대서양, 허드슨 강, 그리고 온갖 유형의 만·해협·개울로 둘러싸여 선
적과 휴양에 이용될 수 있는 연안의 길이가 930km나 된다.
맨해튼
뉴욕 시의 상징이자 관광 중심지인 맨해튼은 5개 자치구 가운데 외부인들이 가장 잘못 알기 쉬운 곳이다.
그들은 타임스 광장 주변의 극장가, 상점의 거리로 유명한 5번가와 주변의 금융기관들, 보헤미안들의
괴상한 생활을 볼 수 있는 이스트빌리지와 소호, 이국적인 풍경의 차이나타운, 독특한 멋을 풍기는
리틀 이탤리와 할렘 등을 주마간산식으로 보고 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얼핏 볼 때 맨해튼은 마천루와 휘황한 불빛과 광적인 속도의 도시, 또는 기인과 신경증 환자와 전위
파들의 섬에 지나지 않는다.
57㎢의 면적에 140만 명이나 되는 거주자들이 꽉 들어차 있다.
할렘·이스트·허드슨 강으로 이어지는 강변의 길이는 69km나 되지만, 그 오염된 물에서 슬럼가의 아이
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이 간간이 보일 뿐이고, 어부들이 고기를 낚는 일도 드물다.
섬 주민들에게는 각 구역이 하나의 고향이다.
웨스트스트리트의 70번대, 80번대, 그리고 90번대(이 구간을 어퍼웨스트사이드라고 하는데, 실상 최
북단의 웨스트사이드스트리트는 200번로[路] 이상 있음)의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을 언어
·직업·소득 수준의 국제적인 혼합으로 알고 있다. 센트럴 파크 동쪽의 어퍼이스트사이드에는 보다 풍
족한, 다른 혼합사회가 있다.
웨스트스트리트 20번대의 첼시 지구는 임대 아파트, 새롭게 단장한 고급 적갈색 석조가옥, 노동조합
에서 지은 조합 아파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며 사회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주로 모여 있는 이스트빌리지나 소호(south of Housto
n Street에서 비롯된 지명임)에 비해 분위기가 차분하다.
보헤미안들의 옛 활동무대인 그리니치 빌리지는 풍족한 전문직업인들, 성공한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인기있는 거주지가 되었다.
할렘 지구는 그 평판처럼 임대 아파트와 빈민구제용 아파트 단지와 흑인정치만이 있는 곳은 아니다.
스포츠에서부터 현관 세미나에 이르기까지 활기찬 노변생활이 있고, 정문지기가 있는 거의 흑인전용
의 호화 아파트도 있다.
이스트스트리트 80번대 구역의 요크빌에는 낡은 임대 아파트들과 고급 고층 아파트들이 부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독일인의 작은 문화공간이 있다.
맨해튼 섬의 북쪽 끝 지구 인우드에 밀집한 아일랜드인의 선술집 동네가 할렘 강 건너까지 확산되어
본토의 브롱크스 구의 영역 가운데 두어 개 블록이 맨해튼 구에 편입되어 있다.
인우드에는 맨해튼에 남은 몇 에이커의 삼림이 있으며, 무료 유원지에서 아일랜드인들이 그들의 국
민적인 스포츠 헐링과 게일릭 축구를 즐긴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인들이 즐기는 보치 경기(이탈리아식 볼링)를 위한 구장들이 남쪽으로 멀리 떨어
진 리틀이탤리에 가꾸어져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주변의 모닝사이드하이츠에는 대학가의 지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그 아래로는 쓸쓸
한 할렘가가 동쪽과 북쪽으로 뻗어 있다.
연락선이 지나가는 지점인 섬 말단의 배터리에서 시청에 이르는 환상적인 로어맨해튼도 사람 사는
동네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시청 부근에 고층 아파트들이 세워져 있고, 수백 개의 금융·보험 기관과 미국 최대 은행들이 들어서
있는 월가(街) 주변의 고층 빌딩 숲이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브루클린
뉴욕 시의 자치구들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구이며 맨해튼 다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인접한 퀸스 자치구와 함께 롱아일랜드의 서쪽 끝부분을 차지한다.
이스트 강, 퀸스 구, 대서양, 로어뉴욕 만, 어퍼뉴욕 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은 187㎢이고 연안선의 길이는 지하철이 닿는 위락공원인 코니아일랜드의 해안을 포함하여 약
320km나 된다.
브루클린은 독립된 도시일 때 갖추었던 면모를 많이 보존하고 있다.
중심가에는 번화한 상가지구와 사무실용 건물들이 있다.
상당히 큰 규모의 공장들을 포함해 많은 공장들이 연안을 따라 흩어져 있다.
미국 굴지의 전함 다수가 건조되었는데 정박했던 브루클린 해군 공작창의 조업이 중단되고 이름도
뉴욕 해군공작창으로 바뀌어 빈민들을 근로자로 훈련시키는 산업체로 전용되었다.
브루클린에는 단독주택도 많지만 주민 대부분이 아파트 공동주택, 임대 아파트, 대규모 주거단지에서
산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맨해튼 못지 않게 대조적인 생활을 한다.
웅장한 뉴욕 항과 맨해튼의 윤곽이 환히 보이는 브루클린하이츠에는 최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반면, 브라운즈빌 빈민가에는 불에 탔거나 버려진 건물들, 음산한 임대 아파트들, 판자로 둘러막은 가
게들, 저소득층의 공영주택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흑인지구에 속하는 베드퍼드스튜브산트가 이곳에 있다.
보기 좋은 적갈색 석조 가옥들과 높이 솟은 공영주택단지와 슬럼가가 뒤섞여 있으나 그곳 주민들은
그들 나름의 안정된 동네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최초의 미국 흑인여성 하원의원이 탄생되기도
했다.
이곳에는 또한 정통 유대인 공동체와 길 쪽으로 가게를 낸 유대교 회당들이 있는 버러 파크, 후원이
있는 사저에 틀어박혀 사는 이탈리아인들이 많은 벤슨허스트, 흑인과 유대인들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는 크라운하이츠 같은 독특한 동네들도 있다.
퀸스
면적 282㎢의 퀸스 자치구는 시 중산층의 보루가 되었다.
브루클린·맨해튼·브롱크스 구의 퇴폐화하는 구역들을 피해나온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퀸스는 롱아일랜드 해협, 나소 군, 대서양, 브루클린 구, 이스트 강에 둘러싸여 있다.
강을 따라 보트 시설이 있고, 게이트웨이 국립휴양지의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다.
야구 팀 메츠(Mets)와 축구 팀 제츠(Jets)의 경기장인 시 스타디움이 이곳에 있다.
수천 명의 흑인을 포함하여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단독 주택에 사는데 이는 뉴욕 시의 다른 지역에
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퀸스의 주민들은 이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 다음으로 퀸스 자치구를 생각하고 맨 마지막에 뉴욕 시를 생각한다.
지역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연속성이다.
아일랜드인들이 사는 우드사이드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같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드물
지 않다.
애스토리아에 있는 한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출생국은 20개가 넘는다.
그리스 밖의 그리스인 공동체로는 가장 큰 공동체가 애스토리아에 있다.
커로나에서는 이탈리아인 후손들이 손자들과 함께 조상들이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집을 가진 사람들이 저임금층을 위한 공영 아파트와 고층 아파트 단지 건설에 대
해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 퀸스 구이다.
퀸스 구에 빈민 거주구역이 몇 군데 있기는 하나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대도시권 슬럼가는 없다.
브롱크스
면적은 105㎢이고 웨스트체스터 군, 롱아일랜드 해협, 이스트 강, 할렘 강, 허드슨 강과 경계를 이룬
다.
이 지역은 극적인 도시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버려지고 불탄 건물, 폐쇄된 상점들과 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슬럼가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 주된 관건이 되고 있다.
사우스브롱크스 지역과 헌츠포인트 지역은 마약중독자 및 마약밀매상인으로 들끓는다.
그들은 창문을 쇠로 막고 입구를 벽돌로 막은 버려진 건물에 숨어 산다.
사우스브롱크스, 헌츠포인트 그리고 북쪽에 있는 머리사니아에서는 흑인들과 푸에르토리코인들 사이
에 정치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주로 정부자금으로 지원을 받는 빈곤퇴치기관에 정치적 요구들을 집중하면서 힘을 얻었다.
시 역사상 최초의 푸에르토리코인 자치구 회장이 브롱크스 구에서 선출되었고 그는 나중에 하원의원
이 되었다.
이곳 출신의 푸에르토리코인들 중에서 주 의회의 의원이 된 사람들도 있다.
슬럼가가 이 자치구의 북부로 계속 확대되어 한때 부유했던 그랜드콩코스까지 잠식하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시 외부에 있는 쇠퇴지역으로부터 유입해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중산층 주택이 계속
건설되어왔다.
스태튼아일랜드
네덜란드어 스타텐란트(Staaten Landt)가 와전된 이름의 스태튼아일랜드는 1975년까지 리치먼드 자
치구로 불렸다.
뉴욕 만에 의해 시의 다른 부분들과, 좁은 해협들에 의해 뉴저지 주와 분리된다.
연안의 많은 부분이 대서양에 면해 있다.
면적은 145㎢이고 인구밀도는 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다.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이 많아 거의 시골
같고 비교적 아파트가 적은 편이다.
이 섬의 주요문제는 부동산업자들과 시민단체들 사이의 갈등이다.
부동산업자들은 큰 이득을 얻을 기회를 엿보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다른 구들에서 볼 수 있는 성장에
따르는 혼잡을 막으려 한다.
그동안 많은 삼림지와 목초지대가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브루클린·맨해튼·브롱크스 구에서 옮겨오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이 세워졌다.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이 섬과 맨해튼 사이를 오가는 유명한 스태튼아일랜드 여객선은 쉴 틈이 없게
되었다.
이 여객선은 오랫동안 관광객들과 뉴욕 시민들이 가장 즐겨 이용하는 운송수단이었다.
이 여객선이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가고 로어맨해튼의 윤곽을 확연히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뉴욕 시민들이 도시에 붙은 '환락의 도시'라는 별명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상당한 근거가 있
는 것으로 거의 어떤 형태로든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뉴욕 시는 1세기 전부터 '꼭 가
봐야 할 곳'이 되었다.
그들이 찾는 것이 극·음악·발레·미술·문학 가운데 무엇이건, 그것이 야구·미식축구·농구·육상·하키·권투·
경마·축구·크리켓·럭비 가운데 무엇이건, 또는 그들이 찾는 에로의 세계가 실황이건 영상물이건 인쇄
물이건, 문화·예술·스포츠·섹스에 있어서의 남자나 여자의 취향이 무엇이건 뉴욕 시는 그 모든 것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뉴욕은 전국 최대의 문화시장이며 대환락가인 것이다.
이곳에는 흥행주, 대리인, 각종 선전원 등 문화와 예술에 관계하는 중개업자들이 있다.
또한 그들의 중개활동에 필요한 탤런트 요원들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러한 요원들을 배출하는 곳인
대규모의 박물관들, 거대한 도서관, 줄리어드 스쿨과 아트 스튜던츠 리그 같은 세계적 명성의 학교들
이 있다.
그 전체적인 결과가 천재에서부터 가짜 재능꾼들까지를 망라하는 하나의 산업이 되어 전세계의 온갖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매혹하고 휘젓는 묘미를 이 도시에 부여하고 있다.
물론 널리 알려진 이곳 거리의 범죄 때문에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으로서 시의 이미지가 많이 손상되
었다.
그러나 관광산업은 번성해 극장·운동경기장·연주회관 등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러나 쇼나 음악회 등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늦게까지 남아 있던 이곳의 전통은 공포 때문에 사
라졌다. 식당들은 일찍 문을 닫으며 이른 아침에는 택시도 드물다.
아직도 밤에 찾아가 볼 수 있는 곳들이 있긴 하지만 안전한 분위기는 줄었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의 시험관으로서 뉴욕 시는 그 어느 곳보다도 재미있는 곳이다.
공연예술
쇠퇴와 성장의 동시 발생이라는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뉴욕 시의 극장이다.
1920년대 발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브로드웨이 극장의 쇠퇴는 시작되었다.
그 시기의 극 대부분이 2류이거나 그보다 더 못했기 때문에 '말하는 영화'와 거의 경쟁이 되지 않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인해 브로드웨이의 침체는 더욱 심해져 42번가에 줄지어 있던 극장들이 희
극 무대로 변했다가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많은 돈이 소모되어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무대극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극장은 텔레비전의 출현, 입장료를 올려도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제작비의 앙등, 그리고
중산층 관중의 교외로의 대거 이주 등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타임스 광장에 남아 있는 주요극장들은 1920년대 극장수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보다 중요한 점은 뉴욕 시 외의 다른 지역들에서 뉴욕 시의 극장과 맞먹는 무대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타임스 광장 일대만이 아니라 뉴욕 시 전역에서 무대극이 아직 건재하다는 징표들이 있다.
1950년대 이후 창고, 지하실, 차고, 교회, 낡은 식당 등을 무대로 하는 오프브로드웨이(Off Broadway)
극장과 오프오프브로드웨이(오프브로드웨이보다 한결 더 전위적임) 극장들이 무더기로 생겨났다.
새로 생긴 이 300석 미만의 소극장들은 실험극들의 주된 무대이자 더이상 브로드웨이 극장에 흡수될
수 없는 배우·연출가·극작가·기술자들의 훈련장이다.
이 소극장들은 특히 자체적인 단체를 이루는 흑인들이나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매표소의 통계만으로는 극장이 뉴욕 시에서 갖는 의미의 전체를 알 수 없다.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 차려입은 군중들이 택시에서 쏟아져내려 혼잡한 보도를 거쳐 좁은 복도로 들어서고, 중간 휴식시
간에는 극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선술집에 들러 흥분 속에서 마지막 막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환호의 갈채가 울린 뒤 택시를 잡으러간다.
무대극에는 정교한 할리우드의 개봉 영화들이 화려한 조명과 많은 자본을 들여도 창출할 수 없는 자
연스러움과 세련미, 활력이 있다.
시는 무대극이 매표소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많은, 즉 호텔과 식당 수입까지 합해서 벌어들이는 돈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대극의 진흥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왔다.
1970년대초 이래 타임스 광장의 고층건물들에서 여러 개의 극장이 개관했는데, 그것은 시에서 건축
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건축업자가 건물 안에 극장을 설치하면 그만큼의 공간에 대해 보너스를 주기
로 했기 때문이다.
또 시는 극 작품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작에 대한 시의 후원에 힘입어 여러 해 동안 무료로 그의 작품들이 공원에서
상연되었다.
또 시는 오래된 도서관을 사들여 5개의 작은 극장으로 개조했다.
발레와 연극을 공연하는 뉴욕시티 센터는 건물이 면세건물인데다가 개조된 도서관처럼 연 1달러로
임대한 것이므로 저렴한 가격의 표를 팔면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시는 심한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공연예술지원금으로 지출한다.
시의 지원을 받는 공연예술 가운데는 슬럼가에서의 무대극 상연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하
모닉이 공원에서 개최하는 오페라와 음악회가 포함되어 있다.
뉴욕 시의 예술·문화 기관들 가운데 가장 볼 만한 것은 링컨 공연예술 센터이다.
나중에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 D. C.에서 그 설계를 모방하게 된 이곳의 5개 건물은 분수가 있는 석
호 주변에 세워져 있으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시티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뉴욕시티 발레, 레
퍼터리 극단(연극·오페라 등을 정기적으로 잇따라 상연함), 예술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오는 극단·악단·무용단들이 이곳에 들른다.
대부분의 오페라 악단이 그렇듯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도 개인적인 기부금으로 적
자를 메우며 운영된다.
연주회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카네기 홀을 여전히 가장 좋은 연주회관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주요 연주단들이 이곳에서 공연한다.
타운홀, 헌터 칼리지 강당,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들도 저명한 음악가들과 실내악 연주단이 많이 이
용하는 장소이다.
뉴욕 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골라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개봉이든 재상영이든 맨해튼에 있는 극장만 하더라도 수백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옛 영화나 새로운 외국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값진 곳이다.
시는 영화제작 중심지로도 성장해왔다.
뉴욕 시를 배경으로 하면 영화에 극적인 효과가 더해진다는 것을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이 인정하기
때문에 영화산업이 할리우드로 거점을 옮기기 전에는 주로 뉴욕 시에서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도서관·박물관·화랑
거의 200개나 되는 지관(支館)이 있는 도서관 체계는 뉴욕 시의 자랑거리의 하나이다.
시 절약운동의 한 결과로 도서관 개관시간이 줄었고 도서대출도 줄었다.
이런 침체는 텔레비전이 생겨서 독서습관에 영향을 끼친 탓도 있다.
그러나 대출 통계숫자가 42번로 5번가에 있는 뉴욕 시 명물의 하나인 돌사자들이 지키고 있는 중앙
도서관에서 행해지는 방대한 연구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전체 도서관의 통계숫자가 피어펀트 모건 도서관이나 컬럼비아대학교에 있는 로메모리얼 도서관
같은 전문도서관들의 가치나 링컨 센터 도서관의 장서와 기록문서들이 갖는 엄청난 가치를 반영하지
는 못한다.
박물관은 시의 문화생활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면이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옛날과 현대의 걸작품들을 볼 수 있고, 천장으로부터 다이빙하는 고래의 복
제품이나 행성의 신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을 포함한 수백 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박물관 복도들을 거쳐갔다.
개인적으로 찾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서 단체로 오기도 하는데, 때때로 이어폰을 끼고 설명을 듣거나
안내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매우 유명한 장소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미국자연사박물관, 그리고 그 가까이 있는 헤이든
행성박물관 등이 있다.
그들은 모두 공원용지에 있다.
그밖에 주로 사진과 영상을 전시한 현대예술박물관, 프릭 컬렉션, 솔로몬 R. 구겐하임 박물관, 휘트니
미국예술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등이 있다.
박물관들은 개인이 운영하지만 시에서 어느 정도 재정을 보조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개인이 내는 기부금으로 적자를 모면한다.
시의 우수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미국자연사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방문객이 스스로 입장료를 결정해서 내도록 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름이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일반 방문객들뿐 아니라 학자들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박물관들은
뉴욕시티 박물관, 뉴욕 역사협회, 유대인 박물관,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헤이어 재단, 미국공예박물
관(원래 '현대공예박물관'이라고 불렀음), 할렘가에 있는 스튜디오 박물관, 유대인 생활을 연구하는 학
생들을 위한 기관이며 '이보'(Yivo)라고 알려진 연구 센터 등이다.
그리고 수백 개의 개인소유로 된 화랑들이 뉴욕 시가 전국적인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데 한몫을 한다.
예술진흥을 위한 사업들 가운데는 예술가들이 소호 지구에 있는 건물들의 윗층에 살면서 작업하도록
하는 특별계획안도 있다.
레크리에이션
시의 면적 가운데 맨해튼 면적의 3배인 2만 250㏊가 공원용지이다.
공원의 크기는 교통 혼잡지대에 자리잡은 삼각형 모양의 작은 녹지에서부터 브루클린에 있는 213㏊
의 프로스펙트 공원, 퀸스에 있는 509㏊의 플러싱 메도커러나 공원, 맨해튼에 있는 340㏊의 샌트럴
파크, 브롱크스에 있는 857㏊의 펠햄베이 공원, 스태튼아일랜드·브루클린·퀸스에 걸쳐 있는 게이트웨
이 국립휴양지의 1만 125㏊에 달하는 공원용지·해변·습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브루클린의 코니아일랜드와 브롱크스의 오처드 해변과 같이 이용률이 극히 높은 공설 해변들 역시
뉴욕 시의 공원지대에 속한다.
이들 해변의 일부는 침식과 오염으로 인해 이용객이 줄었다.
동물원과 식물원은 시민과 방문객들이 나이에 관계 없이 즐겨 찾는 곳이다.
시에서 가장 큰 동물원은 브롱크스에 있지만 위치가 좋은 센트럴 파크의 훨씬 작은 동물원이 영화촬
브루클린·퀸스·스태튼아일랜드에도 동물원들이 있다.
브롱크스와 브루클린에 있는 식물원들은 식물학자들과 꽃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의 회합장소로 이용된다.
퀸스에 있는 식물원은 아름답지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뉴욕 시 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프로 스포츠 팀으로는 야구의 양키스와 메츠, 미식 축구의 제츠와 자
이언츠, 하키의 아일랜더스와 레인저스, 농구의 닉스, 축구의 코스모스 등이 있다.
양키 스타디움, 시 스타디움, 매디슨 스퀘어 가든 센터에서 벌어지는 각 스포츠의 메이저리그는 신문
과 텔레비전의 머리기사로 취급된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의 여가활동에 훨씬 더 많이 이용되는 곳은 공원과 해변들이다.
여름 주말이면 평균적으로 약 100만 명이 브루클린의 코니아일랜드를 찾고 또 약 75만 명이 게이트
웨이 국립휴양지 내의 로커웨이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즐기는데, 2곳 모두 롱아일랜드의 남쪽 해안에 있다.
가장 재미있는 야구경기는 센트랄 파크에서 벌어지는 푸에르토리코 팀들과 연예계 팀들 간의 경기이다.
센트럴 파크에는 또한 노를 저으며 여름을 보내거나 스케이트를 지치며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스포츠 행사들과 시의 공원들로 소풍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따뜻함과 이웃다움
을, 한번도 실현된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인종의 도가니에 잠재된 꿈을 엿볼 수 있다.
'뉴욕 시는 미국의 고향'이라는 말은 아마 적절한 말일 것이다.
뉴욕의 주요 관광지는
자유의 여신상, UN 본부, 미국 자연사 박물관, 센트럴 파크, 타임스퀘어, 메디슨 스퀘어 가든,
브로드 웨이, 5번가, 소호거리, 워싱턴 스퀘어, 월스트리트,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브룩클린 박물관, 솔로먼 구겐하 임미술관, 그리니치 빌리지, 링컨 센타, 록펠러 센터, 카네기 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트럼프 타워, 리틀 이탈리라,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그
랜드 센트랄, 양키 스타디움, 차이나 타운, 콜롬비아 대학, 프린스톤 대학, 브룩클린 브리지, 사라토가 천,
10위 타지마할(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 동쪽 약 2km, 자무나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의
묘묘(墓廟)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여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
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의 거액을 들여 완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풀이 양 옆의 나무의 녹색을 비추고, 우윳빛의 대리석으로
된 돔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태양 광선은 대리석을 그물모양으로 투조(透彫)한 이중장치를 통하여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황제부처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특히 달밤의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으며, 인도·페르시아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세계
적으로 이름높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
석의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곡한 기념비가 되었다.
1648년에 만들어져 현재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 성(城)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타지마할(Tajmahal)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지며,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17
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그의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
(Mumtaz Mahal)을 위하여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을 보았다.
사원은 좌우 대칭의 총대리석으로 높이 5.5m, 종횡 94m의 기단상의 중앙에는 높이 58m의 사당, 四
遇에는 높이 42m의 첨탑이 세워져있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며 완성하였고, 온갖 재보(財寶)와 미술/공예품을 한데 모아
놓았다.
또한, 영국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10선에 선정된 곳이다.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줌나 강) 남쪽 연안에 있는 영묘(마우솔레움).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
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전와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
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
공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
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이 복합 건물은 너비 580m, 길이 3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이 중앙에는 한 변이 305m인 정4각형 정원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그보다 약간 작은 2개의 직4
각형 구역이 있다.
남쪽 구역은 타지 마할로 들어가는 사암 출입구와 거기에 딸린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
구역은 야무나 강가까지 뻗어 있고 거기에 영묘가 있다.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이다.
모퉁이에 8각형 탑이 솟아 있는 높은 벽이 북쪽 구역과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울타리 밖에
는 마구간과 경비병 숙소가 있다.
무굴 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
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 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이 복합체의 북쪽 끝에는 영묘·모스크·자와브 등의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붉은 시크
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
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는 색깔
영묘는 높이 7m의 대리석 대좌 위에 지어졌으며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서리는 정교하게 깎여
있고 각 면마다 높이 33m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가 있다.
높은 원통형 벽(drum)으로 떠받친 양파 모양의 2중 돔이 이 건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영묘의 각 아치 위에 있는 난간과 각 모서리 위에 있는 장식 뾰족탑 및 돔을 덮은 원통형 정자는 영
묘의 스카이라인에 율동감을 준다.
대좌의 각 모서리에는 3층 미나레트가 서 있는데, 대좌와의 대리석 접합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
묘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묘의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다.
이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透刻)한 대리석 막
이 둘러처져 있다.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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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랑자는 약 30% 정도밖엔 못가보았군요.
하지만 조만간 정복의 꿈은 가지고 있답니다.
좋은정보 감사 합니다.
저는 아직 해외로는 별로 가본적이 없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