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55코스 역방향 제3부
국동항수변공원-당머리-연안여객선터미널-이순신광장-여수해양공원 공연장
20220223
2부에서 이어짐
1.당머리 벽화골목길 풍경과 여수해양공원의 진면목
국동항수변공원에서 구봉산을 바라보며 돌산대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여수수협의 상가 거리를 지나면서 봉산동에서 남산동으로 들어간다. 사당 같은 건물이 보여서 앞쪽으로 가보니 영당지로서, 어민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는 당집이었다. 현 당우는 사라진 당집을 1982년에 복원한 건물이라 가치는 떨어지지만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민들의 신앙심이 깃든 곳이다. 들어가서 살펴보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발길을 돌렸다.
남산동 당머리 참장어거리로 들어섰다. 골목길 음식점을 지나니 바닷물이 마을 안까지 들어와 있는 소박한 당머리마을이 나왔다. 당집이 있는 당머리마을은 아담하게 멋깔스럽다. 당머리포구는 수퍼미니 포구라고 할까? 마을 안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다. 마을 사진을 찍으니 볕바라기에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을 어르신들이 무슨 사진을 찍느냐며 마을 소개를 잘 해달라고 웃음진 소리를 하신다. 당머리경로당을 거쳐 돌산대교 아래를 지난다. 장군도가 바로 앞에 있고 맞은편은 여수해양공원이 펼쳐져 있는 해안로, 그 뒤로 종고산이 우뚝하고 맨 뒤쪽에는 마래산이 살짝 산허리를 보여준다. 벽화골목길로 들어섰다.
남산동 벽화골목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삶의 고단함이라 할까? 그 고단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마을주민들의 마음씨가 고와서 눈물이 나올 정도이다. 골목길의 천진난만한 벽화와 작은 사진스튜디오와 카페, 그리고 '바다와 노인'의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 이름을 딴 헤밍웨이 펜션과 카페가 언덕 높이 솟은 이 풍경 속에 남루하게 엎드린 낮은 집들이 붙어있는 골목길에서 아픔은 환희가 되고 벽화에 스민 긍정의 힘이 삶을 힘차게 아름답게 한다. 서글픔이 묻어 있는 이 풍경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낭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길손의 가슴에 슬픔의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서서 헤밍웨이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 헤밍웨이라면 이 풍경을 삶의 끈기와 아름다움이라고 찬미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벽화골목길을 빠져나와 언덕길로 오르니 이바구경노당 현판이 붙어 있다. 이바구를 늘어놓는 경노당일까? 두 분이 앉아 계셔서 뜻을 물으니 이바구가 이야기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경로당 앞에는 지역명이 붙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아보니, 남산은 예암산 또는 이바구산이라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남산 자락에 있는 이곳이 이바구경노당이다. 이바구마을에는 이바구경노당이 있다. 그렇다면 이바구가 무슨 뜻일까? 이 지역의 방언을 알 수 없으나 바위과 관련된 말일 것 같다.
경로당을 올라와 남산로를 따라간다. 남산공원 언덕의 주황빛 지붕의 이바구마을(?)이 아름다워서 눈길을 돌릴 수 없다. 지붕의 주황빛이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린다. 해안의 당머리마을과 골목길벽화마을을 지날 때는 애닯은 마음이 흘렀는데, 언덕에 작은 집들이 우정있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풍경을 보니 활력이 솟아오른다. 남산로 거리 풍경을 주마간산처럼 눈길 주며 연등천의 남산3교 다리로 올라섰다.
연등천변 동쪽에 자리한 여수수산시장과 교동시장의 지붕 위 조형물이 페르시아풍처럼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통풍구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조형물 모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연등천 남산3교 다리 위에서는 연등천과 장군산, 종고산이 한 몸처럼 느껴진다. 남파랑길 53코스를 걸으면서 장군산 기슭에 자리한 한영대학교 건물을 보았다. 54코스 오림3거리에서 연등천 표지판을 통하여 연등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54코스 충민로를 따라 중앙여고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만난 어르신께 지리적 위치와 관련한 여러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통하여 여수의 지리적 감각을 익히면서 여수가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덕에서 내려보던 연등천과 그 하구 남산동 자락을 상상했었다. 53과 54코스를 걸어 익힌 여수 시가지의 지리와 상상이 55코스 연등천 하구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 54코스에서 바라보았던 종고산과 장군산 사이에 자리한 충무동과 광무동 시가지, 그 사이로 길게 꼬부라지는 연등천 모습이 그려진다. 남파랑길 55코스 지금, 연등천이 남해 바다에 몸을 푸는 연등천 하구의 모습이 눈 앞에 있다. 자산공원과 거북선대교, 하멜기념관과 하멜등대, 여수밤바다 낭만포차거리, 이 풍경들이 체험적 감각을 자극한다. 저 풍경을 감상한 걸은 자의 포만감에 사로잡혔다.
연안여객선터미널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여수해양공원으로 들어섰다. 어제 54코스 끝지점에서 종포마을 표석과 종포해양공원 안내도를 만났다. 그 명칭이 헷갈렸다. 여수해양공원에 종포해양공원은 무엇이지? 그 명칭을 제 멋대로 사용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혼란이 온다. 길손은 이곳 해양공원의 명칭이 포괄하는 경계와 그 범위를 생각했다. 연안여객선터미널 주차장 입구-이순신광장-무대공연장-하멜등대-여수밤바다 낭만포차거리까지를 전체적으로 여수해양공원이라 이르는 것 같다. 그 가운데서 이순신 광장이 있는 주변을 중앙동해양공원, 무대공연장이 있는 주변을 종포해양공원이라 이르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그동안 구본되었던 이 두 개의 해영공원 명칭을 여수해양공원 이름으로 통합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장소는 구별하여 사용해도 될 듯싶다.
여수 소녀의 평화상은 멀리 구봉산을 등지고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주위에는 일제시대 일본군 성노예로 끄려간 아리따운 소녀의 상처를 보듬는 가슴아픈 시를 새긴 돌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그 중 김수자의 시 '소녀 곁에 앉다'가 길손의 가슴에 깊은 골을 새기며 강물로 흐른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꿈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세요/ 잃어버린 나의 집을 찾아주세요"
이순신광장으로 들어섰다. 이순신장군 동상이 광장 뒤 거리에 우뚝 솟아 있다. 이순신 장군을 도운 사람들을 돌북(石鼓) 모형물 북면에 새겨서 길게 늘어놓은 것이 첫눈에 띄었다. 첫 번째 북에는 전라우수사를 지낸 이억기 장군, 두 번째 북에는 경상우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원균 장군이 있다. 이 두 장군은 정유재란 때 1597년 7월 거제도 칠천량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이순신 광장에는 자산공원의 충무공 동상과 충무공 찬가 비문내용을 새롭게 다시 세워놓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순신 장군과 여수와 관련된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세 개의 벽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충무공의 역사적 자취와 얼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해안 쪽으로 드높게 밀려오는 파도 형상의 조형물, 그 앞으로 파도를 헤치는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이순신 광장의 의미를 빛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남관, 오포대,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은 55코스 밖이고 길손의 힘으로는 먼 곳의 일처럼 느껴져 단념한다. 이순신 광장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 55코스 출발점인 종포해양공원의 무대공연장으로 허겁지겁 걸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여수 새고막을 본뜬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새조개 내부는 여수만과 세계만 엠블럼을 새겼다. 여수만은 '여자만, 장수만, 가막만, 여수해만, 광양만'의 5개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여수만은 2009년 11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클럽에 등록했다’는 문구가 표석에 새겨져 있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 투표하기를 독려하는 홍보 조형물이 해안산책로에 독특한 빛을 뿜어낸다. 아름다운 여수해양공원 자연 풍경 속으로 대한민국 현실 정치 세계가 당당히 자리한다. 자연 풍경은 인간의 취미의 한 영역이고 정치가 인간 삶의 핵심이라는 듯 정치에 참여하라는 강력한 권고 같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투표만 하면 될까? 국가의 참된 지도자 자격을 누가 갖추고 있는가? 그리스에서 시작한 민주주의 정치 형태가 오늘날까지 변화하여 왔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풍랑과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보면 오늘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한계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한계이며 그 극복 또한 우리 민족의 오롯한 역량이다.
여수해양경찰서 중앙출장소을 지나면 종포해변 무대광장, 그 서쪽 분리수거쓰레기통 옆 가로등 기둥에 남파랑길 55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 남파랑길 54코스에서도 안내도가 없었고, 남파랑길 55코스 안내도도 55코스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어제와 오늘, 연거푸 53코스와 54코스, 56코스와 55코스, 4개 코스를 마친 길손은 극도의 피곤함이 몰려온다. 끝냈다는 안도감에 그 피곤이 더 깊이 스며든다.
2월의 태양은 훨씬 길어져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중천에서 밝게 빛난다. 종포 앞 바다의 검푸른 물결과 하멜등대,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가 쏟아지는 햇빛을 듬뿍 받아 활력이 넘친다. 풍경이 아름답다. 그 풍경은 길손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해안 벤치에 앉아 휴식을 더 취하며 그 풍경에 몰입하고 싶다. 그러나 서울 출발 시각이 오후 5시, 벤치에서 일어나 광장 맞은편 길가에서 대기 중인 산악회버스로 향하였다. 주마등처럼 1박 2일의 여수 풍경들이 스쳐간다.
남파랑길 55코스 제1부, 2부, 3부 모두 마침
2.걸은 과정
해발 388m 九鳳山, 옥황상제의 명으로 심부름을 나온 9명의 사신이 봉황으로 변하여 오동도의 벽오동 열매를 따먹으려고 내려왔다가 하늘에 오르는 기한을 넘겨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아홉 봉우리의 구봉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국동항수변공원에서 연수수협연쇄점 뒤쪽 여수수협수산물직매장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돌산대교 방향으로 진행한다. 뒤에 보이는 산은 남산, 예암산이라고도 이른다. 남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남산(예암산)이 남쪽으로 벋어 내리고 있다.
여수시 봉산동에서 남산동으로 들어간다.
뒤에 보이는 남산(예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영당지(影堂)은 어민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던 일종의 해신당이다. 이 앞을 지나는 배들은 고사미를 내어 고사를 지낸 뒤에 출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최영 장군을 모시다가 임진왜란 이후부터 충무공 이순신을 주신으로 이대원과 정운 장군을 배향하였다. 1943년 일제의 관리로 인해 영정이 철거된 뒤 남아 있던 당우도 1976년 어항당지 조성에 따라 철거되었다. 이후 1979년 향토민속문화보존회가 중단되었던 영당풍어굿을 재현한 일을 계기로 1982년 현 당우를 복원하였으며, 1994년에는 이순신, 최영, 이대원, 정운 네 장군과 용왕신, 산신 6신위의 영정을 모셨다.
1979년부터 이곳에서 해마다 재현되는 영당풍어굿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여수 사람들의 바다에 대한 신앙심과 생활 풍속을 보여주는 전통 문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해신당(海神堂) : 바닷가에서 바다를 다스리는 신령을 모신 집
*배향(配享) :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여수시 남면의 섬들이 뒤쪽에 펼쳐져 있다.
당머리는 남산동 남쪽 해안으로 예암산 자락이 닭머리 모양으로 뻗어 내린 지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곳에 영당이 있어 수산업을 주업으로 하던 어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굿이 자주 열렸으며, 당집머리가 줄어 당머리가 되었다는 유래도 전해온다. 같은 의미의 당머리 지명이 율촌면 여흥리, 화양면 나진리, 화양면 세포리에도 전해오며 닭의 머리라는 뜻으로 한자로 계두(鷄頭)로 표기한 지도나 서적도 있다.(디지털여수문화대전)
맨 뒤쪽에 자산과 거북선대교가 보인다.
가막만 바다가 당머리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돌산대교 바로 뒤에 장군도가 떠 있고, 맨 뒤쪽에 자산과 자산공원 그리고 거북선대교가 보인다.
건너편 종화동 해안, 그 뒤 종고산이 우뚝하고다 맨 뒤에 마래산이 보인다.
앞에 장군도가 동그랗게 떠 있다. 중앙 뒤에 거북선대교가 보인다.
오른쪽에 장군도, 건너편 종화동 해안과 뒤쪽에 종고산이 있다. 맨 뒤에는 마래산 줄기가 보인다.
왼쪽의 해안은 남산동 조개더미해변, 위에는 돌산대교가 있다.
이바구가 이야기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예암산(남산)을 이바구산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바구는 이야기가 아닌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예암산(또는 남산)은 산의 모양이 쇠북처럼 생겼다 하여 예암산(隸巖山)이라 이르게 되었으며 여수시 남쪽 해안 가까이에 있으며, 높이는 96m, 일명 이바구산이라 이른다고도 한다.
여수수산시장과 교동시장이 연등천변에 자리하고, 뒤쪽에는 장군산과 종고산(오른쪽)이 위치한다.
거북선대교가 앞에 보인다.
구봉산이 뒤쪽에서 내려보고 있다.
오랜 침묵의 뼈로 푸른 어둠의 가슴앓이로 살아서도 죽고 죽어서도 살아
여기 찢긴 바람의 지문으로 앉다
피 젖은 귀향, 열다섯 단발머리 소녀의 눈빛을 보라
기억과 망각의 이 땅 평화와 인권을 위해
여기 한 마리 나비 되어 앉다
2017.3.1
여수평화의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생각해보면 나는 어둠입니다/ 돌이켜봐도 나는 침묵입니다// 태어나 한번 죽는다 했습니다/ 나는 쉼 없이 죽어 여기 앉았습니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꿈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세요/ 잃어버린 나의 집을 찾아주세요// 나의 집은 사람입니다/ 나의 집은 그리움입니다// 그냥 말없이 곁에 앉아 주세요/ 곁에 앉은 당신이 그리운/ 나의 집입니다
이순신 광장은 여수시 중앙동 400번지 일원에, 2006년 12월부터 2010년 4월까지, 3년 5개월에 걸쳐 사업을 추진하여 2010년 4월에 공사를 마치고 개장하였다. 2014년 이순신 광장에 거북선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주요 시설로는 전망대, 무대공연장, 분수, 광장, 기념의 벽, 지하주차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6년부터 이순신 광장과 장군도 앞 해상에서 ‘여수밤바다 불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디지털여수문화대전)
가천대 한교서 교수의 작품인 이 조형물은 2023년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연차총회’를 대비하기 위해 2019년 12월 17일 세워졌다.
조형물은 좌대 포함 가로 2.6m, 세로 1.5m 규모로 외형은 가리비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여수 새고막을 본떴고, 내부는 여수만과 세계만 엠블럼을 새겼다. 직사각형의 표지석에는 ‘여수만은 여자만, 장수만, 가막만, 여수해만, 광양만의 5개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2009년 11월 세계 만 클럽에 등록했다’는 문구가 담겨있다.(여수시 뉴스)
여수만이 '여자만, 장수만, 가막만, 여수해만, 광양만의 5개만으로 이뤄져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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