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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이 본 이해찬 후보 선거운동 현장(3):
무시로와 넥타이 번개모임
대낮부터 울려 퍼진 무시로의 정체는?
“때늦은 이별인데 미련은 두지 말아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이해찬 후보 캠프사무실이 있는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걸어서 1분밖에 걸리지 않는 한 호프집에서 중년 사나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밤늦은 시각 단란주점이나 노래방에서 들리는 노래가 아니라 저녁 6시께였다.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이해찬. 노래를 부를 동안 그의 곁에는 반려자 김정옥여사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는 수십 명의 청춘남녀가 에워싸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 흥겨운 가락에 몸을 흔들며 목청껏 외쳤다. 나훈아의 <무시로>를. <무시로>가 이 후보의 애창곡이라는 사실은 KBS <단박 인터뷰>를 통해서 나는 처음 알았다. 그리고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자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잡초>와 <영영> 그리고 태진아의 <동반자>인데 취향이 비슷한 모양이다. 아니면 나훈아 노래가 따라 부르기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기 때문이리라.
토요일인 9월8일 오후 4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20대에서 50대, 가정주부에서 대기업 연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을 가진 남녀들이 여의도 한 호프집에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손에는 하나같이 넥타이가 들어있는 듯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는 넥타이 번개모임이었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은 이 후보의 인터넷 팬 카페 회원들이었다. 입구에서는 회비 1만원씩을 거두고 있었다.
흥겨운 로고송 ‘필승 이해찬’에 87년 대선 취재 때를 떠올려
테이블마다 맥주와 안주가 나오고 서로 ‘이해찬!’ ‘대통령!’이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며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전문사회자를 뺨칠 정도의 뛰어난 진행 솜씨를 뽐내는 30대 청년의 사회로 분위기는 고조되어 갔다. 로고송 ‘필승 이해찬’은 참석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해찬! 승리의 나팔을 울려라... 필승 이해찬.” 선거로고송은 늘 나를 들뜨게 만든다. 1987년 단일화 실패로 3김과 노태우가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누비며 선거유세를 벌였을 때 당시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였던 필자는 양김과 노태우를 따라 전국을 누비며 선거로고송을 귀에 따갑도록 들었다. 지금도 이른바 여의도 100만 유세 현장을 단상에서 바라본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이제 그런 대규모 집회 유세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로고송은 여전히 남아 당시를 회상하게끔 하는 것이다.
당시는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그런 열기가 모여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 세력이 집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보수우익세력이 오히려 ‘빰빠라’ 나팔을 불고 있고 민주화 세력은 동력을 많이 잃었다. 그 동력을 찾는 첫 번째 열쇠는 평화민주개혁세력(언론에서는 이른바 ‘친노’라는 이름으로 부름)의 결집이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느냐보다 보수우익세력의 장기집권 저지가 더 중요”
이해찬 후보는 평화민주개혁세력이 똘똘 뭉쳐 정권이 수구보수, 과거회귀 세력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캠프 간부들에게 늘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칫하면 한나라당에게 정권이 넘어가 보수우익세력에게 장기집권을 보장해주고 평화민주개혁세력은 사분오열되는, 역사에 크나큰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후보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후보의 역사 인식이 대단하구나, 그리고 개인보다는 나라와 역사를 늘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고 나의 마음을 다잡는다. 너무 글이 딱딱한 것 같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자.
‘필승 이해찬’ 로고송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회원이 이 후보 부인의 손을 잡고 나와 무대에서 춤을 춘다. 아직 해가 기울지도 않은 시각에 춤을 추려니 몸과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유심히 살펴보니 단란주점 같은 곳에서 춤을 춰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지지자들은 이 후보를 끌고 나왔다.
술도 안마시고 춤추는 이해찬 후보
“술도 한 모금 안 마시고 춤추기는 처음인데…”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위로도 치켜 올려가며 나름대로 분위기를 맞추느라 애를 썼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멀리 떨어져 술을 마시던 지지자들도 속속 앞으로 모여 들었다. 어느새 이 후보 주변에는 20여명의 남녀들이 스스럼없이 손뼉을 치며 로고송을 따라 불렀다.
정치는 국민을 신명나게 해주어야 한다. “지금 이 사람들이 신명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승리해 신명나게 해주어야 할 텐 데”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에게 왜 이해찬 후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느냐고 물었다.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워왔고 정책과 경륜이 뛰어나 대한민국을 앞으로 이끌어나갈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온 S전자 연구원은 “대통령 선거라는 큰 역사의 흐름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싶어 친구를 따라왔다”며 “이 후보는 똑똑하지만 한편으로는 근접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데 보완이 필요하다. 참모들이 보완을 해 달라”고 애정 어린 주문을 했다.
46살의 한 경남 출신 IT 사업가는 자신을 87년 6월 대항쟁 때 부산에서 치열한 데모를 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고 “한 달 전 지지모임에서 이 후보님을 처음 봤다. 당시 마음의 창인 눈을 보고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열렬한 팬이 됐다”고 말했다.
40대 미모의 여성과 뜨거운 포옹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각자가 가지고 온 넥타이 하나를 이 후보에게 전달해는 순서였다. 어떤 이는 넥타이와 함께 이 후보에게 바치는 염원을 담은 글을, 누구는 시를 써와 낭송했다. 하나같이 이 후보를 격려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국가의 융성을 비는 글과 시였다. 한 여성회원은 자신이 사온 넥타이를 이 후보의 목에 직접 매 주었다. 강원도 삼척에서 온 강아무개씨는 오징어 100마리를 내놓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아무도 거꾸로 돌리지 못합니다... 12월19일 모두 부둥켜안고 승리의 순간을 만끽합시다”라고 외쳤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다시 한 번 쏟아졌다.
마지막 순서로 40대로 보이는 미모의 늘씬한 여성이 넥타이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빨강, 노랑, 청색의 원색이 사선 무늬로 어우러진 화려한 넥타이였다. 검은 망사드레스에 창이 사방으로 난 여름 모자를 쓴 탓인지 모든 이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녀의 아이디 이름은 ‘여명의 눈동자’였다. 그녀 또한 격려 글을 직접 써와 읽었다. “통일 대통령 이해찬님께. 소신 있게 살아온 이해찬님을 사랑합니다.” 순간 몇몇 사람이 “키스해”를 외쳤다. 이 후보는 그녀를 다정하게 포옹했다. 그 옆에서 부인 김정옥님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끄러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후보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나는 듯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자
“이제 큰 서광이 비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조약이 머지않아 체결될 것입니다.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없어지는 그날이 곧 올 것입니다. 내일 제주연설대회에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시대를 열어갑시다’를 주제로 연설할 것입니다.
이날 오후 6시 캠프 간부회의가 예정돼 있었는데 워낙 열기가 대단해 20분 가량 늦어졌다. 이 후보는 “더 오래 함께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양해의 말을 지지자들에게 남긴 뒤 열기가 넘치는 현장을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필자도 회의에 참석하느라 더는 지켜보지 못했지만 이 후보의 승리를 바라는 덕담을 화기애애하게 주고받았으리라. 이 글을 빌려 그날 참석한 모든 분들과 가정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뱀다리(사족):좋은 글은 여럿이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죠. 제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열심히 이곳저곳으로 퍼 날라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