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세계를 이땅에 실현하는 그날까지
이홍규 김현숙
1 ,내고향 경남 고성읍 율대리
경남고성은 서기42년부터 461년간을 소가야 (小伽耶)도
읍지였던 곳이기도하다. 신라(新羅)제35대 경덕왕 16년에 주
(州), 군 (郡) 현,(懸) 을 한식(漢式)으로계정할때 고자군(古
自 郡), 을 고성군(固成郡) 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3월1일자로 면(面),의 명칭및 구역을 정
할때 동읍면(東邑面), 과 서읍면(西邑面)을 병합하면서 가동
면의 유동 일부를 병합하여 철성면(鐵城面)라 개칭하고 교사,
덕선, 기월, 서외, 대평, 무량, 우산,송학,죽계, 동외, 성내, 수남,
신월,월평, 율대의 15개 리로 개편 하였다. 서기 1918년에 이
르러 철성면은 고성면이라 개정하고 서기 1918년에 이르러 철성면은
고성면이라 개칭되고 고성면은 서기 1938년10월1
일 자로 고성읍(固城邑)으로 승격되었다.
고성군 하일면에는 상족암이 있는데 2억3천만년 전 중생대
초기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나타내었다가 그로부터 1억 6500
만년간 지구를 지배하였고 백악기가 끝남과 동시에 멸종되었
다.그래도 5천여점의 다양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고 있
다.수억년 전에는 공룡의 천국 이었을 산 아래로 펼쳐진 저 넓
은 벌판과 해안이 묵묵히 세월의 자취를 안고 자리하고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하면,마치 공룡의 울음소리를 들려오는
듯하다.오래 전 의 세월에 공룡들이 두개의 산을 뛰어다니며
활동했을 것이다.
거류산(巨流山 571.7m)은 한국의 마터호른(알프스 산맥,
4,478m)로 불리기도 한다.옛날 할머니가 저녁밥을 짓다가 밖
에 나가보니 산이 하나 걸어가고 있어서 ''게 섯거라. '' 하고 소
리치자 지금의 자리에 췄다는 산이라 한다.그리고 가뭄이 들어
비가 안올때는 거류산 무지게 터 주변에 묘를 파면 비가내렸던
곳 이기도 했다.
고성은 무기정 기생 월이 가 있았다.
일본이 15세기 후반조선을 침략할 뜻을 품고 밀사를 보냈는
데 당황포의 해변에서 당동,통영만을 둘러 고성읍 수남동 해
변을 삼천포를 가려고 하니 해는 이미서산으로기울고 땅거미
가 내리고 참자리를 찿아 무학동무기정곱사(술집 주인 이 곱 사였다)
집에서 하룻밤 투숙하게 되었는데 기생월이가 일본
밀사라는것으로 눈치채고 술을 먹이며 끌어안고 짖궂은 아양
을 다 떨며 술을 건한후 술에 취해 잠들어 을때 밀사의 품속을
뒤져 무명비단보에 다섯겹으로 싼 보자기를 발견하고 열어 보 았다.
놀랐게도 그 속에는 보물이 아니라 먼장래 우리나라를
침략할 전략과 하로의 공격 요지를 발견 육로로 도망갈 지도
가그려져 있었다.그것을본 월이는 붓으로 꽉 막힌 부분을 바다 로
연결되는 것처럼 지도를그러넣어 다시 품속으로 넣어 임진
왜란때 도망갈 길을 찿지 못하고 전면할 일화가 있기도 하다.
읍에서 2km쯤 통영 방향으로 말티고개를 넘어서면 우리동
리 율대리가 보인다.
나는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효령대군17세 16대손이갑룡(본명
이경의) 나는19대손 처사가 돌탑을 쌓아 탑사절을 세우심 소 백산맥 노령산맥의 펼쳐있는 해발300m위치에 세운 이 탑사 절은 진안군 북쪽으로 금강을 경계로 충남 금산군과 연결되어 있고 남쪽은 섬진강 북쪽은 금강을 경계로 충남 금산군과 연결 되어 있다. 진안 지방 여덥가지 뛰어난 경지를묶어 월랑팔경 이라 부르고 있다. 이갑룡 처사는 1860년대에 출생하시어 1954년 임종하 시기까지 그가운데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전 봉준이 처형되는등 어둡고 혼탁한 때에 세상에 태어나 어지러
운 세상을 한탄하시어 백성을 구하고자 구국이념으로 기도와
정성으로 수행 하시다 수도의 길을 걸으신 도인 이셨다. 16세
때 부친을 여의고 3년 시묘살이를 하다 산에 염엄한 가운데 감
명받아 백두에서 하나까지 전국명산을 찿아 다니며 3.7 기도
회도 갖기도 하셨답니다.처사는 나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
하러 온사람이다 라고 하시면서 굳게 믿고 기도정성에 정진
하시다.하루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 입산하여 기도드릴때 혼
몽중에 두산새가 꿈에보여 그이후 마이산을 찿아가보니 그 기
이한 산세가 꿈에 보았던 그곳과 맞아 떨어져 그곳에 자리잡아
수행을 시작 정성을 쌓았더니 그때나이 25세 였다고 했다.
진안에서 임실쪽으로4km가면 독특한 2봉우리가 있는데 두개가 말의 귀처럼 쫑끗하게 마주솟아있기 때문 마이산이라
이름지어 불렀다고 했다.매일 탑사 이절에서 스님들이 불가의 108 번뇌를 상징하는 108개 정한수 그릇에 매일밤 물을채워
넣는데 신기하게도 그 정한수 그릇이 얼때 몇몇개의 역 고드름
이 피어났다고 했다.그리고 30년동안 쌓아올린 수백개의 돌
탑이 있는데 이돌탑은 신기하게도 강한 비바람이 나 태풍이 불
어도 100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했다.돌은 순수 돌이
고 접착졔도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 쓰러지지 않느냐고
했더니 도 에가까운 정성과 혼이 들어있었기에 그렇다고 생각
해 보게 됩니다.
고성교회는 1960년 초에 개척교회가 생긴후 많은 지도자가
거쳐 가셨고 특히 조우억만 (전 유광열 협회 문화부장 장인)께
서 고성 복귀에 많은 협조를 해주셨다. 특히 저가 상리교회를
개척할 당시 일본에서 목수까지 동원 하시어 토지를 매입 성전
을 건축해 주시기도 하셨다.
2 출생밑 가족 배경
나는 1954년 고성 율대리 524번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
났다. 3남3녀 중 누나 둘을 두고서 장남 으로 태어 났다. 아버
님께서는 건축일을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몸이 안 좋으셔서 건
강을 위해 ' 대한고성 천리교를 나가시며 나가시며 정성을 많이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신앙심이 깊으셔서 무보수로 천리교 신
축건축때 2년가까이 다른 인꾼들과 함께 노동 봉사를 하셨다.
큰 대목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