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1:7-15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 이장우 목사 창원늘푸른교회. 10. 18.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15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었거나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은 학개서 그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내용이 성전을 건축하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중단된 성전을 건축하자 그날부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늘도 예배당의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을 짓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난주에 성전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시대는 건물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그 몸에 붙은 성도가 성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성전의 개념도 보겠습니다만 왜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도 짓지 아니한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소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7절을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는 자신의 소위를 살펴보라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성전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성전이란 모든 것의 중심인 것입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만듭니다. 모든 설계도는 전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성막 안에 들어갈 기구들도 전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40:34-38절입니다.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출애굽기 40:1-33절까지 보시면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하는 장면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더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이 성막에 대한 설계도와 그 설계도대로 짓는 모습입니다. 이 성막이 완성되고 나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조차 감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의 진 중앙에 위치하고 이 성막에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르면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고 싶다고 가고, 가기 싫다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성막을 바라보면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될 때에도 이 성막은 가장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사시시대에는 몇 번 이동하지만 다윗 왕 때에 성막을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에 건물 성전을 짓습니다. 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인 것은 왕궁도 있지만 성전이 있기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 가짜 성전을 만들어 금송아지를 섬기게 됩니다. 그 결과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남 유다도 성전을 몇 번 정화하기는 하지만 온갖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을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면서 성전도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에스겔 선지자는 회복된 예루살렘과 회복된 새로운 성전을 예언하게 됩니다. 온갖 우상이 가득한 옛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회복될 나라와 성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에스겔 48:21절입니다.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찌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 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듯이 다시 땅을 분배하는데 각 지파별로 분배한 후에 가장 중앙에 성소가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성전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 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인 죄든지 민족적인 죄든지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죄가 용서 받는 곳입니다. 범죄하여 온갖 기근과 재앙이 오고 심지어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은총을 더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란 이스라엘이 죽고 사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으면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이 성전의 재건입니다. 처음에는 바로 시작하였지만 온갖 방해로 인하여 15년이나 늦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아예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 집 짓고 가꾸는 일에 바쁜 것입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소위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수입하여 지었지만 그러나 근처의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와서 짓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얻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전을 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재건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성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백향목을 수입하여 지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저 뒷산의 나무를 베어 와서 지으라고 하셨다면 마음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돌은 무너진 성전의 돌들을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집 건축에는 빨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러하기에 성전 재건이 지연되자 언약의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9-11절입니다. 많은 것을 바랐지만 하나님께 불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신명이 28장에 언약을 어기면 어떤 재앙이 온다고 하셨습니까? 하늘이 놋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을 가뭄이 심하다고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성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재를 불러 땅과 산과 곡물과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육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내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재앙을 깨달아야 할 텐데 아무도 깨닫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묻습니다. 이것이 무슨 연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무하였는데 자기 집에는 다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도 깨닫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37-40절입니다. “봉독” 38절에서 한 사람이라도 재앙을 깨닫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 사람도 재앙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질문하고 하나님이 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너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집에만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의 마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처음 성막을 지을 때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들고 나온 여러 가지 금은 패물과 물건들을 성막을 짓는 일에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의 정착금이 될 것인데, 그것을 성막을 짓는 일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35:20-29절입니다. “봉독”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들이 마음에 원하여 자원하여 즐거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많아서 그만 가져오라고 하는 내용이 36장에서 나옵니다. 결국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을 완성하고 나서 자기가 드린 예물이 무엇이며 얼마나 된다고 자랑할 자가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공로패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드리는 것이 즐거움과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연보도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서 하는 일들은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제 이런 일이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2절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그 남은 모든 백성이 학개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보낸 것임을 알고 여호와를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그들이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4절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니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분’이라는 단어는 깨우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각자의 마음이 감동이 되어 하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전 재건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성전은 나중에 또 무너지지만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소위를 살펴봅시다.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이 성전 됨을 믿고 그 성전 된 예수님의 몸에 붙은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중심과 살고 죽는 일이 성전에 있었는데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에베소서 4:1-16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신 것입니다. 학개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한 마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지시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