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비전설교(1) / “여러분! 비전을 가지십시오!”
♥ 본문 : 창 세 기 37장 5절 - 28절(구약성경 57쪽)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아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기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을 부르면서,
조국 통일의 큰 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늦봄' 이라는 호를 가지신 문익환 목사님의,
두 번째 시집 "꿈을 비는 마음" 이라는 의미 있는 제목의 시 한 연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 펄떡 뛰면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시집 후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낙천가로 태어난 모양입니다.
나는 비관할 줄 모릅니다. 수염까지 희끗희끗해 가는 나이에 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곧잘 꿉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진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그렇게 고난 받기를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소년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살아있어도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삶에 얽메어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현재만 살아가는 사람은 너무나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초월하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현재보다 더 큰 꿈을 지니고,
그 무엇인가에 의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넘어선 것이라고 해도 거기 멈추어 서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전력질주 하는 삶은
언제인가 자신에게 그 꿈을 손에 쥘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늘만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내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미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를 초월한 삶을 살아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겐 내일이 가져다 줄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런 것을 생각지도 않습니다.
단지 현재에 만족할 뿐입니다. 아니면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런 꿈에 사로잡혀 사십시오.
그래야 삶과 일터에서 열정이 솟아납니다. 자녀들에게도 꿈이 무엇인지 자꾸 말해 줍니다.
이렇게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현재를 살아도 미래에 닿아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돈을 벌어도 무엇을 위해서 버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며, 미래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기대한 대로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5절과 9절을 보면,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꿈쟁이 요셉은 얼마나 생생하게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이 지금 당장에 이루어질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 할 만큼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꿈과 비전이 바로 이래야 합니다. 생생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는 꿈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요셉이 지금 자기의 부모님과 형들에게 말하는 꿈은,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예언적인 꿈, 미래에 이루어질 큰 비전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었고, 그 꿈에 따라 움직였던 꿈쟁이었습니다.
꿈쟁이 요셉을 그의 형들도 인정했습니다.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 꿈쟁이 요셉의 말씀을 중심으로 ‘비전’ 에 대해서,
계속 말씀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꿈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꿈꾸며 비전을 따라 여기까지 열심히 살아온 여러분 한 분 한 분,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시는 주님께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큰 꿈을 주실는 지,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는 과연 어떤 꿈과 비전을 예비하고 계신지, 나의 자녀를 위해서는,
얼마나 크고 놀라운 꿈과 비전을 주실는 지 기대하며 기도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젊습니다. 우리교회 나이 드신 분들도 가만히 보면,
생각과 마음이 젊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젊다면 그 사람은 젊은이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더 큰 꿈을 가지십시오.
나이 탓하지 맙시다. 배운 것 따지지 맙시다. 가진 재물과 권세 같은 것도 따지지 맙시다.
요셉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형들에 의해 팔려가면서도,
성실하게 섬겼던 주인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은혜를 베푼,
사람이 배신을 했어도, 그런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셉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환경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꿈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에게 이 꿈이 있기를 원합니다. 현재를 넘어서는 힘을 얻는 비전 말입니다.
이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은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의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의 강함은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나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아멘!
사도 바울에게는 모든 교회를 향한 비전, 복음을 전해야 하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비전 때문에 그는 모든 위험과 고통과 억눌림에서 언제나 싱싱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현재를 넘어서는 미래의 꿈을 가져야 새로워집니다.
그래야 나의 일터가 새 일터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새롭게 보여집니다.
그런데 꿈을 갖고 살다보면, 요셉처럼 생각지도 않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비전을 갖고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게 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네가 가진 꿈이 어떻게 되는 지 두고 보자.’ 하며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가진 꿈을 이루어 가는 일에 반드시 걸림돌이 생깁니다. 내 꿈을 허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도우미를 보냅니다. 꿈쟁이 요셉의 도우미는,
르으벤이었습니다. 르으벤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꿈은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꿈쟁이들은 꿈을 따라 살다가 걸림돌 때문에, 고난 때문에, 상처 때문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실패와 좌절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꿈과 비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 요셉 인생의 끝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까지만 읽는다면,
우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꿈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 형제들은 물론 부모까지 절한다더니, 꿈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분명히 말합니다만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에는 그의 꿈을 이루기,
원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가 되었어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도 하나님께서 주신 용기였습니다.
그 일로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서 감옥에 갇힌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은혜를 입고도 잠시 요셉을 잊은 것도, 하나님의 큰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것이,
요셉 인생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준 꿈과 비전이 거기까지가 아닙니다.
형제들 의해 종으로 팔려가고, 옥살이를 하는 것은 꿈과 비전 성취의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일 뿐이었습니다.
그걸 안 요셉이기에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그가 가진 꿈과 비전성취를 바라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이 주신 꿈과 비전,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발견한 꿈과 비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확장되어 갑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정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의 성취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골 고향교회 주일학교 서기 겸 동화담당자였습니다.
동화책이 별로 없던 그 시절이라, 책을 보고 동화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 내내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교회학교 동화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꿈을 꿉니다. 제 꿈을 다 펼쳐 놓으면, 여러분은 ‘우리 목사님은 천년만년,
살려는가보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우리교회가 확장되어져 가는 꿈을 꿉니다.
새벽기도회 제단에 엎드렸을 때도 꿈을 꿉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꿈을 꾸며 준비합니다.
지금 이렇게 설교하면서도 꿈을 꿉니다. 중보기도실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저는 꿈을 꿉니다.
차를 타고 우리교회 주변을 돌면서도, 교회 주변의 빈 땅을 보면서도 저는 꿈을 꿉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은 일 저지를 궁리만 하고 일만 한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을 저지르면 거기에는 고생이 있지만, 꿈이기에 나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는 날마다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한 꿈을 꿉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은,
힘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해남에 대한 꿈을 꿉니다. 저의 아내는 나를 보고 해남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해남의 한 영혼이라도 건져내기 위한 일이라면 나는 미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제 아이들은 너무 기대가 큰 것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아빠와 함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돌아다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아이들에 대한 나의 꿈은 인간적인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 참 빠르네. 그 동안 한 일도 없이 세월 가네.’
이런 깊은 한숨과 함께, 이런 넋두리 같은 꿈과 비전이 없는 절망적인 말은 하지 맙시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 동안, 이 꿈쟁이 목사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꿈을 꿉시다.
그리고 새로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꿈과 비전을 잉태해 갑시다.
꿈이 있는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꿈을 확장시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 그의 꿈대로 담을 넘어 그 가지가 뻗어나갔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꿈대로, 우리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고 우리들의 가족,
특별히 저와 여러분의 자녀들이,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이 넓게 뻗어나가고,
성취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다함께 꿈을 꾸며 그 꿈대로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