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시인을 만나다
초청시인
이월춘 시인(『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민창홍 시인(『도도새를 기억하는 밤』)
이서린 15회를 맞이하는 사이펀 초청 문학토크, ‘창원의 시인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이월춘, 민창홍 두 시인을 모셨습니다. 오늘 자리를 위하여 두 시인을 초청하고, 경남문학관에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신 계간 《사이펀》의 배재경 발행인과, 오늘 자리를 빌려주신 경남문학관에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창원의 시인을 만나다’ 진행과 대담을 맡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저는 창원에서 시를 쓰는 이서린입니다. 이월춘, 민창홍 두 시인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월춘 반갑습니다. 설은 잘 쇠셨는지요? 이런 자리는 우리, 처음이지요? 민창홍 시인과 함께하니 든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서린 시인이 사회를 맡아 진행하시니 오늘 토크쇼, 왠지 잘될 것 같네요.
민창홍 반갑습니다. 문학 토크에 초대해 주신 사이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월춘 선배 시인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토크쇼를 해 본 일은 없지만 떨리는 마음 다독이며 신세계를 경험해 보겠습니다.
이서린 문학 토크가 열리는 이곳 경남문학관의 관장이신 이월춘 선생님과, 경남문인협회장이신 민창홍 선생님은 경남의 문인들을 위해 애쓰고 계시는데 직함에 대한 무게가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관장이니 회장이니 하는 맡은 직함을 잠시 버리고, 오로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차 떼고 포 떼고 그런 거죠. (웃음). 어떠십니까?
이월춘 그래야죠. 그래야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거니까요.
민창홍 경남문협이라는 단체를 맡은 책임과 역할의 직함도 있지만 이 자리는 문학토크인 만큼 시인의 자격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서린 예, 좋습니다. 요즘의 제 관심사는 우리 집 뒷산과 흔히 말하는 똥개 두 마리, 그리고 우주와 물리학 등등이에요.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은 두 분께 질문을 위해 시동을 거는 건데요. 먼저 두 선생님께 공통적인 질문으로 시작을 할까 합니다. 시인으로서 요즘의 근황이나 몰두하고 계신 거나, 관심이 있는 분야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민창홍 단체를 맡다 보니 조금 바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조금 복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것들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무관심하게 보던 것들도 자세히 보게 되고 남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됩니다. 걸으면서 생각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시가 안 될 때는 산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복잡한 일이 생기면 미친 듯이 걸어갑니다. 임항선 시의 거리를 걸으며 시상도 떠올리고 바다를 멀리 바라보면서 제 생각도 넓히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연에 관심이 깊어지고 제 언행도 돌아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삶의 본질과 여유를 생각하게 되네요.
이월춘 첫 시집이 교육 문제를 주로 다루었고, 그 뒤로 몇 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제가 살아온 흔적이거나, 추억, 주변의 삶과 존재의 본질, 낮은 곳에 엎드린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 등이었지요. 요즘 우리 교육에서 고전문학을 소홀히 대하는 느낌이 듭니다만, 저는 오래전부터 고전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재산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많았는데요. 짧은 한문 실력 때문에 마음껏 공부하지는 못하지만, 사서삼경과 노장을 비롯해 여러 책을 섭렵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주역을 읽고 있지요. 그래도 제 관심사는 삶입니다. 삶을 더 깊이 사유하고 나아가 풍요롭게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게 넉넉하게 읽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이서린 두 분의 근황과 관심사를 들으면서 저의 주변도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제 시집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시집의 제목에 대한 것인데요. 이월춘 선생님의 시집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와 민창홍 선생님의 시집 『도도새를 생각하는 밤』, 둘 다 시의 제목인데 사라지는 것을 향한 애틋함이 공통적으로 보입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표제시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을 각각 듣고 싶습니다.
이월춘 오래전부터 존재와 소멸에 대한 사유가 많았습니다. 기억 속의 존재는 대상의 파편화된 조각을 떠올리는 것일 뿐이라 쓸쓸함이 더합니다. 인간은 생성과 소멸의 우주적 질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뿐이지요. 사라지는 뭇 생명들과 어머니를 연결해 본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단연 ‘어머니’의 기억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담아냈습니다. 다들 그렇겠습니다만 저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그립고 안타깝고 먹먹한 존재입니다. 시인치고 부모에 대한 시 몇 편 없는 이가 없겠지만, 오래 병석에 계시다가 가신 아버지(일제강점기와 육이오 등 우리나라의 격동기를 살다 가셔서 더욱 짠합니다)에 대한 시도 몇 편 있으나, 어머니의 참고 또 참은 인고의 시간을 지켜본 자식으로서 더 안타까움이 많겠지요. 교단에서도 아이들 앞에서 자주 입에 올린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를 자주 떠올립니다. 그 마음이 생성과 소멸의 자연적 질서와 맞닿아 표현된 것입니다.
참, 우연인지는 몰라도 민창홍 시인의 ‘도도새’도 사라진 새가 아닙니까.
이서린 예, 두 분 시의 주제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이 보입니다.
민창홍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니 정말 그렇군요. 저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에 교장으로 승진하여 마스크를 쓰면서 임기를 시작하여 지난해에 마스크를 벗으며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일명 코로나 교장이라고 합니다. 큰일을 치르고 나면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삶도 평생의 교육 철학도 바뀌었습니다. 사람의 소중함이었지요. 몇 달간 텅 비어 있던 학교에 학생들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어 등교하던 날의 기쁨은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인간의 탐욕과 환경 파괴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했지요. 그로 인하여 생각한 것이 생명의 존엄성이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생태계 파괴로 인도양 모리셔스에서 사라진 도도새는 마스크 연작시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도도새처럼 우리 주변의 생명들도 모두 사라지지 않나 하는 불안감도 코로나 시기에는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과 사물이 더욱 소중하게 보였습니다.
이서린 모든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애틋함을 느끼면서 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시집을 보면 대체로 제목이 그 시집을 말하기도 하지만 시집의 가장 처음에 수록한 시가 시인의 시에 대한, 혹은 시인 자신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월춘 선생님 시집의 첫 시인 「자화상」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돈도 없고 몸도 약하니’, ‘열매를 위해 한 몸 기꺼이 던질 줄 안다’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의 자화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월춘 저는 시집 편집할 때 어떤 성향 같은 건 없고, 출판사 편집진에 일임해 왔습니다만. 어릴 때부터 허약했습니다. 병을 달고 살았지요. 육 남매의 다섯째였으니 옷도 형들 거 물려 입었고, 입도 짧아 밥상머리에서 매번 지청구를 들었답니다. 못 믿으시겠지만, 비쩍 말라 마른버짐이 핀 시골 소년. 자연스레 운동도 젬병이었지요. 중고생 때 체력장 시험 20점 받아본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오래달리기가 가장 싫었어요. 교련 시간이나 신병훈련소에서 수시로 했던 선착순도 정말 싫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교사가 되었으나 여러 면에서 넉넉하지는 못했어요. 아이들 키우며 먹고 살고, 시를 쓰면서 여지껏 버텼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평범하게 살았고, 문학적으로도 이렇다 할 게 없다 보니 사실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삶이었어요. 저는 나이를 먹은 것일까요. 나이가 드는 것일까요. 사람은 살아온 흔적을 얼굴에 새긴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오래 쌓은 연륜과 삶에서 체험한 지혜 덕분에 온화하고 여유롭다고 하는데 제 얼굴 어떻습니까. 엊그저께 또 떡국을 먹어서 단단하게 익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연민이 느껴지지요.
평생을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후에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얘기겠지요. 그러나 그냥 늙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라고 욕심(욕망)이 없었겠습니까. 내려놓아야 한다고, 내려놓고 싶다고 수시로 자신을 타이릅니다만 매번 그냥 주저앉고 말지요.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제 시를 읽는 사람들은 ‘꽃 질 때 아름다운 생멸의 미학’을 ‘성찰의 자세’로 봅니다. 저는 그저 자연의 섭리를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는 삶이라는 제 평소 문학관과 이어집니다.
이서린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이월춘 선생님의 허약한 과거를 알 수 없었겠습니다.(웃음). 이번엔 민창홍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시집의 첫 시 「사과」라는 시에서는 사과를 어둠 속에 방치한 자신에 대한, 혹은 시에 대한 반성처럼 읽혔어요. 시는 시를 읽는 사람의 몫이지만 그런 사유로 쓰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민창홍 네, 삶에 대한 반성이 맞습니다. 일에 대하여 완벽주의자처럼 살아왔습니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여야 했지요. 직장인 학교에서도 수업이나 업무에 완벽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스스로 스트레스받는 삶이었다고 회고됩니다. 상대적으로 가정에 소홀한 편이었지요. 아내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 소설을 썼는데 교직 생활을 하면서 포기하게 된 것도 제 성격 탓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중학교 입시가 평준화로 전환되면서 직장에서 여유가 생기고 불혹의 나이에 문청시절을 회상하며 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보신 어둠 속에 방치한 자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시집을 다섯 권을 출간하고 퇴직을 하니 세상이 넓게 보이고 제 자신도 너그러워지네요. 자연스럽게 집안일도 하게 되고요. 명절이 지난 후에 아내를 도와 분리수거를 하는데 박스에서 툭 떨어지는 반쯤 썩은 사과를 보면서 문득 하나의 생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성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피조물을 생명의 차원에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변의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가르침도 담겨 있습니다. 제 삶의 전반적인 반성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서린 세계엔 3대의 사과가 있죠,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그 후 네 번째가 민창홍 시인의 사과가 아닐까 하는(웃음), 문득 든 저의 생각입니다.
민창홍 선생님의 시 「어느 신부님이 물었다」를 읽으며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지가 마비된 개의 안락사를 고민하던 중 어느 신부님과의 대화에서 ‘그렇다 나는 시인이다’로 썼다가 ‘드디어 나도 시인이 되었다’라는 마지막 연에서 시인이란 존재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했구요. ‘시인이 되었다’는 사람이 되었다, 로 읽히기도 했는데,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곰곰 생각하게 하고, 사람이란 존재의 정의와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했지요. 선생님의 시집을 읽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실천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보입니다. 이번 시집 『도도새를 생각하는 밤』은 그런 자신을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시집을 엮은 선생님의 심정은 어떠셨어요?
민창홍 반려견이 걷지 못하고 동물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안락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필 신부님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화제가 빈약하여 꺼냈는데 갑자기 신부님이 시인이 맞느냐고 질문을 하여 당황하였습니다. 교육자이며 시인이 생명을 경시하면 되냐는 질타였습니다.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문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인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괴로웠지만 생명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동이 안 되어 고생하시던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하였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1년 동안 강아지를 정성을 기울였더니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신부님의 질문에 답할 차례가 되었을 때 진정한 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하는 성숙한 사람이 맞습니다.
시집을 엮은 심정을 질문하셨는데요. 앞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를 쓰고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인류의 재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결론은 인간의 탐욕으로 생기는 환경파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벗을 수 없는 마스크가 제 양 귀를 당기며 머릿속을 괴롭혔지요. 고통 속의 생활상을 연작시로 15편 썼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시에서 형상화한 것처럼 당시 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풍속도라고 할까요. 상가나 결혼식 등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부조금을 계좌이체 하기도 하고 비대면 수업의 활성화와 함께 재택근무 및 화상회의가 일상화되었습니다. PCR 검사와 건강 문제에 각별히 신경 쓰고, 음식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배달문화 등도 등장했습니다.
이 시집은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 쓴 시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큰 재앙이었던 코로나 팬데믹을 한번쯤은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점에서 시집을 엮으면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숙제를 우리 모두에게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이서린 이번엔 이월춘 선생님의 시집에 대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번 시집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를 읽으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장자의 ‘소요유’가 떠올랐습니다. 현대의 삶에 장자를 대입해 보면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려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애쓰면서 상처를 주고 또 받고 하면서까지 해야 할까? 주어진 대로, 각자 타고난 능력만큼 일하고,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탐하지 말며 살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불치하문>이란 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요. 장자의 사상이 선생님의 시집 전반에 흐르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이월춘 아하, 그랬군요. 장자와 노자를 한 범주로 보는 경향도 있으니 넓게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히려 저는 노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마 유산 윤재근 선생님의 <노자>를 즐겨 읽었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무위자연의 경전으로 읽히는 노자는 道와 無를 알면 세상이 즐겁다는 노자의 깊은 사상을 말하지요. 감히 제가 그 철학적 사유를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욕심이 많아 삶의 숨결이 고르지 못하고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생을 苦海라며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과 柔弱勝剛强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하려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애쓰면서 상처를 주고 또 받는 세상사의 질곡을 벗어나겠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각자 타고난 능력만큼 일하고,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탐하지 말며 살자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저는 그 길을 가려 합니다. 요즘은 윤재근 선생님의 <주역>을 자주 읽고 있습니다. 좀 어려워서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지만요.
이서린 계속해서 이월춘 선생님의 시 「선착순 달리기」를 보면 ‘나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뻘밭 에서 건져줄 구원자는 과연 누구시며 어디 계시는가’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서른」이라는 시에서는 ‘체념과 순응을 익힌 한 마리 어른이었다’, 「시가 시시해졌다」에서는 ‘다 내려놓고 맑게 걷기로 한다’, 라고 하신 걸 보면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전투구의 뻘밭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신 건 아닌지요? 아니면 시에서는 그렇게 쓰셨지만 아직도 벗어 나오는 중이신지요.
이월춘 저는 지금까지 사는 게 만만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삶의 순간순간마다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투구의 뻘밭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 게 아니라 견디다 보니 세월이 건져준 것이었어요. 그렇습니다. 생은 견디는 것이었어요. 다 내려놓자고 했지만 지금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바른말 하다가 정 맞은 적도 많고, 손해 본 적이 한두 번 아니었지요. 그래도 대충 지나가자 하지는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체념과 순응을 익힌 한 마리 어른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는 까닭을 어렴풋이 압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30여 년 전에 영세를 받았지요), 그동안 게을러서 오랜 기간 냉담의 시간을 가졌고, 퇴직 후에는 열심히 다녔으나 또 냉담의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요? 한마디로 종교의 정치화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제 시의 구원자는 결국 부처님도, 하느님도 아니었지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뻘밭에서 나왔지만, 육신과 영혼에 묻은 뻘은 가지고 가야 하나 봅니다.
이서린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화두이겠지요. 두 분을 같이 모시고 하는 문학 토크이니까 공통된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각자 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사람, 사물, 상황 등등 두 선생님 시의 뿌리와 줄기는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민창홍 저의 시의 뿌리와 줄기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두고 부족함이 없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격려해 줍니다. 그러나 저는 늘 사랑의 결핍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초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와 고조부의 인연에 따른 가족사를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흥망성쇄의 가족사로 인해,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을 떠나 열 살 때부터 조부모님과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장남이고 장손이니 할머니가 얼마나 잘해주셨는가 상상이 가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매우 엄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글 쓰는 것을 매우 반대하셨습니다. 조부모님과 대략 15년 정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간 동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올해 91세 어머님은 88세인데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두 분이 사십니다. 어쩌다 집에 갔다 돌아올 때면 눈물부터 흘리는 어머니가 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눈물 흘리는 모습은 제게 아픔입니다. 지금까지도 생일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고 자책하시는 어머니와 늘 그리움 속에 사는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사랑이 보편적 이웃 사랑으로 번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월춘 저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물이나 상황이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그 속에서 상상이나 은유가 엮어지고, 사유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지극한 성찰이 바탕이 되어야 시적 화자의 삶과 연결되고 사유의 폭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니까요. 시 속에 삶이 있지 않으면 저는 생명이 없다고 봐요. 시란 삶에 대한 질문이요 간절함이자, 세상의 모든 슬픔을 전해주는 언어입니다.
이서린 사랑과 사람, 영원한 숙제이지요. 이번 민창홍 선생님의 시집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돌아보고, 겸허한 자세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시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지요?
민창홍 독자와 공감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작가는 독자가 없으면 존재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꼭 일치될 수는 없겠지만 삶과 문학은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 작품은 수없이 탈고한 시보다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단숨에 써 내려간 시를 좋다고 공감해 주는 독자가 많았습니다. 삶의 성찰이 주는 메시지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표라기보다는 제 삶과 시를 통해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 더 환하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라고 할까요.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목표로 삼고 싶습니다.
이서린 독자가 공감하고 희망이 되는 시를 쓰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이어서 이월춘 선생님의 시집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중에서 시 「정선에서」 가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시의 이미지도 선명하거니와 시어들도 아름답고 유려해서 읽는 동안 정선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이 시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읽었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어쩌면 이렇게 강물처럼 흘러 감정을 울릴 수 있나, 하면서요. 특히 시의 4연은 우리의 오감 중 후각, 미각, 청각, 시각까지 표현되어 있어서 그 감각들이 정선의 가을로 독자를 이끄는 것 같았구요. 5연의 ‘식물성이 동물성을 밀어내는 소리’와 ‘욕망의 뿔을 뽑아 강둑의 버드나무에 꽂아 놓고’에서는 더불어 순해지고 욕망을 내려놓게 해서 그래, 그래야 하지, 하면서 읽었답니다. 시가 무척 좋아서 제가 말이 길어져서 죄송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이 시를 쓴 당시와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이월춘 그랬군요. 참 쉽게 썼어요. 저는 시를 쓸 때 적어도 열 번은 퇴고를 하는 편인데 이 시는 서너 번 만에 탈고했어요. 또 저는 시를 길게 쓰는 편이 아닌데, 이 시는 좀 길어요. 마음이 좀 늘어졌거나 생각이 좀 깊어졌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요.
해외여행도 그렇지만, 전라, 충청권을 중심으로 국내 여행도 좀 많이 다니는 편인데, 강원도는 사실 수학여행 외에는 따로 가기 쉽지 않지요. 주로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다가 설악산이나 강릉, 춘천을 돌아보는 정돈데, 경북 내륙으로 올라가 안동을 지나 봉화에서 태백, 사북, 정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몇 번 갔답니다. 자연스럽게 사북 탄광이나 강원도의 내륙을 볼 수 있었거든요. 몇 년 전에 혼자 갔는데 어쩌다 보니 정선 카지노에도 들러 일박을 하였고(이십 만 원을 잃었어요), 나오다가 정선아리랑을 만나러 갔고 거기서 또 일박을 했는데, 그때 이 시를 썼어요. 자연스럽게 정선아리랑을 생각하게 되었고, 저 넉넉하고 말 없는 자연과 나는 왜 이곳에 존재하나, 나는 무엇인가, 어찌 살고 있나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지요.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하나가 나지막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상황, 가끔 누구나 그런 경우를 겪는 것처럼요.
이서린 어쩌면 혼자라서, 조금은 외로운 여행이라서 「정선에서」라는 시가 탄생되었는지 모르죠. 두 시인께선 적지 않은 시집을 출간하셨는데 다음 시집에서는 어떤 주제, 어떤 방향으로 쓰시고 싶으신지요?
이월춘 여덟 권의 시집을 발간해 인쇄 공해에 일조를 한 것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쓰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존재니까 아마 끝까지 쓸 것 같네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참삶을 읽어내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물론 그동안 추구해 온 낮은 곳의 사람들과,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대해서도 시적 시선을 거두지 않겠지만요.
민창홍 저는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첫 시집은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끄럽게 냈고요. 이제 시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제 시의 근간인 사랑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싶구요. 노령층이 늘어나면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삶들이 여러 유혹을 합니다. 세대 간의 갈등도 깊어지는 듯 하구요. 이 모든 것의 치유는 피상적이지만 사랑이고 그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요? 노년층의 작품을 강희근 교수님께서는 노령문학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는데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인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직은 주변 어른들에 비하면 어리니까요. 그렇지만 종갓집 씨간장처럼 깊고 그윽한 맛을 내기도 하고 젊은이들처럼 상큼하고 톡톡 튀는 시를 써보고도 싶은 욕심도 많습니다. 저는 대학 때까지 산문을 써 온 영향인지 시가 대체로 긴 편인데 시는 언어의 제시라고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서린 마지막으로 이번 시집에 대하여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끝으로 각자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월춘 제 시에서 철학적 사유나 신화적 상상 같은 깊이를 찾지 마시고, 더욱이 영웅적 서사나 투사적 이미지를 요구하지도 마시고, 그저 평범한 우리 시대의 한 사내가 걸어온 투박한 서정의 길 걷기를 따라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길고 실험적인 시적 경향이 요즘 두드러지고 있지요. 시인 자신이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사변적이면서 저도 모르게 길어지는 게 아닐까요. 시의 형식적 절제가 갖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시를 해석하는 시대는 지났고 시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향유하는 AI시대가 왔습니다. 앞으로 저는 시 읽기와 일상을 접목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기운찬 흐름이 모이고 그 기운을 감당할 서정이 어우러져야 시혼을 이룬다고 봅니다.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을 놓치지 않는 시가 귀한 시라고 신경림 시인이 말했지요. 좋은 시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모든 사건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다음 고요한 성찰을 거쳐야 하겠지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만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는 지혜를 얻는다고 합니다. 올빼미는 달이 떠야 날아오릅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와 더불어 소통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존재를 깨우는 시 읽기를 위하여!
그대와 나의 존재 이유, 서정을 위하여!
시 전문 계간지 《사이펀》과 이서린 시인, 여기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민창홍 어느 시인이 IMF 때의 고통을 형상화한 시집을 출간하여 감동적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가적인 큰일을 겪고 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역사적 자료를 남기듯 이 간격 사이에서 드러나는 사회상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도새를 생각하는 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반면교사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신 경남의 문인들과 부산 울산 포항 대구에서 오신 문인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문학 토크를 열어주신 사이펀 문학지의 발전을 기원하며 대표님과 편집장님 그리고 관계되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서린 시로 인한 만남이 오래가기를 소망하면서, 오늘 끝까지 함께 해 주신 독자 및 여러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어주신 이월춘, 민창홍 선생님, 그리고 계간 《사이펀》에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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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린
경남 마산 출생으로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경남문학》 편집장, ‘하로동선’ 동인, 날라리 인문학 ‘시시콜콜’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김달진창원문학상, 형평지역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저녁의 내부』,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