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격리
집주인과 집에 있는 물건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엄마가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집의 짐도 뒤죽박죽 엉망인체로 기다려야 한다. 버릴 것이 대부분이지만 엄마가 퇴원하기 전까지는 눈에 띄는 지저분한 것들만 조금씩 치웠다. 다락에는 생각보다 물건들이 많았다. 특히 술병이 많았다. 포장도 뜯지 않은 술병도 꽤 있다. 경주법주와 정종도 몇 병 있는데 맑은 모습을 잃고 탁하게 변했다. 담금 주도 있다. 재료가 무엇인지 모를 엑기스인지 효소인지도 여러 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로 엄마가 다락 출입을 거의 안 한 듯했다.
부채며, 나무젓가락, 빨대와 돗자리도 있다. 십년도 더 지난 밀가루와 설탕도 있다. 이불호청을 비롯해 천 조각을 싸놓은 보따리도 있고, 새 이불도 있다. 다리미와 주전자, 소쿠리, 채반도 있고 찜통이며 솥도 있다. 아버지가 계실 때만 해도 명절마다 부엌으로 내려와 있던 것들이다. 내가 몇 십 년 전에 사준 전기약탕기도 있고, 원적외선 치료기도 있다. 다락방에 있는 물건들만 해도 며칠은 버려야 할 것 같았다. 하나하나의 그릇마다 함께 한 삶의 추억이 빛바랜 앨범처럼 담겨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쓸모를 잃은 그릇은 이미 그릇이 아니다.
엄마의 엉덩이 상처는 일주일이 지나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일단 상처가 나아야 퇴원이 가능하지만 퇴원한다고 해도 집에 모시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추천했다. 그래서 건강보험 공단에 방문요양 등급에서 입소 등급으로 요양등급 변경신청을 했다. 입원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어떻게 상처가 그대로일 수 있는지 답답했다. 간병인이 추천하는 분말약을 약국에서 사다주고 난 뒤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걷지도 못하고 치매 증상도 더 심해지는 듯해 퇴원해도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갈 때마다 엄마 집을 조금씩 치우긴 해도 끝이 없다. 대구에서 점촌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보니 몸도 지친다. 그래서 집 정리는 나중에 업체에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엄마를 요양원이든 병원이든 대구로 이송을 하고 난 다음에 집을 비우기로 했다. 이송하기 전에 엄마가 집에 가보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건강보험 공단에서 입소 등급으로 변경이 되는 날짜에 맞춰 입소할 요양원은 우리 집 근처로 정했다.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엄마의 상처가 잘 낫지 않아 일단은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하고 구급차도 예약을 해 두었다. 마침내 공단에서 등급 변경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를 대구로 이송하기 하루 전날도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이송 전 대구 병원에서 요청한 코로나 검사 결과 코로나 확진이라며 당장 격리해야 하니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했다. 병원 입원 중에 확진이 된 것인데 병원에서 조치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간병인은 보호자가 따로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병인 파견업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당장 병원으로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다시 독촉 전화가 왔다. 하는 수 없이 퇴근한 교대 근무자를 불러놓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로 엄마와 같이 1인 병실에 갇혔다. 일주일 격리 기간 동안 병원 내 1인실에서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했다.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내가 간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빈 몸으로 간 탓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밖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전달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확진자가 아님에도 병실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게 했다. 완벽한 감금이었다.
식사는 일회용 도시락에 담겨져 비닐에 포장해 배식되었다. 엄마는 식사도 잘하고 대소변도 잘 봤다. 나는 입맛을 잃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따로 먹을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점점 기운이 빠졌다. 엄마는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코를 고는데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잠이 들곤 했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오줌 나온다고 엄마가 소리치면 또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 엉덩이 상처가 왜 안 나았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기저귀를 갈고 돌아서면 또 오줌을 누는 탓에 격리 첫날에 서른 개가 든 기저귀 한 봉지를 다 썼다. 그렇게 기저귀를 갈아줬더니 엉덩이 상처는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고 퇴원 무렵에는 짓무른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간병인 있는 병실에서와 달리 엄마는 뭐든 잘 먹었다. 엄마는 도시락이 죽이라서 다 먹어도 배가 안 부르다고 했다. 내 밥과 반찬을 덜어서 엄마에게 줬는데 그것까지 깨끗하게 다 비웠다. 간식으로 두유와 귤도 먹고 요양보호사가 사다 준 과자도 잘 먹었다. 다행히 엄마의 몸 상태는 점점 좋아지는 듯했다. 문제는 내가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 기진맥진 지쳐가고 있었다. 엄마도 내가 안 됐던지 “대구 데려 가다가 강물에 나를 고만 던져 버리뿌라.”했다. 또, “요양원에서도 밥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다 하나?”하고 몇 번을 다시 물었다.
처음에는 요양원 말도 못 꺼내게 했는데 입원하고 며칠이 지나자 요양원에 보내던지 갖다 버리든지 내 맘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걱정이 되는지 가게 될 요양원이 괜찮은 곳인지 수도 없이 물었다. 그러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수도 없이 다시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격리가 끝나기 하루 전 의사가 거의 다 나았으니 바로 퇴원해 요양원에 입소해도 되겠다고 했다. 입원한 지 23일째 되는 날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 격리를 했으니 꼭 입원 한 달 만에 퇴원을 하는 셈이었다.
첫댓글 참으로 큰일 하시는 울 여울 아우님, 위로와 존경을 한 아름 드립니다. 그래도 내 몸도 돌보세요. 저도 요즘은 제 몸과 마음 어루만지고 삽니다. ^^
아무도 대신 할 사람이 없어서 하는 거예요.
저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지만 몸은 늘 고생이지요.
몸과 마음 어루만지는 거 응답 받아 건강하셔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