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에 시작된 강제단속추방 이후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가 16명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언론을 통해 세상이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 홀로 하늘길을 떠난 이들은 또 얼마이겠는가.
아래 글은 그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들의 기사 스크랩이다.
2003년 11월부터 이어진 자살행렬(14인)은 현재에도 계속된다.
1. ▶◀ 다라카(Tharaka, 31세), 스리랑카 노동자
2003년 11월 11일, 스리랑카 다라카씨가 경기도 지하철 단대역 선로에 몸을던져 자살
강제추방 닷새 앞두고 스리랑카의 다라카, 지하철 자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출국기한인 16일을 며칠 앞두고 강제추방의 불안에 떨던 스리랑카인 다라카(32)씨가 지하철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 같은 처지에 몰려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다라카씨는 11일 오후 7시 28분경 지하철 8호선 단대 오거리역 구내에서 선로로 뛰어내려 진입하는 전동차를 향해 마주보고 걸어가 전동차에 부딛쳐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시신은 현재 성남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강제추방 닷새 앞두고 자살 다라카씨는 1996년 1월에 입국해 현재까지 4년째 중소기업인 하림산업(대표 김재식, 경기도 광주시)에서 일해왔다. 그는 며칠전 고용주인 김재식 사장과 함께 외국인노동자 취업확인차 성남 노동부 고용안정센타에 들러 함께 간 동료 2명은 신고를 마쳤으나, 그는 불법체류 4년이상이라는 이유로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후 고인은 오는 16일로 예정된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강제추방에 대한 고통을 못이겨 이날 자살한 것으로 주위에서 보고 있다. 김재식 사장은 "다라카는 한국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숙련공이지만 4년이 넘어 합법화대상에서 제외되었기에 상심이 컸다"며 "다라카 때문에 신고대상자인 동료 2명까지도 신고를 미루고 내가 차라리 한 두달 숨어 있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일이 터졌다"며 괴로운 심정을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의 집의 김해성 목사는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극심한 불안과 고통에 시달려야 되는 강제추방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외국인노동자, 기업주, 한국경제가 함께 살기 위해 정부는 강제단속과 추방을 즉각 중단하고 불법체류자의 전원사면과 체류합법화를 즉각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라카가 왜 죽어야 했냐" 고 다라카씨는 1972년생 스리랑카 칠라우시 사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간 크리켓 선수생활을 하다 지난 1996년 25세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그는 그동안 가스공장, 텐트공장에서 일을 했으며 한달 월급은 1백여만원으로 하루 12시간 일을 해왔다. 주위 측근들은 다라카씨는 성실히 일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여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편이었으며, 집에 매달 70만~80만원씩 송금해왔다고 말했다. 고국에는 군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대학생인 여동생, 또 아직 직업이 없는 남동생 등이 있어, 그가 보내준 돈으로 동생들이 학업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라카씨가 다녔던 마지막 회사는 한국인 3명, 외국인 4명이 일하는 작은 업체로 외국인은 모두 스리랑카 사람이었으며 이들은 회사가 마련해준 숙소에서 함께 생활해왔다. 다라카씨의 사고 소식을 접한 김사장은 "우리 공장을 일으키고 살린 것은 스리랑카 사람들"이라면서 "나는 다른 한국사람들보다 스리랑카 사람들을 더 좋아했다"고 정부정책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기에 이 사람들에게 시키는 것이고 더군다나 다라카는 일을 아주 잘했다"며 "미치겠다. 다라카는 나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다라카가 왜 죽어야 했냐"고 반문했다
최서영/기자
"출국해야 하는데 모아둔 돈이 없다며 고민했어요. 참 좋은 친구였는데..." "체류기간이 4년이 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기술도 숙련되고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어 기업주들이 이구동성으로 고용연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강제단속을 중지하고 이들을 전원 합법화해야 합니다."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신흥2동 지하철8호선 단대오거리역 구내 선로에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리랑카인 치란 다라카(31)씨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중앙병원 영안실에는 12일 이른 아침부터 함께 일했던 H산업 회사동료와 스리랑카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평소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에 발벗고 나서온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를 성토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다라카의 희생을 마지막으로'라고 적힌 검은색 플래카드 아래 그의 빈소에는 이국땅에서의 외로운 죽음을 대변하듯 수십개의 전화카드와 고국에서 온 편지 2통, 급여명세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회사와 동료들에 따르면 1996년 1월 입국한 다라카씨는 국내 체류기간이 4년이 넘어 강제출국 위기에 몰렸으며 최근 고용확인 신고 때 직장동료 3명이 신고하고 자기만 신고하지 못하자 출국여부를 놓고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직장동료 산밧(31)씨는 "고국의 가족들에게 그동안 번 돈을 대부분 송금해 자신을 위해 모아둔 돈이 거의 없어 고민해왔다"며 "사고 당일에도 1시간동안 일하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를 찾는다며 오전 10시께 회사를 빠져나간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칠라우에서 고교를 졸업한 다라카씨는 5년간 크리켓 선수생활을 하다 25살때 입국했으며 고국에 군인인 아버지와 몸이 아픈 어머니, 초등학교 교사인 누나와 동생 2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라카씨는 그동안 한국인 3명과 외국인 4명이 고용돼 있는 경기도 광주의 H산업에서 천막재봉 일을 하면서 월 100여만원(상여금 제외)의 급여를 받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생활해왔다.
H산업 대표 김모(44)씨는 "다라카는 매달 집에 70만~80만원을 보내는 착한 젊은이로 일을 아주 잘하고 나를 형으로 부르며 잘 따랐다"며 "16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 소식을 듣고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라카는 체류기간이 4년이 넘어 합법화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혹시나 소외감을 느낄까봐 다른 동료 3명의 고용확인 접수도 미루고 있었다"며 "지난 7일에는 보너스까지 160만원을 주면서 '한 두달 숨어있으라'는 말까지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난달 28일에는 함께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가서 여권을 갱신했다"며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라카씨가 그 때받은 보너스는 그의 마지막 월급이 됐다.
"(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를 강제출국시키면) 우리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은 어떻게 합니까. 다라카 같은 희생자가 또 나오지 말란 법 있습니까. 다라카가 왜 죽어야 합니까. 누가 그렇게까지 몰고 갔습니까."
가족이 세상을 떠난듯 슬픔에 잠긴 김씨는 캄캄한 하늘에 한줄기 빛이라도 기대하듯 정부의 대책을 호소했다. (사진있음)
ktkim@yna.co.kr
2. ▶◀ 네팔비꾸(34세), 방글라데시 노동자 11월 12일, 방글라데시 비꾸씨가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목을 매 자살
12일 오전 7시45분께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 D엔지니어링 공장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 비꾸(34)씨가 호이스트(소형화물을 들어 올리는 장치)에 밧줄을 걸어 목매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야슈 브로아(30)씨가 발견했다.
브로아씨는 "어제 밤에 비꾸씨와 함께 기숙사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꾸씨가 보이지 않았다"며 "혼자 공장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비꾸씨가 목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지난 1996년 11월 입국한 비꾸씨는 체류기간이 4년이 넘어 현재 불법체류중인 상태로 오는 15일 강제출국당할 것을 걱정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장 사장 강모(61)씨는 "4년전부터 우리 공장에서 일해오던 비꾸씨에게 어제 아침 '이젠 더 이상 데리고 있을수 없게 됐다. 이달치 월급 120만원을 줄테니 나가라'고 했는데 눈물만 흘렸다"며 "한달전부터 강제출국 문제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어쩔줄 몰라했다"고 말했다.
비꾸씨는 또 이달 초 한국에 있는 자국인 친구들에게 1천만원을 빌려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생 바톤 비꾸(27)씨를 국내에 데려와 김포시 하성면의 한 공장에 취직시켰으나 최근 돈을 갚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비꾸씨가 강제출국을 앞두고 자신의 처지와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3. ▶◀ 카리토넨코 안드레이(37세), 러시아 노동자 11월 20일 오후 5시 30분경, 러시아인 안드레이씨가 속초항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던 동춘호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실종
(속초=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20일 오후 5시 25분께 강원도 속초항 동방 24마 일 해상에서 속초항을 출발, 러시아 자루비노항으로 운항하던 동춘호에서 러시아인 승객 카리토넨코 안드레이(KHARITONENKO ANDREY.37)씨가 바다로 추락, 실종됐다.
사고가 나자 동춘호는 운항을 중단하고 사고 해상에서 추락승객에 대한 수색작 업을 폈으나 찾지 못한 채 날이 어두워지자 수색을 포기하고 오후 6시12분께 자루비 노항으로 운행을 재개했다.
한편 동춘호로부터 추락사고 신고를 접수한 속초해경은 실종해역에 250t급 경비 정 2척을 파견 수색작업을 펴고 있으나 날이 어두운데다 파도까지 높아 어려움을 겪 고 있다.
이날 오후 3시40분께 속초항을 출항한 동춘호에는 내국인 139명과 외국인 172명 등 311명의 승객과 승무원 40명이 탑승하고 있으며 추락한 카리토넨코 안드레이씨가 어떤 목적으로 입국했다 이날 출국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momo@yna.co.kr
4. ▶◀ 러슬리탄(34세), 인도네시아 노동자 11월 22일 오전 10시 30분경, 인도네시아 노동자 러슬리탄씨가 인천시 소재 목재공장에서 목재 절단기에 허리부분이 잘려 숨짐.
외국인 노동자 작업현장서 숨져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22일 오전 10시30분께 인천시 서구 가좌1동 D목 재공장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 러슬리탄(34)씨가 목재 절단기에 허리부분이 잘려 숨 져 있는 것을 동료 안디수산토(26)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안디수산토씨는 경찰에서 "러슬리탄과 함께 목재 절단작업을 하던 중 절단할 목 재를 가지고 오기 위해 10여분간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니 러슬리탄이 목재 절단기 위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러슬리탄씨는 2001년 9월 입국한 뒤 지난 4월 이 공장에 입사, 강제 출국 대상 자(국내 체류 4년 이상)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자살인지 사고사인지를 가리기 위해 안디수산토씨 외에도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내국인 노동자 2명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inyon@yna.co.kr 5. ▶◀ 부르혼(Burhon, 50세)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11월 25일 오전 1시 30분경, 우즈베키스탄 부르혼씨가 인천시 소재 목재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
이름 : Burhon (부르혼) 국적 : 우즈베키스탄 나이 : 53년생 (50세) 입국일 : 2003년 7월 23일 비자 만료일 : 7월 30일 사망일 : 2003년 11월 25일 오전 1시 30분경
2003년 11월 25일 새벽 2시경 우즈베키스탄인 부르혼씨가 인천시 서구 송림동에 소재한 동부목재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르혼씨는 지난 2003년 7월 23일 약 5천달러 ( 한화 600만원)의 브로커비를 내고 한국에 입국하였으나, 이번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어 ( 2003년 3월 31일 이후 입국자와 4년 이상 한국 체류자 사면 대상에서 제외) 비자를 받지 못한 채 좌절하고 지냈습니다.
그동안 일하던 공장에서는 단속이 시작되자 마자 바로 부르혼씨를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한국에 온지 몇 개월되지 않아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술도 없는 그가 새로운 공장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속 경찰의 삼엄한 단속을 피해 이곳 저곳 일자리를 찾아 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꿈을 담고 왔던 큰 짐가방을 이리저리 옮기며 아는 사람의 집을 전전하며 신세를 졌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친구들의 사장님들이 불법체류 친구를 방에 들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아 무작정 길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도 부르혼씨는 조카가 일하는 목재 공장에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했습니다. 일주일 전에도 일자리를 부탁하여 거절당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에 다시 찾아간 조카 친구에게서 들은 대답은
"우리 사장님은 불법사람 쓰지 않는다. 사장님이 불법사람 공장 기숙사에도 못들어오게 한다.
면서 공장 밖으로 내몰려 차가운 밤공기를 속에서 조카 친구의 얼굴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찬 이슬 피할 방 한칸 없고 끼니를 때울 돈조차 힘겨운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귀향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올 때 든 막대한 빚을 갚을 생각하자 차마 돌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더이상 물러설곳도 나아갈 곳도 없었던 그는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을 그리며 꿈의 땅 한국 어느 낯선 공장 화장실에서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가슴에 품은 채 스스로 목을 매어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조카 공장의 사장님은 차마 눈도 감지 못한채 두 눈 부릅뜨고 죽어간 부르혼씨를 향해
그 새끼가 왜 우리 공장에 와서 되져서 사람 힘들게 만드느냐?
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대고 꽃한송이 없는 그의 영안실엔 죽음을 애도하는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참 서글픈 사람입니다. 이런 슬픈 죽음이 한국 정부의 강제출국으로 빚어진 네섯번째 희생입니다.
6. ▶◀ 故 K씨(31세)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12월 6일 새벽 1시께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모 빌라에서 불법체류중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K(31)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같은 집에 살던 이모(31․노동)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
K씨와 같은 집에 사는 이모(31)씨는 예전에 건설현장에서 같이 막노동을 한 적이 있었다면서 이틀전 집으로 찾아와 일할 곳도, 갈 곳도 없다고 해 잠시 함께 지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K씨는 불법체류외국인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밝혀졌다. 지난달 15일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도피생활중 숨진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는 지난달 11일 성남 지하철에 몸을 던진 다라카(32․스리랑카)씨 이후 한 달만에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등 각 인권․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14일 오후 3시 안산역 광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강제추방 반대집회'를 열고 강경일변도인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7. ▶◀ 故 김원섭 중국조선족노동자 12월 8일, 故 김원섭(중국 출신)씨는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농성에 참여했다가 12월 1일 체불임금을 받겠다고 농성장을 떠난 후 8일 새벽 5시 20분경 서울 대학로 로터리부근에서 동사체로 발견..
故 김원섭(중국 출신)씨는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농성에 참여했다가 12월 1일 체불임금을 받겠다고 농성장을 떠난 후 8일 새벽 5시 20분경 서울 대학로 로터리부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동사(冬死)이지만, 정부의 강제추방 조치에 따른 도피 생활에서의 불안감, 밀린 임금을 못 받은 상황에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로 인한 비관과 상실감 등이 겹쳐 형성된 자포자기의 심리상태가 원래 사인이라고 판단됩니다. 고 김원섭씨의 핸드폰에는 죽기 1시간 전까지 112와 119에 14차례 전화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국의 구급대책이 미치지 않아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휴대전화에는 오전 1시15분부터 1분43초 동안 119에 전화를 걸었고, 1시18분부터 4시25분까지 각각 6초~4분여 동안 13차례 112에 전화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김씨가 숨진 장소는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이었다.
8. ▶◀ 자카리아(30세) 방글라데시 노동자 12월 9일 오후 5시 40분 경,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성생가구공단의 한 컨테이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故 자카리아 씨는 98년 8월에 입국하여 마석 성생가구공단의 냉장고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자카리아 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며 신체적인 고통을 자주 호소하였고, 지난 8월 협심증 증세로 심장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후에 과도한 노동을 피하고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또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10일 4년 이상 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장 측의 해고로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쫒겨나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고 자카리아 씨는 12월 9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일자리를 찾으며, 단속추방에 대한 걱정과 고통을 주위 동료들에게 호소 하였고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집중 단속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컨테이너 안에서 홀로 숨어 지내야 했으며, 본국에 있는 5명의 동생과 부모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 자카리아 씨는 2002년부터 민주노총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집회 및 여러 활동에 결합해 왔습니다,
9. ▶◀ 故 강태걸씨(45세) 중국조선족노동자 12월 21일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사망.
21일 오후 6시52분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5가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승강장에서 중국교포 장모(45)씨가 역 구내로 진입하던 방화행 5160호 전동차를 보고 선로 쪽으로 뛰어들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장씨의 옷에서는 지난 4일 발급된 것으로 친척 방문을 위해 입국한 것으로 기재된 외국인등록증이 발견됐다.
경찰은 "장씨가 불법체류자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장 씨가 중국에서 큰 돈을 빌려 입국했으나 정부의 최근 외국인 불법체류 단속 여파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중국동포 강태걸(JIANG TAI JIE) 자살" 5호선 영등포시장역 전동차에 뛰어내려 사망
1. 2003년 12월 21일(일) 19:00경 영등포구 영등포동 5가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방화방면 승강장에서 중국동포 강태걸(1958년 5월 13일생, 중국 요녕성 심양시 동릉구 혼화참향 전진촌)씨가 선로에 뛰어내려 달려오던 5160호 전동차에 충격당해 뇌 전두부 함몰 골절로 현장에서 사망을 하였습니다. 현재 한강성심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으며 유족으로는 중국에 거주하는 부인 박희선(46세)와 딸 강문성(19세)와 문경(13세)가 있습니다. 2. 강태걸씨는 한국인 사촌의 초청으로 2003년 9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을 한 이후 1주일동안 일하였으나 허리를 다쳐 병원에 갔지만 50만원을 내고 M.R.I 촬영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으나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채 그동안 3개월째 쉬고 있다가 사고 당일인 오늘 아침 라면을 하나 끓여 먹은 뒤 7:30경에 사글세 자취방에서 세차장에 일하러 간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동거하던 매형의 증언임)
3. 강태걸씨의 소지품 중 지갑에서 천원지폐 몇 장과 김해성목사(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대표)의 오래된 명함이 발견되었고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아 가족에게 연락을 하였습니다. 이후 가족의 초청과 장례 문제 등의 처리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4. 이에 대해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집 김해성목사(43세)는 "몸이 아프지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좌절하고 자살하였고 친척방문이면 취업관리제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과정이 있음에도 이를 충분하게 안내하지 아니한 결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렀기에 이는 한국 정부의 책임이 상당하다,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동포들에게 재외동포법을 평등하게 개정하고 동포로 인정하며 노동자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이런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연락처 -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전화 863-6622 김해성목사 011-239-8201, 이선희목사 011-509-5920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김해성목사(직인생략
10. ▶◀ 故 올레그씨(36세) 러시아노동자 2004년 1월 26일 오후6시 불법체류 중이던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지 3일만에 발견.
경남 창원시 안민동 77살 윤모씨 집에 세들어 살던 러시아인 36살 올레그씨가 방안에 엎드려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 윤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부검결과, 올레그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술로 인한 간기능 부전증으로 이미 3일전에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올레그씨가 지난해 8월 관광비자를 통해 입국한뒤 불법체류 해오다 1개월전 직장을 잃고 방세를 내지 못한채 계속 술만 마셔 왔다는 집주인의 진술에 따라 과음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러시아 대사관에 통보했습니다.
11. ▶◀ 故 몽골인 나라친메그(39.여) 몽골노동자 4월 16일,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에 앞서 심리적 두려움과 한국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 직장에서의 인격적, 신체적 모독 등을 비관하던 몽골출신 주부노동자가 달리던 전동차에 몸을 던졌다.
지난해 11월 E-2 비자로 입국,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프레스공장 Y산업에서 월급 85만원을 받고 근무하던 몽골인 나라친메그(39.여)가 지난달 16일 목숨을 끊었다.
숨진 나라친메그는 이날 오후 9시20분께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4호선 안산전철역 3번 승강장에 서 있다 당고개 발 오이도행 4655호 전동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순간 철로로 뛰어들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나라침메그의 시신은 현재 안산 고대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5월4일 오전 10시 안산고대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12. ▶◀ 故 후세인씨(32세) 방글라데시노동자 4월 9일 21시경 작업중 사망
故 KAYSAR HOSSAIN 약력 (1972. 5.20일생 나이:32세). 국적 : 방글라데시 유가족 : 부인, 아들 1명 (7살) ?1999년 3월29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 ?1999년 4월 2일 ~ 2002년 4월 1일 샛별침장(섬유회사) 산업연수생으로 근무 ?2002년 4월 2일 ~ 2004년 4월 9일 사망시까지 미등록노동자로 샛별침장에서 근무 ?2004년 4월 9일 21:00시경 작업중 쓰러짐, 22:10분경 대구가톨릭병원에서 사망 (심근경색증추정) 현재 대구가톨릭병원 영안실에 안치
故 후세인씨 사망원인 ? 병원 사망진단은 심근경색증 추정 (평소에 심근경색증세가 있었는지는 확인이 안되었음) ? 후세인씨가 하는 일은 완성된 침구류를 받아 창고에 정리하고, 납품처로 보내기 위해 박스에 물품 을 담아서 포장하는 일. (포장된 박스무게가 평균 60-70kg, 300-400kg되는 박스는 일주일에 하루정도) ? 샛별침장 회사에서는 3~4개월씩 임금체불이 상습적으로 되어오고 있었으며, 체불임금지급약속을 사장이 여러번 지키지 않았으며 월급을 받지 못해 운적도 있었음. 故 후세인씨가 방글라데시에 집을 사면서 친구들에게 1,200만원을 빌렸으며, 매월 1백만원씩 갚기 로 했으나, 계속되는 임금체불과, 사장의 지급약속불이행으로 인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사망하던 시점에도 5개월의 임금이 체불되어 있는 상태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상태. ? 샛별침장의 노동시간은 1일(월~토) 평균 14시간 이상이였으며, 작업장 환풍,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음 ? 2003년 11월 15일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단속이 시작되던 시점부터 3명이 하던 작업을 혼자 서 해 오고 있었음. 노동강도가 3배이상 증가하였으며, 단속반의 단속이 두려워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3월10,11일 성서공단내 단속과 관련하여 상당히 불안해 하였음 ? 후세인씨가 하는일은 4명정도가 필요한데, 회사에서는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으며, 후세인씨가 다른 동료들에게 항상 일을 부탁하여야 하는 상황이였으며 이에 대한 노동강도와 스트레스가 높았음 ? 사망일 오후 8시30분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작업장에 올라온 후세인씨에게 회사 사장이 물건이 이 게 뭐냐, 정리좀 하라 등을 화를 내었으며, 이에 후세인씨가 기분이 안좋다, 월급도 잘 안주면서 잔소리하지마라라고 항의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서로간의 언쟁이 있었다. 이후 물건정리작업을 마치고 15분경 뒤 쓰러짐. ? 여러 가지 정황으로 판단할 때 지병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업무상재해로 산업재해 사망임.
-샛별침장 임금체불 내용 ?샛별침장은 침구류(이불,베개 등)를 제작하는 공장으로 성서공단내에 위치하고 있음. ?계열회사로 비오엠까사(주)는 이불속에 들어가는 솜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성서공단내에 위치. kiss&hug는 서울에 공장이 있으며, 침구류를 제작. ?샛별침장 대표자는 다른사람 명의, 실제 사장은 장석주, 비오엠까사(주)와 kiss&hug 대표 장석주. ?2002년도까지 경기가 좋아서 회사 이익을 많이 남겼으나, 2003년에 들어 불황. 2003년도에 비오엠까사(주) 공장에 12억을 들여 자동화 기계도입한 것이 결정적인 자금압박의 요 인으로 작용. ?경기가 좋았던 년도에도 임금지급날짜가 불규적이었음. 1년전부터 임금이 몇달씩 체불되어져 왔음.
계열회사 샛별침장 비오엠까사 kiss&bug 직원 한국노동자 약60명 한국노동자 약20명 이주노동자 3명 이주노동자 8명 이주노동자 3명 약 30-40명
임금체불현황
이주노동자 4~5개월씩 한국노동자 (남) 5개월씩 한국노동자 (여) 3개월씩
故후세인씨침장 임금체불내역 (이주노동자 진술내용) ?2003년 5월 임금 약 1,300,000원 ?2003년 10월 임금 약 1,300,000원 ?2004년 1월 임금 약 1,200,000원 ?2004년 2월 임금 약 1,200,000원 ?2004년 3월 임금 약 1,300,000원 (?2004년 4월 1일 ~ 9일 ) 합계 약 6,300,000원
샛별침장 이주노동자들 및 유가족들의 상황
?故후세인씨 사망일부터 현재까지 작업을 거부하고 가톨릭병원 영안실에서 지냄. ?故후세인씨 보상(산재보상+임금체불청산+퇴직금+유족위로금+장례비) 및 샛별침장의 임금체불에 대한 사측의 명확한 약속이 없는한 현장복귀를 하지 않겠다고 결의한 상황 ?故후세인씨의 유가족(부인)이 한국에 들어오기 힘든상황으로 산재보상과 관련한 건은 노무사에게 위임, 사망과 관련한 보상의 문제, 장례절차등의 문제에 대한건은 성서공단노동조합, 이주노동자 대구공대위에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 ?샛별침장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모든 처리절차를 성서공단노동조합으로 위임한 상태. 또한, 성서공단노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 임금체불의 문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청산만이 아니라 한국노동자들의 임금체불청산 또한 같이 풀어가기로 결의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대표3명을 뽑아서 협상대표단으로 참여. 故후세인씨의 문제가 매듭지어져서 본국(방글라데시)으로 시신이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람. ?유가족 부인과 아들을 위해 한국에 체류중인 방글라데시인으로부터 모금운동을 하자고 논의됨
-故후세인씨는 지난 1999년 3월 29일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 이후, 5년동안 샛별침장에서 노동해온 방글라데시 노동자이며 부인(22살)과 아들(7살)을 고국에 둔 가장이다.
-(사업장 개요) 샛별침장은 이불 등 침구류를 만드는 회사로 한 건물에 비오엠까가(주)(솜생산 공장) 라는 계열회사와 함께 있으며 이 두회사에 故후세인씨를 포함하여 11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모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다. 현재 1명은 결혼을 위해 입국해있는 상태이며 9명의 방글라데시 동료들이 故후세인씨의 죽음이후에 작업을 거부하고 영안실을 지켰다. 이불공장의 특성상 작업장은 먼지와 솜털이 굉장히 날림에도 불구하고 집진기나 환풍시설이 거의 되지 않고 또 최근에 강제추방 단속으로 인하여 기존에 일하는 인력은 줄었으나 인력충원이 되지 않고 2~3명의 일을 혼자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故후세인씨의 경우도 원래 4명이 필요한 힘든작업이나 지난 11월 강제단속이 이루어지면서 혼자서 일을 해오고 있었으며 이로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경우이다. 또한 이와 함께, 사측의 상습적인 임금체불로 인하여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도 평균 4~5개월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과도한 노동강도, 열악한 노동조건, 잦은 체불임금으로 인하여 이직률이 높은 회사이다.
-(사고당시 경위)잦은 임금체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매일 14시간이 넘는 노동시간과 때로는 새벽2시까지 포장작업, 충원되지 않는 인력으로 인한 과로, 그리고 강제단속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외출조차 하지못하는 상황의 연속에서 사망당일에도 故후세인씨는 저녁을 먹고 작업장으로 올라와 일을 하는 도중 사장의 잦은 작업자 감시에 불만을 토로하고 항의하였다. 항의후 밀려있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일을 하던 도중에 가슴통증을 호소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저녁 10시경 사망하였다.
13. ▶◀ 故 정유홍 중국조선족노동자
4월27일 (화) 오전 10시 20분경 중국인 이주노동자 故정유홍씨가 대구지하철 아양역에서 투신. 사망하였습니다. 고 정유홍씨의 몸에서 유서가 발견되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러나 회사 사장님이 돈을 주지 않습니다. 노동부에 가서도 해결 못했어요. 외국인도 사람입니다. 왜 일을 했는데 사장은 돈을 안 주는 건가요. 나는 돈이 없어 집에 못갑니다.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했습니다."
고인은 명보컴퓨터자수 회사에서 산업연수생기간동안 근무하였으며, 사업주의 임금체불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상황이였으며, 산업연수생기간 3년이 끝나고 연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이였으나, 사업주가 연장을 미끼로 임금체불을 해왔으며, 사업주의 사업장 변경승인이 없는 가운데서 회사를 그만둘 경우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가 되어야 함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업주의 폭언과 상습체불등을 견딜 수도 없고 하는 상태에서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남편과 주위 친구들이 전해주었습니다. 명보컴퓨터자수회사는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해온 회사로서 노동부에 진정건도 몇차례 있었으나, 체불임금을 고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검찰로 기소되어 벌금형으로 끝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서에 적힌 내용중에 노동부에서도 해결못했다는 것은 대구고용안정센터에 고인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고용안정센타 담당직원들이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며 자세한 안내(상담소 소개 또는 노동부 진정절차 등)를 해주지 않아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동부경찰서에서 고 정유홍씨 사망사건을 조사중이며, 명보컴퓨터자수회사 사업주는 임금을 체불한적이 없다고 잡아때고 있습니다.
고인은 지금현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분향실은 제8호실)에 안치중이며, 유족으로는 한국내에 남편, 남편형님, 여동생, 여동생남편이 있습니다.
-대구 M컴퓨터자수 회사에 근무하다 임금을 받지 못한 중국 조선족 정모씨(34)가 대구지하철 구내에서 달리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정씨는 이날 오전 10시20분 대구지하철 아양역 플렛폼에 서 있다 1083호 안심행 전동차가 도착하는 순간 선로에 몸을 던져 왼쪽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중 사망했다.
정씨는 유서에서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러나 회사 사장님이 돈을 주지 않아요. 노동부에 가서도 해결을 못했어요. 외국인도 사람입니다. 왜 일을 했는데 사장은 돈을 안주는건가요? 나는 돈이 없어 집에 못 갑니다.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합니다"고 적어놓았다.
이처럼 목숨을 끊은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 11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다나카(32)를 비롯 최근까지 모두 11명으로 밝혀졌다.
14. ▶◀ 故 김모씨 중국조선족 노동자 30대 중국동포 지하철 투신 중상
[YTN 2004-06-09 09:01]
6월 9일 밤 10시반 쯤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중국동포 32살 김 모씨가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크게 다쳤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한국에 들어온 뒤 돈벌이가 쉽지않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가족의 말로 미뤄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YTN 박소정[soju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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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故 이니나
지난 7월31일, 카자흐스탄 고려인 3세 이니나씨는 불법체류자가 될 것에 부담을 느껴 체류기한 만료일 자살했다. 지난 1월에는 자녀들이 보고 싶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가, 그 사이 사업주가 고용해지를 신고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녀. 이후 일용직을 전전하다 6월초 퇴사한 남편의 임금과 퇴직금 600여만원을 받아 귀국하고자 했으나, 사업주는 연락이 두절됐고 관할 노동청은 그녀의 도움 요청을 외면했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는 커녕 대학에 입학하는 딸의 등록금도 주지 못하게 됐다는 절망감과, 체류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집에서 목을 맸다. ‘재입국허가서’까지 받고 고향에 다녀왔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고당했고, 남편의 밀린 임금을 받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하소연 했지만 무시당했다. 이니나씨의 사례는 국내 체류중인 이주노동자 3명중 1명에 해당하는 이주여성들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한편, 이주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성폭력도 심각한 수준. 올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나티다씨(가명·태국)는 한국남성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다. 나티다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남성들은 태국여성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 숙소에 허락없이 출입해 잠을 자는가 하면, 작업 도중에도 여성들의 어깨나 엉덩이, 심지어는 가슴까지 만지는 등 ‘밥먹듯’ 성희롱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나티다씨는 태국대사관에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호소했고, 대사관의 도움으로 진행된 현장조사 결과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티나씨처럼 사업장을 옮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다고는 하나, 사업주의 자의에 의해 언제든 고용계약이 해지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주여성들이 섣불리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에 따른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몽골 여성 아무르씨(가명)는 6년전 몽골에서 만난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대학 졸업을 한 학기를 남기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결혼 직후부터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야 했고, 유산까지 경험했다. 이후 남편은 외국으로 떠나버렸고, 혼자 남겨진 그녀는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혼인 이주여성’에게조차 영주권(F-5)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르씨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방의 한 배추농가에서 일하고 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16. ▶◀ 故 엔구엔치 구에트
[노컷뉴스 2005-09-14 09:06]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단속반이 출동한 줄 알고 달아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14일 오후 1시 45분쯤 경남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모 공장에서 베트남인 직원인 엔구엔치 쿠에트(31)씨가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밖으로 뛰쳐 나간 뒤 쓰러져 숨졌다.
목격자들은 "옆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태운 승합차가 도착하자 마자, 쿠에트 씨가 갑자기 일손을 내던지고 작업장 밖으로 뛰어 나가더니 길가에 쓰러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쿠에트 씨가 옆 공장 승합차를 불법체류자를 붙잡으러 온 단속차량인 것으로 착각해, 밖으로 달아나다 급성 신부전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쿠에트 씨는 지난 2002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입국해 이달 초 서울의 한 공장에서 무단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됐으며, 이후 경남 함안의 한 철구조물 공장에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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