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14장
사랑의 은사, 믿음 소망 사랑, 은사 사모, 방언과 예언
사랑이 없는 영적인 은사들은 무가치하며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최고의 은사입니다.
1~13절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방언....천사', 방언의 은사가 제일 먼저 언급된 이유는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이 은사를 사랑 없이 사용하고 강조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1절).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랬던 것처럼(단 3:19~23) 사랑은 행동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려면 동기를 평가해야 합니다(3절).
"믿으며"라는 말과 "바라며"라는 말은 "참으며"라는 말과 "견디느니라"라는 말 사이에 끼어 있어서 아마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은 타인에 대해 가장 좋게 믿고 타인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7절).
바울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칠 것으로 예상한 때에 대해서는 해석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은사 중지론"은 예언, 치유, 방언, 방언 해석, 능력 행함 같은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교회 초기에 사도들과 그들이 쓴 글들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주어졌지만 신약전체가 기록되고 주후 100년경 그런 은사들은 중지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은 이런 은사들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주장합니다. 재림은 다가올 시대에 말하고 있는 "온전한" 방식이 이 시대의 '부분적'인 은사들의 대체하는 때일 것입니다. 두 번째 입장에 대한 근거는 12절에서 발견되며 이 구조는 그때 이런 은사들이 중단될 때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임을 시사합니다(8절).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고대의 거울은 (청동 같은) 윤이 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반사된 상이 오늘날의 거울보다 훨씬 더 희미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표현을 직접 하나님을 보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합니다. 그때는 지금 이 시대의 영적인 은사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12절).
'믿음, 소망, 사랑', 그리스도인의 이 세 가지 특성 사이의 관계는 바울의 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13절).
1~40절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사모하되', 영적인 은사들이 일부 잘못 사용되는 와중에서도 바울은 은사의 사용을 중단하라고 말하지 않고 더더욱 은사를 추구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이 은사들을 주셨다는 바울의 확신에 반응합니다(1절).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바울이 방언을 일종의 기도와 찬양으로 보되 말하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간주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알아듣는 자가 없고', 이는 바울이 고린도에서의 방언을 행 2:1~13의 복음 전도의 상황과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미지의 언어일 것으로 예상했음을 뜻합니다(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이는 그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영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바울이 방언에 대해 한계선을 설정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가 고린도 교인들이 이 은사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방언은 그것을 가진 개인의 덕을 세우며 통역만 된다면 교회의 덕도 세웁니다(5절).
'나의 영'과 '나의 마음' 사이의 비교는 바울의 성령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간 영혼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인간의 '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이는 특별히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익숙해질 수 있는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기능을 뜻합니다. '마음'은 지적인 이해와 연결된 인간의 기능을 가리킵니다(14절).
'영으로', 즉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방언 가운데) 영으로만, '다른 사람',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구도자', 모임 가운데서 통역되지 않은 방언은 이 사람들의 덕을 세우는 데는 아무 역활도 하지못하고 따라서 그를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게 하는 데도 아무역할을 하지 못합니다(16~17절).
'그러므로 방언은....믿지 아니 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긍정적인 표적이 아니라 고전 14:21에서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촉진하는 부정적인 표적, 통역되지 않은 방언은 외부인과 불신자에게 심판의 표적 역할을합니다. 방언을 들으면 그리스도인들이 미쳤다고 결론짓고 그 결과 교회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은....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예언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신자들의 유익을 위하는 것이지만 예언은 방언과 달리 불신자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그 마음에 숨은 일들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는 이차적인 유익도 있습니다(22~25절).
'너희가 모일 때에', 이 구절은 초기 교회가 주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일 때 어떤 종류의 활동이 벌어졌는지를 매력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배는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방언, 통역함'이 포함되었습니다. 불일치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바울은 이 모든 활동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초기 교회 예배에 대한 묘사를 마무리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목표는 성전을 세우는 것과 유사합니다(26절).
'차례를 따라', 이는 방언이 무아지경 속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이 모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을 절제하고 차례를 따라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27절).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다른 이들'이란 단지 예언이나 분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이들이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보다 더 나은 판단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말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실수할 수 있으므로 그 예언이 실제로 주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회중이 분별하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은 바울의 고린도 교회에 예언의 구약시대 선지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절대적으로 권위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고 이해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29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 안에 있는 성령의 다양한 역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뜻에 어긋나게 억지로 예언 하게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2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바울은 아내들이 옷 입는 방식으로 남편을 욕되게 하지 않는 한 그들이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허용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말을 절대적 금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여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예언을 판단하는 행위를 금했을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남자의 머리됨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바울은 아마도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가 지도자가 되는 일반적인 패턴 뿐만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또 남자를 '위해' 창조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34~35절).
'주의 명령', 바울의 글의 절대적인 신적 권유에 대한 매우 강력한 확언입니다. 바울은 사도적인 권위를 가지고 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자신의 말에 구약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음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37절). 바울은 이 편지에서 일반적으로 그러듯이 자신의 주된 요점을 명확히 진술함으로써 복잡한 논의를 요약합니다(3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