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21~25
행복을 만드는 기술
한국의 “어제와 오늘의 행복의 차이”에 대한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 옛날에 어떻게 사셨어요?"
“과학기술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카톡도 없고, 페이스북도 없었는데요?"
아버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응, 너희 세대가 인간미도 없고, 품위도 없고, 연민도 없고, 수치심도 없고, 명예도 없고, 존경심도 없고, 사랑도 없고, 겸손도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는 안 살았지~
오늘 너희들은 우리를 '늙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참 축복받은 세대란다.
우리 삶이 그 증거야.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방과 후에는 우리 스스로 숙제했어. 해질 때까지 들판에서 뛰놀고, 페이스 북이나 카톡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랑 놀았거든 목이 마르면 생수가 아닌 샘물을 마셨고, 친구들이 사용한 잔을 함께 사용해도 아픈 적이 없었다. 빵, 과자를 많이 먹어 비만하지도 않았고, 맨발로 뛰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장난감은 직접 만들어 놀았고,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셨지만 많은 사랑을 주셨다.
휴대전화, DVD, Xbox, 플레이스테이션 비디오게임, 개인 컴퓨터, 인터넷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가 있었지. 친구들이 초대하지 않아도, 친구 집을 찾아가 밥을 얻어 먹었다. 우리는 부모의 말씀도 듣고, 자녀들의 말도 들어야 했던 마지막 세대야. 그래서 독특한 세대고, 이해심도 많단다. " 한마디로 우리는 한정판이야 "
지금은 경제적으로 발달돼서 편리해 지긴 했지만 한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세계 97위에 불과 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33위, 일본은 59위였고, 이라크, 예멘,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등은 국민 행복감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사 기준이 어떻든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1인당 소득 4만 달러를 운운하는 기준에 비춰 보면 한국인의 행복감은 낮아도 너무 낮은 셈입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면서 극한 상황, 어려운 처지, 그리고 꼼짝달싹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행복과 만족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방법을 소개 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을 소개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본문은 불행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소개합니다. 불행정도가 아니라, 억울함 그 자체이며, 살아도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 돼 하는 샘플입니다.
16절에 소개하는데요.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려 고생하는 어린 여자 아이를 보는 순간 연민의 정이 들게 됩니다. 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란 씀이 나옵니다.
이는 갈급한 심리를 표현한 「페노」(디아포네오)라는 기본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 아이만은 고쳐 줘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 해 주어야겠다.' 생각하여 그 여자 아이를 향해 귀신이 나가라고 명하니 귀신이 즉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 비록 바울에게 엄청난 핍박과 손해가 왔지만 이러한 마음을 갖는 순간 이미 바울의 마음은 행복이 점령했다고 봅니다.
사람이 어떤 결과로 인해서 행복하다 성공했다 운운하는데요. 심리학에서는 그러한 결과 전에 그 결과를 가져오게 한 동기 즉 마음 상태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순수한 마음, 고쳐주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 바로 이러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결과를 운운하기 전에 그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순수한 동기와 마음을 먼저 갖는 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마음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옥이라는 곳으로 억울하게 끌려들어가서 매를 맞고 몸에는 차꼬가 채워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게 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거 있잖아요?
분명 기도하면서 나름 순수하게 섬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해가 되거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되지요. 그때 매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게 되면 마음만은 편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거나 민감한 분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또 다른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이 있으시나보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불평과 원망보다는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던 주인이 손해가 난 것에 불만을 품고 선동하여 ‘약속국가 사람이 감히 남의 나라에 와서 분탕질이나 하느냐!’ 해서 재판도 없이 붙잡아다 매질을 하고 옥에다 집어넣은 것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좋은 일하고 뺨맞는다.”는 속담처럼 그 꼴이 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영적으로 깨닫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이게 뭔가 잘못되었지만 자기가 이제껏 지내오는 동안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이러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또 다른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한 편은 서럽기도 할 것이고, 한 편으로는 '어떤 뜻이 있으실까!' 하는 기대감이 교차하며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게 하십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아멘
“무엇입니까?”
마음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바울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이 바울을 증인으로 삼아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죄수들과 교도관(간수)이 이러한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음습하고, 무서운 옥에 와서 저렇게 태평하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지, 아니 뭐라뭐라하면서 중얼거리는데 저게 도대체 뭐지!’
의아하게 여기면서 지켜보기에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지는 장면이 일어날 때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 줄 믿습니다.
“이렇게 상황과 환경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어떠세요?” “하나님이 무심하신 게 아니지요?”
어려움과 고난이 일어날 때 배후에서 더욱 크신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깊으신 의도와 뜻이 있다는 것을 항상 내다보는 영안이 열리시길 축복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바울은 이미 승리하고 들어간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그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없게 된 줄 믿습니다.
성경은 “모든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빌2:14)
잠19:3절은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원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에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믿지 못하기에 오는 불평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불평과 원망은 40년의 세월을 주고 기다려도 끝내 그 불평 속에 갇혀서 힘겹게 광야를 돌다가 죽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환경에서 어떤 이는 어둡고 갇혀 있는 곳을 긴 동굴로 봅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이는 터널로 보는 이가 있습니다.
긴 동굴로 보는 이는 앞이 캄캄하기에 끝없이 그 긴 동굴을 걸어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그는 절망하고, 지치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서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고라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16장에서 “왜 우리를 빨리 가나안으로 이끌어 들이지 않느냐!”(민16:14)는 불평을 가지고 당을 짓고 모세에게 대항 한 것입니다.
긴 동굴로 보았기 때문에 절망 속에서 불평과 원망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잠시 지나갈 터널로 본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멘 그래서 그들은 모세 편을 택하고 하나님이 저들을 우리에게 붙이셨으니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민14:8~9)
그렇습니다. 터널은 잠시 후면 밝은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여행하는 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잠시 지나가는 터널로 인해서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 산과 들과 강이 나올까!를 기대하게 됩니다.
행복은 이렇게 잠시 받는 어려움과 고난이란 동굴에 묻혀 원망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나올까! 를 기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결국 바울을 보십시오. 잠시 받는 환란을 이겨내고 기도하고 찬송하니 그것을 듣는 모든 자들 특히 그중에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간수장이 자기와 기족 모두를 세례 받게 하고 믿었으니 한쪽은 선교후원비로 돕는 루디아가 한쪽은 권세를 가지고 돕는 간수장으로 하여금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바울이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면서 무슨 생각에 젖었을까요?
'결국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은 분이시구나!'
그래서 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사역하는 선교사가 된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신 하나님 그 은혜를 바울처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베푸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나도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순종하며 나가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과 원망에 눌리지 말고 긍정의 마음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아멘 아멘.
늘 감사할뿐입니다.
늘 행복한글 ....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
늘고맙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