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렴대(按廉臺)![무주 적상산 하늘길 - 안국사에서 향로봉을 오르다.](https://t1.daumcdn.net/cfile/blog/9958BB3359A1167D04)
적상산 정상 남쪽에 있는 바위 절벽…조망
아주 빼어나 안국사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렴대(按廉臺)는
적상산 최고의 조망처 중 하나이다.
적상산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해 있으며,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조망이 좋고,
낙조도 일품이다.
안렴대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이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안국사 주차장 안쪽의 해우소 쪽으로 난
부드러운 길을 따라 산책하듯
20분
정도 걸으면 안렴대에 닿는다.
적상산
사고지 유구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인
적상산 사고지 유구는 안국사와 함께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둘러보기 좋다.
사고(史庫)란
고려말~조선시대까지
역대 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까지 총
4개의
사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를 제외한 사고는 소실되었다.
이에 선조
36년부터
3년
동안 전주본을 바랑으로 정본3부,
교정본1부를
만들어 총
5부를
각각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에 사고를 설치해 보관하였다.
이중 묘향산 사고를 당시 북방에 있던
후금의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광해군때 적상산으로 위치를 옮기고,
인조 대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선원계보기략을
봉안하여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적상산사고에는 실록
824책,
선원록,
1,446책,
의궤(儀軌)
260책,
잡서
2,984책으로
총
5,515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사고는 약
300년간
적상산 사고는 고종때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국권피탈 이후 실록을 규장각으로 옮기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안국사의 법당으로 사용하다가 선원전은
안국사 내로 이전하고,
실록전을 비롯한 건물들은 모두 유실되었다.
사고에 보관되던 실록들은
6.25전쟁때
북한으로 반출되어 현재는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중이다.
1992년에
적상산 사고지 일대가 댐건설로 인해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어
1997년에
선원전을
1998년에
실록전을 복원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
복사본
34권(왕조별로
1권씩
27권,
무주에 관한 기록
7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사본
5권을
제작해 비치했다.
무주군청 소속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관람객에게
적상산사고의 역사적 가치와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을 하고 있어 학생을 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꼭 가볼만한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안국사(安國寺)
![안국사 安國寺 | 전라북도 > 무주군 > 적상면 > 북창리 Jeollabuk-do > Muju-gun > Jeoksang-myeon > Bukchang-ri 全羅北道 > 茂朱郡 > 赤裳面 > 北倉里 | 두피디아 포토커뮤니티](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rawimage5%2F2208%2F16%2F220816024392805%2F220816024392805.jpg)
적상산 사고를 지키던 승병들 머물던 사찰
적상산 남쪽 기슭인 적상면 괴목리에 자리한 안국사(安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다. <적상지(赤裳誌)>에 따르면 고려 때인 1277년(충렬왕 3) 월인(月印)이
세웠다고 하고, 또 조선 태조 때 자초(自超)가 적상산성을 쌓으며 지었다고도 전한다. 이 건물이 고려 말기나 조선조 초기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1613년(광해 5) 사찰을 중수하고 그 다음 해에 창건된 적상산 사고를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해 왔다. 당시 보경사 또는 상원사 등으로 부르던 것을 1771년(영조 47)법당을 중창하고 안국사라 했다.
1865년(고종 2) 사찰을 중수하고 남긴 <안국사중수기(安國寺重修記)>에는 ‘옛날 풍수지리학자의 건의에 따라 산성을 쌓고 승병을
모아 지키게 했는데, 안국사는 곧 승병이 거처할 영사(營舍)로 지은 사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적상산 분지에 있었으나
1990년 초에 양수댐 건설로 사찰 지역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자 1991년부터 호국사지(護國寺址) 위쪽으로 이전을 시작하여
1993년에 완전히 옮겼다. 경내에 건물로는 극락전과 천불보전․청하루․지장전․삼성각․범종각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내부에는 본래 1772년(영조 48)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도난당하였으며 현재의 탱화는 최근에 만든
것이다. 또 보물 제1267호인 안국사 괘불이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 1788년(정조 12)에 제작된 범종과 조선 후기의 부도탑
등이 있다.
![p1316732922237-1.JPG._630_thumb.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tour.jb.go.kr%2Fattachfiles%2Fctnt%2F20160112%2F20160112231350935.jpg)
적상산 전망대
주변 조망 으뜸…해발 850m 위치한 전망대까지 승용차 접근 가능 무주 읍내 남쪽에 솟은 적상산(赤裳山,
1,029m)은 산 전체가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을 단풍이 들면 마치 여인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95년 적상산 정상의 분지에 무주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산 정상 부근의 안부에는 적상호라는 인공 호수가 생겼다. 당시
적상호 북동쪽에 세운 적상산전망대는 적상산 관광의 명물로 꼽힌다. 우뚝 솟은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돌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망대에서는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은 물론이요, 북덕유에서 남덕유까지 장엄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적상산 아래의 하부댐의 모습도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전망대가 있는 해발 850m까지
승용차로 오를 수 있다. 더불어 산정호수와 안국사, 적상산 사고, 머루와인동굴까지 한꺼번에 둘러 볼 수 있는 관광 명소로서 무주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DJI_005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tour.jb.go.kr%2Fattachfiles%2Fctnt%2F20191212%2F20191212145331314.JPG)
무주 반디별천문과학관(반디랜드 천문대)
무주군 설천면에 위치한 반디랜드는
무주의 대표적인 테마시설로 반디별천문관, 곤충박물관, 반딧불연구소 등 무주의 청정 지역을 바탕으로 자연을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복합 문화공원이다.
특히 반디별천문과학관이 유명한데,
어린 시절 간직했던 아름다운 추억이나, 앞으로 펼쳐나갈 미래의 꿈을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체험 공간이다.
전시실, 3D입체영상실, 관측실이
있는 총 5층(지상4층, 지하1층) 규모의 건물로 건축면적만 1,047.11㎡(약 316평)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전체가 전시실인데,
층마다 다른 테마와 컨셉을 가지고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다들 별자리하면 서양의
황도12궁을 생각하기 쉬운데, 동양에도 별자리가 있다. 동의 청룡, 서의 백호, 남의 주작, 북의 현무가 그 별자리의
일부인데 이 동양천문학을 1층에서 안내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별자리를 비교해볼수
있는 대형별자리판도 있고 천문과학관과 천문의 정보를 볼 수있는 정보검색대도 있다.
- 계절별 별자리와 망원경의 원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져있다. 천장에는 버팀목 기둥을 중심으로 태양계 행성을 전시하여 각 행성들의 위치와 모양을 알수
있다.
라제통문(羅濟通門)
![MAIN.pn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tour.jb.go.kr%2Fattachfiles%2Fctnt%2F20160112%2F20160112064959822.png)
무주 구천동 33경의 시작인
라제통문은 덕유산 국립공원에 있는데,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설천면의 두길리 신두(新斗)마을과
소천리 이남(伊南)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석견산(石絹山)에 위치한 바위굴이다.
이 라제통문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언어와 품습이 서로 다른데 옛 신라지역인 동쪽 무풍면에서는 경상권 방언과 풍습을 따르며, 옛 백제지역인 서쪽 설천면에서는
전라권 방언을 쓴다.
김유신 장군이 지나갔다고 해서 '통일문'으로도
불려 작은 바위산인 석견산 능선으로는 본래 설천과 무풍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무주에서 김천과 거창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개설하면서 우마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굴을 뚫었다고 한다.
구천동 33경 중 제1경으로써
2019년부터 국가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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