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좋은 날
장미숙
말들이 살아났다. 말은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달려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이내 흔들렸다. 한번 시작된 말의 공격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머리를 감싸 안았다.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수많은 영상이 재현되었다가 사라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영상은 또 다른 영상을 불러왔다.
어리숙하고 부족한 부분으로 채워진 어느 한때,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등으로 울었던 순간들, 무의식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약한 감정들까지 일어났다. 상처가 상처를 공격하는 무방비상태, 이성은 점점 힘에 부쳐 뒤로 물러섰다.
서랍을 열었다. 백색의 알약을 삼키고 벽에 기댔다. 좋지 않은 기억들 틈새를 비집고 좋았던 일을 찾아 눈을 부릅떴다. 의식적으로라도 자존감을 찾아야 했다. 자존감은 행복이라는 어느 시간 속에 숨어있을 터였다. 최고의 시간은 언제였더라. 진심으로 행복했던, 삶의 환희를 느꼈던 그런 날은 언제였을까.
약의 진정 효과인가. 통증은 점차 수그러들고 흔들리던 머리도 이제는 기울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의 흔적은 남기 마련인가 보다. 눈물 몇 방울이 눈꼬리에 매달려 있다 손등으로 툭 떨어졌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잔잔하던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지나갔다. 상처받기 좋은 날은 예고 없이 그렇게 찾아왔다.
‘두위정명지부(頭為精明之府)’, 머리는 정신이 거처하는 곳이라 했다. 세상을 사는 건, 몸의 행위인데 몸의 행위는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곧, 몸의 행위를 머리가 책임져야 함이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가. 정신과 몸의 일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미치지 못할 희망 사항일 뿐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몸의 불일치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과 번민, 고뇌가 이렇듯 심각한 번뇌로 이어질 수 있음이다.
인간의 기분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종이 뒤집듯 순식간에 뒤바뀌는 감정은 때로 제어하기 힘든 질주의 본능을 지니고 있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온갖 감정의 아류들을 불러 모은다. 오해, 좌절, 비관, 미움, 증오, 원망 등이 주위에 포진한다. 이들의 힘을 얻어 감정은 내부로 침투한다. 정신의 기저에 자리 잡은 불신은 기억의 힘으로 더욱 강력해진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상처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에서 생기는 깊은 골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일도 당사자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든 예외 없다.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객관과 개별적이라 생각하는 주관 사이의 괴리는 고독과 외로움을 부추긴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에게는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음이다. 평화로운 일상에 난데없이 끼어든 불청객, 말에 베인 상처는 치료가 쉽지 않은가 보다.
그날의 일도 예기치 못하다가 맞닥뜨린 사건이었다. 그녀는 날 노려보고 있었다. 커피 담을 캐리어를 연결하고 있던 내 손등 위로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참느라 내 손은 약간 떨렸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침묵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커피를 사러 오는 손님이다. 그녀가 몇 달 전, 맨 처음 왔을 때 입고 있는 유니폼에는 ‘00 내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간호조무사였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말투가 전투적이고 예의가 없어 직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주문한 커피를 뽑는 건 대부분 나였다.
어느 날 아침, 그날은 아르바이트생과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커피를 시켰다. 얼음은 적게 우유는 많이, 기본 투 샷에 샷을 더 추가해달라는 등 요구가 많았다. 석 잔을 시켰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그러자 대뜸 커피가 왜 이리 늦게 나오느냐며 가시 돋친 말이 날아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갑질’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커피 두 잔을 캐리어에 담고 남은 한 잔은 들기 편하도록 손잡이 비닐봉지에 담아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못마땅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더니 캐리어 네 개짜리에 석 잔을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보다 한참은 나이가 위라는 걸 알았을 텐데도 아랫사람 대하듯 팔짱을 끼고 노려보았다.
나는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묵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뭔가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사람에게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고 난 뒤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흥분해서 병원을 검색했다. 병원 후기를 훑어보던 그녀가 소리쳤다. “원래 그런 사람이네요. 저 간호조무사가 유난히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있어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후에 출근한 점주가 그 말을 전해 듣더니 지나가듯 말했다.
“저한테는 그러지 않던데 그 사람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네요. 여사님을 지켜보고 사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나 봐요.” 점주는 무심코 한 말일 수도 있었다. 나 또한 무심히 넘겨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던 내 처지를 두 사람이 친절하게 알려준 덕분이었다. 가난이 죄가 되고 나이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었다. 누가 뭐라 하든 성실하게 내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평소의 의지가 흔들렸다.
그날 저녁 시작된 두통은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꼬박 이틀이 지난 뒤에야 생각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거울 속에는 지친 내가 서 있었다. 아니, 말의 공격에 대패한 허깨비 같은 내가 서 있었다. 허상에 휘둘린 정신이 만든 자화상이었다.
‘상처받기 좋은 날’을 나는 ‘나를 만나기 좋은 날’이라 정정하기로 했다.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내 본연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한없이 나약한 내면을 직시하게 되었다. 겉으로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나는 사실 가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겁쟁이였다. 인생의 작은 고개 하나 힘겹게 넘은 것 같았다.
첫댓글 늦은 댓글을 답니다. 나의 분노와 아픔을 소재로 삼아 진솔한 마음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감명깊은 글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자주 좋은글 많이 올려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