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분과: 박경선 동화 - 이 판타지 동화는, 1957년 모스크바 빈민가를 떠돌다가 우주 과학자 눈에 띄어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최초 우주 비행을 혼자 떠난 꼽슬이(라이카)를 애도하며 그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렇게라도 지구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서…
꼽슬이 · 라이카의 지구 여행
박경선
1. 우주로 간 꼽슬이
세계 최초로 우주에 여행 온 나, 꼽슬이(라이카-멍멍이)는 가끔 나를 스타로 키워준 우주 과학자 아저씨 생각을 한다.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다가 만났지만, 첫눈에 서로 마음이 끌렸고 말도 잘 통했다. 아저씨는 ‘우주에 생명이 살 수 있을까?’하는 실험을 위해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혼자 우주로 떠나려고 했지만 내가 말리고 나섰다.
“아저씨가 사냥 갈 때도 따라다녔는데, 저 먼 우주까지 아저씨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요. 더구나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면 제가 혼자 갈게요. 세계 최초로 우주에 간다면 ‘우주 스타 꼽슬이’라는 명예도 얻겠지요? 어차피 한 번 죽을 목숨이면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아저씨를 설득, 설득해서 우주에 갈 훈련을 받았다. 온도의 변화를 견디지 못해 질식할 것 같을 때는 우주의 별로 변신하는 변신술 훈련까지 받으며 1957년 11월에 나 혼자 우주로 날아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우주의 은하수 무리 속에서 별로 변신하여 잘살고 있다.
2. 꼽슬이의 비행접시
은하수에서 별 무리로 반짝이며 67년을 지내다 보니 따분해졌다. 몸에 달린 별 꼬리도 거추장스러웠다. 나는 원래 떠돌며 여행을 즐기던 강아지가 아닌가? 별 꼬리를 강아지 꼬리로 변신시켜 비행접시에 올라탔다. 많이 보고, 많이 알고, 많이 느끼고 싶었다. 마음이 설렘으로 부풀어 올랐다. 아저씨랑 살던 곳을 찾아 지구에 떨어졌는데 예전에 눈에 익었던 것들이 안 보였다. 일단, 타고 온 비행접시를 차곡차곡 접어 옆구리 털 속에 숨겼다. 그리고 강아지들한테 다가가 반가워서 짖었다.
“이 녀석, 뭐야? 빛 가루로 눈을 쑤셔 눈을 뜰 수가 없잖아. 왈왈!”
강아지들이 왈왈거리자 큰 개들이 몰려와 옆구리를 사납게 물어뜯고는 엉덩이를 보이며 멀어져갔다. 나는 얼얼한 옆구리를 감싸고 웅크려 내 몸에 코를 박았다.
“뭐야? 강아지 뭉치 같은데 내 발에 걸리네.”
하며 털이 회색인 꾀죄죄한 강아지가 다가와 내 몸을 더듬거렸다. 나는 우선 공격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눈을 치뜨지 않는 것도 고마웠다. 별 가루로 자기 눈을 쑤신다는 불평도 하지 않아 더 고마웠다. 순둥이였다. 그래서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버티며 앉아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주더니 물었다.
“잠깐만, 네가 살던 곳이 모스크바라고 했지? 모스크바라면 소련인데 여기는 인도야. 네팔과 라오스 근처에 있는 인도로 잘못 내린 거야. 킁킁!”
나는 두 앞발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털썩 코를 박았다. 정신을 차리자, 옆구리 털 속에 숨겨둔 비행접시를 꺼내어 다시 올라타려고 살펴보았다.
“아뿔싸!”
아까 사납게 물어뜯던 개들이 내 비행접시를 죽사발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난 우주 별 무리 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둥이가 어디 가서 물 담긴 컵을 물고 와 물을 입에 품어 내 얼굴에 ‘푸푸’ 뿜었다. 나는 순둥이의 더러운 입구린내 냄새에 더 이상 뻗어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그만, 그만해!”
“왜? 이제 정신이 좀 드니?”
하더니 그 구린내 나는 입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2024년이야. 57년에 우주 과학자 아저씨가 마흔 살이었으면 지금은 백일곱 살인데 지금껏 살아 있으면서 너를 그리워할 것 같냐? 킁킁!”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우주에 순둥이처럼 셈을 잘하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겠지. 한심한 나를 개구멍에 처박아 버리고 싶어 일어서는데, 순둥이가 먼저 알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 따라갈래? 내가 살던 집에 불이 나서 뿔뿔이 흩어졌어. 나는 친척 아저씨가 자기 집에 데려왔는데 돌아가려고. 가서 뭐라도 도와야지….”
‘집이 불탔다면 가도 아무도 없을 텐데?’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올라왔지만, 꾹 참고 순둥이를 따라나섰다. 특별히 갈 곳도 없어서.
3. 순둥이네 집을 찾아서
순둥이를 따라갔는데 불탄 집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까만 재들만 펄펄 날리고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 아덜즈!”
순둥이는 그저 식구들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 왔단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계단식 우물이나 구경하자며 아그라 센키 바오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너는 우주에서 왔다고 했지? 여기 계단식 우물에는 ‘별에서 온 얼간이’가 왔다가 우주로 돌아가는 비밀 열쇠를 잃어버려 찾아다니고 있어.”
그 말에 나는 뜨끔해졌다. 나도 우주로 돌아갈 비행접시가 망가져서 얼간이가 되어버렸으니.
순둥이는 내 걱정은 모르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지금, 아덜즈는 열 살이지만, 일곱 살 때 릭샤를 운전하던 아저씨가 집 앞을 지날 때 말야. 그날 따라 아덜즈가 누구의 심부름을 해주고 돈을 한 푼 벌었어. 그 돈을 들고 ‘아빠, 나도 돈 벌었어. 아빠 줄게요.’ 하며 릭샤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아저씨의 릭샤가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랑 박아서 뒤집어졌고, 그 후로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어. 아덜즈는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랑 나랑 셋이서 잘 살아.”
아덜즈 이야기를 하는데 신통하게 아덜즈가 다리를 절며 나타났다. 순둥이가 나를 우주에서 온 친구라고 소개하자 활짝 웃는 얼굴로 땅바닥에 털썩 앉더니 내 앞발 두 개를 양손에 잡고 흔들며 반갑다고 했다.
“아덜즈는 착해! 마음에 누구를 원망하는 우물을 파지 않거든.”
순둥이가 은근슬쩍 아덜즈 칭찬을 하자 아덜즈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마음에 우물을 파려면, 고마운 할아버지를 품는 우물을 파야지.”
아덜즈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나는 우주로 돌아갈 비행접시가 망가졌다고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덜즈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인도에는 3,333개의 신이 있는데 자기는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서 신통방통한 사원의 신을 알고 있고, 그 신들을 찾아가면 축복해 줄 거라며 앞장을 섰다.
4. 신통방통 사원 순례
아덜즈는 우리를 무르간 사원으로 데려갔다.
“뭐가 보이니?”
순둥이가 물었다.
“너도 보고 있잖아. 저기, 여자아이가 깨물어 먹다 남긴 초콜릿을 높이 쳐들고 부처님께 걷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잖아.”
“고마워. 난 너 목소리가 좋은걸. 재미있고!”
순둥이 녀석은 나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그렇게 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신나게 중계방송을 했다.
“지금 부처님이 허리를 아래로 깊숙하게 굽혀 꼬마가 내민 초콜릿을 얼른 혓바닥에 올려 맛보네. 소똥보다 맛있다며, 너의 초콜릿 마술이 네 걸음을 살렸다며 일어나서 걸어가라네. 꼬마가 정말 일어나서 걸어가네.”
그러자 순둥이가 들뜬 목소리로 킁킁거렸다.
“신통방통하다. 신이 초콜릿 마술을 좋아하다니.”
구르드와라 사원에도 들어갔다.
“뭐가 보이니?”
“사람들이 나무를 빙빙 돌며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나무에 걸며 소원을 비네. 나무신이 받았던 시계 하나를 아덜즈에게 슬쩍 건네주며 선심을 쓰네. 네 친구 꼽슬이가 우주로 돌아갈 시간을 잘 보고 보내주라네.”
“좋은 신이네. 너같이 처지가 딱한 사람을 도와주니 말이야.”
순둥이 말에 아덜즈가, 장난감 비행기를 바치면 비자 발급을 도와주는 신도 있다며 이상한 사원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신은 아덜즈에게 나, 꼽슬이가 우주로 돌아갈 때 타고 가라며 오히려 장난감 비행기를 한 대 주었다.
“빈손으로 와서 내 친구 꼽슬이가 우주로 무사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만 했는데, 비행기까지 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덜즈 말에 신이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때껏 받은 비행기를 고아원에 모두 보냈는데, 이제 우주로 한 대 보내게 되어서 나도 기쁘구나!”
우리가 신에게 나를 도울 기회를 드렸네 하는 생각이 들자, 내 입에서 시건방진 허풍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신에게 도울 기회를 드렸으니, 우리가 대장 신 같은데?”
기분 좋아 소리치는 내 목소리가 너무 컸을까? 주위에 몰려 있던 신도들이 우리를 따라오며 외쳤다.
“대장 신이시여, 우리에게도 축복을 주소서.”
우리는 허풍쟁이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놀라 개구멍으로 도망쳐 나왔다. 무엇이든 신처럼 믿으며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믿음이 많아서일까? 마음이 가난해서 일까?
카르니마다 사원으로 갔다. 2만 마리의 검은 쥐가 널브러져 살고 있었다. 이제 순둥이는 나를 허풍쟁이로 생각하는지 ‘무엇이 보이니?’하고 묻지 않았다.
“우리들의 부처이신 흰쥐 대왕님, 이 맛난 음식을 드시고 저희에게 복을 주소서.”
사람들이 손에 음식을 들고 흰 쥐 앞에 줄을 서 바치자, 흰쥐가 바나나를 받아 한 입 갉아 먹어보더니 ‘향이 좋구먼. 누가 먹을래’ 하며 바나나를 높이 쳐들었다. 그때 아덜즈가 달려가 낚아채었다. 그 바나나로 셋이 요기하고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져 곯아떨어졌다. 흰쥐 신은 배고픈 생명들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시멘트 바닥에 잠 재워 주는 친절한 신이었다.
5. <할아버지의 생신 선물, 코브라>
다음 날 아침, 아덜즈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시티 교 사원이었다. 사람들이 파업해서 밥 굶으면 무료 밥을 주는 곳이라 아덜즈가 식판을 들고 줄을 서더니 아침을 얻어 왔다. 우리 셋이 아덜즈의 식판에 붙어 앉아서 카레 죽을 핥아먹었다. 아덜즈는 공짜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라도 거들어야 한다며 먼저 일어서서 설거지하러 갔다. 죽을 다 핥아먹고 아덜즈를 도우려고 찾아갔다. 아덜즈는 씻을 식판이 설거지 통으로 막 날아오는 자리에 붙어 앉아서 열심히 식판을 씻고 있었다. ‘저러다가 날아오는 식판에 맞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걱정은 되었지만, 우리가 다가가 도울 수 없는 곳이었다. 한참 뒤에 아덜즈가 나오며,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하셨던 녹야원에 가보자고 했다.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라서 숲을 뒤지면 야생 코브라를 만날 수 있는데, 코브라랑 친구가 되면 데려와서 할아버지께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코브라는 사람 무릎에서 떨리는 피리 소리나 바구니를 흔드는 진동에 몸을 움직이거든. 꼭 춤추는 것 같아. 그러면 사람들이 바구니에 돈을 던져주지. 그걸로 할아버지는 우선 돈벌이할 수 있어.”
우리는 숲속으로 들어가 정말 코브라를 만나 친구 하자며 바구니에 담아 할아버지가 임시로 지내는 마을회관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반겼지만, 코브라에게 피리를 불어주며 춤을 연습시키며 즐거워하셨다.
6. <코끼리 똥 가슴 성모님>
할아버지와 코브라가 즐겁게 지내는 동안, 우리는 사랑의 신이라는 ‘코끼리 똥 가슴 성모님’을 찾아갔다. 성모님은 먼저, 아덜즈에게 우유를 한 컵 마시라고 주며 잘 살아왔다고 칭찬해 주셨다. 순둥이와 나에게는 우유로 목욕을 시켜주며 말했다.
“순둥아, 꾀죄죄하게 뭉쳤던 털이 하얗게 살아나구나.”
순둥이가 하얀 털 강아지가 되자 눈이 부셨다. 그다음에 성모님은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자기 눈물을 받아 내 몸을 씻기며 말씀하셨다.
“꼽슬아, 세계 최초로 혼자 우주선을 타고 떠날 때 아주 무서웠지? 네가 무사하길 기도해 왔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내 아들 예수가 부활해서 돌아온 것 같구나!”
뜻밖의 위로와 나를 위해 흘려주는 눈물에 그동안 참아왔던 외로움이 씻겨 내려갔다.
“성모님, 마음씨가 고우시네요. 비록 코끼리 똥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요….”
“미낙시 사원에 가면 몸에서 물고기 비린내가 나는 신도 있어. 그런데 뭐 어때? 몸에서 코끼리 똥 냄새가 나거나 비린내가 나도 불쌍한 생명을 위해 기도해 줄 수는 있지. 네 몸에서 별 비늘 냄새가 나도 지혜와 사랑이 없지는 않잖아. 자, 이제 행성으로 돌아갈 비행접시를 펼쳐보아라.”
옆구리에 숨겨두었던 비행접시를 꺼내보니 죽사발이 되어있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덜즈가 얼른 아까 사원에서 얻어온 장난감 비행기를 그 위에 올려놓자, 성모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온전치 못한 걸음과 온전치 못한 눈으로 꼽슬이를 도와주는 너희 우정이 이 비행접시를 복구하는 힘이 되었구나!”
하더니 우리들 눈앞에서 사라지셨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못 보는 눈으로 나를 도와준 순둥이와 절름거리는 다리로 나를 데리고 다닌 아덜즈의 우정이 함께 했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고마웠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여러 신들이 협력해서 하나같이 나를 살뜰히 보살펴 준 것도 깨달았다. 비행접시에 올라타고 떠나며 갠지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순둥이와 아덜즈가 기도를 담아 띄워 보내는 꽃 등잔 촛불‧ 디아(Dia)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꼽슬아, 무사히 잘 가. 그리고 또 놀러 와!”
(34쪽)
이 판타지 동화는, 1957년 모스크바 빈민가를 떠돌다가 우주 과학자 눈에 띄어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최초 우주 비행을 혼자 떠난 꼽슬이(라이카)를 애도하며 그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렇게라도 지구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서…
박경선 약력
◉ 등단: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새한신문에 수필, 아동문예에 동시 당선
◉ 저서: 동화책 『베나의 집에 초대합니다』 등 25권 출간
◉ 수상: 청구문학상, 영남아동문학상.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우수작품상, 대구문학상.
◉ 현재, 교육 타임즈 『교육과 사색』 박경선의 인성수업 동화. 3년 째 매월 1회 게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