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내느니 파는 왕개미… “연말 10조 던진다”
12월 주식 매도, 8년째 계속되는데 3억이상 주식 보유땐 양도세 부과
김지섭 기자
입력 2020.10.12 04:01
지난 5년간 연말(12월) 개인 순매도 추이
정부가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대주주 요건을 주식 보유액 ’10억원'(연말 기준)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대주주 지정을 피하기 위해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올 연말에 주식을 빠르게 팔아 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식 보유액이 많은 ‘왕개미’들은 과거에도 납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말이 되면 대거 ‘순매도(주식을 사는 금액보다 파는 금액이 많은 것)’에 나섰는데, 올해는 대주주 요건이 대폭 강화되는 만큼 시장에 ‘주식 매도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미들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으로 12월에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동반 순매도했다. 이 기간 평균 순매도액은 2조4523억원에 달한다. 코스피가 2조338억원으로 코스닥 4185억원보다 훨씬 많다. 이 가운데 코스피만 놓고 보면 연속 순매도 기간은 12년으로 늘어난다.
개미들이 연말만 되면 주식을 팔아 치우기 바빴던 것은 세금 폭탄을 맞는 ‘대주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연말 기준으로 어느 종목 주식을 10억원 이상이나 지분율 1%(코스닥은 2%)를 보유하고 있을 때, 해당 주주(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해당 주식 보유액까지 포함)는 세법상 ‘대주주’로 분류돼 이듬해 거래부터 양도 차익에 대해 최대 33%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왕개미’들이 해가 바뀌기 전에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대주주 요건이 강화됐던 지난 2017년(25억→15억원)과 지난해(15억→10억원) 개미들은 예년보다 훨씬 많은 주식(각각 5조1314억원, 4조8230억원)을 순매도했다.
정부는 대주주 기준을 올해 또다시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출 계획이어서 연말 순매도 규모는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특정 종목의 주식을 ‘3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으로 보유한 주주는 8만861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 금액은 총 41조5833억원에 달한다. 전체 개인투자자 보유 주식 총액(417조8893억원)의 10%가량 된다. 올 들어 ‘동학 개미’들의 주식 열풍이 불었던 점을 감안하면, 바뀐 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 주주는 지난해 말보다 크게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으로 시가총액 1~100대 상장사 중 반기보고서에서 소액주주 현황을 공시한 23개 기업의 소액주주(지분율 1% 미만) 숫자는 지난해 말보다 평균 89.1% 늘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12월에는 개인들의 순매도 규모가 10조원 정도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로 인해 증시가 폭락하는 일까지는 없겠지만, 일시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주가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주식 양도세 부과 체계와 대주주 선정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년 뒤인 2023년부터 5000만원이 넘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기로 결정돼 있는 상황에서 굳이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는 명분이 부족한 데다, 주요국과 비교해 대주주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주식시장 과세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호주 등 주요 선진국 중 대주주 기준을 ‘3억원, 10억원’처럼 특정 종목 주식 보유액으로 설정한 나라는 한 곳도
서울거래 비상장 앱에서 비상장주식의 주가가 표시되는 모습 /서울거래 비상장 제공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올 들어 금리 상승에 따른 유동성 축소로 비상장 주식의 주가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공개(IPO)를 포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15일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인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전자 상거래 플랫폼 마켓컬리의 운영사인 컬리의 주가는 14일 기준 지난해 말 대비 42% 하락한 6만5000원 수준이다. 비상장 주식의 주가는 ‘서울거래 비상장’에서 비상장 주식이 실제 거래되는 가격과 매물의 가격을 기반으로 산정한 가격이다. 서울거래소 비상장 관계자는 “올 들어 핀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약세”라고 했다. 금융 앱 토스의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의 주가는 지난해 말 대비 46.9% 하락했다.
이처럼 올 들어 주요 비상장 주식들까지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비상장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거래 비상장은 “올해 1분기 거래 인원은 지난해 4분기 대비 25.2% 증가했다”고 했다.
◇인터넷뱅크 등 핀테크도 약세
인터넷 전문 은행 케이뱅크의 주가도 올 들어 크게 하락했다. 지난 14일 케이뱅크 주가는 1만5600원으로 지난해 말(2만1000원) 대비 25.7% 떨어졌다. 컬리와 마찬가지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아시스(오아시스마켓 운영)의 주가도 올 들어 13.6% 하락했다. 또한 숙박 예약 앱인 야놀자의 주가도 올 들어 18.2% 하락했다.
금리 인상으로 가상 화폐 가격도 약세를 보이면서 가상 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기업들의 주가도 올 들어 크게 하락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주가는 올 들어 43.5% 하락했고,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코리아의 주가는 66.7% 떨어졌다. 두나무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64.1% 감소했고, 빗썸코리아의 1분기 순이익도 작년 동기 대비 79.2% 줄어들었다. 작년에 비해 거래가 줄어들면서 수수료 수익 등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장 철회도 이어져
올 들어 기업들의 상장 철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현대엔지니어링은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했다”며 상장을 철회했다. 지난 5월에는 ‘대어급 공모주’로 분류됐던 SK쉴더스와 원스토어가 같은 이유로 상장을 포기했다.
올 들어 상장을 포기했다가 다시 추진한 기업들은 희망 공모가를 많이 낮췄다. 지난 2월에 상장을 철회했던 대명에너지는 희망 공모가액이 2만5000~2만9000원이었는데, 이를 1만5000~1만8000원으로 낮췄다. 실제 공모가는 1만5000원으로 확정됐다. 15일 종가는 1만7050원으로 공모가보다 높은 수준이다.
신약 연구·개발 기업 보로노이도 지난 3월 상장을 철회했다가 공모가를 낮춰서 상장 절차를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희망 공모가액이 5만~6만5000원이었는데, 다시 상장을 추진하면서 4만~4만6000원으로 낮췄다. 실제 공모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4만원으로 결정됐다.
지난 4월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쏘카 역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쏘카는 “정해진 기일(상장예비심사 통과 후 6개월) 내에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준비 기간 단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상장을 추진 중인 컬리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예비심사를 받고 있다. 컬리는 “상장예비심사 결과가 나오면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적의 시점에 상장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