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일곱 번째 - 3)
(여수시∼광양시, 2023년 9월 23일-24일)
瓦也 정유순
저녁식사 후 여수의 밤거리를 거닐어 본다. 여수시 중앙동 종포해양공원 이순신광장 북쪽에는 시민들이 건립 기금을 모아 세운 <평화의 소녀상>이 있고, 바로 뒤에 소녀상 평화비와 더불어 지역 시인들의 시와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립 기금은 여수 지역 170여 개 단체와 1,546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았으며, 김서경·김운성 조각가 부부가 제작하여 2017년 3월 1일 제막식을 하였다. 여수 평화의소녀상은 여수평화나비에서 관리하고 있다.
<여수 평회의 소녀상>
열다섯 살 단발머리 맨발소녀는 “오랜 침묵의 뼈로, 푸른 어둠의 가슴앓이로 살아서도 죽고, 죽어서도 살아 여기 찢긴 바람의 지문으로 앉다. 피 젖은 귀향, 열다섯 단발머리 소년의 눈빛을 보라. 기억과 망각의 이 땅 평화와 인권을 위해 여기 한 마리 나비되어 앉다.” 아직도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는 일제에 의해 강재 동원된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이라는 위안부문제 해결의 의미를 여기서 되새겨 본다.
<여수 평화의소녀상 설명문>
종화동 밤거리는 불야성이다. 대한민국의 젊음이 넘쳐나는 것 같다. 요즘은 교통수단이 좋아 낯에는 내륙에서 볼 일을 보고 저녁에는 이곳에 와서 밤을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 이름이 ‘밤바다와 디지털이 만나 반딧불로 경험하는 스마트관광’의 줄임말인‘밤디불거리’다. 밤이 깊어 갈수록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넘쳐나는 인파에 저절로 흥이 일어나고 콧노래를 부르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밤디불거리>
이와 어울리게 돌산도로 연결하는 <거북선대교>도 밤을 밝힌다. 거북선대교는 여수시 동문동과 돌산읍 우두리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이전에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장(현 엑스포해양공원)에서 돌산도로 가려면 돌산대교 쪽으로 돌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박람회장과 돌산도를 연결하는 이 교량을 건설하였고, 제2돌산대교라고 불린다. 엑스포대로와 국도 제17호선이 이 교량을 지나며, 돌산삼거리에서 돌산대교 쪽 길(국도 제77호선)과 거북선대교 쪽 길(국도 제17호선)이 만난다.
<거북선대교>
여수시 동문동 여수구항 방파제에는 높이 10m의 붉은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데, 그 이름이 이채롭게도 하멜등대다. 1653년 그의 동인도회사 소속인 스페르웨르호가 제주도의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었고 하멜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당시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에서 왕명에 의하여 13년 동안 억류되었었다. 하멜은 1663년부터 1666년까지 4년간 이곳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억류되어 있다가, 1666년 9월에 일본으로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멜등대>
여수에서는 하멜기념사업과 연계하여 2004년 하멜의 근로 현장으로 알려진 동문동 일대를 <하멜로>로 지정하였고, 2005년에 이 하멜로의 끝에 위치한 여수구항에 세워진 등대를 <여수구항방파제 하멜등대>라 이름 붙였다. 하멜등대는 빨간색의 표체와 불빛을 이용해 광양항과 여수항을 입·출항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해가지면 자동으로 불을 밝힌다. 푸른 하늘과 바다, 빨간색 등대가 더없이 잘 어울려 바다 풍경 같다.
<풍차>
그러나 이곳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1948년 여수사건> 외에도 <여수국민보도연맹사건>이 숨겨져 있다. 국민보도연맹사건(國民保導聯盟事件)은 여순사건 이후 오제도(吳制道) 검사의 제안에 따라 내무부·국방부·법무부의 주도하에 1949년 4월 20일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의해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법률적 근거도 없이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여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적인 조직이 되었다.
<여수 국민보도연맹 사건 설명문>
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은 조선사상범 보호관찰소의 외곽단체로 1938년 7월 24일 조직된 친일 전향자단체다. 애초부터 친일파였던 사람이 아닌 독립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을 했던 사람 중에서 친일로 변질된 사람을 구성원으로 했다. 이들은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주의자’를 포섭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했으며, 1941년 재단법인 대화숙(大和塾)으로 통합되면서 해체되었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결성식-1938년7월25일 매일신보>
대한민국 정부 절대지지, 북한정권 절대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로당·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도 거의 2만 명이 되었다. 주로 사상적 낙인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었다.
<국민보도연맹증(앞뒷면) - 네이버 위키백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한국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조직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1950년 여수지역에 거주하였던 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예비 검속되어 여수경찰서 유치장[무덕전, 보도연맹 사무실]과 각 지서 등에 구금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 학살현장 - 네이버 위키백과>
이중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 등 예비 검속 자들은 여수경찰서 경찰과 여수지구특무대(CIC), 당시 여수에 주둔하였거나 후퇴 중이었던 제15연대 헌병대원들에 의해 1950년 7월 16일과 7월 23일경 여수시와 남해군 사이의 속칭 애기섬이라는 무인도에서 약120여명이 총살 후 바다에 버려졌고, 남면 안도 보도연맹원들은 1950년 7월 23일 남면 안도(安島)와 연도(鳶島) 사이의 신강수도(속칭 신갱이또) 인근에서 사살되었다.
<여수 국민보도연맹 관련 수장 그림>
삼산면 거주 보도연맹원들은 19 50년 7월 25일 거문리 신사 터 인근과 1950년 8월 10일 거문도 인근 무인도에서 각각 총살되었고, 화양면에 거주하였던 보도연맹원들은 1950년 7월 23일 가막만에서 총살 후 바다에 버려졌다. 여수지역에서의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사살된 전체 희생자의 수는 최소 110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 확인된 희생자는 48명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형을 지시한 최초의 가해주체 등 구체적인 지휘명령계통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대구 근교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학살장면 - 네이버나무위키)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검거 및 학살은 이승만 정부 최상층부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행과 사살명령이 누구로부터 내려왔으며 언제, 어떤 단위에서 결정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군경의 수사·정보기관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이 일사분란하게 이 사건에 동원된 것은 최고위층의 결정과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1950년 마산지역으로 추정 학살장면 - 네이버캡쳐>
보도연맹 사건으로 사망자 수를 대체적으로 수만 명에서 20만 명 내외의 보도연맹원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희생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 이후 1990년대까지 역대 정부는 보도연맹원으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과 친척들을 요시찰 대상으로 분류해 감시와 취업 등에 각종 불이익을 주면서 연좌제를 적용했다. 유족들은 한국사회에서 사실상 일부 권리가 배제된 채 감시와 차별을 받아왔으며 경제적 곤궁과 피해의식, 사회적 소외, 정치적 박탈감을 안고 살아왔다.
<20여년 이상 창고에 방치된 희생자 - 네이버캡쳐>
더불어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정부의 홍보 부족과 억울함을 탄원할 방법이나 절차를 모르고 있어 지금까지 한을 풀어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이 사건과 같은 국가권력에 의해 대량으로 민간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한을 조금 이나마 풀어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양 여수 앞바다에는 억울하게 수장되어 구천을 맴도는 영혼들을 위로라도 하듯 폭죽(爆竹)들이 밤하늘을 수(繡)놓는다.
<여수항 앞바다의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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