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운해 송귀영의 시세계
시중유화(詩中有畵)와 서정시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시심(詩心)의 발흥(勃興)
현대시의 양상은 대체로 자유시와 정형시로 구분해서 창작하게 되고 독자들도 투영(投影)된 이미지와 시적 구도에서 자연스럽게 발흥된 시심에 따라서 자유시나 정형시라는 구체적인 구분 없이 감상하게 된다.
그러나 시심의 발흥이나 그 창작 동기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는데 우선 발상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들은 어떤 사물과 마주하였을 때 그것을 보고 느낀 것들을 어떻게 정서의 그림으로 나타내느냐, 혹은 그 그림이 어떤 조화로운 언어로 표현되어 독자들과의 감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인생적(또는 철학적) 사유(思惟)의 출발이 필요하게 된다.
일찍이 영국의 대 시인 셰익스피어는 작품 「한 여름밤의 꿈」에서 ‘시인은 이글이글 타는 눈알을 굴리며 / 하늘 위, 땅 밑을 굽어보고 쳐다보아 /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면 / 시인의 붓은 그에 따라 / 공허한 것에 육체를 주고 / 장소와 이름을 정해 준다’는 언지와 같이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는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운해(澐海) 송귀영(宋貴永) 시인이 상재하는 제4시조집『지울 수 없는 흔적』을 일별하면서 이처럼 자유시와 정형시에 관한 시심의 동일성을 먼저 강조하는거은 우리의 시조가 많은 변천을 가져와서 그 기법이나 이미지의 창출(創出)에서 유사성을 많이 발견된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형시는 정형률이 시법(詩法)으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현대시조는 현대시와 비교적 많이 닮아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작품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시적 구도의 설정 등에서 동일성이 확인되고 있으나 다만, 언어의 율격이 3, 4, 3, 4.조 등으로 배분되어 있음에 유념하게 된다.
수천의
흰나비떼
삽시에 날아들어
수액을
죄다 빨고
허망하게 낙상하던
떨어져
말 못한 사연
필봉으로 쓰리라
--「목련이 지는 날」전문
송귀영 시인은 자연 서정에서 시상(詩想-poetical sentiment)을 탐구하는 시풍(詩風)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가 이미 ‘작자의 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인은 서정 속에서나마 자유롭고 여유로움을 갖고 싶은 욕망이 저무는 노을에 숨을 헐떡거리며 안간힘을 훔치게 합니다. 지난 삶에 방점을 찍고 남은 여생 이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에 자문하면서 이제나마 전신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려는 시심(potical feeling)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서정 속의 자유’를 갈구(渴求)하면서 ‘남은 여생’까지도 친자연적인 서정을 투영하면서 시창작에 임하는 운명적인 요소의 잠재를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 속에서 생성하는 만유(萬有)의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지향적인 의미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봄 소리 지척에서 혼불을 밝히듯이
벚꽃은 선율처럼 경쾌한 떨림 안고
홍안에 번지는 미소 투기 섞어 피는 아양.
우수수 쏟아지며 꽃잎에 묻힌 여독
뿜어낸 향기에도 미련 아직 남았을까
별처럼 부서진 빛발 밑둥치에 감긴 회안.
앙금이 가지타고 하늘로 버친 용심
치욕을 털지 못해 봉우리에 옹이 박아
속으로 폭발한 분노 언제쯤 털어낼까?
--「벚꽃에게 묻는다」전문
그는 다시 자연과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우선 우리 정형시에 대한 형식에 충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형시는 대체로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의 순서로 3행이 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통례였으나 송귀영 시인은 3연으로 서장(序章-발생), 중장(中章-진행), 결장(結章-종결)의 순서로 자유시에서 적시(摘示)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 구도와 유사한 시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벚꽃’은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 ‘봄 소리’나 ‘선율’, ‘떨림’ 그리고 ‘미소’ 등의 청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시적 상황(situation)으로 구도를 설정하고 중장에서 후각(‘뿜어낸 향기’ 등)과 시각(‘우수수 쏟아진’, ‘별처럼 부서진’ 등) 이미지의 복합으로 그의 관조(觀照)에 의한 시적 전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종장에서는 작품의 결론답게 관념이미지로 사유의 범주(範疇)가 다양하게 메시지로 제시되면서 ‘앙금’이나 ‘용심’, ‘치욕’과 ‘옹이’ 등이 그의 주제의식으로 정립하고 ‘속으로 폭발한 분노 언제쯤 털어낼까?’라는 의문형으로 수사법(修辭法-rhetoric)을 강조하면서 결론을 강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다.
우리의 정형시는 외적 혹은 내적으로 일정한 형식에 의해서 창작되는 시이다. 이러한 음수율(音數律)과 일정한 운자(韻字)의 제한으로 작품이 구성된다. 이러한 설명은 언어와 운율적 생산을 위하여 특정의 규범으로 서정시와 감정을 위한 창작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에서 내재율(內在律)을 중시한다면 정형시에서는 외형율(外形律)의 존재를 작법(作法)의 제일 순위에 두고 있다. 이것은 내재율 자체에서 규칙적인 음악성을 소유하고 있어서 언어의 고저(高低) 장단(長短)의 구성요건을 전형적인 시조의 운율이라고 할 수 있다.
2. 시간성과 체험의 여과(濾過)
송귀영 시인은 다시 그가 절실하게 체험한 내면의 정서가 시간(혹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그의 심저(心底)에서 여과한 진솔한 의식이 표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그의 시간성은 춘하추동 사계절에서 탐색하거나 관조한 자연에서 추출한 것이지만, 특이하게 계절적인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는 특성을 읽을 수도 있다.
철쭉은 아득히 먼 아쉬움 뿌려놓고
탐색의 눈빛으로 안개 속을 헤집으며
눈웃음 여린 아련함 멀리 두고 헤매네.
필생의 한 가닥을 몸살로 푸는 새벽
땅 깊이 꼭꼭 숨은 무딘 뿌리 굼틀대면
춘흥이 지표를 긁어 봄의 소리 토하네.
아끼다 쏟아 붇는 마지막 뚝심으로
잎보다 앞선 출시 성질 급한 개화던가
꽃 진후 눈길 돌리니 화냥질이 서렵네.
--「봄의 소리 듣다」전문
새싹은 버거워서
동면을 뒤채이고
남서풍 간질임에
실뿌리도 물이 올라
봄기운
성화에 겨워
꽃 문을 열고 있다.
그늘을 햇살 담아
양지쪽에 밀쳐놓고
등골을 훑어내며
꽃샘추위 견디더니
고드름
녹기도 전에
꽃망울 터트렸다.
몽우리 뭉텅뭉텅
봄볕은 살이 붙고
객혈을 토한 비탈
음달 참꽃 담금질로
바위틈
불길 솟구쳐
언 가슴 녹고 있다.
--「음달에도 꽃은 핀다」전문
이 두 편의 작품은 ‘봄’에 관한 서정성이 전신(全身)을 관류(灌流)하고 있다. 특히 ‘봄의 소리’에서는 ‘철쭉’의 ‘춘흥’ 그리고 ‘개화’ 등의 이미지가 사색과 감성, 관조의 시법이 골고루 형상화하고 있어서 더욱 춘흥(春興)의 정감으로 현현되고 있다.
또한 ‘음달’에서 맞이하는 봄의 정경은 ‘동면’을 지나 ‘봄기운’, ‘꽃문’, ‘꽃샘추위’, ‘꽃망울’, ‘봄볕’, ‘참꽃’ 등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적시되면서 계절의 겨울과 봄의 가교(架橋)에서 형상화해서 ‘음달에도 꽃은 핀다’는 적절한 정감이 서정적으로 분화하고 있다.
이러한 서정시(lyric)의 원류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감정과 정서와 사상이 함축해서 표현한 비교적 짧은 작품을 말한다. 이를 주정시(主情詩-emotion)나 주관시(主觀詩)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인간의 정감이 넘치는 위대한 유형(類型)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작품「서리꽃」에서도 ‘음달의 돌 자갈밭 / 햇빛조차 들지 않아 // 감은 눈 번쩍 뜨고 / 찬 기운에 맞서보니 // 중천에 / 햇살을 받아 // 별처럼 빛난 설움. // 유리창 얼어붙은 / 흰 가루 은빛 잔상 // 아침을 갉아먹던 / 오늘하루 운명처럼 // 한나절 / 천하일색이 / 한을 품어 녹는 꽃.’과 같이 송귀영 시인이 절감(切感)한 체험의 일단이 주정적인 ‘한을 품어 녹는 꽃’으로 전환하고 있다.
3. 자연 서정과 시중유화(詩中有畵)
우리의 시가 자연 서정을 주체로 해서 작품을 창작하는 개체(個體)의 입장에는 일찍이 동양에서 유행하던 시중유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단(畵壇)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서 그림 깊숙한 내면에는 시가 포괄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문학에서 말하는 이미지 즉 마음의 그림에 해당하는 그림 속의 시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의 이미지-특히 시각적 이미지(visual image)에서 말하는 그림- 이 그림은 시각을 통해서 각인된 심상(心象)이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되기까지 어떤 형태로 그 모양이 그려져 있느냐하는 화상(畵像)이 작품의 주제 정립과 언어의 취택 등 다양한 변모를 분사하게 된다.
흙먼지 잔뜩 끼어
얼룩진 제색깔이
한바탕 가을비에
찌든 때 씻겨주니
이제야
제 얼굴 찾아
윤기 나는 이파리.
은행잎 낙엽 모아
하트를 그려놓고
큐피터 화살처럼
사랑의 촉 쏘아 보내
하잘 것
없는 배려에
벙긋 웃는 가로수.
--「가로수」전문
여기에서 송귀영 시인은 어떤 그림에 어떤 색깔로 그리고 있을까. 우선 도시의 뒷골목의 ‘얼룩진 제색깔’이 눈에 띄인다. 그리고 ‘가을비’가 그 ‘찌든 때 씻겨주는’ 채색을 하고 있다. 다시 ‘윤기나는 이파리’를 그리고 ‘은행잎 낙엽’으로 ‘하트를 그려 놓’는다. 그리고 ‘방긋 웃는 가로수’가 탄생하는 화가로 변신하고 있다.
알싸한 청송 향에
긴 호흡 들이쉬면
삼키듯 산새소리
산골짝도 고요한데
고독을
흠뻑 누리며
계곡 품에 탈속한다.
마음병 다스리는
치유의 숲속에서
운무에 쌓인 운치
잠든 영혼 일깨우는
배태(胚胎)서
죽는 날 까지
쾌로의 동반자다.
--「수목원에서」전문
보라. 여기서도 송귀영 시인은 화심(畵心)에 가득 차 있다. 그는 ‘청송 향에’서 후각의 ‘알싸한’ 호흡 속에서 ‘산새소리’를 음미하는 청각으로 색깔을 바꾸고 있다. 다시 그는 고요한 산골짝과 ‘계곡 품’, ‘치유의 숲’, ‘운무’ 등의 시각에서 그림 한 폭은 완성된다.
그는 이 그림에서 ‘고독’과 ‘마음병’을 통해서 ‘잠든 영혼’과도 접맥(接脈)하면서 ‘죽는 날까지’ 영원한 ‘동반자’임을 이 ‘수목원에서’ 발견하고 그의 정서 내면에 흐르는 서정의 원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처럼 송귀영 시인은 우리 인간이 소유한 오관(五官)을 통해서 지각(知覺)하는 이미지를 공감각적 이미지(synesthetic image)로 구사(驅使)하는 복합적인 감각을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영국의 대 시인 T. S. 엘리엇도 현대는 감수성을 시에서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는 통합된 감수성은 과학의 세계가 노출하는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이 공감각적 이미지는 하나의 감각의 묘사로서 다른 감각을 묘사할 때, 즉 소리에 냄새가 가미되고 또 그 냄새에 색채가 가미되고 다시 시각적 사물의 현상이, 다시 맛과 촉각의 묘사가 복합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이미지군(群-imagery)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화단에서 말하는 시중유화뿐만 아니라, 화중유시(畵中有詩)도 있다.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는 말이니 어쩌면 시와 그림은 동행하는 예술의 장르인지도 모른다. 작품「도시의 비둘기」에서 ‘ 정류장 갓길구석 / 휘둘러 / 날개 접고 // 쓰레기 비닐봉투 / 눈치 쪼던 비럭질에 // 차바퀴 / 화들짝 놀라 / 바빠지는 뒤뚱 걸음’이나 「능소화 연정」에서 ‘덩굴 끝 꽃봉오리 / 폭염을 매달고서 / 때로는 담장타고 / 제가는 길 거침없어 / 꽃대를 / 흔들 때마다 사모 쓰고 춤을 춘다’는 정경과 같이 한 폭의 그림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4. 서정시학의 주체와 진실
우리의 서정시학은 대체로 조동일 교수의 개념 정리와 고 김준오 교수의 전개 방식으로 압축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조동일 교수는 서정적 표현에서 발화자(發話者)와 시적 대상의 양립(兩立)을 말하고 있어서 이 발화자가 시적 대상의 세계를 자기편으로 끌어와서 자아화(自我化)한 것을 서정시라고 말한다.
해송을 스친 바람
파도일어 삭는 소리
코끝에 파고드는
송린 가루 비릿 내가
모든 일
소생시키는
해동의 자장가다.
그 눈빛 마주쳐서
단풍잎도 조문하고
뒤 돌아 낙조 등진
외로움을 풀어내어
결빙된
응어리 하나
죽정이로 털어낸다.
-- 「해도록(海濤錄)」전문
그렇다. 송귀영 시인은 파도(너울)에 관한 기록을 자아화하고 있다. ‘모든 일 / 소생시키는 / 해동의 자장가다.’라는 어조(語調)는 결론적으로 그가 주체적으로 적시하려는 ‘낙조=외로움’이며 ‘결빙=죽정이’라는 고뇌가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소재 ‘해도’를 통해서 사회적인 고뇌를 화해하고 인식하려는 해법이 적나라(赤裸裸)하게 그의 시적 진실로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의 시화(詩化)는 고 김준오 교수의 시론에서와 같이 화자와 세계간의 관계에서 시적 대상이 화자에 동화(同化-assimiation)된 시. 또는 화자가 직접 그 세계(자연이나 다른 현실들-real life)에 투사(投射-project)된 상황에서 서정시를 논하고 있다.
어둠이 질척이는
다부진 예감하나
범상한 눈빛으로
옛 기억을 겹쳐보고
흔들린
꽃대 안에서
품는 향기 맡으란다.
-- 「꽃과의 대화(2)」중에서
적선의 고마움을
티내지 않은 후회
후덕한 말 한마디
인사치례 못했는데
자연은 보답 없이도
넓은 품 벌려준다.
-- 「산림욕장에서」중에서
이 작품들은 시학에서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불리는 자연의 인격화에서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혹은 자아화)하는 동화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자연 속에 자신의 존재를 상상적으로투여하는 투사의 원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여기에서 ‘품는 향기 맡으란다’와 ‘넓은 품 벌려준다’라는 어휘와 화자의 어조가 대사물(對事物)의 관점에서 동화와 투사의 시법을 탐색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을 일별해 본다면 그는 진정한 서정시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심저의 원류에는 항상 그 자연을 통한 전원적인 기품을 잃지 않는 생할의 패턴을 견지(堅持)하면서 시를 창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자유시가 아니고 정형시(시조)의 범주에서 생성하는 표현의 다양성이 너무 율격에 통제되는 언어의 진폭(震幅)이 음수울이라는 한계를 어쩔 수 없이 감내(堪耐)해야 하는 어려움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이든 정형시이든 우리가 표출하려는 정서와 사유의 순수성과 순정적인 자연 서정의 심취(深趣)는 요즘 우리 문학이 지향하면서 추구해야 할 친자연과 자연관의 재정립이 인간의 존재문제와 상응(相應)하는 주제의 창출을 숙명적으로 성숙시켜야 하는 시인들의 책무도 동시에 탐구하게 한다.
운해 송귀영 시인의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