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세권을 물어보면 두번째는 <김수영 전집2> 산문 편을 꼽았었다. 나한테 김수영은 치열한 르포 시인 느낌. 그의 언어는 생활에 붙어있다. 붕뜬 표현이 없다. 동원된 일상어들이 저마다 시적인 힘을 갖기 때문에 글이 아름답다. 그의 별명이 노랭이, 짠돌이였던 건 알려진 사실. 그에게 시 쓰기는 순수한 세계의 행위가 아닌 생활이고 노동이었다. 돈에 초연한 척 하지 않고 원고료 받는 기쁨도 가감없이 쓴다.
르포수업 6차시에 김수영 전집은 너무 두꺼워서 선집으로 나온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었다. 수업 준비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거슬리는 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다. 못말리는 직설화법이 특기. 박인환 시인한테 “인환! 너는 왜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이럼서 <목마와 숙녀>를 까는 것도 웃기다. 꼬장꼬장하다가 상스럽다가 사랑스럽다가 서러워지는 글들,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김수영 시의 힘은 ‘바로 보마’의 정신성이다. 그리 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못하고 그걸 인정하여 바로 보지 못하는 자의 무기력, 설움이 빠지지 않는다. 글이 인간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평소 책 읽다가 좋은 부분 나오면 별표를 치고 너무 좋으면 별표 개수를 늘리는데, 이번에 김수영 산문 읽으면서는 하트가 그려졌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좋아하는 산문 ‘마리서사’ 중 일부.
“나에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좀처럼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죽음과 가난과 매명이다. 죽음의 구원. 아직도 나는 시를 통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40여 년을 문자 그대로 헛산 셈이다. 가난의 구원. 길가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신문 파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자책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역사를 긴 눈으로 보라고 하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 애들은 내 자식만큼도 행복하지 못한가 하는 막다른 수치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나는 40여 년 동안을 문자 그대로 피해 살기만 한 셈이다. 매명의 구원. 지난 1년 동안에만 하더라도 나의 산문 행위는 모두가 원고료를 벌기 위한 매문 매명 행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진정한 ‘나’의 생활로부터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나의 머리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받을 원고료의 금액에서 헤어날 사이가 없다.“ 149
지난 시간에 읽은 글에서 조지오웰이 ”유감스럽게도 나는 인간의 얼굴 표정에 무심해지도록 스스로를 단련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김수영과 만나는 지점이다.
---- sns에 올린 글이여요.
수업 후 김수영 산문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서 올렸고요.
저 글을 먼저 한글파일에 썼다가 붙여넣기 했는데 최종에는 첫 줄을 뺐어요.
글쓰기 공부에 참고하시라고 원글을 올려봅니다.
(원래 글)
인생책 질문은 어려운데, 그냥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한다. 가장 많이 읽어서다. 인생책 세권을 요구하면 두 번 째는 <김수영 전집2> 수필 편을 꼽았었다. (그리고 오웰 책들, 최승자 기형도 시집 등등) 김수영의 언어는 생활에 붙어있다. 붕뜬 표현이 없고 동원된 말들이 저마다 시적인 힘을 갖는다.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의 별명이 노랭이, 짠돌이였던 건 알려진 사실. 그에게 시 쓰기는 순수한 세계의 행위가 아닌 생활이고 노동이었다. 돈에 초연한 척 하지 않고, 원고료 받는 기쁨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나한테 김수영은 치열한 르포 시인 느낌. 르포수업 6차시에 김수영 전집은 너무 두꺼워서 선집으로 나온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었다. (...)
자세한 설명은 수업시간에 할게요.
이따 만나요.
첫댓글 원글이 같이 있어서 비교가 더 잘 됩니다. 감사합니다🫶
첫 문단은 보통 빼는 게 낫다고 하셨던 말, 은유샘이 어떻게 퇴고를 하는지 보니 더 자세히 이해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