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경천사 십층 석탑 답⑤
원 간섭기인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 원각시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탑'은 경천사 십층 석탑입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다녀온 분이면 어떤 탑인지 더더욱 금방 알 수 있겠네요.
경천사 십층 석탑은 원 간섭기인 충목왕 때에 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대리석탑입니다. 경천사는 소실되고 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1907년경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18년에 반환되었습니다. 반환 후 오랫동안 경복궁 근정전에 방치되었다가 보수하여 1960년부터 경복궁에 전시되었어요. 1995년부터 해체·복원 작업을 거쳐 2005년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 내부로 옮겨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천사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인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납니다. 3단으로 된 기단 부분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 중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붕돌의 처마는 팔작 지붕 형태의 기와 지붕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단과 탑신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어요.
① 불국사 삼층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삼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입니다.
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사리함 등이 발견되었어요.
② 감은사지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초기에 이중 기단 위에 삼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양식이 시작된 석탑입니다.
통일을 이룬 신라의 힘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동탑과 서탑이 남아 있어요.
③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12세기)은 고려 시대의 다각다층탑으로, 송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④ 정림사지 오층 석탑은 백제의 석탑으로, 목조탑 형식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⑤ 경천사 십층 석탑은 고려 후기 원의 탑 건축 양식에 영향 받아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고려 시대의 불상과 석탑, 승탑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경기 개성) 무량사 5층 석탑(충남 부여) 백제 양식을 많이 계승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강원 평창) 경천사 10층 석탑(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이전)
승탑(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예배의 대상인 불탑이 아니라, 선종 고승들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입니다.)
여주 고달사지 승탑(경기 여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립중앙박물관)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시대~조선 시대 불교 목조 건축물
시기 | 특징 |
고려 후기 | •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 주심포식 공포, 배흘림(엔타시스) 양식의 기둥 • 석왕사 응진전 ⇨ 다포식 건물 |
조선 초기 | 강진 무위사 극락전, 해인사 장경판전 |
17세기 | •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 공통점: 규모가 큰 다층 건물,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 |
18세기 | •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 • 공통점: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으 로 건립 |
건축물의 지붕, 공포, 기둥 양식
1. 지붕 양식
맞배 지붕
가장 간단한 형식으로 주심포 양식에 많이 쓰입니다. 처마 양끝이 조금씩 올라가고 측면은 대부분 노출되는 구조미를 이루어 수덕사 대웅전, 무위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개심사 대웅전, 선운사 대웅전 건물 지붕에서 나타납니다.
우진각 지붕
지붕면이 전후 좌우로 물매를 갖게 된 지붕 양식입니다.
지붕면 높이가 팔작 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고 지붕이 대표적입니다.
팔작 지붕
가장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닌 지붕으로 곡면이 특이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통도사 불이문 지붕이 대표적입니다.
2. 공포와 기둥 양식
부석사 무량수전 건물을 가지고 주심포와 배흘림 기둥 양식을 설명한 것입니다.
창덕궁 인정전 건물의 다포 양식입니다.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
주심포 양식이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양식으로 소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다포 양식이란 공포를 기둥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설치하여 건축물을 화려하게 보이게 합니다.
조선 시대 대부분의 중요 건축물(궁궐, 성곽, 사원)에는 다포식이 사용됩니다.
기둥 양식
고려 시대
삼국 시대 불교와 관련된 목조 건축물은 현존하는 것이 없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만 파악하시면 됩니다.
고려 전기에는 주로 주심포 양식이 유행하였으며, 그중 13세기 이후에 지은 일부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주심포 양식(柱心包樣式)은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면서 건물을 치장하는 장치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짜여져 있는 건축 양식입니다. 반면 다포 양식(多包樣式)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 넣은 것으로, 주로 건물을 위엄 있고 화려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배흘림 기둥은 건물의 안정감을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배가 나온 것처럼 불룩하게 만든 것으로 엔타시스 양식이라고도 합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균형잡힌 외관과 잘 짜여진 각 부분의 치밀한 배치로 고려 시대 건축의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답니다.
이들 목조 건물은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양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였는데,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은 이 시기에 건축된 다포식 건물로 유명합니다. 다포식(多包式) 건물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져 있는 것으로, 웅장한 지붕이나 건물을 화려하게 꾸밀 때에 쓰였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경북 안동) 주심포식 건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경북 영주) 주심포식 건물
예산 수덕사 대웅전(충남 예산) 주심포식 건물 황해 성불사 응전전(황해 사리원) 다포식 건물
유사 기출문제
고대의 불교 문화유산
25회 중급 6번 문제
6. 발해의 문화유산 답②
문제에 제시된 자료에 나타난 '대조영이 세우 나라로,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나라', '상경성' 등을 통해 발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해의 문화유산을 답지에서 찾으면 됩니다.
발해는 고구려 문화의 토대 위에 당의 문화를 수용하였습니다.
발해의 상경은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외성을 쌓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으며, 궁궐 앞으로는 성문 앞까지 이어지는 넓은 주작 대로를 내었습니다. 궁궐 중에는 고구려의 특징인 온돌 장치를 한 것도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궁궐과 사원터에서 발굴되는 벽돌과 기와 무늬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발해의 불교는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여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널리 융성하였어요. 불교 문화유산으로는 상경에 남아 있는 석등과 동경에서 나온 이불 병좌상, 영광탑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석등은 팔각 지붕 모양의 덮개돌과 뚜렷한 연꽃무늬,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불 병좌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광탑(발해전탑이라고도 함)은 높이 13미터의 5층 전탑(벽돌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발해의 고분으로는 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가 대표적입니다. 정효공주 묘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으로, 묘지(죽은 자의 생애와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여 관과 함께 묻은 유물)와 12인물상이 그려진 벽화가 발굴되었습니다. 정혜 공주 묘는 고구려와 같은 굴식 돌방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묘지와 함께 힘차고 생동감 있는 돌사자상이 출토되었어요. 이들 두 무덤은 공통적으로 모줄임 천장 구조라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① 칠지도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대에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강철로 만들고 금으로 글씨를 상감해 새겨 넣은 것으로, 백제의 뛰어난 금속 기술을 보여 줍니다.
②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불상으로, 흙을 구워 만든 두 분의 부처(석가불, 다보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③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관입니다.
④ 수레모양 토기는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가야의 토기입니다.
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로, 말의 배가리개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4회 중급 6번 문제
6.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답①
불교 관련 문화유산은 매회 빠지지 않고 출제되죠?
'바위에 새겨져(마애) 있고', '백제의 미소'라는 내용에서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예전에는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라고 불렀었죠)을 떠올릴 수 있어요.
①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은 7세기 초 백제의 문화재로,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온화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삼국 시대의 불상인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신라의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등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온화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통일 신라로 가면 왕의 위엄 등을 반영해 불상의 모습도 근엄한 모습을 보이죠.
② 경북 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 좌상입니다.
경주 남산에는 다양한 불상과 탑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불상은 통일 신라 때인 9세기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③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은 고려 시대의 불상입니다.
거대한 천연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2구의 불상을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④ 합천 치인리 마애 여래 입상은 9세기경 통일 신라의 불상으로 추정되입니다.
자연 암석에 부처님과 광배를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⑤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은 고려 시대인 11세기경에 만들어졌습니다.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조각해 올려 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입니다.
고대의 불상
삼국 시대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나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서산 마애 여래 삼존불이라고도 함), 신라의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은 미소를 머금은듯한 당시 불상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삼국 시대에는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중에서도 탑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고류 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유사한 형태여서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를 잘 보여줍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고구려)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왼쪽은 탑 모양의 관, 오른쪽은 삼산관을 쓰고 있음)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충남)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경북 경주)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기 조각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보살상들입니다. 석굴암 주실의 중앙에 있는 본존불은 균형잡힌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본존불 주위의 보살상을 비롯한 부조들도 매우 사실적입니다. 입구 쪽의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점점 정제되어, 불교의 이상 세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죠.
발해에서도 불교가 장려됨에 따라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습니다.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불 병좌상이라고 부르는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석굴암 본존불(경주) 발해의 이불 병좌상
23회 중급 4번 문제
45.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답⑤
이 문제는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된 문화유산을 고르면 되는 1점 배점의 쉬운 문제입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창건 이후 원형을 보존해 왔으나, 1966년에 도굴범에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그 해에 탑신부의 해체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 복원이 이루어졌어요.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의 상면 중앙에 있는 네모난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莊嚴具) 및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두루마리 불경으로, 불경의 글자 중에 8세기경에 만들어져 이때에만 사용된 당나라의 측천무후자(則天武后字)가 사용된 것이 발견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임이 밝혀져 당시에 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①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을 빌려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간행하였습니다.
1011~1081년에 걸쳐 간행한 이 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만 현재 전하고 있습니다.
②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맞아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바탕으로 조판되었습
니다(1236~1251).
팔만대장경은 15세기에 건축된 합천 해인사의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어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③ 직지심체요절(1377)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입니다.
이 책은 청주 흥덕사에서 만든 직지라는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습니다.
④ 상정고금예문은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1234년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으나, 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어요.
⑤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서는 수리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3회 중급 8번 문제
8. 선종의 특징 답②
제시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전남 화순)은 선종 승려(선승)인 철감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것입니다.
신라 말에는 당에서 귀국한(821) 도의에 의해 선종이 도입되었습니다. 선종은 경전의 이해를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교종과 달리,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내재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중시하여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선종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지방 호족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승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연곡사 동부도 등 등이 있습니다. 승탑과 함께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석탑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강원도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ㄱ - 신라 말 선종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입니다.
ㄴ - 문헌공도는 고려 중기에 최충이 설립한 사립 교육 기관입니다.
ㄷ - 선종은 스스로 참선이나 좌선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였어요.
ㄹ - 대각국사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기 위해 천태종을 창시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22회 중급 8번 문제
8. 통일 신라의 문화유산 답②
'성덕 대왕 신종', '성덕왕, 경덕왕, 혜공왕'을 통해 이 국가가 통일신라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죠?
특히, 제시된 왕들의 재위 시기는 무열왕계가 왕위를 계승하며 통일 신라의 전성기가 유지되다가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던 때입니다.
따라서 통일 신라의 문화유산을 찾으면 되겠네요.
통일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고, 당 및 서역의 문화를 수용하여 고대 문화의 꽃을 피웠던 시기입니다. 특히, 신라 중대인 무열왕 ~ 혜공왕 시기(654~780)에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예술도 전성기를 이룬 때였어요.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왕실의 후원 등으로 사원을 많이 축조하여 훌륭한 불교 문화유산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대표적인 사원이 신문왕 때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와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에 의해 세워진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이들 사원의 건립과 함께 사원 내에 세워진 석탑도 통일 신라 석탑을 대표하죠. 감은사에는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은 감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에는 이를 계승한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그리고 형태가 특이한 다보탑이 건립되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평창 상원사 동종(725)과 비천상 무늬와 신비한 종소리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 771)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당시 신라의 금속 주조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①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으로, 삼국 시대의 고구려의 불상입니다.
이 불상은 연가 7년(延嘉七年)이라는 고구려 관련 연호가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경상남도 의령에서 발견되었어요.
② 석굴암의 본존불로, 통일 신라 때 제작된 불상입니다.
석굴암(751) 주실 중앙에 모셔져 있으며, 균형잡힌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이 특징이죠.
③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에서 제작한 불탑입니다.
미륵사지 석탑과 백제 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 목조탑 형식을 많이 보존하고 있어요.
④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고려 전기의 불상입니다.
⑤ 경천사 10층 석탑(1348)은 고려 후기의 불탑입니다.
이는 원의 석탑을 본뜬 우리나라 최초의 대리석탑으로, 조선 시대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1회 중급 8번 문제
8.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의 문화유산 답⑤
발해 문화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다는 근거 자료를 찾는 문제네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크게 두 가지죠.
하나는 정치적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웠고, 이는 발해가 일본 등에 보낸 외교 문서 등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문화적으로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다는 것이로, 이는 무덤 양식이나 온돌, 불상 건축 양식으로 알 수 있죠.
발해에도 도읍지를 중심으로 많은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정혜 공주묘는 굴식 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 구조를 하고 있어 고구려 고분과 닮았습니다(정효 공주 묘는 벽돌 무덤에 모줄임 구조가 특징).
또 궁궐 터나 절터를 통하여 당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발해의 지상 건물은 궁궐터에서는 고구려의 문화적 특징 중의 하나인 온돌 장치를 한 것이 발견됩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이 발굴되었어요.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이불병좌상).
그리고 발해의 조각은 궁궐 터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발해의 벽돌과 기와 무늬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ㄱ - 발해의 영광탑은 벽돌로 만들어 쌓은 전탑으로 당나라 건축 기법과 유사한 탑면으로 조성되었어요.
현재 중국 동북 지역에서 현존하는 고탑(古塔)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ㄴ - 발해의 수도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건설하였습니다.
즉,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습니다.
ㄷ - 발해의 연꽃무늬 기와는 고구려 무늬를 계승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ㄹ - 이불병좌상의 수인, 두상 등의 표현 양식은 당과는 다른 고구려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을 하고 있어, 고구려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20회 중급 3번 문제
3. 신라의 문화 유산 답②
삼한(마한, 진한, 변한) 중 하나인 진한은 대구·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12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신라는 이 진한 소국의 하나인 사로국에서 출발하였는데, 경주 지역의 토착민 집단과 유이민 집단이 결합해 건국되었습니다(기원전 57).
따라서 신라의 문화유산을 생각하며 문제를 풀면 되겠네요.
① 금관총 금관은 최초로 발견된 신라 금관입니다.
이 시기 신라 금관의 특징은 ‘출(出)’자 모양의 나뭇가지 형태의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을 덧붙인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에는 곡옥(멧돼지 어금니 형태 장식)이 붙여져 있어요.
② 칠지도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대에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강철로 만들고 금으로 글씨를 상감해 새겨 넣은 것으로, 백제의 뛰어난 금속 기술을 보여 줍니다.
③ 임신서기석은 신라의 두 화랑이 “충도(忠道)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나라가 편안치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3년 내에 시경, 상서, 예기, 춘추전(좌전)을 습득할 것을 맹세한다.”라는
맹세의 글을 기록한 유물입니다.
이는 당시의 화랑도 사상과 한자 사용, 유교 경전 공부에 대한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④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 종)은 통일 신라 혜공왕 (771)때에 만들어진 범종입니다.
이 종은 비천상 무늬와 신비한 종소리로 유명하죠.
⑤ 토우 붙은 항아리는 경주 황남대총 출토된 것으로, 항아리 목 부분에 사람·새·거북·개구리 등의 다양한 토우를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0회 중급 5번 문제
5.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답②
'고구려 불상'하면 무조건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을 떠올리면 됩니다.
고구려 불상으로 현재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것은 이 불상밖에는 없어요.
이 사실만 알면 3점 배점의 이 문제는 10초 안에 정답을 맞출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가 됩니다.
그럼 이 불상에 대해 조금 알고 갈까요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된, 남한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의 불상입니다.
전체 높이가 16.2㎝의 작은 불상이지만, 조각 수법 드이 매우 후륭한 불상입니다.
불상의 광배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조성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입니다. 특히, 명문의 서두에 '연가 7년(延嘉七年)'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연가(延嘉)’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연호로, 명문에서 ‘고려국(高麗國)’임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천불 가운데 29번째의 이 불상이 당시 신라 또는 가야 지방이던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이와 동시에 만들어진 다른 불상들이 주위 여러 나라에 흩어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는 고구려의 국력과 불력(佛力)의 유포, 그리고 통일의 의지를 주위 모든 나라에 천명한 의의 있는 불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1967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전시 도중 감쪽같이 도난되었다가 되찾았던 해프닝이 유명합니다.(아래글 참고)
①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불상으로, 흙을 구워 만든 두 분의 부처(석가불, 다보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②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남한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불상입니다.
③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삼국 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이죠.
이 불상은 신라 또는 백제의 작품으로 추정하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일본의 세계적 자랑인 고류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이를 본 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④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은 고려 초기의 불상입니다.
⑤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신라 말에 만들어진 철불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덕수궁 미술관 전시 중 '증발'된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 1967년에는 두달 간격으로 국보 제119호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과 국보 제76호의 ‘이충무공 난중일기’가 도난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다행히 도난당했던 두 국보 중 불상은 사건 발생 13시간 만에, 그리고 ‘난중일기’는 열흘만에 되찾았다.
·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경, 국보 제119호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덕수궁미술관 2층 제3전시실의 진열장에서 백주에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
- 그날도 미술관은 평일처럼 오전 9시에 전시실 문을 열고 9월 24일부터 한 달 동안 계속돼 온 해방 후의 출토 및 발굴문화재 특별전 관람객을 입장시키고 있었다.
제3전시실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김영석 씨가 국보 불상의 도난 사실을 발견한 것은 오전 10시 40분께였다. 잠시 딴 방을 돌다가 제3실에 돌아온 그의 눈앞엔 청천벽력의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높이 1m의 진열대 위에 놓여져 있던 사방 60cm의 유리곽 속의 국보 고구려 불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대담한 범인은 유리곽 속에 푸른색 볼펜으로 급히 적은 메모 쪽지를 남기고 있었다.
“국장님(문화재관리국장을 지칭)께 직접 알리시오. 오늘 24시 안으로 반환한다고. 세계신기록을 남기기 위해. 타인에게 알리거나 약은 수작 부리다 죽은 자식 자지 만지는 격이 되지 말고. --24일. 이따 11시께 국장님께 아리겠음(인편·편지·전화 등). 지문감정 의뢰 불요.”
물론 국보 불상의 도난사실은 즉시 경찰에 신고되었다. 치안국은 도난 국보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전국의 공항 및 항만을 긴급 봉쇄하고 철저한 비상검문을 실시하도록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서울 시경에서는 민완 형사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범인은 벌써 안전한 은닉처에 숨어 있었다.
한편 하갑청 문화재관리국장은 범인이 메모로 약속한 자진 연락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약속시간인 오전 11시가 30분쯤 지난 때에 하국장의 집에 범인의 전화가 걸려 왔다. 범인은 “미안하다. 돌려주겠다”는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오후 3시와 6시에도 걸려 왔다. 같은 말의되풀이였다. 불상을 언제 돌려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범인은 메모에서 24시 안에 반환하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국장은 피가 마르는 듯한 초조감 속에 범인의 전화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밤 11시 5분께, 드디어 네번째로 범인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왔다. 부인 서정희 씨가 먼저 전화를 받은 후 하국장에게 넘겨주었다.
“불상을 한강철교의 제3교각 16번과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맡의 모래밭에 묻어 놓았으니 찾아 가시오”
마치 스릴러 영화의 대사 같았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하국장은 경찰에 알리지도 않은 채 부인과 운전사 셋이서 한강으로 차를 달렸다. 과연 불상이 비닐봉지에 잘 싸여져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극적인 사건 종말이었다. 그러나 그때 하국장이 경찰에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한 처사와 범인이 20만 원을 요구했다는 설은 뒤에 많은 의혹을 낳게 했고, 사건 내막은 시종 미스테리로 남았다.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19회 중급 8번 문제
8. 경주 불국사 다보탑(多寶塔) 답②
문제에 제시된 설명이 어려울 수도 있으나, 내용을 살펴 보면 '신라 때 만들어진 탑'+'다보여래를 상징'한다고 했으니 다보탑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경주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사찰인 불국사 대웅전 앞에는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법화경)"에 근거하여 건립되었습니다.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묘법연화경을 설법하자 칠보의 탑과 함께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나타나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며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옆에 함께 앉았다고 하는데, 석가탑과 다보탑은 이 내용을 그대로 묘사해 건립한 것입니다.
두 탑은 형태면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요.
석가탑(釋迦塔)은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며,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에 대칭되는 호칭입니다. 석가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①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신라의 석탑으로,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모전 석탑)이며,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② 불국사 3층 석탑과 나란히 있는 다보탑입니다.
다보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 석탑입니다.
③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다각다층탑인 평창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송이나 거란 등에서 유행하였던 다각다층 석탑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고려 초기 석탑입니다.
④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의 석탑입니다.
⑤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9회 중급 11번 문제
2. 발해의 문화유산 답④
밑줄 그은 '우리나라'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결정적인 내용은 '상경용천부로 돌아가면'이네요.
상경용천부는 5경(상경, 동경 서경, 남경, 중경)의 하나로, 발해의 수도였다는 아시죠?
그럼 발해의 문화유산을 찾으면 됩니다.
발해의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습니다. 궁궐 중에는 고구려의 특징인 온돌 장치를 한 것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상경의 절터에는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 주는 발해의 석등이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발해의 탑으로는 영광탑(발해전탑이라고도 함)이 남아 있는데, 이 탑은 높이 13미터의 5층 전탑(벽돌탑)입니다.
불상으로는 이불 병좌상이 대표적으로,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해의 고분으로는 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가 대표적입니다(정혜 공주는 문왕의 둘째 딸, 정효 공주는 넷째 딸).
정효공주 묘는 중국과 비슷한 벽돌 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묘지(죽은 자의 생애와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여 관과 함께 묻은 유물)와 벽화가 발굴되었습니다. 벽화에는 12인물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혜 공주 묘는 고구려와 같은 굴식 돌방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묘지와 함께 힘차고 생동감 있는 돌사자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무덤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두 무덤 모두 모줄임 천장 구조라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①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백제 또는 신라의 문화유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② 수레모양 토기는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가야의 토기입니다.
③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고구려의 연호(연가)가 기명된 고구려의 대표적인 불상입니다.
④ 영광탑은 전탑(벽돌탑)으로 발해의 대표적인 불탑입니다.
⑤ 첨성대는 신라의 천체 관측을 위한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8회 중급 6번 문제
6. 석굴암 본존불 답①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인공 석굴 사원에 있는 조형미가 뛰어난 불상'이라는 설명을 통해 석굴암 본존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와 조화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 탑등의 불교 예술이 발달하였습니다.
탑에서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이 가장 뛰어났고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상이 대표적입니다.
석굴암의 본존불과 보살상들은 이 시기 조각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석굴암 주실의 중앙에 있는 본존불은 균형잡힌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가지게 하고, 또 본존불 주위의 보살상을 비롯한 부조들도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① 통일 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입니다.
부처님의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잘 묘사해 웅장한 기상이 넘치는 통일신라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이를 인정 받아 1995년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② 삼국 시대에 제작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입니다.
삼국 시대에는 미륵 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중에서 탑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이 유명합니다.
③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입니다.
위엄이 넘치는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불상입니다.
④ 고려 때 만들어진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입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조성된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입니다.
⑤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6회 중급 7번 문제
7.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의 문화유산 답③
이 문제는 발해 문화유산 중 고구려적 요소가 있는 것을 찾는 것이지만, 답지에는 발해 문화유산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으니 그냥 발해 문화재만 찾으면 맞을 수 있네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무덤 양식이나 온돌, 기와, 불상 건축 양식 등 발해 문화에서 나타나는 고구려 문화적 요소임을 알아두세요.
발해의 궁궐터에서는 고구려의 문화적 특징 중의 하나인 온돌 장치를 한 것이 발견됩니다. 궁궐 터에서 발견되는 발해의 벽돌과 기와 무늬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무덤에서도 고구려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정혜 공주묘는 굴식 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 구조를 하고 있어 고구려 고분과 닮았습니다(정효 공주 묘는 벽돌 무덤에 모줄임 구조가 특징).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이 발굴되었어요. 특히,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불병좌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고구려 후기 법화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수인(손 모양), 두상 등이 당과는 다른 고구려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을 하고 있어, 고구려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줍니다.
① 호우명 그릇(경주 호우총 출토)으로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영향력과 관련된 유물입니다.
② 가야의 수레모양 토기입니다.
③ 발해의 이불 병좌상입니다.
④ 백제 금동 대향로로 부여 능산리 고분군, 능사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⑤ 칠지도로, 4세기 후반 백제의 근초고왕 대에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6회 중급 11번 문제
11. 선종과 관련한 문화유산 답③
'선종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한 것'은 승탑(부도)입니다.
선종과 관련하여 나타난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새겨 넣은 탑비입니다.
신라 말에는 당에서 귀국한(821) 도의에 의해 선종이 도입되었습니다. 선종은 경전의 이해를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교종과 달리,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내재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중시하여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불립문자를 내세우며 누구나 참선을 통해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하는 선종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지방 호족의 취향에 적합하여 호족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승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연곡사 동부도 등 등이 있습니다. 승탑과 함께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①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등입니다.
석등은 불을 밝히기 위해 만든 것으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만들어진 유물입니다.
②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승탑이 아니라, 불탑의 하나입니다.
③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전남 화순)은 선종 승려(선승)인 철감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입니다.
④ 법주사 팔상전은 17세기의 불교 건출물로, 불탑의 하나입니다.
⑤ 천마총의 불교 문화유산이 아니라 신라의 왕릉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6회 중급 13번 문제
13.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답①
'고구려 불상'하면 무조건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을 떠올리면 됩니다.
고구려 불상으로 현재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것은 이 불상밖에는 없어요.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된, 남한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의 불상입니다. 전체 높이가 16.2㎝의 작은 불상이지만, 조각 수법 드이 매우 후륭한 불상입니다.
불상의 광배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조성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입니다. 특히, 명문의 서두에 '연가 7년(延嘉七年)'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연가(延嘉)’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연호로, 명문에서 ‘고려국(高麗國)’임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천불 가운데 29번째의 이 불상이 당시 신라 또는 가야 지방이던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이와 동시에 만들어진 다른 불상들이 주위 여러 나라에 흩어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는 고구려의 국력과 불력(佛力)의 유포, 그리고 통일의 의지를 주위 모든 나라에 천명한 의의 있는 불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①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입니다.
② 삼국 시대에 제작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입니다.
삼국에서는 미륵 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중에서도 탑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이 유명합니다.
③ 고려 때 만들어진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입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조성된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입니다.
④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은 고려 초기의 불상입니다.
⑤ 통일 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입니다.
부처님의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잘 묘사해 웅장한 기상이 넘치는 통일신라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이를 인정 받아 1995년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5회 중급 5번 문제
5. 신라의 분황사탑 답⑤
자료에 제시된 내용의 '경주에 남아 있는 삼국 시대의 석탑',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모전 석탑)'은 분황사탑 밖에는 없습니다.
삼국 시대의 불탑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구려는 주로 목탑을 건립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어요.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계승한 것이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신라의 탑으로는 황룡사 9층탑과 분황사탑이 유명합니다. 신라인의 통일 의식을 염원하여 선덕여왕 때 자장의 건의로 건립한 황룡사 9층탑은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습니다. 분황사탑은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탑의 층 비율로 추정해 봤을 때 원래 7층이나 9층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① 익산에 있는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② 부여에 있는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③ 경주에 있는 통일신라의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입니다.
④ 강원도 양양에 있는 통일신라의 진전사지 3층 석탑입니다.
⑤ 경주에 있는 신라의 분황사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고려의 불교 문화유산
24회 중급 12번 문제
12. 부석사 무량수전 답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 '주심포 양식'이 특징이네요.
제시된 답지에는 고려 건축물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으니, 단순하게 고려 시대 건축물을 찾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고려 시대 건축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건축물의 공통된 특징은 주심포 양식, 배흘림 기둥 양식입니다. 주심포 양식이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양식이며, 배흘림 양식(엔터시스 양식)이란 건축물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기둥 중간 부분을 불륵하게 만드는 양식을 뜻합니다.
고려 후기에는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처럼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여 조선 시대 건축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다포 양식이란 공포를 기둥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설치하는 양식입니다. 다포 양식은 공포가 많기 때문에 건축물이 화려하고 위엄 있게 보이게 하죠.
조선 시대 들어 궁궐 전각이나 도성문, 사원 건축은 대부분 다포식 건물로 지어집니다. 조선 시대 주심포 양식의 건축물로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 있습니다.
①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17세기에 지어진 주심포식 건물입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유일한 5층 목조탑입니다.
참고로 17세기의 목조 건축물로는 법주사 팔상전을 비롯해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이 대표적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②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17세기에 지어진 다포식 건물입니다.
③ 김제 금산사 미륵전은 17세기에 지어진 다포식 건물입니다.
④ 부안 개암사 대웅전은 18세기 지어진 다포식 건물입니다.
18세기에는 크게 성장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어요.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를 들 수 있습니다.
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기둥을 특징으로 하는 고려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3회 중급 15번 문제
15.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 답①
제시된 사진(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만으로도 고려 시대의 불상임을 알 수 있죠?
초대장에 나타난 '천태종, 조계종 등의 불교 종파가 성립되고, 대장경을 비롯한 불교 예술이 화려한 꽃을 피웠던 시기'는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의 불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입니다.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광주 춘궁리 철불) 같은 대형 철불이나,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반영된 거대한 불상도 조성되었어요. 또,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같이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양식도 있었습니다.
석탑은 신라 양식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조형 감각을 가미하여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다각 다층탑이 많았고, 통일신라의 석탑에 비해 안정감은 부족하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고대 삼국의 전통을 계승한 지역적 특징을 보이는 석탑이 조성되기도 하였어요.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는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과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하며, 고려 후기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뜬 것으로, 조선 시대 만들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어요.
①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고려 시대에 유행한 다각다층탑으로 송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②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신라 말에 조성된 석탑으로,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③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에서 세운 석탑입니다.
④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은 통일 신라 때인 8세기 중반에 만들어졌습니다.
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은 7세기 초 백제에서 제작한 것으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온화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0회 중급 16번 문제
16.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문화유산 답②
문제에 금동 관음보살 좌상이 나와 있지만, 이는 중요치 않고 설명에 나와 있는대로 그냥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문화유산을 찾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사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유산 중 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을 찾는 문제면 3점 배점이 어울리지만, 고려 시대 문화유산만 찾아도 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이니 2점 배점 주어도 어렵지 않은 문제로 보이네요.
고려가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두 나라 사이에는 자연히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많아졌고, 문물 교류가 활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이와 반대로 고려 사람이 전란 중에 포로 또는 유이민으로 들어갔거나 몽골의 강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사람을 포함해 많은 고려인들이 몽골에 건너가면서 이들에 의하여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합니다.
예술과 관련해 원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것으로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공민왕이 그린 천산대렵도를 들 수 있어요.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떠 만들어진 대리석의 다각 다층탑으로, 이는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으로 이어졌습니다. 공민왕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는 당시의 그림에 원대 북화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줍니다.
ㄱ - 천산대렵도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며, 변발을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천산에서 수렵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짙은 채색과 꼼꼼한 필치를 사용하여 대상의 외형묘사에 주력하는 원대 북화의 영향을 받았어요.
ㄴ - 천마도는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그림(말의 다래에 그려진 그림)이니 원과는 관계가 없죠?
ㄷ -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대리석 재질, 탑면에 부조 양식 등 원의 석탑 양식을 본떠 만들어졌어요.
ㄹ -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은 통일 신라 당시 만들어진 이형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19회 중급 13번 문제
13. 고려 시대의 불상 답④
문제에 제시된 답사 주제가 '고려의 불상을 찾아서'라고 제시되어 있으니 고려의 불상을 찾으면 되네요.
고대~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 유산에 대한 문제는 출제빈도가 매우 높으니 교과서나 카페자료를 통해 시대별 중요한 불상을 포함한 불교 문화유산에 대해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고려 시대의 불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 초기에는 각 지역의 유력 호족들이 광주 춘궁리 철불(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같은 대형 철불을 많이 만들었어요.
또한,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안동 이천동 석불,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나며서 크기도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였습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높이가 18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지만, 전체적인 균형미는 떨어집니다.
11세시경에 제작된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은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조각해 올려 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입니다.
그리고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같이 위엄이 넘치는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불상도 만들어졌어요.
① 발해의 이불병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② 통일 신라 때 제작된 경주 석굴암 본존불입니다.
석굴암 주실의 중앙에 있는 본존불은 균형잡힌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③ 백제의 불상인 서산 마애 여래 삼존상(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입니다.
이 불상은 7세기 초 백제에서 제작한 것으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온화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④ 고려 초 광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입니다.
⑤ 신라의 불상인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입니다.
통일 전 7세기 초 신라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미소를 머금은듯한 온화한 모습이 특징입니다.
삼국 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은 온화하고 미소띤 모습이라는 것, 기억해 두세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7회 중급 16번 문제
16. 팔만대장경 답⑤
문제에 제시된 팔만대장경과 그 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 사진은 교과서에서 자주 봤던 것이고,
사진 설명에 '총 8만여 장에 달하는 경판'이라는 내용을 통해 팔만대장경(재조 대장경)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고려는 현종(1009~1031) 때에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을 빌려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처음으로 대장경을 간행하였습니다(초조대장경). 70여 년(1011~1087)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렸어요(인쇄본 일부가 남아 있음.).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후에는 의천이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교장을 편찬하였어요.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여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어요(1086).
몽골 침략기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새로운 대장경을 만들었어요.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1236~1251) 만에 만들어진 이 대장경을 재조대장경 또는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릅니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힙니다.
이를 인정 받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으며, 이를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도 과학적인 설계를 인정 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ㄱ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ㄴ - 의천이 교장도감에서 조판한 것은 속장경에 대한 설명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대장도감에서 조판하였습니다.
ㄷ -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을 부처의 힘을 빌려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제작하였습니다.
ㄹ - 팔만대장경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로 묶인 ⑤번입니다.
16회 중급 17번 문제
17. 경천사지 10층 석탑 답⑤
이 탑은 건물 안에 전시되어 있는 다각다층의 석탑이네요.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본 분들이면 건물 내부 전시관으로 들어가자 마자 중앙에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딱 전시되어 있어 한번씩은 다 봤을 겁니다.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리석탑입니다. 이 탑은 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충목왕 4년(1348)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세워졌던 고려 시대의 사원이었어요. 이 사원은 언제 소실되었는지 모르지만 절터에는 경천사지 10층 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1907년경 일본 관리가 몰래 이를 해체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가 반환 노력 끝에1918년에 국내로 반환되어 경복궁에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존의 어려움으로 1995년 해체한 후 다시 복원 작업을 거쳐 2005년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 내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인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납니다. 3단으로 된 기단 부분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 중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붕돌의 처마는 팔작 지붕 형태의 기와 지붕 모습을 하고 있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단과 탑신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요. 이러한 양식은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으로 이어졌습니다.
① 승탑(부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승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데, 신라 말의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고려 초기의
고달사지 승탑이 대표적입니다.
②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 오래된 석탑은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③ 경주 분황사탑에 대한 설명입니다.
④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건립한 석탑으로 대표적인 것은 감은사지 3층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5회 중급 13번 문제
13. 고려의 문화재 답③
고려 시대의 문화유산이 아닌 것을 찾는 문제네요.
(가) 고려 시대 건축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기둥 양식을 간직한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여 조선 시대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은 고려 시대 다포식 건물로 유명하죠.
(나) 고려 시대의 석탑은 신라 양식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조형 감각을 가미하여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어요. 다각 다층탑이 많았고, 안정감은 부족하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었습니다.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과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하며, 고려 후기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뜬 것으로, 조선 시대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고대 삼국의 전통을 계승한 석탑이 조성되기도 하였어요.
(다) 법주사 팔상전은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조선 후기인 17세기의 건축물입니다.
(라)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에는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어요.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죠.
(마) 고려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 여래 좌상(광주 춘궁리 철불) 같은 대형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안동 이천동 석불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도 조성되었어요. 또,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같이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걸작도 제작되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4회 중급 17번 문제
17. 고려 시대의 불상 답①
이 문제는 단순하게 고려 시대의 불상을 찾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고려 시대의 불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 여래 좌상(구 광주 춘궁리 철불) 같은 대형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어요. 또한,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 안동 이천동 석불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도 조성되었습니다. 또,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같이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걸작도 제작되었어요.
ㄱ - 파주 용미리 마애 이불 입상은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천연 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 놓은 두 구의 불상입니다.
ㄴ -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높이가 18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지만 전체적인
균형미는 떨어집니다.
ㄷ -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은 바위에 조각하였으며, 미소를 머금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유명합니다.
ㄹ - 통일 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ㄴ으로 묶인 ①번입니다.
조선의 불교 문화유산
21회 중급 23번 문제
23. 법주사 팔상전 답④
사진만 보고도 법주사 팔상전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법주사 팔상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로, 유일한 5층 목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답은 바로 찾아집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답지가 몇번 출제되었으니, 다른 것은 잘 몰라도 이 사실은 꼭 기억해 둡시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의 활약 등으로 불교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 차지하고 정치·경제적인 변화가 나타나면서 건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양반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부농, 상공업 계층의 지원 아래 많은 사원이 세워졌고,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대규모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죠.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를 들 수 있습니다.
① 팔만대장경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죠?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고, 장경판전은 조선 전기에 건축된 건물입니다.
②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은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되었어요.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입니다.
③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보는 것은 고려 시대 때인 1363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지은 절입니다. 팔상전은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후 선조 38년(1605)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년)에 중건되었는데, 이때 사명대사(유정)가 복원 사업을 주도하였습니다.
④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유일한 5층 목조탑입니다.
이 건축물이 탑인지 모르셨던 분은 이 기회에 탑임을 알아두세요.
⑤ 이런 불교 건축물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대표적인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7회 중급 13번 문제
13. 불탑의 제작 순서 답③
불교 유물은 고급이나 중급 시험에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불탑과 관련하여서는 백제의 미륵사지, 정림사지 5층 석탑, 신라의 분황사 모전 석탑, 통일신라기의 감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 3층 석탑, 다보탑, 고려의 월정사 9층 석탑, 경천사지 10층 석탑, 조선의 원각사기 10층 석탑은 사진과 함께 제작 시기, 특징을 꼭 공부해 두세요.
(가) 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경내에 있는 고려 중기(12세기경)에 제작된 석탑입니다. 석탑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이 석탑은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주로 유행했던 다각다층 석탑의 하나로 송의 양식을 띠면서도 고구려적인 전통을 보이는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합니다.
(나) 감은사지 3층 석탑은 통일 신라 초기의 석탑을 대표합니다. 이중의 기단 위에 사각형으로 쌓아올린 3층 석탑으로, 동·서 두 탑(쌍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이 탑에 나타난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석탑 양식은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으로 완성되어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되었어요.
(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세조 때에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입니다(1465). 이는 고려 후기의 원의 석탑을 본뜬 경천사 10층 석탑(1348)과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되어 이를 모방하였음을 알 수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나)-(가)-(다)로 묶인 ③번입니다.
14회 중급 31번 문제
31. 조선 후기의 건축물 답⑤
이 문제는 간단하게 조선 후기의 불교 건축물을 찾으면 됩니다.
조선 후기에 불교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 차지하고 정치·경제적인 변화가 나타나면서 건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양반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부농, 상공업 계층의 지원 아래 많은 사원이 세워졌고,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대규모 건축물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건축되었습니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죠.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를 들 수 있습니다.
ㄱ -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1972년 보수 공사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 건물은 신축 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 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ㄴ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타 버렸답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ㄷ, ㄹ -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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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새로운 문제 감사
답은 너무 쉬웠네요
너무 친절하게 건물 명을 다 알려줘버리니 ㅎㅎ
고려 문화 Part에서 무조건 1순위
고려 후기 경천사지 10층 석탑
1점 문제라는 것이 함정 ㅎ
댓글
석탑, 불상은 많이 헷갈려요 ㅠㅠㅠ
문화부분문제는 많이 헷갈리는데, 정리가 굉장히 잘되어있네요^^감사합니다!
문화재중에서도 특히 석탑, 불상의 경우에 헷갈리는거같아요
5번 5번!! 정리가 잘되있어서 한번 쭈욱 읽었네요
이건 운 좋게 외운탑이 나와서 풀었네요, 근데 다른 탑이 나왔으면 못 풀었을듯.. ㅠ 암기를 해야하나..
해설이 자세해서 다른 문제 풀 때에도 많은 도움되었어요!
탑이 진짜 제일 헷갈리는것같아요ㅠㅠ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형식적인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문화부분은 봐도봐도 헷갈리는데,,,, 자꾸 보면서 익혀야 할 것 같네요~!
저는 문화부분이 정말 헷갈려서 지금 건너뛰고 있어요ㅠㅠ문제 계속 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될 것 같아요.
문화부분 너무헷갈려요ㅠㅠㅠ감사합니다
문화부분이 제일 어려운 것같아요 특히 탑과 건축양식은 봐도봐도 익숙치않네요 눈에 많이 익혀야겠어요ㅠㅠ
불상이랑 탑이 제일 헷갈리는거같아요ㅠㅠㅜ 27회때도 불상사진이 나왔던거 같은데 이번에는 정확히 알아가야겠어요!
문화파트가 너무 어렵네요 ㅠ 탑, 불상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걱정이네요 ㅠㅠ
아직 불상이나 탑들을 잘 익히지 못해서 어렵네요ㅠㅠ 그래도 이렇게 정리 잘해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어려운부분을 잘 정리된 해설을 보고 공부한다면 햇갈리지 않을듯 해요. 그래도 역시 이해하고 익히는게 좋겠죠 ㅠㅠ
한페이지에 사진이 잘 모아져 있어서 한눈에 볼수 있게 정리할때 매우 좋은거 같아요~
아직 헷갈리는것이 많지만 풀이를 통해 실력을 쌓아야겠어요!!
특히 프린트해서 따로 정리하니 많은 도움이 되어요
덕분에 탑 내용 다시한번 정리하고갑니다!
불상과 탑은 시대별 특징을 잘 구분해야겠네요...
탑이 다 비슷하게 생기고 이름도 너무 어려운거 같은데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어서 정말 좋아요
사진까지 있어서 자주 보면서 익혀야겠어요
탑의 이름과 시대가 외우기 어렵고 헷갈렸는데 해설이 너무 잘되어있어 너무 좋아요 한번더 공부하고 갑니다
ㅠ여기 너무 어려워요ㅠ
이제 이해가 잘 되네요~감사합니다
다른 탑과 불상 정리까지~감사합니당